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Changes in Iron Manufacturing

  • Shimane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tetsu no michi bunkaken suishin kyogikai

たたら製鉄の変遷


製鉄の技術は、アナトリア(現在のトルコ)を起源とし、中国、朝鮮半島を経て、6世紀後半には日本に伝わった。大昔の遺跡から、日本における最古の製鉄には鉄鉱石が使われていたことが判明している。しかし、この地域では鉄鉱石が乏しかったため、すぐに自然の中に豊富にある砂鉄が使われるようになった。


古代のたたら

初期のたたら炉は屋外に作られ、動物の皮で作られたふいごで空気を送って火力を上げていた。西日本における鉄の生産は、もともと瀬戸内海周辺に集中していたが、11世紀から13世紀の間に中国地方(島根県、鳥取県)の山間部が鉄の生産の中心地となった。


近代のたたら

その後何世紀にもわたって全国で人口が増加し、農具、生活道具や武器を作るために大量の鉄が必要になった。この需要を満たすために、たたら炉はますます大きくなり、より強力な足踏み式ふいごが導入された。こうした進歩によって、たたら製鉄は18世紀から19世紀にかけて最盛期を迎えた。


現代のたたら

19世紀後半になると連続操業による大量生産が可能な西洋の反射炉が輸入され、製鉄業界に革命をもたらした。既存の伝統的な製鉄所は競争力を失い、既存の製法を角炉と呼ばれるレンガ炉に適応させようとした。この転換により、たたら製鉄による日本伝統の鉄づくりは途絶した。1920年代初頭までに、最後のたたら炉が引退した。

冶鐵工藝的變遷


在西元6世紀下半葉,起源於安納托利亞(今土耳其)的冶鐵工藝經由中國和朝鮮半島傳入日本。考古遺跡顯示,日本一開始也使用鐵礦石冶鐵,但由於可供開採的鐵礦石儲量稀少,原物料很快被調整為當地天然礦藏豐富的鐵砂。


古代吹踏韝工藝

早期的吹踏韝(韝,音同「備」,即古代的鼓風機)黏土熔爐建在戶外,使用獸皮製作的風箱鼓風吹火。西日本的冶鐵產業最初集中在瀨戶內海周邊,到了11世紀至13世紀的某個時期,冶鐵中心才轉移到了「山陰地方」(島根縣和鳥取縣)的山區。


近代吹踏韝工藝

此後幾百年裡,隨著人口持續增長,由於製造農具、日常生活用具和武器都需要使用鐵,鐵的需求量也飛速增加。為了滿足生產需要,吹踏韝熔爐越來越大,同時還引入了更加高效強力的腳踏風箱。在這些革新的推動下,吹踏韝冶鐵工業在18、19世紀達到了鼎盛。


現代吹踏韝工藝

西式反焰爐在19世紀晚期被引入,為日本冶煉業帶來了一場革命。工匠們發現傳統冶鐵業很難與其抗衡,於是,他們改造舊有工藝,使之適用於磚砌熔爐「角爐」。這項改變標誌著吹踏韝冶鐵工藝的終結,最後一批黏土熔爐也在1920年代早期宣告退役。

冶铁工艺的变迁


冶铁工艺起源于安纳托利亚(今土耳其),在公元6世纪下半叶经中国和朝鲜半岛传入日本。考古遗迹显示,日本最初也使用铁矿石冶铁,但因可供开采的铁矿石储量稀少,很快便改用本地天然矿藏丰富的铁砂来冶炼。


古代吹踏鞴工艺

早期的吹踏鞴(鞴,音同“备”,即古代的鼓风机)粘土熔炉建在户外,使用兽皮制作的风箱鼓风吹火。西日本的冶铁产业最早集中在濑户内海周边,11世纪至13世纪期间,冶铁中心才转移到了“山阴地方”(岛根县和鸟取县)的山区。


近代吹踏鞴工艺

此后几百年里,随着人口持续增长,铁的需求量也飞速增加,因为制造农具、日常生活用具和武器都需要使用铁。为了满足生产需要,吹踏鞴熔炉越来越大,同时还引入了更加高效强力的脚踏风箱。在这些革新的推动下,吹踏鞴冶铁工业在18、19世纪迎来了最鼎盛时期。


现代吹踏鞴工艺

19世纪晚期,西式反焰炉的引入为日本冶炼业带来了一场革命。传统冶铁业很难与之抗衡,于是,工程师们改造旧有工艺,使之适用于砖砌熔炉“角炉”。这项改变标志着吹踏鞴冶铁工艺的终结,最后一批粘土熔炉在20世纪20年代早期宣告退役。

다타라 제철의 변천사


제철 기술은 아나톨리아(지금의 튀르키예)에서 기원하여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6세기 후반에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고대 유적을 통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제철에 철광석을 사용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철광석이 부족했고, 곧 자연에 풍부하게 존재했던 사철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고대의 다타라

초기 다타라 용광로는 야외에 설치했으며, 동물 가죽으로 만든 풀무로 공기를 불어넣어 화력을 올리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본래 세토 내해 주변에 집중되었던 서일본의 철 생산은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주고쿠 지방(시마네현, 돗토리현)의 산간 지역으로 중심지가 바뀌었습니다.


근대의 다타라

이후 수세기에 걸쳐 전국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였고, 농기구와 생활 도구, 무기를 만들기 위해 다량의 철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타라 용광로는 점점 대형화되었고, 더 강력한 발풀무가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발전과 더불어 다타라 제철은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최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현대의 다타라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연속 조업에 따른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서양의 반사로가 수입되면서, 제철 업계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제철소는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기존 제법에 가쿠로(角爐)라고 불리는 벽돌 용광로를 적용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다타라 제철을 이용한 일본 전통 제철법은 명맥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 초에는 마지막 다타라 용광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Changes in Iron Manufacturing


Iron-smelting technology originated in Anatolia (now Turkey). It reached Japan by the latter half of the sixth century, arriving via China and the Korean Peninsula. Archaeological remains indicate that the earliest known smelting of iron in Japan was done using iron ore. However, accessible deposits of iron ore were scarce in this region, and the smelting process was soon adapted to take advantage of naturally abundant iron sand.


Ancient Tatara

Early tatara furnaces were built outdoors and powered by bellows made from animal skin. Iron production in western Japan was originally concentrated around the Seto Inland Sea, but the center of production shifted to the mountains of the San’in region (Shimane and Tottori Prefectures) sometime between the eleventh and thirteenth centuries.


Early Modern Tatara

Populations grew over the subsequent centuries, creating greater demand for iron with which to make farming implements, household goods, and weapons. Larger and larger tatara furnaces were created to meet this demand, and more powerful foot-operated bellows were introduced to feed them. These advances ultimately led to the peak of tatara ironmaking in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Modern Tatara

Western reverberatory furnaces were imported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bringing about a revolution in the smelting industry. Traditional ironworks struggled to compete, and their engineers sought to adapt the established methods for use with brick furnaces called kakuro. This shift marked the end for tatara iron production, and the last clay furnaces were retired by the early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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