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本美濃紙の歴史

  • 岐阜県
ジャンル:
地域の特産物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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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500
作成年度:
2022年
地域協議会名:
美濃市

Mino Washi: Layers of History


The oldest known extant paper in Japan comes from Mino, in Gifu Prefecture. It was used for a family register from Mino, dated 702 CE. The paper is stored at the Shosoin Repository in Nara Prefecture, which houses ancient treasures and artifacts. The technique of making paper with hemp and bast fibers came to Japan from China. An account in the Nihon shoki (Chronicles of Japan), published in 720, mentions that the Chinese method of making paper was introduced to Japan by a Buddhist priest from Korea in 610, but papermaking may have been introduced earlier, with the arrival of Buddhism in the mid-sixth century. 


The origins of washi

Hemp is difficult to break down into fibers, so techniques were developed locally using plants such as kozo (paper mulberry), mitsumata (Edgeworthia chrysantha) and gampi (Wikstroemia). Paper made with these plants became known as washi (literally, Japanese paper). Making washi was a profitable activity for farmers during the winter. Over time, it grew into a key rural industry. The way of making Mino washi has changed little in over 1,300 years. 


Paper and taxes

Along with commodities such as rice and salt, washi was used to pay taxes. Washi grew in importance as Buddhism spread throughout Japan. Mino washi was used from the Nara period (710–794) for the copying of sutras and for government records including family registers. Mino benefited from convenient access to Kyoto, the capital during the Heian period (794–1185) and beyond.


Demand for Mino washi grows 

With the establishment of a Shogunate in Kamakura in Kanagawa Prefecture in twelfth century, Mino washi became popular among the samurai as a gift to present on formal occasions. The Toki family, who governed the Mino region from the fourteenth to the mid-sixteenth century, opened a paper market in Oyada (part of present-day Mino City). The market was held six times a month, selling Mino washi to merchants who sold it in Kyoto and Osaka.

 

Mino washi in battle 

In 1600, samurai Kanamori Nagachika (1524–1608) who governed the Hida region in the mountains north of Mino, fought on the side of Tokugawa Ieyasu in the Battle of Sekigahara, at the end of the end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Their decisive victory signaled an end to over 100 years of civil war and social upheaval and united the country under the Tokugawa shogunate. A tassel of strips of Mino washi topped the baton (saihai) that Tokugawa Ieyasu used to convey orders to his troops. A replica of the black-lacquered saihai is in the collection of the Mino Washi Paper Museum. Mino washi became the official paper of the shogunate, and local makers were given official titles and exemptions on duties. For his loyalty, Kanamori was rewarded with the lands around Mino. He expanded the port on the banks of the Nagara River and developed the town as a center of the paper trade.

 

Protecting the future

The fortunes of Mino washi waned after World War II, increasingly replaced by printing machines and Western-style wood pulp paper. Lifestyles changed, and the market for washi for use in everyday items such as lanterns and shoji screens diminished. In the twenty-first century, Mino washi is used mainly for traditional crafts and restoration work. The number of papermakers in Mino has dropped from thousands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to a handful today who follow the same methods established over 1,000 years ago. Through local efforts, the techniques of making Mino washi continue as part of Japan’s craft heritage. In 2014, the handmade washi techniques of Mino were added to the UNESCO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美濃和紙:發展歷史大事記


日本現存已知最古老的紙張出自岐阜縣的美濃地區。這是一份西元702年的美濃戶籍登記表,現存於奈良縣的正倉院中,正倉院中所藏均為古代珍寶與文物。使用麻纖維和樹木韌皮纖維造紙的技術源自中國,根據西元720年出版的《日本書紀》的記錄,西元610年,一名來自朝鮮半島的僧人將中國的造紙術帶到了日本。但也有觀點認為,造紙技術可能是在更早的6世紀中葉隨佛教一同傳入日本的。


和紙的起源

麻很難分解成纖維,因此,當地開發出了利用構樹(又稱楮樹;楮,音同「楚」)、結香(三椏)、雁皮樹(瑞香科蕘花屬的好幾種灌木;蕘,音同「嬈」)等植物製備紙漿的技術。漸漸的,使用這些植物製作的紙張便被稱為「和紙」。對於農民來說,在冬天製作和紙可以貼補收入,造紙因此漸漸成長為當地的支柱產業。1300多年來,美濃和紙的製作方法幾乎沒有改變。


紙與賦稅

過去,與米、鹽等生活必需品一樣,和紙也可以用來繳稅。隨著佛教傳遍日本,和紙也越來越重要。從奈良時代(710-794)開始,美濃和紙就被用於抄寫佛經以及登記戶籍資料等政府資訊。進入平安時代(794-1185)以後,京都在超過千年的時間裡都是日本的首都,美濃往來京都交通便利,因此得益匪淺。


美濃和紙需求成長

隨著12世紀鐮倉幕府(1185-1333)在神奈川縣建立,美濃和紙迅速受到武士階層青睞,成為了正式場合裡熱門的饋贈佳禮。14世紀至16世紀中葉,統治美濃地區的土岐家曾在大矢田(今美濃市部分區域)開設紙市。市場每月開集6次,將美濃和紙賣給在京都和大阪做紙張生意的商人。


戰爭中的美濃和紙

1600年,管轄美濃北部山區飛驒(音同“駝”)地區的武將金森長近(1524-1608)作為德川家康(1543-1616)的同盟軍,參加了日本戰國時代(1467-1600)末期的關原之戰。德川軍在這場大戰中取得了決定性的勝利,長達100多年的內亂和社會動盪終告結束,德川幕府(1603-1867)統一了日本。德川家康用於在部隊內傳達軍令的指揮棒(日語稱「采配」)上便有一圈美濃和紙的流蘇,「美濃和紙里會館」內收藏著一柄黑漆采配的複製品。美濃和紙隨後被認定為幕府官方用紙,當地從業者獲得官方授予的商號,並被免除了各項賦稅徭役。金森長近也因其忠誠受賞美濃周邊的土地。此後,金森長近擴建長良川河岸的碼頭,將該地區發展成了一處紙業貿易中心。


守護未來

第二次世界大戰(1939-1945)之後,美濃和紙日漸式微,逐步被印刷機和西式木漿紙所取代。隨著人們生活方式的改變,用於製作燈籠、障子門等傳統日常用品的和紙市場趨於萎縮。進入21世紀後,美濃和紙的主要用途轉向傳統工藝品的製作與修復。千年來堅守製作傳統和紙工藝的美濃地區和紙工匠,也從19世紀末的數千人急遽減少,如今屈指可數。儘管如此,在當地居民的努力下,美濃和紙製法作為日本手工藝遺產的一部分得以傳承。2014年,「美濃手漉和紙」製作工藝被列入聯合國教科文組織(UNESCO)「人類非物質文化遺產代表作名錄」。

美浓和纸:发展历史大事记


日本现存已知最古老的纸张出自岐阜县的美浓地区。这是一份公元702年的美浓户籍登记表,现存于奈良县的正仓院中,正仓院所藏均为古代珍宝与文物。使用麻纤维和树木韧皮纤维造纸的技术源自中国,据公元720年出版的《日本书纪》记录,公元610年,一名来自朝鲜半岛的僧人将中国的造纸术带到了日本。但也有观点认为,可能在更早的6世纪中叶,造纸技术便已随佛教一同传入了日本。


和纸的起源

麻很难分解成纤维,因此,当地开发出了利用构树(又称楮树;楮,音同“楚”)、结香、甘皮树(包括瑞香科荛花属的好几种灌木;荛,音同“娆”)等植物制备纸浆的技术。渐渐的,使用这些植物制作的纸张便被称为“和纸”。对于农民来说,在冬天制作和纸可以贴补收入,造纸因此逐步成长为本地区的支柱产业。1300多年来,美浓和纸的制作方法几乎没有改变。


纸张与赋税

过去,和纸与米、盐等日常必需品一样,都可以用来缴税。随着佛教传遍日本,和纸也越来越重要。从奈良时代(710-794)开始,美浓和纸就被用于抄写佛经以及登记户籍信息等政府资料。进入平安时代(794-1185)之后,京都在超过千年的时间里都是日本的首都,美浓往来京都交通便利,从中得益匪浅。


美浓和纸需求扩大

12世纪,镰仓幕府(1185-1333)在神奈川县建立,美浓和纸迅速受到武士阶层青睐,成为了正式场合里热门的馈赠佳礼。14世纪至16世纪中叶,统治美浓地区的土岐家族曾在大矢田(今美浓市部分区域)开设纸市,集市每月举办6次,将美浓和纸出售给在京都和大阪做纸张生意的商人。


战争中的美浓和纸

1600年,管辖美浓北部山区飞驒(音同“驼”)地区的武将金森长近(1524-1608)作为德川家康(1543-1616)的同盟军,参加了日本战国时代(1467-1600)末期的关原之战。德川军在这场大战中取得了决定性的胜利,进而结束了长达100多年的内乱和社会动荡,德川幕府(1603-1867)统一了日本。德川家康用于传达军令的指挥棒(日语称“采配”)上便有一圈美浓和纸的流苏,“美浓和纸里会馆”内收藏着一柄黑漆采配的复制品。美浓和纸随后被选为幕府官方用纸,本地从业者获得官方授予的商号,并得以免除各项赋税徭役。金森长近也因其忠诚受赏美浓周边的土地。此后,他扩建长良川河岸的码头,将该地区发展成了一处纸业贸易中心。


守护未来

第二次世界大战(1939-1945)之后,美浓和纸日渐式微,逐步被印刷机和西式木浆纸所取代。随着人们生活方式的改变,用于制作灯笼、障子门等传统日常用品的和纸市场趋于萎缩。进入21世纪后,美浓和纸的主要用途转向传统工艺品的制作与修复。千年来坚守着传统和纸制作工艺的美浓地区和纸工匠,也从19世纪末的数千人剧减到如今的屈指可数。尽管如此,在当地居民的努力下,美浓和纸制法作为日本手工艺遗产的一部分得以保留。2014年,“美浓手漉和紙”制作工艺被列入联合国教科文组织(UNESCO)“人类非物质文化遗产代表作名录”。

혼미노시의 역사


현존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는 이곳 미노 지방의 종이입니다. 702년에 쓰인 호적으로 고대의 보물과 공예품을 소장한 나라현의 쇼소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마(麻)나 인피 섬유를 사용한 제지법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720년에 쓰인 『일본서기』에는 서기 610년에 한반도의 불교 승려에 의해 중국의 제지법이 일본에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종이 뜨기 기술은 아마도 그보다 더 이전인 6세기 중반에 불교 전래와 더불어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와시의 기원

마는 섬유를 풀어헤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닥나무나 삼지닥나무(팥꽃나무과의 나무), 안피(산닥나무속의 관목)라는 식물을 사용하는 기법이 일본 곳곳에서 발달하여 닥나무나 안피로 만든 종이가 와시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와시 제작은 처음에는 농가에서 겨울철 수입원으로 시작했지만, 이윽고 각지의 주요 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미노와시도 그중 하나로 1,300년이 넘도록 거의 변하지 않은 제법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와시와 세금

와시는 쌀이나 소금 등 생활에 필수적인 물건들과 나란히 조정이 세금으로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곳곳에 불교가 퍼지면서 와시의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나라 시대(710~794년)에는 경전의 필사나 호적 등의 기록에 미노와시가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수도를 교토로 옮긴 헤이안 시대(794~1185년) 이후 미노 지방은 교토와의 접근성이 좋아 많이 유리해졌습니다.


미노와시의 수요 확대 

12세기에 가나가와현의 가마쿠라에 막부가 열리면서 미노와시는 무사들 사이에서 경사가 있을 때 증정품이나 답례품으로 보급되었습니다. 14세기부터 16세기 중반에 걸쳐 미노 지방을 다스린 도키 집안은 오야다(현재 미노시의 일부)에 종이 시장을 열었습니다. 종이 시장은 한 달에 여섯 번씩 열렸는데, 교토나 오사카 등지에서 상인들이 미노와시를 구입하러 왔습니다.

 

전투와 미노와시 

1600년, 미노 지방의 북쪽에 인접한, 깊은 산속의 히다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던 가나모리 나가치카(1524~1608년)는 전국 시대 말기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야에스 측에서 싸웠습니다. 도쿠가와 군의 결정적인 승리에 따라 100년이나 계속된 일본의 내전과 사회적인 혼란이 끝을 맺고,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통일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사들을 지휘할 때 사용했던 지휘채에는 미노와시를 긴 직사각형으로 잘라 만든 술이 사용되었습니다. 미노와시노사토 회관에는 흑칠을 한 지휘채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노와시는 도쿠가와 막부에 납입되는 특별한 와시가 되었으며, 미노와시를 만드는 장인들도 특별한 대우를 받아 조세 일부를 면제받았습니다. 가나모리 씨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전공을 인정받아 미노 지방의 영지를 하사받았습니다. 그리고 나가라가와 강 연변에 있었던 항구를 확장하여 마을을 만들고 와시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켰습니다.

 

미래를 지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노와시는 인쇄기와 서양 종이에 밀려 쇠퇴했습니다. 생활양식의 변화와 더불어 등롱이나 장지문 등 일상용품을 만들기 위한 와시 시장도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1,000년 전부터 같은 기법으로 종이를 제작하는 장인들이 19세기 말에는 수천 명 있었지만, 현재는 정말로 손에 꼽을 만큼 감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현재도 미노와시는 주로 전통 공예품이나 문화재 및 예술 작품의 복원 작업에 사용되는 중요한 소재이며, 미노와시 제법을 일본의 공예 유산으로 유지하려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혼미노시 제법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本美濃紙の歴史


現存する日本最古の紙は、ここ美濃地方のものです。702年に書かれた戸籍で、古代の宝物や工芸品を所蔵する奈良県の正倉院に保管されています。麻や靱皮繊維を使用した製紙法は、中国から日本に伝わりました。720年に書かれた日本書紀には、紀元610年に朝鮮半島の仏僧により中国の製紙法が日本に伝えられたと記されていますが、紙漉きの技術は恐らく、これよりもさらに前の6世紀半ばに仏教伝来とともに日本に伝わ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 


和紙の起源

麻は繊維をほぐすことが難しかったため、楮(こうぞ)やミツマタ(ジンチョウゲ科)、雁皮(アオガンピ属の低木)といった植物を使う技法が日本各地で発展していきました。こうして楮(こうぞ)や雁皮(がんぴ)で作られた紙が、和紙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和紙制作ははじめ、農家が冬期の収益源として始まりましたが、やがて各地の主要産業へと発展していきました。美濃和紙もその一つで、1300年以上前からほとんど変わらない製法で作られています。 


和紙と税

和紙は米や塩などの暮らしに必須の品々と並んで、税として朝廷に収められていました。そして、日本各地に仏教が広まる中、和紙の重要性は増していきました。奈良時代(710~794年)には、経典の書写や、戸籍などの記録に美濃和紙が用い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都が京都に移った平安時代(794~1185年)以降、美濃地方は、京都へのアクセスが良いという大きな利点を持つことになりました。


美濃和紙の需要拡大 

12世紀、神奈川県の鎌倉に幕府が開かれると、美濃和紙は武士の間で慶事用の贈答品として普及しました。14世紀から16世紀半ばにかけて美濃地方を治めた土岐家は、大矢田(現在の美濃市の一部)に紙市を開きました。紙市は月に6回開催され、京都や大阪などから来た商人が美濃和紙を購入していきました。

 

戦いと美濃和紙 

1600年、美濃地方の北に隣接する山深い飛騨地方を治めていた金森長近(1524-1608)は、戦国時代末期の関ヶ原の戦いで徳川家康側について戦いました。徳川軍の決定的な勝利により100年も続いた日本の内戦と社会的混乱に終止符が打たれ、徳川幕府のもと日本は統一されることとなりました。 徳川家康が軍勢を指揮する際に使用した采配には、美濃和紙の短冊を房にしたものが用いられました。美濃和紙の里会館には、黒漆塗りの采配のレプリカが展示されています。美濃和紙は徳川幕府に納入される特別な和紙となり、美濃和紙を作る職人たちも特別な待遇を受け、租税の一部が免除されました。金森氏は関ヶ原の戦いにおける戦功が買われて美濃地方の領地が与えられました。そして、長良川沿いにあった港を拡大して町を築き、和紙産業の中心地として発展させました。

 

未来を守る

第二次世界大戦後、美濃和紙は印刷機や洋紙に押され、衰退していきました。生活様式の変化とともに、提灯や障子戸といった日用品向けの和紙市場も縮小していきました。その結果、1,000年前から同じ手法で紙を制作する職人は、19世紀末には数千人いましたが、現在ではほんの一握りの数にまで減少してしまいました。しかし、現在でも美濃和紙は、主に伝統工芸品や文化財及び芸術作品の修復作業に用いられる重要な素材であり、美濃和紙の製法を日本の工芸遺産として維持する取り組みが続けられています。2014年には、本美濃紙の製法が、ユネスコの「人類無形文化遺産の代表的な一覧表」に追加され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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