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Otaru Canal

  • Hokkaid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Pamphlet
Text Length:
251-500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otarushi nihon isan suishin kyogikai
Associated Address:
Minatomachi, Otaru City , Hokkaido

小樽運河


 歴史ある小樽運河に沿って造られた歩道は美しく舗装されてガス灯が並び、かつて倉庫だった建物には現在、レストランやショップ、博物館が入っています。小樽運河は20世紀初頭に活気ある貿易港だった町の歴史を思い出させるとともに、地元住民による保存運動の象徴となっています。


 20世紀初頭、小樽は北日本最大の商港でした。商船は、本州から品物を運んできて、小樽近海でとれたニシンから作った肥料を積んで戻って行きました。バージ船が湾内を行き来して、船と岸の間で物品や乗客を運びました。

また1882年に開通した北海道初の鉄道によって小樽港まで運ばれていた石炭が、ここから日本中に出荷され、日本の工業化に拍車をかけました。


 この港を利用する貿易が増えると同時に、海岸はバージ船で混雑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1914年から1923年にかけて埋め立て計画が実施され、海岸と平行に埋め立てた人工島との間に幅40メートルの水路が作られました。水路ができたことでバージ船が停泊するスペースに余裕ができました。これが後に小樽運河として知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やがて木造の帆船は次第に巨大な貨物船に換わり、1937年に新たな埠頭が完成してバージ船を使わずに船が着岸して積荷を下せるようになりました。ほぼ同時期に、この国のエネルギーの主流が石炭から石油に代わり、主要港としての小樽の地位は失われていきました。そして、しだいに運河も使われなくなりました。


 1966年に道路を拡幅する目的で、運河を埋め立てて隣接する倉庫群を撤去する計画が浮上すると、地元住民がこの地域を保護するための市民運動を起こしました。1980年代に妥協案が合意に至った後、運河の大部分とその周りの倉庫群が改修されました。小樽運河の北側はほぼ昔のままで、かつて町の富を築くのに一役買ったバージ船の代わりに、レジャーボートが並んでいます。現在は「小樽運河クルーズ」も行っており、ナイトクルーズでは幻想的な夜景を楽しむこともできます。

小樽運河


小樽運河歷史悠久,與其相伴而建的是一條磚石步道,還有路旁的煤氣燈,更有入駐了餐廳、商店和博物館的百年老倉庫。小樽運河既是這座20世紀早期繁榮貿易港口的歷史印記,也是當地居民保護運動的標誌。

小樽在20世紀早期就已經是日本北部最大的商業港。商船從本州運來貨物和補給,再滿載著北海道內陸出產的農作物(豆類、小麥等),以及從小樽海域捕撈的鯡魚南歸。駁船運送乘客也運送貨物,往來穿梭於航船與海岸之間。1882年,北海道第一條鐵路通車,此後,煤炭由鐵路運到小樽,再裝船運往全國各地,為日本的工業化發展提供動力。

隨著小樽港貿易量不斷增長,海岸沿線擠滿了駁船。在1914年至1923年之間,當地填海造地,修築了多個與海岸線平行的人工島。島鏈與海岸之間留出了一條40公尺寬的水道,為駁船提供了更多停靠空間,這條水道就是後來的小樽運河。

然而,大型貨輪最後還是取代了木造帆船。到了1937年,供貨輪停靠的新碼頭落成,不再需要駁船轉運便可裝卸貨物。大約在同一時期,國家的主要能源需求也從煤炭轉向石油,小樽失去了作為主要港口的地位,運河也逐漸被廢棄。

1966年,一項填平小樽運河、拆除周邊倉庫以擴建道路的計畫被提上議程,當地居民奮起抗爭,掀起了保護運動。1980年代,雙方達成妥協。運河的大部分河段和周邊倉庫不但保留了下來,還經過修復,讓小樽運河北端基本保留了原本的面貌。只是沿河停靠的不再是當初幫助這座城市獲得財富的駁船,而是一些小型漁船。

小樽运河


小樽运河历史悠久,与之相伴的是一条砖石头步道、路旁的煤气灯,以及入驻了餐厅、商店和博物馆的百年老仓库。小樽运河既是这座20世纪早期繁荣贸易港口的历史印记,也是本地居民保护运动的标志。

20世纪早期的小樽是日本北部最大的商业港。商船从本州运来货物和补给,再满载着北海道内陆出产的农作物(豆类、小麦等)和从小樽海域捕捞的鲱鱼返回。驳船往来穿梭于商船与海岸之间,运送乘客和货物。1882年北海道第一条铁路通车后,煤炭经铁路运到小樽,再装船运往全国各地,为日本的工业化发展提供动力。

随着小樽港的贸易量不断增长,海岸沿线挤满了驳船。在1914年至1923年之间,当地填海造地,修筑了多个与海岸线平行的人工岛,岛链与海岸之间留出了一条40米宽的水道,为驳船提供了更多的停靠空间。这条水道就是后来的小樽运河。

然而,大型货轮最终取代了木造帆船。1937年,货轮停靠的新码头落成后,不再需要驳船转运即可装卸货物。大约在同一时期,国家的主要能源需求从煤炭转向石油,削弱了小樽作为主要港口的地位,小樽运河逐渐废弃。

1966年,填平小樽运河、拆除周边仓库以扩建道路的计划被提上议程。本地居民奋起抗争,掀起了地域保护运动。20世纪80年代,双方达成协议,运河的大部分河段及周边仓库得以保存修复。小樽运河北端基本保留了原本的面貌,只是沿河停靠的小型渔船取代了当初帮助这座城市获得财富的驳船。

오타루 운하


 역사적인 오타루 운하를 따라 만들어진 보도는 아름답게 포장되어 가스등이 늘어서 있으며, 과거 창고였던 건물에는 현재 레스토랑과 상점, 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오타루 운하는 20세기 초에 활기찬 무역항이었던 도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해주며, 지역 주민들이 펼친 보존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오타루는 북일본 최대의 상업항이었습니다. 상선은 혼슈에서 물건을 운반해 온 뒤 오타루 근해에서 잡은 청어로 만든 비료를 싣고 돌아갔습니다. 바지선이 만내를 오가며 선박과 해안 사이에서 물품과 승객을 운반했습니다.

또한, 1882년에 개통된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로 인해 오타루 항구까지 운반되었던 석탄이 이곳에서 일본 전역으로 출하되어 일본의 공업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이 항구를 이용하는 무역이 늘어나면서 해안은 바지선으로 혼잡해지게 되었습니다. 1914년부터 1923년에 걸쳐 매립 계획이 실시되었고, 해안과 평행하게 매립된 인공섬 사이에 폭 40m의 수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수로가 생기면서 바지선이 정박할 공간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오타루 운하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목조 범선은 점차 거대한 화물선으로 바뀌었고, 1937년에 새로운 부두가 완공되어 바지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선박이 착안하여 짐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의 에너지 주류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면서 주요 항구로서 오타루의 지위는 상실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점차 운하도 사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1966년에 도로의 폭을 확장할 목적으로 운하를 매립하고 인접한 창고군을 철거하는 계획이 떠오르자 지역 주민들은 이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 운동을 펼쳤습니다. 1980년대에 타협안이 합의된 후 운하의 대부분과 그 주변의 창고군이 개수되었습니다. 오타루 운하의 북쪽은 거의 옛날 그대로이며, 과거 도시의 부를 쌓는 데 일조했던 바지선 대신 유람선이 늘어서 있습니다. 현재는 ‘오타루 운하 크루즈’도 운영하고 있으며, 나이트 크루즈에서는 환상적인 야경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Otaru Canal 


A paved walkway and gas lamps line this historic canal, and former warehouses now house restaurants, stores, and museums. Otaru Canal is both a reminder of the city’s history as a vital trading port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nd a symbol of local preservation efforts.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Otaru was the largest commercial port in northern Japan. Merchant ships brought goods and provisions from Honshu, then returned laden with herring caught near Otaru. Barges plied the bay, ferrying goods and passengers between the ships and shore. Coal was shipped across the country to fuel Japan’s industrial growth, brought to Otaru via Hokkaido’s first train line, opened in 1882.


As trade through the port increased, the shoreline became congested with barges. From 1914 to 1923, a string of narrow islands were reclaimed parallel to the shore, with a 40-meter-wide waterway between. The waterway provided additional mooring space for the barges and later became known as the Otaru Canal.


Eventually, large cargo ships replaced wooden sailing ships, and in 1937, a new wharf allowed ships to dock and unload without using barges. Around the same time, the main source for the nation’s energy needs shifted from coal to oil, eroding Otaru’s position as a major port. The canal fell into disuse.


When plans emerged to reclaim the canal and remove neighboring warehouses for road expansion in 1966, local residents campaigned to save the area. After reaching a compromise in the 1980s, much of the canal and surrounding warehouses were restored. The north side of Otaru Canal remains much as it was, lined with small fishing vessels in place of the barges that once helped build the city’s fortu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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