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Kokokuji Temple

  • Wakayama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Shrines/Temples/Churches
Medium/Media of Use:
Web Page App, QR code, etc.
Text Length:
501-750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ippan shadan hojin kishu no wa ( wakayamaken yuracho toroku dmo )

興国寺


 興国寺は日本の禅仏教の歴史において重要な役割を果たし、また、醬油や金山寺味噌発祥の地としても有名です。この寺院は鎌倉幕府(1185~1333年)の 3 代将軍、源実朝(1192~1219 年)の菩提を弔うために 1227 年に創建されました。興国寺には貴重な仏像や文化財が収蔵されています。また境内にはスギ、カエデ、ツツジ、桜などが植えられており、四季折々の自然を楽しむことができます。


興国寺訪問の道のり

 境内へは南側の大門から入ります。そこから石畳の道が森林に覆われた敷地を通り、池や小さな石塔、その他の石碑群を通り過ぎて、二番目の門に至ります。山門は伽藍への入り口であり、法堂(本堂)の真向かいにあります。


法堂(本堂)

 「法堂」は興国寺の精神的な中心です。歴史ある仏陀である釈迦牟尼を祀っています。天井には龍が描かれています。


開山堂

 本堂の裏から瞑想道場である「禅堂」、そして「開山堂」へと続く回廊があります。開山堂は、興国寺の住職を務めた高名な禅師、心地覚心(1207~1298年)を祀るため埋葬地の上に建てられています。覚心は日本に禅宗を広める上で重要な役割を果たしました。死後、覚心は後醍醐天皇(在位1318~1339 年)から法燈円明国師(完全に目覚めた法灯の国師という意味)の号が追贈されました。


覚心の功績

 覚心は中国の無門慧開(1183~1260年)のもとで6年間の修行を修め、帰国後住職に就任しました。無門は日本の禅仏教の中心となる教えをまとめた「無門関」を著しました。覚心は尺八(竹でできた縦笛)の楽譜とともに無門の教えなどを中国から持ち帰りました。瞑想の手段として尺八の演奏を紹介し、虚無僧(「虚無の聖職者」に由来するという説あり)が実践する文化的習慣を確立しました。虚無僧は僧侶や托鉢僧であり、その多くは籠をひっくり返したような形の、頭から首までを覆う葦で編んだ笠を被り、尺八を吹きながら巡礼をしていました。この独特な被り物は自我の不在を象徴し、自らや他の人々が悟りを開けるように尺八を演奏しました。


 覚心は中国で学んだ発酵技術を日本に持ち帰り、金山寺味噌を製造しました。この素朴な味噌は野菜、米、大豆、大麦を混合して発酵させたもので、ごはんにのせたり、焼き魚や刺身にそえたり、酒の肴にしたりと、調味料としてではなくおかずとして食べます。覚心は金山寺味噌のみならず、日本の醤油の父としても認められています。味噌が発酵する過程で発酵樽の底に汁が貯まります。覚心はその汁を味わい、その芳醇な風味に感銘を受けて、抽出することを決めたと伝えられています。これにより醤油製造への道が開かれました。


さらに探索する

 境内を散策しながら「法堂」、瞑想を行う場である「禅堂」、覚心を祀った「開山堂」の外観を見学できます。これらの堂は通常非公開ですが、正面扉の羽根板の隙間から本堂内部を覗き見ることができます。境内を巡る小道の途中に「天狗堂」があり、参拝者に公開されています。堂内に展示された巨大な天狗の面からわかるように、天狗は伝統的な民話や文学に登場する、赤い顔と大きな鼻が特徴の鳥のような姿をした鬼です。全焼した興国寺の伽藍を全能の天狗が一晩で再建したという伝説があるため、天狗はこの寺で崇拝されています。


寺院の起源と発展

 興国寺は当初、密教真言宗に属する西方寺として建立されました。1258年、覚心が住職に就任すると禅宗臨済宗に改宗しました。南北朝時代(1336~1392年)に後村上天皇より「興国寺」の寺号が与えられ西方寺から興国寺に名称を変更し再興しました。この変革は、京都を拠点とする天皇から鎌倉を拠点とする武士という新たな支配階級へ政治的権威が移譲されるという、日本史上の重要な過渡期に起こりました。この時代はまた、日本の仏教が急速に多様化した時代でもありました。禅宗は日本では比較的新しい宗派であり、鎌倉幕府の庇護を受けて勢力を拡大しました。覚心は興国寺を国内有数の禅寺として発展させ、全国に信仰を広める上で中心的な役割を果たしました。13 世紀から 14 世紀の最盛期には143 の禅寺網の頂点を極め、本堂の境内だけでも 43 の脇寺がありました。

關南第一禪林:興國寺


興國寺在日本禪宗史上占據重要的地位,並以醬油和金山寺味噌的發源地而聞名。興國寺創建於1227年,為祭奠鐮倉幕府(1185-1333)第3代將軍源實朝(1192-1219)之靈而建。佛殿內藏有重要的佛像與文化財產,寺內隨處可見柳杉、楓樹、杜鵑花和櫻花樹。


入寺

寺院入口是位於南側的「大門」。進入大門後沿石板路穿過樹林、池塘和小石塔、石碑群,就到了第二道門「山門」。這座山門是寺院法堂(正殿)的入口,正對著法堂。


法堂

法堂內供奉釋迦牟尼佛,是興國寺的精神核心。殿內的天花板上繪有一條龍,威風凜凜地守護著法堂。


開山堂

法堂後方的回廊通往禪堂和開山堂。開山堂建在已逝高僧住持心地覺心禪師(1207-1298)墓地之上。心地覺心積極推廣禪宗在日本的傳播,圓寂後被後醍醐天皇(1318-1339在位)追封為「法燈圓明國師」。


心地覺心的歷史功績

心地覺心曾在中國南宋杭州護國寺無門慧開(1183-1260)門下修行6年,獲得悟道證明後回到日本擔任住持。當時他帶回了尺八曲譜、無門慧開所著的《無門關》及其他教義。《無門關》後來成為了日本禪宗的核心教義,尺八演奏則被他納入了日常冥想禪修中,並確立了「虛無僧」這一宗教文化傳統。被稱為「虛無僧」的僧侶或托缽僧在踏上朝聖之路時,多以形似倒扣籮筐的「天蓋」深草笠覆住頭臉,一路吹奏尺八。這種用蘆葦編織的獨特的深草笠象徵「無我」,吹奏尺八是為了召喚世人走上尋求開悟之路。

心地覺心還將中國的發酵技術引入日本,製作出了金山寺味噌。這種味噌質地較粗,由蔬菜、大米、大豆和大麥混合發酵而成,可以作為配菜或拌飯食用。味噌發酵過程中,發酵桶底部會沉積汁液,相傳心地覺心品嘗了這種芬芳醇厚的液體後讚不絕口,決定單獨提取出來使用,由此開啟了日本醬油的釀造之路,心地覺心也因此被譽為「日本醬油之父」。


寺院內部

遊客可以漫步寺中,欣賞法堂、禪堂和開山堂建築外觀。佛殿內部通常不對外開放,但可透過法堂正門柵欄向內觀望。環繞寺院的小道旁有座天狗堂,可自由入內參觀,殿內展示巨型的天狗面具。在日本傳統民間故事和文學中,天狗是一種鳥形妖怪。傳說興國寺曾遭大火焚毀,是一隻法力無邊的天狗一夜之間重建寺院,因此天狗在寺中備受尊崇。


興國寺的起源與發展

興國寺的前身是日本佛教密教真言宗的西方寺。1258年,心地覺心擔任住持,將寺院改為禪宗臨濟宗,更名興國寺。當時正值日本歷史重要轉折期,政治權力從京都的天皇逐漸轉移到以鐮倉為據點的武士統治階層手中。而此時也是日本佛教急遽分化時期之一,禪宗為較新宗派,受鐮倉幕府的推崇而蓬勃發展。心地覺心將興國寺發展成為日本數一數二的禪宗寺廟,並在日本全國傳播信仰方面發揮了重要作用。在13、14世紀興國寺的鼎盛時期,轄下共有143座末寺(附屬寺院),寺院內分立著43座塔頭。

关南第一禅林:兴国寺


兴国寺不仅在日本佛教禅宗史上有着举足轻重的地位,还以酱油和金山寺味噌的发祥地闻名。这座寺院创建于1227年,目的是为了祭奠镰仓幕府(1185-1333)的第3代将军源实朝(1192-1219)之灵。佛殿内收藏有重要的佛像和文化财产,寺内随处可见柳杉、枫树、杜鹃花和樱花树。


入寺

寺院入口是位于南侧的“大门”。走进大门后沿石板路穿过树林,途径池塘和小石塔、石碑群,就到了第二道门“山门”。山门是寺院法堂(正殿)的入口,正对着法堂。


法堂

法堂供奉释迦牟尼佛,是兴国寺的信仰核心。殿内的天花板上绘着一条龙,威风凛凛地守护着这座殿堂。


开山堂

法堂后方有回廊通往禅堂和开山堂。开山堂建在曾经出任兴国寺住持的高僧心地觉心禅师(1207-1298)墓地之上。心地觉心积极推动禅宗在日本的传播,圆寂后被后醍醐天皇(1318-1339在位)追封为“法灯圆明国师”。


心地觉心的历史功绩

心地觉心曾在中国南宋杭州护国寺无门慧开(1183-1260)门下修行6年,获得悟道证明后回到日本担任住持。他带回了尺八曲谱、无门慧开所著的《无门关》以及其他教义。《无门关》后来成为了日本禅宗的核心教义,吹奏尺八则被他融入日常冥想禅修中,确立了“虚无僧”这一宗教文化传统。被称为“虚无僧”的僧侣或托钵僧在朝圣中多以名为“天盖”的深草笠覆住头脸,一路吹奏尺八。这种独特的用芦苇编织的深草笠形似倒扣的箩筐,象征“无我”,吹奏尺八则是为了召唤世人一起走上寻求开悟之路。

心地觉心还将在中国学到的发酵技术引入日本,并制作出了金山寺味噌。这种味噌颗粒较粗,用蔬菜、大米、大豆、大麦混合发酵而成,可以当作配菜或拌饭食用。味噌发酵过程中,发酵桶底部会沉积汁液,相传心地觉心品尝了这种芬芳醇厚的液体后赞不绝口,决定单独提取出来使用,从而开启了日本酱油的酿造之路。因此,心地觉心还被誉为“日本酱油之父”。


寺院内部

漫步寺中,可以欣赏法堂、禅堂和开山堂的建筑外观。佛殿内部通常不对外开放,但可以通过法堂正门栅栏向内观望。环寺小道旁有天狗堂,可入内参观,殿内展示的是巨大的天狗面具。在日本传统民间故事和文学中,天狗是一种鸟形妖怪。传说兴国寺曾遭大火焚毁,是一只法力无边的天狗在一夜之间重建了寺院,因而天狗在寺中倍受崇拜。


兴国寺的起源与发展

兴国寺的前身是日本佛教密教真言宗的西方寺。1258年,心地觉心出任住持,将寺院改成禅宗临济宗,并更名为兴国寺。时值日本历史的重要转折期,政权从身居京都的天皇逐渐转移到了以镰仓为据点的新统治阶层武士集团手中。此时也是日本佛教急遽分化的时代,禅宗作为较新宗派备受镰仓幕府推崇。心地觉心积极推动禅宗信仰在日本全国的传播,兴国寺也在他的努力下发展为日本数一数二的禅寺。在13、14世纪兴国寺的鼎盛时期,辖下共有143座末寺(附属寺庙),寺内共有43处塔头。

고코쿠지 절(興国寺)


 고코쿠지 절은 일본 선불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간장과 긴잔지 된장의 발상지로도 유명합니다. 이 사찰은 가마쿠라 막부(1185~1333년)의 3대째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1192~1219년)의 명복을 빌기 위해 1227년에 창건되었습니다. 고코쿠지 절에는 귀중한 불상과 문화재가 수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내에는 삼나무, 단풍나무, 철쭉, 벚꽃 등이 심어져 있어 사계절의 자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고코쿠지 절 방문길

 경내에는 남쪽의 다이몬 문을 통해 들어갑니다. 거기서부터 납작한 돌길이 숲으로 뒤덮인 부지를 지나 연못과 작은 석탑, 그 밖의 비석군을 지나 두 번째 문까지 이어집니다. 산문은 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법당(본당) 바로 맞은편에 있습니다.


법당(본당)

 ‘법당’은 고코쿠지 절의 정신적인 중심입니다. 역사적인 부처,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개산당

 본당의 뒤쪽에서 명상 도장인 ‘선당’, 그리고 ‘개산당’으로 이어지는 회랑이 있습니다. 개산당은 고코쿠지 절의 주지를 지낸 고명한 선사인 신치 가쿠신(心地覚心, 1207~1298년)을 모시기 위해 장지 위에 세워졌습니다. 가쿠신은 일본에 선종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후, 가쿠신은 고다이고 천황(재위 1318~1339년)으로부터 홋토 엔묘 국사(法燈円明国師, 완전히 깨어난 법등의 국사라는 의미)의 호가 추증되었습니다.


가쿠신의 공적

 가쿠신은 중국의 무문혜개(1183~1260년) 밑에서 6년간의 수행을 마치고 귀국 후 주지로 부임했습니다. 무문이 저술한 『무문관』에 담긴 내용은 일본 선불교의 중심적인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가쿠신은 샤쿠하치(대나무로 만든 퉁소)의 악보와 함께 무문의 가르침 등을 중국에서 가져왔습니다. 명상 수단으로 샤쿠하치의 연주를 소개하고, 허무승(‘허무의 성직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음)이 실천하는 문화적 관습을 확립했습니다. 허무승은 승려나 탁발승으로, 이들 대부분은 바구니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 머리부터 목까지 덮는 갈대로 짠 삿갓을 쓰고, 샤쿠하치를 불며 순례했습니다. 이 독특한 쓰개는 자아의 부재를 상징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샤쿠하치를 연주했습니다.


 가쿠신은 중국에서 배운 발효 기술을 일본으로 가져와 긴잔지 된장을 제조했습니다. 이 소박한 된장은 야채, 쌀, 콩, 보리를 혼합하여 발효시킨 것으로 밥에 얹기도 하고, 생선구이나 생선회에 곁들이거나, 술안주로 만드는 등 조미료가 아니라 반찬으로 먹습니다. 가쿠신은 긴잔지 된장뿐만 아니라 일본 간장의 아버지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된장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효통 바닥에 국물이 고입니다. 가쿠신은 그 국물을 맛보고, 향기로운 풍미에 반하여 추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간장 제조의 길이 열렸습니다.


더 알아보기

 경내를 산책하면서 ‘법당’, 명상 장소인 ‘선당’, 가쿠신을 모신 ‘개산당’의 외관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 이 불당들은 평소 일반에 공개되지 않지만 정면 문의 판자 틈새로 본당 내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경내를 도는 오솔길 중간에 ‘덴구도’가 있으며, 참배자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불당 내에 전시된 거대한 덴구의 가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덴구는 붉은 얼굴과 큰 코가 특징인 요괴로 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만화와 문학에 등장합니다. 전소된 고코쿠지 절의 가람을 전능한 덴구가 하룻밤 사이에 재건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덴구는 이 절에서 숭배하고 있습니다.


사찰의 기원과 발전

 고코쿠지 절은 당초 밀교 진언종에 속하는 사이호지 절로 건립되었습니다. 1258년 가쿠신이 주지로 취임하며 선종 임제종으로 개종했습니다. 남북조 시대(1336~1392년)에 고무라카미 천황으로부터 ‘고코쿠지 절’이라는 사호를 받아 사이호지 절에서 고코쿠지 절로 명칭을 변경하고 재흥했습니다. 이 변혁은 교토를 거점으로 하는 천황으로부터 가마쿠라를 거점으로 하는 무사라는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정치적 권위가 이양되는 일본 역사상 중요한 과도기에 일어났습니다. 또한, 이 시대는 일본 불교가 급속히 다양화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선종은 일본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종파였는데, 가마쿠라 막부의 비호를 받으며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가쿠신은 고코쿠지 절을 일본 내 유수의 선사로 발전시켰으며, 일본 전국에 신앙을 전파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3세기에서 14세기의 전성기에는 143개 선사들의 정점을 찍었으며, 본당 경내에만 43개의 말사가 있었습니다.

Kokokuji Temple


Kokokuji Templ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Zen Buddhism in Japan and is famous as the birthplace of soy sauce and Kinzanji miso. The temple was founded in 1227 to pray for the repose of the spirit of Minamoto no Sanetomo (1192–1219), the third shogun of the Kamakura shogunate (1185–1333). Its halls contain important Buddhist statuary and other cultural assets, and its grounds are planted with cedars, maples, azaleas, and cherry trees.


Visiting the temple

The entrance to the temple complex is from the south via the Daimon gate. From there, a stone path leads to a second gate, passing through forested grounds, ponds, and a group of miniature stone pagodas and other stone monuments. The Sanmon gate is the entrance to the temple’s main sanctuary and is directly opposite the Main Hall (Hatto).


The Main Hall

The Main Hall is the spiritual heart of the Kokokuji temple complex. It is dedicated to Shakyamuni, the historical Buddha. On the ceiling, a painting of a dragon guards the hall.


The Founder’s Hall

A corridor leads from the back of the Main Hall to the Meditation Hall (Zazendo) and on to the Founder’s Hall (Kaizando). The Founder’s Hall is built over the burial site of Shinchi Kakushin (1207–1298), a celebrated Zen master who served as head monk at Kokokuji. Kakushin played a key role in propagating Zen Buddhism in Japan. He was posthumously granted the title Hotto Enmyo Kokushi (lit. “perfectly awakened national teacher of the Dharma lamp”) by Emperor Godaigo (r. 1318–1339).


Kakushin’s legacy

Kakushin became head monk after returning to Japan following six years of training under Wumen Huikai (1183–1260) in China. Wumen wrote The Gateless Gate, a compilation of teachings that became central to Japanese Zen Buddhism. Kakushin brought back these and other teachings along with shakuhachi music scores from China. He introduced the shakuhachi bamboo flute as a means of meditation and established the cultural practices followed by komuso, or “clerics of emptiness.” Komuso were traditionally monks and mendicant monks, many of whom undertook pilgrimages wearing reed-woven headgear that covered the face and head like an upturned basket and played the shakuhachi. The unique headgear symbolized the absence of ego, and they played the shakuhachi to attain and summon others to enlightenment.


Kakushin introduced fermentation techniques from China to make Kinzanji miso. This coarsely textured miso is a fermented mixture of vegetables, rice, soybeans, and barley, eaten as a side dish or as a topping for rice. Through the introduction of Kinzanji miso, Kakushin is additionally credited as the father of Japanese soy sauce. Liquid accumulates in the bottom of the barrel during the fermentation process of the miso. It is said that after savoring the richly flavored liquid, Kakushin was so impressed with its taste that he decided to extract some. This paved the way for soy sauce production in Japan.


Exploring further

Visitors can view the exteriors of the Main Hall (Hatto), Meditation Hall (Zazendo), and Founder’s Hall (Kaizando) on a walk around the temple grounds. The halls are usually closed to the public, but it is possible to look inside the Main Hall through the slatted panels of the main door. The path around the grounds passes the Tengu Hall (Tengudo), which anyone may enter. As illustrated by the large mask displayed inside the hall, tengu are bird-like goblins from traditional folk tales and literature. Legend holds that an all-powerful tengu rebuilt Kokokuji in one night after a devastating fire, and that creature is worshipped at the temple.


The origins of the temple and its development

Kokokuji was founded as Saihoji Temple and initially belonged to the esoteric Shingon school of Buddhism. In 1258, when Kakushin became head monk, he changed the temple’s affiliation to the Rinzai school of Zen Buddhism and re-established it as Kokokuji. The transformation occurred during a transitional period in Japanese history, marked by the transfer of political authority from the emperor in Kyoto to a new ruling class of samurai warriors based in Kamakura. This era was also one of rapid diversification of Japanese Buddhism. Zen was relatively new to Japan and it flourished under the Kamakura shogunate. Kakushin developed Kokokuji into one of the country’s leading Zen temples and played a key role in propagating the faith nationwide. At Kokokuji’s height in the thirteenth and fourteenth centuries, it was the head of a network of 143 Zen temples, with 43 subtemples on the grounds of the main temple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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