제목 그리스도교의 선교 거점으로 번성한 아리마

  • 나가사키
장르:
사적·성터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19
지역 협의회명:
「nagasakitoamakusachihonosempukukirishitankanrenisan」hozonkatsuyojikkoiinkai

Arima Flourishes as a Base for Christian Missionaries

At the time, Japan was divided into multiple fiefdoms controlled by feudal lords known as daimyo. While many daimyo in and around the Kyushu region welcomed the missionaries because of the opportunities for commercial gain, others became stalwart believers in the new religion. Those feudal lords who converted to Christianity and did their best to help the missionaries with the work of propagation are referred to as Christian daimyo. The four best-known in Kyushu were Ōmura Sumitada, Arima Harunobu, Ōtomo Sōrin, and Konishi Yukinaga.


When Father Alessandro Valignano, the Jesuit Visitor overseeing all the order’s activities in Asia, came to Japan for the first time in 1579, he met Arima Harunobu, the daimyo of the Nagasaki region. Valignano converted Harunobu and baptized him at Hinoe Castle, the seat of the Arima clan. Harunobu continued to welcome missionaries even after Toyotomi Hideyoshi’s 1587 edict to expel the Christian fathers, and the province of Arima prospered as a base for the propagation of Christianity.


Many people living in the domains of the Christian daimyo followed in their masters’ footsteps and converted to Christianity. Many churches were built in the Nagasaki region; seminaries and colleges opened in Arima and Nagasaki, Urakami, and Amakusa; and European culture, in the form of painting, music and printing, began to spread.


© Shoji Yoshitaka


有馬がキリスト教宣教の拠点として栄える


当時、日本は大名と呼ばれる領主が治めるたくさんの領地に分かれていた。九州地方の多くの大名は貿易の利益を求めて宣教師を受け入れたが、キリスト教の敬虔な信者になったものもいた。キリスト教に改宗し、宣教師たちの布教活動を支援した大名は「キリシタン大名」と呼ばれる。九州のキリシタン大名で最もよく知られているのは、大村純忠、有馬晴信、大友宗麟、小西行長の四人である。


アジアでの布教活動を監督するイエズス会の「巡察師」だったアレッサンドロ・ヴァリニャーノ神父は、1579年に初めて来日した際、有馬晴信という長崎地方の大名と出会った。ヴァリニャーノは晴信に有馬氏の居城である日野江城で洗礼を授けた。有馬晴信は、1587年に豊臣秀吉が「伴天連追放令」を出した後でさえも積極的に宣教師を受け入れ、有馬地域はキリスト教宣教の拠点として栄えた。


キリシタン大名の領地では領主にならって多くの領民が改宗した。長崎地方には多くの教会堂が建てられた。有馬や長崎、浦上、天草にはセミナリオやコレジオが開かれ、絵画や音楽、印刷技術などのヨーロッパ文化が広まっていった。


(挿画:庄司好孝)

有馬,基督教的一大傳教據點


當時的日本劃分為眾多領地,由各地領主「大名」負責管轄。在九州地區,為了貿易利益而接納傳教士的大名不在少數,其中亦有大名因此成為虔誠的基督徒。改信基督教且支援傳教士傳教的大名被稱為「吉利支丹大名」。九州最知名的吉利支丹大名有四人,分別為大村純忠、有馬晴信、大友宗麟、小西行長。

亞歷山德羅·范禮納諾神父是負責視察亞洲傳教活動的耶穌會視察員,其於1579年首度赴日時,與長崎地區的大名有馬晴信相遇。范禮納諾隨後在有馬家的居城「日野江城」為有馬晴信進行洗禮。即使豐臣秀吉於1587年實施《伴天連追放令》之後,有馬晴信仍積極接納傳教士,令有馬地區成為一大基督教傳教據點。

當時許多吉利支丹大名領地的居民皆仿效領主,一同改信基督教,長崎地區也因此興建了不少教堂。有馬、長崎、浦上、天草等地紛紛開設神學校及神學院,歐洲的繪畫、音樂、印刷技術等文化亦隨之盛行。


(插圖:庄司好孝)

有马——繁荣发展的传教之地


当时的日本被划分为众多领地,由各地领主“大名”负责统治。在九州地区,为了从贸易中获利而接纳传教士的大名不在少数,其中不乏大名成为虔诚基督徒的事例。改信基督教且支援传教士传教的大名称之为“吉利支丹大名”。九州最知名的吉利支丹大名有四人,分别为大村纯忠、有马晴信、大友宗麟、小西行长。

亚历山德罗·范礼纳诺神父是负责视察亚洲传教活动的耶稣会视察员,他于1579年首度赴日,遇见了长崎地区的大名有马晴信。范礼纳诺随后在有马家的居城“日野江城”为有马晴信进行洗礼。1587年,丰臣秀吉颁布《伴天连追放令》(限制基督教传播的相关禁令),但有马晴信仍积极接纳传教士,使有马地区成为繁荣的基督教传教据点。

当时许多吉利支丹大名领地的居民皆仿效领主,一同改信基督教,长崎地区的教堂如雨后春笋般拔地而起。有马、长崎、浦上、天草等地纷纷开设神学校及神学院,欧洲的绘画、音乐、印刷技术等文化亦随之盛行。


(插图:庄司好孝)

그리스도교의 선교 거점으로 번성한 아리마


일본에는 당시 다이묘라고 불리는 영주가 다스리는 여러 영지로 나뉘어 있었다. 규슈 지방을 다스리는 대부분의 다이묘는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선교사를 받아들였는데, 그중에는 그리스도교의 독실한 신자가 된 다이묘도 있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을 지원한 다이묘를 ‘기리시탄 다이묘’라고 부른다. 규슈의 기리시탄 다이묘 중에서는 오무라 스미타다, 아리마 하루노부, 오토모 소린, 고니시 유키나가, 이 네 사람이 가장 유명하다.


아시아 지역의 포교 활동을 감독하는 예수회의 ‘순찰사’였던 알렉산드로 발리냐노 신부는 1579년에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나가사키 지방의 다이묘였던 아리마 하루노부와 만났다. 하루노부는 아리마 가문이 거주하는 히노에 성에서 발리냐노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아리마 하루노부는 1587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바테렌(신부) 추방령’을 내린 후에도 적극적으로 선교사를 받아들였고, 아리마 지역은 그리스도교 선교의 거점으로 번성했다.


기리시탄 다이묘의 영지에서는 영주를 따라 수많은 주민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나가사키 지방에는 많은 교회당이 건립되었다. 아리마와 나가사키, 우라카미, 아마쿠사에서 세미나리오(수도사 육성을 위한 초등교육기관)와 콜레지오(성직자 육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가 개최되었고, 회화와 음악, 인쇄 기술 등 유럽 문화가 퍼져나갔다.


(삽화: 쇼지 요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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