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교의 금교와 은밀하게 지속된 신앙 계승

  • 나가사키
장르:
사적·성터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0 이하
작성 연도:
2019
지역 협의회명:
「nagasakitoamakusachihonosempukukirishitankanrenisan」hozonkatsuyojikkoiinkai

The Ban on Christianity and the Secret Transmission of the Faith


Japanese Forms of Faith Based on Tradition and Local Social Customs

Despite the severity of the repression, Hidden Christians existed throughout Japan until the mid-seventeenth century. However, a series of campaigns of detection and persecution in the 1650s and 1660s in Kōri (Nagasaki), Bungo (Ōita), and Nōbi (Gifu/Aichi prefectures) left the Hidden Christian population limited principally to the Nagasaki region.


Under the guidance of lay leaders and in line with the church calendar, the Hidden Christians observed feast days and penitential days and conducted rites such as baptisms and funerals. Since they had no churches, they would gather secretly in the houses of religious leaders known as chōkata (“official of the book”) and mizukata (“water official”) and conduct prayers and rituals, while venerating the places where their ancestors had been martyred or were buried.


While the faith was maintained, it was gradually influenced by native Japanese traditions. The pronunciation of the Latin and Portuguese prayers (oratio) that had been brought to Japan in the sixteenth century became garbled, and certain prayers and ceremonies were altered by the influence of folk religions as they were transmitt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 Shoji Yoshitaka


禁教と密かな信仰の継承


伝統と地域社会の慣習から生まれた日本特有の信仰の形

厳しい弾圧にも関わらず、潜伏キリシタンは17世紀中頃まで全国各地に存在した。しかし、1650年代と60年代の郡(長崎)、豊後(大分)、濃尾(岐阜・愛知)で実施された一連のキリシタンの摘発と処刑により、潜伏キリシタンは主として長崎地方にのこるのみとなった。


潜伏キリシタンは指導者の下で教会歴の祝い日や忌み日に従って洗礼や葬送などの儀礼を行った。教会堂を持たなかった彼らはひそかに「帳方」や「水方」などと呼ばれる指導者の家に集まって祈りや儀式を行い、先祖の殉教地や墓地を崇拝した。


この信仰は、守り続けられている間に次第に日本の伝統の影響を受けていった。16世紀に伝わったラテン語とポルトガル語の祈りの言葉(オラショ)は発音がなまり、一部の祈りの言葉や儀式は代々受け継がれる間に民間信仰の影響を受けて変化した。


(挿画:庄司好孝)

禁教與秘密傳承信仰


傳統與地區社會的習慣發展出日本特有的信仰型態

儘管遭受嚴厲打壓,直至17世紀中期,潛伏吉利支丹仍存在於日本全國各地。然而到了1650年代與60年代,幕府於郡(長崎)、豐後(大分)、濃尾(岐阜、愛知)實行了一連串清查與處死吉利支丹的行動,使大部分潛伏吉利支丹僅殘存於長崎地區。

在指導者的引領下,潛伏吉利支丹依據教會曆的宜忌日進行洗禮及送葬等活動。由於沒有教堂,他們只能秘密聚集於指導者「帳方」及「水方」的家中進行禱告及儀式,並對祖先的殉教地及墓地進行朝拜。

在信徒的默默守護下,此一信仰也逐漸受到日本傳統文化影響。如16世紀傳入的拉丁語及葡萄牙語的祈禱詞(Oratio)發音便受到信徒的口音影響;在世代傳承中,部分祈禱文及儀式也受民間信仰陶染而產生變化。


(插圖:庄司好孝)

禁教与秘密传承信仰


传统与地区社会的习惯孕育出日本特有的信仰形态

尽管遭受严厉镇压,直至17世纪中叶,潜伏吉利支丹依然存在于日本各地。然而,到了17世纪50年代与60年代,幕府于郡(长崎)、丰后(大分)、浓尾(岐阜、爱知)实施了一系列清查与处决吉利支丹的行动,使大部分潜伏吉利支丹仅残存于长崎地区。

在指导者的引领下,潜伏吉利支丹按照教会日历的吉凶日进行洗礼及送葬等活动。由于没有教堂,他们只能秘密聚集于指导者“帐方”及“水方”的家中进行祷告及仪式,并对祖先的殉教地及墓地进行朝拜。

在信徒日复一日的守护下,这一信仰逐渐受到日本传统的影响。譬如16世纪传入的拉丁语及葡萄牙语的祈祷词(Oratio)发音受到信徒口音的影响;在世代传承中,部分祈祷文及仪式也受到民间信仰的影响而发生变化。


(插图:庄司好孝)

그리스도교의 금교와 은밀하게 지속된 신앙 계승


전통과 지역 사회의 관습에서 탄생한 일본 고유의 신앙 형태

잠복 기리시탄은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중엽까지 일본 각지에 존재했다. 그러나 1650년대, 60년대의 고리(나가사키), 분고(오이타), 노비(기후, 아이치)에서 실시된 일련의 기리시탄 적발 사건과 처형으로 인해, 잠복 기리시탄은 주로 나가사키 지방에만 남게 되었다.


남겨진 잠복 기리시탄은 지도자와 함께 교회력의 축일이나 기일에 맞춰 세례나 장송 등의 의례를 치렀다. 교회당이 없었던 잠복 기리시탄은 ‘조카타’나 ‘미즈카타’라고 불리는 지도자의 집에서 은밀한 모임을 가지며 기도와 의식을 행했고, 선조들의 순교지와 묘지를 숭배했다.


이렇듯 잠복 기리시탄의 신앙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점차 일본 전통의 영향이 커져갔다. 16세기에 전해진 라틴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기도문(오라쇼)은 발음이 변형되었고, 일부 기도문과 의식은 대대로 계승되는 동안 민간 신앙의 영향을 받아 변화했다.


(삽화: 쇼지 요시타카)

재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