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okugawa Iemitsu

  • Kyot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Shrines/Temples/Churches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19
Associated Tourism Board:
Ninna-ji

徳川家光


日本は、江戸時代(1603~1867年)に入り、徳川幕府の治世により、群雄割拠の世から、北海道と沖縄を除く全国を統一した政治体制へと変わった。徳川幕府の第3代将軍であった家光(1604~1651年)は、応仁の乱(1467~1477年)の際に焼失した仁和寺の再建を許可し、資金を提供したという点で、仁和寺の歴史において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人物である。


史実によると、家光が1634年に京都を訪れた際、仁和寺の住職であった覚深(1588~1648年)が家光に謁見を願い出て、仁和寺の再建を請願した。覚深は皇室の直系の子孫であり、他の多くの僧侶とは異なる特別な立場にあった。皇室の血を引く仁和寺の僧侶は彼の前にもいたが、彼がいなければ、1640年から1646年にかけて行われることになる再建工事に必要な資金を調達できなかったかもしれないのだから、覚深ほど仁和寺にとって重要な僧侶は他にいない。今日、仁和寺の境内に立っている建物の大半はこの再建時に、家光の支援を受けて建てられたものである。

德川家光


德川家光(1604-1651)是德川家族第3代將軍。昔日日本曾處於群雄割據的分裂狀態,在德川家光的治世之下,日本四大島中三島統一,就此確立政治體制國家。應仁之亂(1467-1477)時仁和寺毀於祝融之災,由於家光批准了日後的重建工程,因而在仁和寺歷史中佔有重要地位。

根據史實,家光於1634年造訪京都時,仁和寺僧侶覺深申請謁見,並請求支援重建仁和寺。不同於一般僧侶,覺深是皇室直系子孫。若非覺深,恐怕亦無人能籌措1640年至1646年間所需的重建資金。目前仁和寺境內大多數建築,皆是透過家光的援助於此次重建時落成。

德川家光


德川家光(1604-1651)是德川家族第3代将军。昔日日本曾处于群雄割据的分裂状态,在德川家光的治世之下,日本四大岛中三岛统一,就此建立政治体制国家。应仁之乱(1467-1477)时仁和寺毁于火灾,由于家光批准了日后的重建工程,因而在仁和寺历史中占有重要地位。

根据史实,家光于1634年造访京都时,仁和寺僧侣觉深申请谒见,并请求支援重建仁和寺。觉深与一般僧侣不同,是皇室直系子孙。若非觉深,恐怕再无他人能筹集到1640年至1646年间所需的重建资金。目前仁和寺境内大多数建筑,皆是在家光的援助下,于此次重建时落成。

도쿠가와 이에미쓰


일본은 에도 시대(1603~1867년)에 들어 도쿠가와 막부의 치세에 따라 군웅할거의 시대로부터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제외한 전국을 통일한 정치체제로 변화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 제3대 쇼군이었던 이에미쓰(1604~1651년)는 오닌의 난(1467~1477년) 때에 소실된 닌나지 절의 재건을 허가하고 자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닌나지 절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이에미쓰가 1634년에 교토를 방문했을 때, 닌나지 절의 주지였던 가쿠진(1588~1648년)이 이에미쓰에게 알현을 요청하고 닌나지 절의 재건을 청원했습니다. 가쿠진은 황실의 직계 자손이며 다른 많은 승려들과 달리 특별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황실의 피를 이은 닌나지 절의 승려는 가쿠진 이전에도 있었지만, 가쿠진이 없었더라면 1640년부터 1646년에 걸쳐 이루어지게 된 재건 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쿠진만큼 닌나지 절에 중요한 승려는 없습니다. 오늘날 닌나지 절 경내에 서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이 재건 시에 이에미쓰의 지원을 받아 지어진 것들입니다.

Tokugawa Iemitsu

Tokugawa Iemitsu (1604–1651) was the third shogun of the Tokugawa family, under whose rule Japan turned from a country of numerous warlords constantly fighting with each other to a unified political body spanning three of Japan’s four main islands. Iemitsu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Ninnaji, helping to fund its reconstruction from ruins that had languished since time of the Onin War (1467–1477).


When Iemitsu visited Kyoto in 1634, the Ninnaji monk Kakushin sought an audience with the shogun to petition him to support the temple’s reconstruction. Kakushin was in a position that few other monks enjoyed, being a direct descendent of the imperial family. Thanks to his contact with Iemitsu, the temple received the necessary permission and resources needed for the reconstruction, which eventually took place between 1640 and 1646. Most of the buildings that remain on the temple grounds today were constructed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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