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Hamasaki Preservation District for Groups of Traditional Buildings

  • Yamaguchi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251-500
FY Prepared:
2020
Associated Tourism Board:
hagi gaikokunokataniwakariyasuikaisetsubunseibi suishinkyogikai
Associated Address:
Hagi-shi , Yamaguchi

浜崎伝統的建造物群保存地区


浜崎は、江戸時代(1603~1867年)初期の萩城下町の主要港であった。松本川が日本海に合流する三角州の北東端に位置している。萩が毛利家の支配の下、長州藩の中心都市として発展するにつれ、浜崎も発展した。浜崎は商業の中心地である大阪から瀬戸内海、本州と九州の間の関門海峡を経て、日本海沿岸を北海道まで往復する、商船である北前船の重要な寄港地であった。北前船は、酒や塩、その他の商品を積んで浜崎に来航した。萩の富は、商船との交易と、この地域の豊かな海で行われる漁業から得られたものであった。


明治時代(1868~1912年)になると、水産加工業が浜崎で急成長し、港周辺エリアは萩の商業の中心地となった。浜崎は今でも、アジ、ケンサキイカ、アカアマダイなどが有名である。しかし、1945年に日本の降伏により第二次世界大戦が終わった後、空襲は免れたものの、萩の産業は衰退し、浜崎の経済力も大きく低下した。そして、日本の復興が始まるにつれ、人々は大都市で職を求めるために萩を離れていった。20世紀の終わり頃になると、浜崎の建築物の歴史的意義と文化的価値が見直されて、1998年に町並みの保存に向けた調査が本格化し、2001年には「重要伝統的建造物群保存地区」に指定された。


現在、100を超える建物が歴史地区の一部として保存されている。これらのうち44棟は江戸時代以前(1868年以前)に建てられたものである。ほとんどの建物は優れた状態で保存されており、現役で使用されている建物もとても多い。戦争や自然災害、近代的な開発の影響を免れた浜崎は、日本の建築史を垣間見ることができる、萩の中でも他に類を見ない重要な場所である。


浜崎の歴史的建造物の多くは、この地域の大通りである本町筋に沿って並んでいる。町の中心であった浜崎代官所(幕府直轄の官庁)は、1720年から1740年の間に描かれた萩城下町図によると、この代官所は珍しく海に面して設けられていた。これは、代官(幕府の直轄領を管理する官庁の官吏)が管轄する「七つの浦と七つの島」を見渡せるようにするためであったと考えられる。本町筋の町並みは海抜の高い尾根に位置していることから、「吹上」(「風が吹き上げる」という意味)とも呼ばれている。今日の浜崎はそのほとんどが19世紀に入って行われた埋め立て工事で造成された土地である。旧萩藩御船倉は、石造りで瓦葺きの船小屋として日本で唯一現存するもので、かつては海に面していたが、埋め立てによって周囲が陸地になり、現在は住宅地に面している。


浜崎の歴史的建造物の多くは、今でも人が住んでいるか、もしくは比較的最近まで人が住んでいた。山村家、山中家、藤井家、須子家、斉藤家、田中家の住宅がそれらにあたり、旧山村家住宅では観光情報を提供している。梅屋七兵衛旧宅の主であった梅屋七兵衛は、幕末期の商人で、1000丁の鉄砲を命懸けで上海から長州藩に運び、一方では京都の小堀遠州流で茶道を学んで萩に持ち帰るなど、多彩な面を持つ人物であった。


Google マップリンクはこちら


旧山村家住宅

住所:山口県萩市浜崎77

電話番号:0838-22-0133

営業時間:午前9時から午後5時(毎日)

入場料:無料

アクセス:「御船倉入口」バス停から徒歩3分(萩循環まぁーるバス東回り)

濱崎國家重要傳統建築群保護區


濱崎位於松本川與日本海交匯的三角州東北端,江戶時代(1603-1867)早期是萩城下町(圍繞城郭發展起來的市鎮;萩,音同「秋」)的主要港口。萩市是萩藩的都城。萩藩也叫「長州藩」,即今天的山口縣。在毛利家的統治之下,城下町逐步發展,濱崎也不斷繁榮起來,而萩市的財富正是透過濱崎的商船貿易和豐富的漁業資源積累而得的。

濱崎是「北前船」商船的重要停靠港。北前船從商業樞紐大坂(今大阪)出發,經由下關海峽,沿著日本海海岸至北海道,然後返回。商船攜帶著清酒、鹽和其他商品停靠濱崎。明治時代(1868-1912),濱崎海鮮加工業迅速發展,港口周邊成為萩市的一大商業中心。至今濱崎地區仍以竹莢魚、槍魷和赤甘鯛遠近聞名。然而,到了20世紀中葉,濱崎的經濟情勢大幅下滑。第二次世界大戰(1939-1945)結束後日本投降,萩市發展停滯。儘管這座城鎮未受空襲,但各行各業都陷入了低谷。隨著國家復興,人們紛紛離開萩市前往大城市尋找工作機會。直到20世紀末期,濱崎才因其建築物的歷史意義和文化價值而重新受到認可。1998年,人們開始認真研究這座港口的歷史。2001年,濱崎被指定為「國家重要傳統建築群保護區」。

如今,超過100棟建築被保存下來,並成為了歷史街區的一部分,其中44棟建於1868年之前。多數建築處於良好的修復狀態,許多還被改作現代用途。濱崎逃過了戰爭、自然災害和現代開發的破壞,是萩市獨一無二的重要場所,也為人們了解日本建築史打開了一扇窗戶。

濱崎大多數歷史建築物位於主要大道「本町筋」兩邊。濱崎代官所建在市中心,根據一張1720年至1740年之間繪製的萩城下町地圖得知,代官所面向大海,十分罕見,很可能是為了讓代官所的官吏切實勘查其管轄區中的「七島七灣」。同一張地圖裡還繪有一些沿本町筋排列、同樣面向海洋的巨大藏屋敷(江戶時代用以銷售各藩年貢米及藩內特產的倉庫兼住宅)。本町筋周邊地區位於海拔較高的山脊上,因此也被稱為「吹上」。今天的大部分濱崎地區都是19世紀之交進行的填海工程形成的。舊萩藩御船倉是日本唯一現存的瓦屋頂石造船倉,曾經位於水邊,後因填海工程周邊都已成為陸地。船倉目前位於城市住宅的對面。

直到現在,或者至少在前幾年,濱崎許多歷史建築都還有人居住,如山村家、山中家、藤井家、須子家、齋藤家和田中家等住宅。梅屋七兵衛(1822-1883)是梅屋七兵衛故居曾經的主人,他是明治時代的一位傳奇性人物,在江戶時代末期曾冒著生命危險將1000支槍從上海運送到萩藩。梅屋七兵衛也是一位審美家,曾在京都的「小堀遠州流」學習茶道。

在舊山村家住宅可以獲得旅遊資訊。


Google地圖連結:這裡


舊山村家住宅

地址:山口県萩市浜崎77

電話:0838-22-0133

開放時間:9:00~17:00

門票:免費

交通:從「大船倉入口」客運站(萩巡迴公車東線)步行3分鐘

하마사키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하마사키는 에도 시대(1603~1867) 초엽의 하기 조카마치(성하도시)의 주요 항구였습니다. 마쓰모토 강이 일본해로 합류하는 삼각주의 북동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모리 가문의 지배하에 하기가 조슈번의 중심 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하마사키도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마사키는 상업의 중심지인 오사카에서 세토 내해, 혼슈와 규슈 사이의 간몬 해협을 거쳐 일본해 연안을 홋카이도까지 왕복하는 상선인 기타마에부네의 중요한 기항지였습니다. 기타마에부네는 술과 소금, 그 밖의 상품을 배에 싣고 하마사키로 내항했습니다. 하기 지역의 재력은 상선과의 교역과 함께 지역의 풍요로운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어업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이르러 하마사키에서는 수산가공업이 급성장하면서, 항구 주변 지역은 하기의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마사키는 지금도 전갱이와 창오징어, 옥돔 등이 유명합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항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에 공습을 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의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마사키의 경제력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전후 재건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하기를 떠나갔습니다. 20세기 말엽에 접어들자, 하마사키 건축물의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가치를 재검토하게 되었고, 1998년에 거리 보존을 위한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2001년에는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는 100개가 넘는 건물이 역사 지구의 일부로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중 44채는 에도 시대 이전(1868년 이전)에 지어졌습니다. 건물 대부분은 보존 상태가 뛰어나 지금도 상당수의 건물은 실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근대적인 개발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하마사키는 일본의 건축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하기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하마사키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건조물 중 대부분은 지역의 대로인 혼마치스지를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마을의 중심이었던 하마사키 다이칸쇼(막부의 직할령을 관리하는 관청)는 1720년부터 1740년 사이에 제작된 하기 조카마치 지도에 따르면 드물게 바다에 면해 있는 장소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다이칸(대관, 막부의 직할령을 관리하는 관청의 관리)이 관할하는 ‘일곱 해변과 일곱 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혼마치스지의 거리 풍경은 해발이 높은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어 ‘후키아게’(‘바람이 불어 오르다’는 뜻)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하마사키는 대부분이 19세기에 들어 실시된 매립 공사로 조성된 토지입니다. 옛 하기번 선창은 석조에 기와를 얹은 창고로 일본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물로 과거에는 바다와 면해 있었지만, 바다를 매립하면서 주변이 육지화됨에 따라 지금은 주택지에 인접해 있습니다.


하마사키의 역사적인 건조물 중 대부분은 지금까지 실제 사람이 생활하고 있거나 비교적 최근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야마무라 가문, 야마나카 가문, 후지이 가문, 스코 가문, 사이토 가문, 다나카 가문의 주택들이 이에 해당하며, 야마무라 가문 옛 주택에서는 관광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메야 시치베이 옛 주택의 주인이었던 우메야 시치베이는 막부 말기의 상인으로, 목숨을 걸고 소총 천 자루를 상하이에서 조슈번으로 들여왔으며, 한편으로는 교토의 고보리 엔슈류의 다도를 보급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인물이었습니다.


Google 지도 링크 확인하기


야마무라 가문 옛 주택

주소: 야마구치현 하기시 하마사키 77

전화번호: 0838-22-0133

영업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매일)

입장료: 무료

오시는 길: ‘오후나구라이리구치’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3분(하기 순환 마루 버스 동쪽 코스)

Hamasaki Preservation District for Groups of Traditional Buildings

Hamasaki was the main port of Hagi Castle Town during the early part of the Edo period (1603–1867). It is located at the northeast tip of the delta, where the Matsumoto River meets the Japan Sea. Hagi was the capital of Chōshū domain, and as the town flourished under the rule of the Mōri family, Hamasaki grew as well. The town was an important stop for the kitamaebune trading ships that traveled along the coastal route from the commercial hub of Osaka, through the Straits of Shimonoseki, and up the Japan Sea coast to Hokkaido and back. The traders would anchor at Hamasaki with their cargoes of sake, salt, and other merchandise on both legs of their journey. Hagi’s wealth came from trading with the merchant ships and from the region’s abundant fisheries.


During the Meiji era (1868–1912), the processed seafood industry grew rapidly in Hamasaki, and the area around the port became the undisputed commercial center of Hagi. In particular, Hamasaki is still known for Japanese horse mackerel, swordtip squid, and red tilefish. By the mid-twentieth century, however, Hamasaki’s economic fortunes had declined considerably. After World War II ended with Japan’s surrender, Hagi’s industries came to a standstill, and although the city had been spared from bombing, its various industries were laid low. People moved out of Hagi, seeking work in larger cities as the country began to recover. Around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buildings of Hamasaki were recognized for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and cultural value. Research into the port’s past began in earnest in 1998, and Hamasaki was designated an “Important Preservation District for a Group of Traditional Buildings” in 2001.


Today, over 100 buildings are preserved as part of the historical district. Of these,44 were built before 1868. Most remain in an excellent state of repair, and a considerable number have been repurposed for modern use. Having escaped the ravages of war, natural disasters, and modern developers, the Hamasaki District is a uniquely important site in Hagi and a window into Japan’s architectural history.


Most of Hamasaki’s historic buildings line Honmachi-suji, the area’s main thoroughfare. The center of town was the Hamasaki Magistrate’s Office, which, according to a map of Hagi Castle Town made sometime between 1720 and 1740, unusually faced the sea. This was presumably to allow the magistrate to survey the “seven islands and seven bays” that made up his jurisdiction. The same map features illustrations of the enormous kurayashiki, or storehouse-residences, that lined Honmachi-suji and opened toward the bay. The area around Honmachi-suji is also known as a fukiage (literally, a “raised up” area), as it occupies a ridge well above sea level. Much of Hamasaki today is the result of land reclamation projects undertaken at the turn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Former Domain Boathouse, the only surviving example of a tile-roofed stone boathouse in Japan, was originally on the waterfront, but land reclamation has turned the area into terra firma, and the boathouse now sits across the street from urban residences.


Many of the historical buildings in Hamasaki are still family homes, or were so until relatively recently. These include the residences of the Yamamura, Yamanaka, Fujii, Suko, Saitō, and Tanaka families. The Umeya Shichibei house was home to a colorful Meiji-era figure who risked his life to run 1,000 guns from Shanghai to Chōshū domain during the last years of the Edo period. Shichibei was also an aesthete who studied tea ceremony at the Kobori Enshū School in Kyoto.


Tourist information is available at the Former Yamamura Family Residence.


Google Maps link: here


Former Yamamura/Yamanaka Estate

Address: 77 Hamasaki, Hagi, Yamaguchi

Phone: 0838-22-0133

Open: 9:00 a.m. to 5:00 p.m. (daily)

Admission Free

Access: 3-minute walk from Ofunagura Iriguchi Bus stop (Hagi Junkan Māru Bus Eastbound)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