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he Otaru Canal Preservation Association

  • Hokkaid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Pamphlet Web Page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otarushi nihon isan suishin kyogikai
Associated Address:
1-3-6, Temiya, Otaru City , Hokkaido

小樽運河を守る会


 1973年に小樽運河を守る会が発足したことが小樽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転換点となり、小樽は衰退しつつある商港から、史跡保護と都市開発のバランスがとれた歴史的な町へと変貌を遂げました。1960年代半ば、小樽運河を埋め立てて新しい道路を建設するという提案は市民の反発を引き起こし、影響力のある保存運動に発展しました。地元の努力により最終的に運河の大部分が救われ、都市遺産の保存がコミュニティをどのように活性化できるかについて全国レベルでの議論が行わ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この運動のポスター、横断幕、ニュース記事などは、小樽市総合博物館で定期的に展示されています。


衰退する町

 戦時中、政府の政策により北海道の経済活動の中心は札幌に移りました。かつて小樽が北海道経済の中心地であるという名声をもたらした銀行は撤退を始めました。ほぼ同時期に、国のエネルギーの主流が石炭から石油へ移行し、それにより小樽は主要な石炭出荷港としての地位を失いました。東京への航路として、北海道の南東部沿岸の他の港を使う方が、利便性が高く、最終的に貨物輸送においては道路輸送と鉄道輸送が海上輸送に勝るようになりました。小樽の経済は停滞し、1950年代半ばには「衰退する街」とも言われていました。


保存を目指した市民運動

 かつて小樽運河を行き来していたバージ船は徐々に朽ち、使われていない水路には沈泥が蓄積していきました。古い倉庫は取り壊すお金も補助金もないという理由だけで、そのまま放置されていました。1966年、小樽市は経済を活性化する取り組みの一環として、渋滞の緩和と港へのトラックのアクセス改善をすべく、6車線の道路を新たに作ることを提案しました。小樽運河埋め立て計画は運河を埋め立て、周囲の倉庫を取り壊すというものでした。これをきっかけに住民らが集まり「小樽運河を守る会」が発足しました。街中のショップ、カフェ、レストランには、ポスターが貼られ、失われる可能性のある建築遺産や文化遺産を強調し、小樽運河が小樽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本質であることを示しました。


運命を変える

 小樽運河を守る会の努力は当初あまり成果を上げ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小樽市側は妥協する意思がなく、単にノスタルジックなシンボルとしての理由だけで運河を保存することを支持しなかったのです。しかし1970年代後半になると斬新なアイデアを持ったメンバーが新たに運動に加わり、運河と石造りの倉庫を主軸にして観光で街を活性化する計画を提案しました。この計画は地元企業の支持を得て、メディアでも注目されました。これが小樽経済発展のための地域運動となりました。1980年代初頭、小樽市は運河の一部区間を道路を作るために狭めて、残りの部分に魅力的な歩道と街灯を作る計画に合意しました。現在、観光業が貨物輸送業をはるかに上回り、地域経済の牽引役となっています。小樽の保存運動は運河以上のものを救ったのです。

小樽運河守護協會


1973年,小樽運河守護協會成立,這一創舉成為了小樽城市形象轉變的關鍵點,從此以後,小樽從一個日漸沒落的商業港,變成了在城市發展與保護之間找到了平衡的歷史古城。1960年代中期,填平小樽運河興建道路的計畫引發了市民的強烈抗議,一場影響深遠的保護運動就此拉開序幕。在當地居民的努力下,最後保留了大部分運河,進而推動了全國範圍內關於城市遺產保護與社區復興的討論。小樽市綜合博物館定期輪換展出當時保護運動相關的海報、條幅、新聞報導和各類文宣。


衰落的城市

戰爭期間,政府將北海道的經濟活動中心轉移到札幌,曾經為小樽帶來「北海道經濟中心」盛譽的銀行開始撤出。同一時期,國家的主要能源需求從煤炭轉向石油,身為主要煤炭運輸港的小樽失去了昔日地位。鐵路和公路的貨運量開始超過船運,北海道東南海岸的其他港口也先後開闢通往東京更為便利的運輸路線。在這樣的大環境下,小樽的經濟逐漸衰退,到1950年代中期,它已成為公認的「衰落的城市」。


草根保護運動

曾經穿梭在小樽運河上的駁船日漸朽壞,廢棄的水道蓄滿淤泥,老倉庫也因為缺乏拆除資金或扶助金而空置。到了1966年,為了刺激經濟發展,當地政府打算修建一條新的六車道公路以緩解擁堵,也方便卡車進出港口。但這項提議填平運河、拆除周邊倉庫的計畫激起了民眾的不滿。當地居民聚集起來並自發組成了「小樽運河守護協會」,全城各地的商店、咖啡館和餐廳都張貼了海報,以此告訴大家,如果填平運河、拆除倉庫,小樽將失去怎樣的建築和文化遺產,並將小樽運河定位為小樽特色中不可或缺的部分。


改變命運

最初,協會的努力並未見效,當地政府不願意放棄原有計劃,僅僅將運河作為懷舊的標誌來爭取守護的運動沒能得到有力支持。不過,進入1970年代後半期,新生力量加入進了行動行列,他們帶來了新的想法——以發展旅遊業來復興城市,而運河和石砌倉庫正是這項計畫的主要資源。這個提議得到了當地企業的支持,並引起了媒體的廣泛關注,保護活動也因此昇華到以發展小樽經濟為目標的一大民間行動。終於,政府在1980年代初期通過了決議,決定只縮窄部分河段的寬度,為規劃中的公路讓路,同時,在保留的河段區域增建步道和路燈。如今,小樽的旅遊業已經大大超過貨運業,成為當地經濟的驅動力。可以說,小樽的保護運動的確拯救了一條運河,但對時代和社會而言,它具有更為重大和深遠的意義。

小樽运河守护协会


1973年,小樽运河守护协会成立,这一创举成为了这座城市形象转变的重要转折点。从此,小樽从一个日渐没落的商业港,变成了在城市发展与保护之间找到了平衡的历史古城。20世纪60年代中期,填平小樽运河、兴建道路的计划引发了市民的强烈抗议,一场影响深远的保护运动就此拉开帷幕。本地居民的努力最终保全了运河的大部分河段,进而推动了全国范围内有关城市遗产保护与社区复兴的讨论。小樽市综合博物馆定期轮换展出当时保护运动相关的海报、横幅、新闻报道和各类宣传品。


衰落的城市

战争期间,政府引导北海道的经济活动中心向札幌转移,曾经为小樽带来“北海道经济中心”盛誉的银行开始撤出。大约在同一时期,国家的主要能源需求从煤炭转向石油,身为主要煤炭运输港的小樽也失去了昔日的地位。北海道东南海岸的其他港口开辟了往来东京更加便捷的运输路线,铁路和公路货运量也最终超越了船运。在这样的大环境下,小樽的经济陷入萎靡,到20世纪50年代中期时,它已成了公认的“衰落的城市”。


草根保护运动

当年穿梭在小樽运河上的驳船日渐朽坏,废弃的水道蓄满淤泥,老仓库建筑因为缺乏拆除的资金或扶助金而依旧空置。1966年,为了刺激经济发展,本地政府打算修建一条新的六车道公路以缓解拥堵、方便卡车进出港口。这项小樽运河填埋计划主张填平运河、拆除周边仓库,从而激起了民众的不满。本地居民聚集起来,并自发组成了“小樽运河守护协会”。全城各处的商店、咖啡馆和餐厅都张贴了海报,强调小樽为此将要失去怎样的建筑和文化遗产,并将小樽运河定位为小樽特色中不可或缺的部分。


改变命运

协会的努力起初并未见效,仅仅将运河作为怀旧的标志来争取守护之举未能得到支持,本地政府不愿意放弃原有计划。不过进入20世纪70年代后期,新生力量加入了行动行列,他们带来了新的思路和新的计划:把运河和石砌仓库作为主要资源,发展旅游业,借此复兴城市。这项提议得到了本地企业的支持,并引起了媒体的广泛关注,保护活动也因此升华到以发展小樽经济为目标的一大民间行动。终于,政府在80年代初期通过了决议,决定只缩窄部分河段的宽度为规划中的公路让路,同时在保留的河段区域增建步道和路灯。如今,小樽的旅游业已经大大超过货运业,成为了本地经济的驱动力。小樽的保护运动的确挽救了一条运河,但对时代和社会而言,它具有更为重大和深远的意义。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


 1973년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이 발족한 것은 오타루의 정체성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고, 오타루는 쇠퇴하던 상업항에서 사적 보호와 도시 개발이 균형 잡힌 역사적인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오타루 운하를 매립하고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자는 제안은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영향력 있는 보존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지역의 노력으로 운하 대부분이 보존되었고, 도시 유산의 보존이 지역 사회를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포스터, 현수막, 뉴스 기사 등은 오타루시 종합박물관에서 정기적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쇠퇴하는 도시

 전시 중 정부 정책에 의해 홋카이도 경제 활동의 중심은 삿포로로 옮겨졌습니다. 과거 오타루가 홋카이도 경제의 중심지라는 명성을 가져다준 은행들은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국가의 에너지 주류가 석탄에서 석유로 이행되었고, 이에 따라 오타루는 주요 석탄 출하항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도쿄로 가는 항로는 홋카이도 남동부 연안의 다른 항구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했으며, 화물 수송에서는 도로 수송과 철도 수송이 결국 해상 수송을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오타루의 경제는 침체되었고, 1950년대 중반에는 ‘쇠퇴하는 도시’라고도 불렸습니다.


보존을 지향하는 시민 운동

 한때 오타루 운하를 오갔던 바지선은 서서히 썩어갔고 사용되지 않는 수로에는 침니가 쌓였습니다. 오래된 창고는 철거할 돈도 보조금도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1966년 오타루시는 경제를 활성화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써 정체 완화와 항구로의 트럭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6차선 도로 건설을 제안했습니다. 오타루 운하 매립 계획은 운하를 매립하고 주위 창고를 철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주민들이 모여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이 발족했습니다. 거리의 상점, 카페, 레스토랑에는 포스터가 부착되었고,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건축유산과 문화유산을 강조하여 오타루 운하가 오타루 정체성의 본질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운명을 바꾸다

 오타루 운하를 지키는 모임의 노력은 처음에는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타루시 측은 타협할 의사가 없었으며, 그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이라는 이유만으로 운하를 보존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구성원들이 새롭게 운동에 참여하며 운하와 석조 창고를 주요 자산으로 삼아 관광을 통해 거리를 활성화하는 계획을 제안했습니다. 이 계획은 지역 기업의 지지를 얻어 언론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이것이 오타루 경제 발전을 위한 지역 운동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오타루시는 운하의 일부 구간을 좁혀서 도로를 만들고 남은 부분에 매력적인 보도와 가로등을 만드는 계획에 합의했습니다. 현재, 관광업이 화물 수송업을 훨씬 웃돌며, 지역 경제를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타루의 보존 운동은 운하 이상의 것을 구해낸 것입니다.

The Otaru Canal Preservation Association 


The formation of the Otaru Canal Preservation Association in 1973 marked a turning point in the city’s identity, transitioning Otaru from a fading commercial port to a historical city that balances conservation and urban development. In the mid-1960s, a proposal to reclaim Otaru Canal for a new road caused public outcry and led to an influential preservation movement. Local efforts ultimately saved much of the canal and prompted discussions at a national level about how preserving urban heritage can revitalize communities. A collection of posters, banners, news articles, and other paraphernalia generated by the movement are periodically displayed at the Otaru Museum.


City in decline

During wartime, government regulations shifted the focus of economic activity in Hokkaido to Sapporo. The banks that had once earned Otaru its reputation as the economic center of Hokkaido began to withdraw. Around the same time, the main source for the nation’s energy needs shifted from coal to oil, and Otaru subsequently lost its status as a major coal shipping port. Other ports along the southeast coast of Hokkaido provided more convenient shipping routes to Tokyo, and road and rail transport eventually surpassed shipping for cargo transportation. Otaru’s economy stagnated, and by the mid-1950s it was known as a “city in decline.”


Grassroots preservation efforts

The barges that once plied the Otaru Canal were slowly decaying, and silt accumulated in the unused waterways; the old warehouse buildings remained standing only for a lack of money or incentive to tear them down. In 1966, in an effort to boost the economy, the local government proposed a new six-lane road to ease congestion and improve truck access to the port. The Otaru Canal Landfill Project proposed filling in the canal and demolishing the surrounding warehouses. This galvanized a group of residents to form the Otaru Canal Preservation Association. Across the city, shops, cafés, and restaurants displayed posters that highlighted the architectural and cultural heritage that could be lost and positioned Otaru Canal as an intrinsic part of Otaru’s identity.


Changing fortunes

The efforts of the Association failed to gain traction at first: the local government was unwilling to compromise and gaining support for preservation based solely on the canal as a nostalgic symbol was largely unsuccessful. However, in the late 1970s, new members with fresh ideas joined the campaign and developed a plan to revitalize the city through tourism, using the canal and stone-clad warehouses as the main assets. This won the support of local businesses and received widespread media attention. It became a community campaign to develop Otaru’s economy. In the early 1980s, the government agreed on a plan to narrow some sections of the canal to make way for the planned road, while adding attractive walkways and street lights to the remaining parts. Now, tourism far outstrips freight as the driver of the local economy. Otaru’s preservation movement saved much more than a ca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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