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Oda Nobunaga (June 23, 1534–June 21, 1582)

  • Gifu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Interpretive Sign
Text Length:
251-500
FY Prepared:
2018
Associated Tourism Board:
bijittoGIFUkyogikai
Associated Address:
18 Gifu-shi , Gifu

織田信長は、戦国時代(1467ー1600)末期に全国統一を図った三英傑(織田信長・豊臣秀吉・徳川家康)の最初の人物である。軍事の面で天才的な能力を持っていた彼は長槍と火縄銃を使用する新しい戦術を開発した。一方で、築城技術も大きく進歩させた。


1551年に信長の父親である織田信秀が亡くなった後、信長は一族の力を統合し、1560年までに今の岐阜と名古屋周辺の地域を支配下に収めた。桶狭間の合戦(1560)で、信長は今川義元率いる25,000人の軍勢を、火縄銃を装備したわずか3000人の勢力で敗北させた。 1567年に稲葉山城を手中に収め、城と城下町の名を「岐阜」と改名した。その後、約10年の間に、城を拡大し、1576年に現在の滋賀県に新しく完成した安土城に移るまで、岐阜城を拠点として使用した。

影響力と軍事力が増すにつれ、信長はより野心的になり、自らの力で天下を統一しようと努力した。 1575年には長篠(愛知県)での大規模な銃撃戦で強力な武田氏の軍勢を破った。 1578年に上杉謙信が死去し、求心力が弱まっていた上杉家を傘下に収め、1580年には権力に反対する仏教の宗派である一向宗の蜂起集団を殲滅した。1581年には現在の三重県伊賀地方を掌握し、1582年初頭には武田氏を完全に滅亡させた。

明智光秀(1528ー1582)は、織田信長の最も信頼していた家臣の一人であった。1582年6月、信長は中国地方での戦への増援を光秀に命じた。しかし光秀は自らの13000人の部隊を、信長がその時滞在していた京都の本能寺に向かわせた。光秀は主君である信長の信頼を裏切り攻撃したのである。圧倒的多数の明智勢の攻撃を受け、矢で負傷した信長は、奥の部屋に引き下がり、自刃した。その数週間後、光秀は山崎(京都府)の戦いで、信長の家臣であった豊臣秀吉(1537ー1598)の軍勢に敗れ、逃亡中に殺された。そして信長の死後、彼が目指した天下統一への道を秀吉が引き継ぐこととなった。

岐阜城历代城主:6 织田信长


日本战国时代(1467-1600)末期,有三位在推动国家统一进程中卓有建树的人物,人称战国“三英杰”,他们就是织田信长(1534-1582)、丰臣秀吉(1537-1598)和德川家康(1543-1616)。织田信长是其中最先崭露头角的一位,他是军事天才,发明了许多适合长矛和火绳枪部队使用的新战术,还大大提升了城郭建筑技术。

1551年,父亲织田信秀(1510-1551)去世,此时织田信长已经完全整合了家族内部力量。到了1560年,如今的岐阜、名古屋及周边一带都已被他收归麾下。在爆发于今爱知县的桶狭间之战(1560年)中,织田信长仅凭装备了火绳枪的三千兵力,一举打败今川义元(1519-1560)的两万五千大军。1567年,织田信长夺取稻叶山城,并将当地改名为“岐阜”。之后,织田信长花了大约10年时间扩建城郭,将岐阜城打造成自己的大本营,直到1576年才搬迁至新落成的安土城(今滋贺县境内)。

随着个人声望与军事力量的不断增长,织田信长的野心越来越大,开始致力于统一日本。1575年,织田信长在爆发于今爱知县的大规模火枪战长篠之战(篠,音同“小”)中打败了强大的武田家族军队。1578年,上杉谦信(1530-1578)离世,织田信长接掌凝聚力衰退的上杉家族,并在1580年剿灭了由反对势力“一向宗”教派组织的乱党。1581年,他掌管伊贺地区(今三重县),并在1582年初彻底消灭了武田家族。

同年6月,织田信长授命麾下最信赖的家臣之一明智光秀(1528-1582)率军增援日本中国地区(日本本州西部地域名,包括鸟取、岛根、冈山、广岛、山口五县)的一场战役,孰料明智光秀却将旗下一万三千兵力派往京都本能寺——织田信长当时就住在那里。明智光秀背叛主君织田信长,对其发起了攻击。双方兵力悬殊,织田信长又中箭受伤,最终他退入寺院内室自尽身亡。数周后,明智光秀在今京都府爆发的山崎之战中败给了织田信长另一位家臣丰臣秀吉的军队,战死于逃亡途中。织田信长去世后,丰臣秀吉接过了统一全国的大旗,继续织田信长未竟的大业。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 시대(1467~1600) 말기에 전국 통일을 도모한 세 영웅(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 첫 번째 인물이다. 군사적인 면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지녔던 그는 장창과 화승총을 사용하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 한편으로는 축성 기술도 크게 발전시켰다.

1551년에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오다 노부히데가 사망한 후 노부나가는 가문의 힘을 통합하여, 1560년까지 지금의 기후와 나고야 주변의 지역을 지배하에 두었다. 오케하자마 전투(1560)에서 노부나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이끄는 25,000명의 군세를 화승총으로 무장한 불과 3,000명의 병력으로 격퇴했다. 1567년에는 이나바 산성을 수중에 넣고 성과 성하마을의 이름을 ‘기후’로 바꿨다. 그 후 약 10년 동안 성을 확장하여, 1576년에 현재의 시가현에 새로 완성된 아즈치성으로 옮길 때까지 기후성을 거점으로 사용했다.

영향력과 군사력이 높아진 노부나가는 더욱 야심차게 자신의 힘으로 천하를 통일하려 노력했다. 1575년에는 나가시노(아이치현)에서 벌어진 대규모 총격전에서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다케다 가문의 군세를 꺾었다. 1578년에 우에스기 겐신이 사망하면서 구심력이 약해져 있던 우에스기 가문을 산하에 두었고, 1580년에는 권력에 반기를 든 불교 종파 일향종의 봉기 집단을 섬멸했다. 1581년에는 현재의 미에현 이가 지방을 장악하고, 1582년 초에는 다케다 가문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아케치 미쓰히데(1528~1582)는 오다 노부나가가 가장 신뢰한 가신 중 한 명이었다. 1582년 6월, 노부나가는 주고쿠 지방에서 진행 중이던 전투에 지원군을 보낼 것을 미쓰히데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미쓰히데는 자신의 13,000명 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노부나가가 당시에 머물고 있었던 교토의 혼노지 절로 향했다. 미쓰히데는 주군인 노부나가의 신뢰를 배신하고 그를 공격했다. 압도적 다수의 군세를 가진 미쓰히데의 공격을 받은 노부나가는 화살에 부상을 입고 안쪽 깊숙한 방으로 몸을 피했다가 결국 칼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미쓰히데는 야마자키(교토부) 전투에서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의 군대에 패해 도주하던 중에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노부나가가 죽은 후, 그가 목표로 한 천하통일에의 길은 히데요시가 이어받게 되었다.

Oda Nobunaga was the first of the “three unifiers” who brought about the end of the Sengoku Period (1467–1600). A military genius, he developed new tactics for armies using spears and arquebus guns and also greatly improved castle construction techniques.

When his father died in 1551, Nobunaga was able to consolidate power within his own clan and by 1560 he had taken control of the region around what is now Gifu and Nagoya. In the Battle of Okehazama (1560), Nobunaga defeated an invading force of 25,000 Imagawa samurai with just 3,000 men armed primarily with arquebuses. He captured Inabayama Castle in 1567 and renamed it “Gifu.” For about ten years he expanded the castle and used it as his stronghold until he moved again in 1576 to the newly completed Azuchi Castle in modern-day Shiga prefecture.

As his influence and power rose, Nobunaga grew more ambitious and worked to unify all of Japan under his rule. In 1575, Nobunaga defeated the powerful Takeda clan in a large-scale gun battle at Nagashino. He dominated the Uesugi clan after the death of their leader in 1578 and defeated the forces of Hoganji temple in 1580. In 1581 he took control of Iga province, and in early 1582 he had completely destroyed the Takeda clan.

Akechi Mitsuhide (1528–1582) was in Oda Nobunaga’s inner circle of trusted generals. In June 1582 Nobunaga ordered him to bring reinforcements to a battle in Western Japan, but he instead marched his 13,000 men to Honnoji Temple in Kyoto, where Nobunaga was staying at the time. Mitsuhide betrayed Nobunaga and attacked him. Hopelessly outnumbered and wounded by arrow fire, Nobunaga retreated into the temple’s inner sanctum and committed ritual suicide. Mitsuhide was killed weeks later after the Battle of Yamazaki. Another of Nobunaga’s generals, Toyotomi Hideyoshi (1537–1598), would continue Nobunaga’s work of national un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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