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쓰메 소세키 우치쓰보이 옛 저택

  • 구마모토
장르:
마을·거리
매체 이용 구분:
간판
단어 수:
250 이하
작성 연도:
2020
지역 협의회명:
Kumamoto City

Natsume Soseki and Uchitsuboi House


Natsume Soseki (1867–1916), one of Japan’s most celebrated novelists, arrived in Kumamoto in April 1896 to take up an English teaching position at the Fifth Higher School (equivalent to a modern university). He lived in Kumamoto until 1900, when the Ministry of Education dispatched him to London to study English.

This is the fifth of six different houses that Soseki lived in during his time in Kumamoto. The Uchitsuboi house is significant for two reasons. First, it is the only one of his Kumamoto houses that survives more or less unchanged in its original location. Two more survive, but they have been extensively modified. Second, his first child, daughter Fudeko, was born here in 1899. The house has eight rooms and a pleasant garden containing the well that may have provided the water used to wash the newborn Fudeko. The monthly rent was 10 yen, equivalent to around 100,000 yen today.

Soseki was in his early thirties when he lived here, and had yet to write his first novel; he was merely an English teacher who wrote haiku poetry on the side. He wrote some 2,000 haiku in his life, 900 of them while living in Kumamoto. He was undoubtedly influenced by his friend and one-time classmate, Masaoka Shiki (1867–1902), who became a famous haiku poet.

Even though he was not yet writing fiction while in Kumamoto, Soseki was no doubt storing away material for later use. His 1906 novels Kusamakura and The 210th Day are both set in Kumamoto.


夏目漱石内坪井旧居


日本を代表する小説家の一人である夏目漱石(1867-1916)は、第五高等中学校(今日の大学に相当)の英語教師になるため、1896年4月に熊本に来ました。彼は1900年まで熊本に住んだ後、英語を学ぶために文部省によってロンドンに派遣されました。


この住居は、漱石が熊本時代に住んでいた6つの家のうち、5番目の家です。内坪井旧居は、2つの理由から重要な意味を持っています。第一に、熊本で住んだ家の中で唯一、程度の差はあれ、元の場所で変化なく現存している点です。他にも2つの家が残っていますが、それらは大きく手が加えられています。第二に、漱石の長男である筆子が1899年にここで生まれた点です。この家には8つの部屋と、生後間もない筆子を洗うための水を供給していたと思われる井戸のある、心地よい庭があります。家賃は月10円で、現在のおよそ10万円に相当します。


この地に住んでいた頃の漱石は30代前半で、まだ小説を書いたことはなく、英語教師として働く傍ら、俳句を詠んでいるに過ぎませんでした。生涯で2000句前後を詠みましたが、そのうち900句は熊本に住んでいたときのものです。同級生の友達であり、後に有名な俳人になった正岡子規(1867-1902)の影響を受けた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


熊本では小説をまだ書かいていなかった漱石ですが、将来に備えて資料を蓄えていた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1906年の小説『草枕』と『二百十日』はいずれも熊本を舞台にしています。


夏目漱石內坪井故居


夏目漱石(1867-1916)是日本最著名的小說家之一,於1896年4月抵達熊本,在第五高等中學(相當於今天的大學)擔任英語教師。之後他一直在熊本生活,直到1900年被教育部派往倫敦學習英語。

內坪井故居是夏目漱石在熊本生活期間居住的6座不同房屋中的第5座,之所以具有重要意義,原因有二。第一,它是夏目漱石在熊本的居所中,唯一一座保留在原址上且沒有多大變化的房屋。還有兩處故居也留存了下來,但因為經過了大改造而面目全非。第二,夏目漱石的的第一個孩子、女兒「筆子」於1899年出生在這裡。這所房子有8個房間和一個宜人的庭園,園中有一口井,剛出生的筆子也許就是用這井水來清洗的。房子的月租是10日元,相當於今天的10萬日元左右。

夏目漱石住在這裡的時候才三十出頭,還未開始寫小說,只是一位英語教師,同時寫些俳句。夏目漱石一生寫了大約2000首俳句,其中有900首都是在熊本創作的。他無疑受到了同學的朋友正岡子規(1867-1902)的影響,正岡子規後來成為了著名的俳句詩人。

雖然夏目漱石在熊本期間還沒有寫小說,但他已經為未來的寫作儲備了素材,1906年出版的小說《草枕》和《二百十日》都是以熊本為背景。

夏目漱石内坪井故居


夏目漱石(1867-1916)是日本最著名的小说家之一,于1896年4月抵达熊本,在第五高等中学(相当于今天的大学)担任英语教师。之后他一直在熊本生活,直到1900年被教育部派往伦敦学习英语。

内坪井故居是夏目漱石在熊本生活期间居住的6座不同房屋中的第5座,它之所以具有重要意义,主要有两个原因。第一,它是夏目漱石在熊本的居所中,唯一一座保留在原址上且没有多大变化的房屋。还有两处故居虽然也留存了下来,但它们都经过了大改造而面目全非。第二,1899年,夏目漱石的第一个孩子、女儿“笔子”就出生在这里。这所房子有8个房间和一个宜人的庭园,园中有一口井,刚出生的笔子也许就是用这里的井水来清洗的。房子的月租为10日元,相当于今天的10万日元左右。

夏目漱石住在这里的时候才三十出头,还未开始写小说。当时他只是一名英语教师,同时写些俳句。夏目漱石一生写了大约2000首俳句,其中有900首都是在熊本创作的。毫无疑问,他受到了同学的朋友正冈子规(1867-1902)的影响,正冈子规后来成了一位著名的俳句诗人。

尽管夏目漱石在熊本生活期间还没有开始写小说,但他已经为未来的写作储备了众多素材,1906年出版的《草枕》和《二百十日》都是以熊本为背景的小说。

나쓰메 소세키 우치쓰보이 옛 저택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1896년 4월에 제5고등중학교(지금의 구마모토 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의 영어 교사로 구마모토에 부임했습니다. 4년 후인 1900년에 문부성의 명으로 연구를 위해 런던에 파견될 때까지 계속해서 구마모토에 머물렀습니다.


우치쓰보이 옛 저택은 소세키가 구마모토에 체류할 당시 거주했던 6채의 저택 중에서 5번째에 해당하는 저택입니다. 우치쓰보이 옛 저택은 두 가지 부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소세키가 구마모토에서 거주했던 저택 중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일하게 당시의 상태 그대로 같은 장소에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외에도 2채가 남아 있지만 나머지 저택들은 당시와는 매우 달라진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소세키의 첫아이인 딸 후데코가 1899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우치쓰보이 옛 저택은 총 8개의 방과 아늑한 마당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마당 한 켠에는 갓난아이였던 후데코의 목욕물로 사용했다는 우물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월세는 10엔이었는데,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0만엔에 해당합니다.


이곳에서 거주하던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소세키는 소설을 집필하지는 않았으며 하이쿠(17글자로 짓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를 취미로 하는 영어 교사에 불과했습니다. 소세키는 일생 동안 2,000여 구의 하이쿠를 지었는데 그중 900구는 구마모토에 거주할 때 지었던 것입니다. 도쿄에서 함께 학업에 정진했던 동창이자 훗날 유명한 하이쿠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마사오카 시키(1867-1902)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구마모토에서는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던 소세키였지만, 1906년에 발표된 소설 『풀베개』와 『이백십일』 모두 구마모토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필시 나중을 대비해 자료를 축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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