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Shotoku Taishi (Prince Shotoku) and Horyuji Temple

  • Nara
Topic(s):
Shrines/Temples/Churches World Heritage (Natural or Cultural)
Medium/Media of Use:
Interpretive Sign App, QR code, etc.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19
Associated Tourism Board:
Horyuji

聖徳太子と法隆寺


聖徳太子(574~622年)は、日本の第31代天皇である用明天皇(~587年)の皇子である。彼は幼い頃から学問に励み、大人になると仏教について幅広く講義を行い、書物を記した。中国と外交的な関係を結び、大陸の先進文化を日本に取り入れようと努めた。また、日本の歴史に長く影響を与えることになる初期の政府でリーダーシップを発揮し、「十七条憲法」を起草したことでも知られる。中国の古典思想と大乗仏教の影響を受けたこの条文は、和の尊重、仏教への帰依、役人の正しい倫理的行動、人々の忠誠心の重要性を強調している。聖徳太子に対する崇敬の念はその死後着実に高まり、聖徳太子は仏教の聖人とみなされるようになり、信仰の対象となった。


法隆寺はもともと、用明天皇がご自身の病の回復を願って寺を建立し、医薬と癒しの仏である薬師如来像を祀ることを発願されたものである。しかし、天皇は在位わずか2年で崩御され、発願は実行されなかった。その20年後の607年頃、推古天皇(554~628年)と聖徳太子が用明天皇の遺志を継いで法隆寺を創建した。このように、この寺院には約1,400年の歴史がある。創建当時、法隆寺は新たな文明の先駆けであった。開けた田園風景の中に建てられた壮麗な建物群は、訪問者や信者たちを大いに驚嘆させたに違いない。


もっとも、法隆寺の創建当時の建物群は670年の火災で焼失したと考えられている。現在の建物は火災後まもなく再建されたものと思われ、これ以降、聖徳太子と同じ背丈につくられた釈迦如来像を本尊として祀るようになった。飛鳥時代の建築様式を代表する寺院で、当時の中国や朝鮮の建築の影響を受けている。


聖徳太子の遺産は、伽藍内の数多くの建造物に見ることができる。その一例が夢殿であり、聖徳太子をモデルにしたとされる救世観音像が安置されている。救世観音は人々を苦しみから救う力があると信じられている。


1993年、「法隆寺地域の仏教建造物」として、日本で初めて世界文化遺産に登録された。

聖德太子與法隆寺


 聖德太子(西元574-622)是日本第31代天皇用明天皇(生年不詳-西元587)的皇子。他自幼勤學,成年後廣為從事佛教宣講,並記述於文書中。他致力於締結和中國的外交關係,將大陸的先進文化引入日本。此外,他在初期的政府中發揮領導能力,對日本的歷史形成了長遠的影響,起草《十七條憲法》一事也廣為人知。此條文深受中國古典思想與大乘佛教的影響,強調尊重和諧、以佛教為依歸、官員道德正確的行動,以及人民忠誠心的重要性。人們對於聖德太子的崇敬之心在他過世後更形增長,聖德太子被視為佛教的聖人,並且成為信仰的對象。


 法隆寺原本是用明天皇發願修建以祈禱自身的疾病康復,並奉祀掌管醫藥與治病的藥師如來佛像。然而,天皇在位僅2年即駕崩,無法實行發願。在20年後,也就是西元607年左右,推古天皇(西元554-628)與聖德太子繼承用明天皇的遺志,創建了法隆寺。這座寺院擁有約1,400年的歷史。創建當時,法隆寺曾經是新文明的先驅。而壯麗的建築群修建於開闊的田園景觀中,必定曾讓訪客與信眾嘆為觀止。


 但一般認為,法隆寺創建當時的建築群已於西元670年發生的火災中燒毀。現在的建築應該是在火災不久後重建而成,自此以後,便開始將與聖德太子等高的釋迦如來佛像奉祀為本尊。這座寺院代表了飛鳥時代(西元 593-710)的建築樣式,深受當時的中國與朝鮮的建築影響。


 伽藍內眾多的建築,均可見到聖德太子的遺產。夢殿就是其中一例,這裡安放著以聖德太子為範本塑成的救世觀音像,人們相信救世觀音擁有拯救人民於苦難的能力。


 西元1993年,此地以「法隆寺地區的佛教建築」之姿,成為日本首獲登記的世界文化遺產。

圣德太子与法隆寺


圣德太子(574-622)是日本第31代天皇用明天皇(生年不详-587)的皇子。他自幼勤学,成年后积极宣讲佛教,并撰写了书籍。他还致力于与中国缔结外交关系,将大陆的先进文化引入日本。此外,圣德太子在对日本历史形成了深远影响的初期政府中发挥了其领导能力,并以起草《十七条宪法》而闻名。此条文深受中国古典思想与大乘佛教的影响,强调对和谐的尊重、对佛教的皈依、官员的道德操守以及人民忠诚心的重要性。圣德太子所受到的崇敬在他去世后更进一步增长,他被视为佛教的圣人,并且成为人们信仰的对象。


法隆寺最早是用明天皇为祈祷自身的疾病康复而发愿修建,并准备祀奉掌管医药与治愈的药师如来佛像。然而,天皇在位仅2年即驾崩,未能在有生之年实现这一愿望。20年后,也就是607年左右,推古天皇(554-628)与圣德太子继承用明天皇的遗志,创建了法隆寺,所以这座寺院拥有约1,400年的历史。创建当时,法隆寺是新文明的先驱。与开阔的田园风景融为一体的建筑群壮观美丽,必定曾让访客与信众叹为观止。


但一般认为,法隆寺创建当时的建筑群已毁于670年发生的火灾。现在的建筑应该是在火灾后不久重建而成的。自彼时起,开始将制作成与圣德太子等高的释迦如来佛像祀奉为本尊。法隆寺为飞鸟时代(593-710)代表性建筑样式,深受当时中国与朝鲜的建筑所影响。


从伽蓝内众多建筑中均可见到圣德太子的遗产,梦殿就是其中一例,这里安放着以圣德太子为原型塑成的救世观音像。人们相信救世观音拥有拯救人民于苦难的能力。


1993年,此地以“法隆寺地区的佛教建筑”之名,成为日本最早被登记的世界文化遗产。

쇼토쿠 태자와 호류지 절


쇼토쿠 태자(574~622년)는 일본의 제31대 천황인 요메이 천황(~587년)의 황자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어른이 돼서는 불교에 관한 폭넓은 강의를 펼치고 책을 집필했습니다. 중국과 외교적 관계를 맺고 대륙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도입하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 역사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초기 고대 정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17조 헌법’을 초안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고전사상과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이 조문은 화합(和)의 존중, 불교로의 귀의, 관리들의 올바른 윤리적 행동, 사람들의 충성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쇼토쿠 태자에 대한 숭경심은 그의 사후에도 꾸준히 높아져 쇼토쿠 태자는 불교의 성인으로 여겨지며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호류지 절은 원래 요메이 천황이 자신의 병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사찰을 건립하고 의약과 치유의 부처인 약사여래상을 모시기로 발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황이 불과 재위 2년만에 붕어하면서 발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607년경 스이코 천황(554~628년)과 쇼토쿠 태자가 요메이 천황의 유지를 받들어 호류지 절을 창건했습니다. 이처럼 이 사원에는 약 1,400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창건 당시 호류지 절은 새로운 문명의 선구적인 존재였습니다. 탁 트인 전원 풍경 속에 지어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군은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과 신자들을 크게 경탄시켰을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호류지 절 창건 당시의 건물군은 670년의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의 건물은 화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건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쇼토쿠 태자와 같은 크기로 만든 석가여래상을 본존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호류지 절은 아스카 시대(593~710년)의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사원으로 당시 중국과 조선 건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쇼토쿠 태자의 유산은 가람 내의 수많은 건축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한 예인 유메도노(夢殿, 몽전)에는 쇼토쿠 태자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는 구세관음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구세관음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지는 존재입니다.


1993년에 ‘호류사 지역의 불교기념물’로서 일본에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Shotoku Taishi (Prince Shotoku) and Horyuji Temple

Shotoku Taishi (574–622) was the son of the 31st emperor, Yomei (518–587). He was highly educated and lectured and wrote widely on Buddhism, including a famous commentary on the Lotus Sutra. Shotoku at first lived near Asuka, then the governmental and cultural epicenter of Japan, where he worked to secure diplomatic links with China and to bring that country’s civil codes and centralized bureaucracy to Japan. Credited with the “Constitution in Seventeen Articles,” he exercised leadership of the early government that had a lasting impact on Japan’s history. The constitution stresses the importance of harmonious relationships, devotion to Buddhism, the proper ethical conduct of officials, and loyalty of the people. It was influenced by both Confucian classics and Mahayana Buddhism. Devotion to Shotoku rose steadily after his death: he came to be regarded as a Buddhist saint and became the object of religious devotion.


Horyuji Temple was originally constructed because Shotoku’s ailing father, Emperor Yomei, wished to enshrine a sculpture of the Buddha of medicine and healing, Yakushi Nyorai. The statue was installed in the Main Hall in the hope of aiding the Emperor’s recovery. The emperor did not recover, however, and died after reigning for only two years. Twenty years later, around 607, following the wishes of the late emperor, Shotoku and his aunt, Empress Suiko, (592–628) finished the construction of Horyuji, which thus has a history of some 1400 years. The temple was at the vanguard of the new civilization of the time, and set amid an open rural setting, its splendid buildings must have filled visitors and devotees with wonder. Shotoku’s legacy can be seen in a number of the structures within the complex. One example is the Hall of Dreams (Yumedono), which houses a life-sized Guze Kannon that is thought to be modeled in his image. The Guze Kannon is believed to have the power to save those in the world from suffering.


The original buildings of Horyuji are thought to have been lost to fire in 670, and the current structures then rebuilt with the historical Buddha, Shakyamuni, as the main object of devotion. The temple exemplifies Asuka period architectural style, which was influenced by the styles of Chinese and the Korean architecture at the time.


In 1993, Horyuji became the one of the first sites in Japan to be registered as a World Heritage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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