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Oda Hidenobu (1580–July 24, 1605)

  • Gifu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Interpretive Sign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18
Associated Tourism Board:
bijittoGIFUkyogikai
Associated Address:
18 Gifu-shi , Gifu

岐阜城の最後の城主は、1592年から1600年まで城を統治した幼名三法師と呼ばれた織田秀信だった。秀信の父信忠(1557–1582)と祖父信長(1534–1582)が本能寺と二条城で明智光秀(1528-1582)の裏切りにより死亡した時、秀信はわずか2歳であった。信長と彼の長男である信忠の死後、次男信雄(1558-1630)と三男信孝(1558-1583)の間で後継者争いが起こった。誰が織田家の正当な後継者であるかを論議するため、清洲城(愛知県)で行われた会議において、豊臣秀吉(1537ー1598)は、まだ子供に過ぎなかった秀信(三法師)が正統の後継者になるべきだと主張した。秀信は最終的に織田家の後継者になったが、その政治的権力は秀吉によって完全に掌握されていた。


秀信が岐阜城の城主であった1600年当時、岐阜城は徳川家康率いる東軍が石田三成率いる西軍を打倒するにあたり重要な拠点と考えられていた。このため、西軍側であった岐阜城は、同年の関ヶ原(岐阜県)の戦いの直前に、東軍の福島正則(1561-1624)と池田輝政(1565-1613)の攻撃を受けて落城した。血の付いた城の床板は、城内で戦死した者を弔うために、後に岐阜市内の崇福寺の天井板に使われたと言われている。戦いの後、城を追われた秀信は世をはかなみ出家したが、その後わずか5年でこの世を去った。

岐阜城历代城主:12 织田秀信


织田秀信(1580-1605)又名“三法师”,于1592年至1600年掌管岐阜城,是该城的最后一任城主。他是织田信忠(1557-1582)之子,也是织田信长(1534-1582)之孙。1582年,就在织田秀信刚刚两岁时,父亲和祖父便在京都遭遇明智光秀(1528-1582)的背叛,分别遇袭并陨命于本能寺和二条新御所。织田信长与长子织田信忠双双去世后,次子织田信雄(1558-1630)与三子织田信孝(1558-1583)就家族继承权展开了争夺战。在织田家族于清洲城(今爱知县)举办的继承者商讨会议上,丰臣秀吉(1537-1598)提出年幼的织田秀信才应当是继承人。最终,织田秀信成为了织田家族家主,但政治势力实际掌握在丰臣秀吉手中。

在织田秀信仍但任岐阜城主的1600年,这座城郭被认为是德川家康(1543-1616)所率东部联军打败石田三成(1560-1600)所率西部联军战略计划中的一大关键据点。同年,就在今岐阜县的关原之战爆发前,东军的福岛正则(1561-1624)和池田辉政(1565-1613)对西军辖下的岐阜城发起攻击,成功夺取了城郭。据说,为了悼念城内战死的人们,城郭内血迹斑斑的地板后来被送到岐阜市内的崇福寺,做成了天花板。战后,被逐出岐阜城的织田秀信弃世出家,但也仅在5年后便去世了。


기후성의 마지막 성주는 1592년부터 1600년까지 성을 통치했으며 어릴 적에는 산보시(三法師)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오다 히데노부였다. 히데노부의 아버지 노부타다(1557~1582)와 할아버지 노부나가(1534~1582)가 혼노지 절과 니조성에서 아케치 미쓰히데(1528~1582)의 배신으로 사망했을 때, 히데노부의 나이는 고작 2살이었다. 노부나가와 그의 장남 노부타다가 죽은 뒤, 차남 노부카쓰(1558~1630)와 삼남 노부타카(1558~1583) 사이에서 후계자 다툼이 벌어졌다. 누가 오다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인지를 논의하기 위해 기요스성(아이치현)에서 열린 회의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아직 아이에 불과했던 히데노부(산보시)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히데노부가 오다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으나, 그 정치적 권력은 히데요시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히데노부가 기후성의 성주였던 1600년 당시에 기후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이 이시다 미쓰나리가 이끄는 서군을 쓰러뜨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거점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서군에 속해 있던 기후성은 같은 해 세키가하라(기후현) 전투가 발발하기 직전에 동군 측의 후쿠시마 마사노리(1561~1624)와 이케다 데루마사(1565~1613)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다. 피로 얼룩진 성의 마루청은 성안에서 전사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후에 기후시 시내에 있는 소후쿠지 절의 천장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투 후, 성에서 쫓겨난 히데노부는 세상을 등지고 출가했지만, 그 후 불과 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The final lord of Gifu Castle was Oda Hidenobu, also known as Samboshi, who ruled the castle from 1592 to 1600. Hidenobu was the son of Oda Nobutada (1557–1582) and grandson of Oda Nobunaga (1534–1582). He was just two years old in 1582 when his father and grandfather were betrayed in Kyoto by Akechi Mitsuhide (1528–1582) at Honnoji temple and Nijo Castle. After the death of Nobunaga and his eldest son, his second son, Nobukatsu (1558–1630), and his third son, Nobutaka (1558–1583), disputed who was the rightful heir to the clan. At the clan leadership meeting held at Kiyosu Castle, Toyotomi Hideyoshi (1537–1598) asserted that in fact the infant Hidenobu should be made leader. Hidenobu was ultimately made the head of the clan, but political power was functionally held by Hideyoshi.

Hidenobu controlled Gifu Castle in 1600. The castle was considered an important element to the Eastern forces’ plan to defeat the Western armies. Because of this, Gifu Castle was attacked by Fukushima Masanori (1561–1624) and Ikeda Terumasa (1565–1613) just before the Battle of Sekigahara in 1600. Upon realizing their defeat, Hidenobu’s samurai committed ritual suicide inside the castle, and the bloodstained floorboards are said to have been later used to construct the ceiling of Sofukuji temple in Gifu city. After the battle Hidenobu renounced the world and became a priest but he died only five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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