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awara Kuniichi Memorial Exhibit

  • Shimane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Interpretive Sign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tetsu no michi bunkaken suishin kyogikai

俵国一記念室


 この展示は、東京帝国大学(現東京大学)冶金学教授であった俵国一博士(1872-1958)の生涯と業績を紹介している。島根県浜田市で生まれた俵は、たたら製鉄と日本刀研究の先駆者である。


たたら炉に関する研究

 19世紀の後半、西洋から入って来た新しい製鉄技術が日本に急速に広まると、俵はたたら製鉄の技術が失われるのではないかと懸念した。1898年の2ヶ月間、彼はたたら製鉄が行われていた広島県、鳥取県、島根県の各地に実際に行って調査した。この時、各地にあるさまざまな建物、炉、設備の記録をとり、使用された砂鉄と木炭のサンプルを収集した。たたら製鉄所のほとんどが永久に閉鎖された後の1933年、俵はその成果を壮大な記録書『古来の砂鉄製錬法』として発表した。


日本刀の科学的分析

 俵はまた、初めて日本刀を科学的に分析した。日本刀の刃(刀身)を分析するには、刃を細かく砕く必要があるため、それまで科学的な研究がほとんど行われていなかった。ほとんどの日本刀職人は、自分の刀が砕かれるのを嫌がったのだ。しかし、俵の研究によって、刃先(切る部分)や刀身の芯などの各部分が、異なる化学組成や構造を持ち、それらが日本刀の独特の切れ味や柔軟性を生み出している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


 より深く研究するために、1905年、俵はドイツから日本初の大型金属顕微鏡を輸入した。展示されている光学顕微鏡は、最初のものより高度な顕微鏡で、彼が1938年に入手したものである。

俵國一紀念室


本紀念室介紹東京帝國大學(今東京大學)冶金學教授俵國一(1872-1958)博士的生平與成就。出生於島根縣濱田市的俵國一是吹踏韝冶鐵工藝(韝,音同「備」,即古代的鼓風機)與日本刀研究的先驅。


有關吹踏韝熔爐的研究

當進口的西方冶煉爐逐漸成為日本冶金行業的主流,俵國一開始擔憂本土的吹踏韝冶鐵工藝會失傳。他在1898年耗時兩個月前往廣島縣、鳥取縣、島根縣的各種吹踏韝冶鐵工場展開實地考察,每到一處都記錄下不同的建築、熔爐及其他設備情況,並搜集鐵砂和木炭樣本。1933年,在大多數吹踏韝冶鐵工場徹底關停以後,俵國一在他的代表作《自古以來的鐵砂製煉法》中發表了這次調查的成果。


對日本刀的科學分析

俵國一還是第一位對日本刀作出了深度研究的專家。在他之前,很少有人對日本刀的冶金特性展開研究分析,因為這勢必要將刀劍打成碎片,而很多刀匠不願意看到自己的作品被粉碎。俵國一揭示了日本刀的刀刃、刀芯等不同部位在化學成分和結構上的差異,而正是這種多樣化的組合,賦予了日本刀獨特的鋒銳與柔韌度。

為了輔助研究,俵國一在1905年從德國進口了日本第一台大型冶金顯微鏡,1938年他又購入了改進版光學顯微鏡,後者就陳列在展廳內。

俵国一纪念室


本纪念室着重介绍东京帝国大学(今东京大学)冶金学教授俵国一(1872-1958)博士的生平与成就。俵国一出生于岛根县浜田市,是吹踏鞴冶铁工艺(鞴,音同“备”,即古代的鼓风机)与日本刀研究的先驱者。


吹踏鞴熔炉的研究

当进口的西方冶炼炉逐渐成为日本冶金行业的主流时,俵国一开始担忧本土的吹踏鞴冶金工艺会失传。1898年,他耗时两个月前往广岛县、鸟取县、岛根县的各种吹踏鞴冶铁工场展开实地考察,每到一处都记录下不同的建筑、熔炉及其他设备情况,搜集铁砂和木炭样本。1933年,在大多数吹踏鞴冶铁工场彻底关停以后,俵国一在他的代表作《自古以来的铁砂制炼法》中发表了这次调查的成果。


对日本刀的科学分析

俵国一还是第一位对日本刀进行了深度研究的专家。此前很少有人对日本刀的冶金特性展开研究分析,因为这势必要将刀剑打成碎片,而许多刀匠都不愿意看到自己的作品被粉碎的一幕。俵国一揭示了日本刀的刀刃、刀芯等不同部位在化学成分和结构上的差异,正是这种多样化的组合,赋予了日本刀独特的锋锐与柔韧度。

为了辅助研究,俵国一在1905年从德国进口了日本第一台大型冶金显微镜。展厅内陈列的光学显微镜是他于1938年购入的改进版。

다와라 구니이치 기념실


 이 전시에서는 도쿄제국대학교(지금의 도쿄대학교) 야금학 교수였던 다와라 구니이치 박사(1872~1958)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합니다. 시마네현 하마다시에서 태어난 다와라는 다타라 제철과 일본도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타라 용광로에 관한 연구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양에서 들여온 새로운 제철 기술이 일본에서 급속히 확산되자, 다와라는 자칫 기존의 다타라 제철 기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했습니다. 다와라는 1898년에 두 달간, 다타라 제철이 성행했던 히로시마현, 돗토리현, 시마네현 각지를 실제로 방문하여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때 각지에 있는 다양한 건물과 용광로, 설비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사용된 사철과 목탄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다타라 제철소의 대부분이 영구적으로 폐쇄된 이후인 1933년, 다와라는 조사의 성과를 장대한 기록서인 『고래(古來)의 사철 제련법』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일본도의 과학적 분석

 또, 다와라는 처음으로 일본도를 과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일본도의 칼날을 분석하려면 칼날을 잘게 부숴야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과학적인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일본도 장인들은 자신의 칼이 부서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와라의 연구를 통해 하사키(베는 부분)나 칼몸의 심 등의 각 부분이 다른 화학 조성 및 구조를 띠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이 일본도의 독특한 절삭력과 유연함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더욱 깊이 연구하기 위해 1905년, 다와라는 독일에서 일본 최초로 대형 금속 현미경을 수입했습니다. 전시되어 있는 광학 현미경은 최초에 사용한 현미경보다 고도의 현미경으로 다와라가 1938년에 입수한 것입니다.

Tawara Kuniichi Memorial Exhibit


This exhibit highlights the life and work of Dr. Tawara Kuniichi (1872–1958), a professor of metallurgy at Tokyo Imperial University (now the University of Tokyo). Born in Hamada, Shimane Prefecture, Tawara was a pioneer in the study of both tatara ironmaking and Japanese swords.


Research on Tatara Furnaces

When imported Western furnaces became the dominant means of smelting metals in Japan, Tawara became worried that the techniques of tatara ironmaking would be lost. For two months in 1898, he conducted fieldwork at various tatara sites in Hiroshima, Tottori, and Shimane Prefectures. At each location, he recorded the different buildings, furnaces, and equipment and collected samples of iron sand and charcoal. Tawara published his findings in his magnum opus, Korai no satetsu seiren-hō (Ancient iron sand smelting methods), in 1933, after most tatara ironworks had permanently closed.


Scientific Analysis of Japanese Swords

Tawara also conducted the first in-depth analysis of Japanese swords. There had been little research on the metallurgical properties of Japanese blades, because such analysis involved breaking the blade into pieces, and many swordsmiths were reluctant to see a sword destroyed. Tawara showed that different parts of the blade, such as the edge and core, have differing chemical compositions and structures. This varied composition is what gives Japanese swords their distinctive sharpness and flexibility.

To aid his research, Tawara imported the first large-scale metallurgic microscope to Japan from Germany in 1905. The optical microscope on display is a more advanced model that he acquired in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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