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Ohitayama Tatara Iron Works

  • Yamaguchi
Topic(s):
World Heritage (Natural or Cultural)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251-500
FY Prepared:
2020
Associated Tourism Board:
hagi gaikokunokataniwakariyasuikaisetsubunseibi suishinkyogikai

大板山たたら製鉄遺跡


萩市街地北東の森の中に大板山たたら製鉄所跡がある。現在では人里離れた場所であるが、18世紀中期以降、長州藩が工業化の道を歩む原動力となったのはこの製鉄所であった。


1860年代、長州藩では、沿岸の防御を強化する必要に迫られていた。中国は第一次アヘン戦争(1840~1842年 )で英国に敗れ、米国のマシュー・ペリー提督(1794~1858年)は1854年に日本に外交条約への調印を迫り、多くの西洋の捕鯨船が太平洋に進出して来ていた。日本の軍隊の近代化が必要であることは全国的に受け入れようという雰囲気が形成されたが、そのための大砲や砲弾、その他の資材を準備するには鉄が必要であった。


伝統的に、日本ではたたらと呼ばれる独特な高炉で鉄を生産してきた。たたら製鉄法では、木炭を燃やした中に砂鉄を入れ、高炭素の鉄塊を作る。石見国(現在の島根県西部)から船で運ばれてきた砂鉄は奈古港で陸揚げされ、そこから「鉄の道」と呼ばれる9キロの陸路を通って大板山の製鉄所まで運ばれた。そして、完成した鉄は再び陸路で奈古まで下り、船で萩、そしてその先へと運ばれた。


たたら製鉄法では、番子と呼ばれる男たちが、火力を強めるためにふいごを動かして炉に空気を送り続けた。番子の仕事は、3人1組で1時間働いて2時間休み、それを製品ができあがるまで約70時間続けるという過酷なものだった。たたら製鉄で作られた鉄は硬く、刀剣を作るのには最適であったが、この鉄を使って大砲を鋳造した場合、爆発しやすいという難点があった。1850年代に日本が開国すると、長州藩は新しい技術を求めるようになり、1870年、1世紀以上にわたり鉄を生産してきた大板山たたら製鉄所の炎は永遠に消えることとなった。


1991年から1994年にかけて大板山たたら製鉄所の発掘調査が行われ、中央の高殿(製鉄の重要施設)部分には炉や天秤、ふいご、砂鉄の洗浄施設、排水路、焼入れ用の池などがあっ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


2015年、大板山たたら製鉄所は、ユネスコ世界遺産「日本の明治産業革命遺産 鉄鋼・造船・石炭産業」に認定された。

大板山吹踏韝煉鐵遺跡


1860年代,萩藩(萩,音同「秋」)的武士領袖們逐漸意識到加強沿海防禦的必要性。萩藩也叫「長州藩」,即今天的山口縣。中國在第一次鴉片戰爭(1840-1842)中被英國人擊敗,美國海軍將領馬修·佩里(Matthew Calbraith Perry; 1794-1858)又迫使日本在1854年簽署了《神奈川條約》,於是越來越多的西方捕鯨船開進了太平洋。日本國內普遍接受了需要現代化軍事的觀念,但無論製造大炮、子彈或其他軍需品,都需要鐵。

傳統上,日本使用一種稱為「吹踏韝」(韝,音同「備」,即古代的鼓風機)的高爐來煉鐵。在把鐵砂和木炭冶煉成高碳素鋼塊時就會用到這種高爐。從18世紀中葉開始,鐵砂從石見國(今島根縣)運輸至奈古港,然後沿著「鐵之道」被運送到9公里外的大板山吹踏韝煉鐵設施。精煉後的鐵再用馬匹運回奈古港,然後由船隻送往萩市和其他地方。

用吹踏韝冶煉的鐵質地堅硬,非常適合鍛造刀劍,但拿來鑄造大炮就會有爆炸的隱患。1850年代,日本開放港口後,萩藩也引進了更新的技術。1870年前後,燃燒了一個多世紀的大板山吹踏韝煉鐵工場的爐火永遠熄滅了。

在1991年至1994年期間,人們對大板山吹踏韝煉鐵工場進行了考古發掘,發現了包括爐子、風箱、鐵砂洗滌設施、排水渠和帶淬火池的中央高殿(精煉工坊)部分。

2012年,大板山吹踏韝煉鐵遺跡被指定為國家史跡;2015年,它又被聯合國教科文組織(UNESCO)作為「日本明治產業革命遺產 製鐵·製鋼、造船、石炭產業」的一部分列入了世界遺產名錄。

窗体顶端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 유적


하기 시가지의 북동쪽 숲속에는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 옛터가 있습니다. 지금은 외딴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18세기 중엽 이후 조슈번이 공업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한 곳이 바로 이곳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였습니다.


1860년대, 조슈번에서는 연안 방어 태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중국은 제1차 아편 전쟁(1840~1842)에서 영국에 패했고, 미국의 매슈 페리 제독(1794~1858)은 1854년에 일본에 외교 조약의 조인을 요구했으며, 서양의 여러 고래잡이배가 태평양으로 진출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일본 군대에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이를 위한 대포나 포탄, 그 밖의 자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철이 필요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다타라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용광로를 이용하여 철을 생산했습니다. 다타라 제철법은 목탄을 태워 그 안에 사철을 넣는 작업을 통해 고탄소의 철 덩어리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와미 국(지금의 시마네현 서부)에서 배로 실어 나른 사철을 나고 항구에서 육지로 옮긴 후, 그곳에서 ‘데쓰노미치(철의 길)’로 불리는 9km의 육로를 통해 오이타야마 제철소로 운반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철은 다시 육로를 통해 나고로 이동한 후, 배를 이용하여 하기와 먼 지역으로 운반되었습니다.


다타라 제철법에서는 반코라 불리는 남성들이 화력을 올리기 위해 풀무를 이용하여 용광로에 지속적으로 공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반코가 맡았던 일은 3인이 1조가 되어 1시간 일을 하면 2시간 휴식을 취하는 방식을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약 70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하는 가혹한 노동이었습니다. 다타라 제철로 만든 철은 단단하여 도검을 제작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만, 이 철로 대포를 주조했을 때는 폭발하기 쉽다는 결점이 있었습니다. 1850년대에 이르러 일본이 개국하면서 조슈번은 새로운 기술을 찾게 되었고, 1870년, 1세기가 넘는 세월에 걸쳐 철을 생산해왔던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의 불길은 영원히 꺼지고 말았습니다.


1991년부터 1994년에 걸쳐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의 발굴조사가 진행되면서, 정중앙에 위치한 다카도노(제철의 주요 시설) 부분에는 용광로와 저울, 풀무, 사철 세척 시설, 배수로, 담금질용 연못 등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는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으로 등재되었습니다.

Ohitayama Tatara Iron Works

By the 1860s, Chōshū’s samurai leaders had come to understand that they needed to strengthen their coastal defenses. China had fallen to the British in the First Opium War (1839–1842), United States Commodore Matthew C. Perry (1794–1858) had forced Japan to sign a diplomatic treaty in 1854, and increasing numbers of Western whalers were venturing into the Pacific Ocean. The need to modernize Japan’s military became widely accepted across the country, but cannons, bullets, and other materiel required iron.


Traditionally, iron was produced in Japan with a blast furnace called a tatara. This type of furnace was used to smelt iron sand and charcoal into a high-carbon steel bloom. Beginning in the mid-1700s, iron sand was shipped through Nago port from Iwami province, in what is now Shimane Prefecture. From there, it was carried 9 kilometers along the Tetsu no Michi, or “Iron Road,” to the iron works at Ohitayama. The finished iron was then transported back to Nago by horse, and from there it was sent by boat to Hagi and beyond.


The iron produced in the tatara was hard, perfect for making swords, but cannons cast with the iron tended to explode. As Japan began to open its ports in the 1850s, Chōshū domain adopted newer technologies, and in about 1870, after over a century of production, the flames of the Ohitayama Tatara Iron Works were extinguished forever.


Between 1991 and 1994, the Ohitayama Tatara Iron Works underwent archaeological excavation, revealing the central takadono area with its furnace and bellows, an iron sand washing facility, drainage channels, and a quenching pool.


In 2015, Ohitayama Tatara Iron Works was recognized as part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Iron and Steel, Shipbuilding and Coal M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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