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he Guest House: A new find that highlights Dazaifu’s abundant hospitality

  • Fukuoka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Shrines/Temples/Churches Public Works & Institutions (Museums, etc.)
Medium/Media of Use:
Pamphlet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19
Associated Tourism Board:
Dazaifu City Japan Heritage Utilization Council

客館-太宰府の豊かなもてなしを強調する新たな発見


7世紀から12世紀の間、太宰府は西日本の首都であり、国際外交の非常に重要な中心地でした。外国の高官や随行人は博多湾に船で入り、大宰府に護送され、その後京都や奈良の都に向かいました。


広大な行政上の複合施設の中心にある宮殿のような官公庁は十分に文書と知られてましたが、考古学者はごく最近になって、来賓客用に使われていた客館を発見しました。


発掘調査によって住居が明らかになり、この時代には最高のホスピタリティーの形である、おもてなしという日本的な概念が広まっていたようです。日本産の漆塗りの器、中国の陶器や韓国風の金属製の器や漆塗りの器など、高品質な食器のかけらも見つかっています。そのような道具を使うことは、来賓が非常に高い尊敬を受けていたことを意味します。


古代太宰府では、その都市の碁盤目状の構成から、五行思想の役割を示唆する南向きの行政の建築物まで、中国の影響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歴史学者は、来賓が客館に催事に訪れていたときに、東側から西に面して座ったであろうことを発見しました。五行思想の原則では、東側は伝統的にホストのために確保されており、来賓はそこでの滞在中に客館を本拠地として扱っていたことがうかがえます。 現在の大使館のような存在です。


太宰府での発掘は数十年にわたって続いており、現在も進行中です。大宰府展示館では、太宰府の豊かな歴史について詳しく知ることができます。


客館:彰顯太宰府熱情好客的新發現


西元7世紀至9世紀,大宰府(今太宰府,12世紀以前的名稱)是日本重要的國際外交中心。外國政要及其隨行人員乘船駛入博多灣後就被護送至大宰府,繼而前往京都或奈良都城。人們對於這座龐大的行政建築群中心處矗立著宮殿式的官署已知甚多,但直到最近,考古學家才發現了供來訪外國政要使用的「客館」遺跡。

考古顯示,當時這裡住宿已能提供日本最高級別的待客之道——「おもてなし」(omotenashi),即盛情款待。此外,在這裡發現了高檔餐具的碎片,包括一個日本產的漆盤、中國陶瓷和一套朝鮮式金屬嵌套碗。從這些餐具中可以看出,當時的外國政要們所受到的無微照顧和至高禮遇。

從古代大宰府的棋盤狀布局到坐北朝南的行政建築上,都看得出中國的影響,包括中國古代哲學中「金木水火土」相生相剋的「五行」的作用。據歷史學家推測,在最近發現的客館內舉行的活動中,外國政要被安排在東面,面對西面的日本接待方。根據「五行」原則,主位在東,這意味了古代大宰府把來訪的外國人視為東道主,客館即是其本國領土的延伸,就如同今天的大使館一樣。

歷史學家們還推測,正式的外交活動應該是在客館往北1公里處的大宰府行政官署內舉行。可惜的是,昔日美麗的官署已不復存在。遊客可以在官署旁的大宰府展示館了解更多大宰府的豐富歷史。

客馆:彰显太宰府热情好客的新发现


公元7世纪至9世纪,大宰府(今太宰府,12世纪以前的名称)是日本重要的国际外交中心。外国政要及其随行人员乘船驶入博多湾后就被护送至大宰府,继而前往京都或奈良都城。在这座庞大的行政建筑群中心,矗立着宫殿式的官署,对此人们已知甚多,但直到最近,考古学家才发现了供来访外国政要使用的“客馆”遗迹。

发掘显示,当时在这处住宿设施内已经提供日本最高级别的待客之道——“おもてなし”(omotenashi),即盛情款待。此外,在这里发现了高档餐具的碎片,包括一个日本产的漆盘、中国陶瓷和一套朝鲜式金属嵌套碗。从使用这些餐具中可以看出,当时的外国政要们所受到的无微照顾和至高礼遇。

从古代大宰府的棋盘状布局到坐北朝南的行政建筑,都能看出中国的影响,包括中国古代哲学中“金木水火土”相生相克的“五行”的作用。据历史学家推测,在最近发现的客馆内举行的活动中,外国政要被安排在东面,面对西面的日本接待方。根据“五行”原则,主位在东,这意味了古代大宰府把来访的外国人视为东道主,客馆即是其本国领土的延伸,就如同今天的大使馆一样。

历史学家们还推测,正式的外交活动应该是在客馆往北1公里处的大宰府行政官署内举行。可惜的是,昔日美丽的官署已不复存在。来访者可以在官署旁的大宰府展示馆了解更多大宰府的丰富历史。

객사(客舍)-다자이후의 풍성한 환대에 주목한 새로운 발견


7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다자이후는 국제 외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지였습니다. 외국 고관을 비롯한 수행원들은 하카타만에 배를 타고 들어오면, 교토나 나라의 도읍으로 이동하기 전에 다자이후로 안내되었습니다. 드넓은 행정복합시설의 중심에 위치한 궁전 같은 모습의 정청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최근에는 고고학자들이 외국의 고관들이 방문했을 때 사용했던 객사를 발견했습니다.


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숙박시설에서 일본식 환대, 즉 최고급 환대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일본산 옻칠 그릇, 중국 도자기, 포개진 상태의 한국 금속 식기를 포함한 고급 식기의 파편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같은 식기들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외국의 고관들은 세심한 배려와 예의를 다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다자이후는 바둑판 모양의 도시 구상에서부터, 중국의 철학 이론의 역할을 시사하는 남향의 관공서 건설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최근에 발견된 객사에서 이루어진 의례에서 외국의 고관들은 동쪽에서, 외국 고관들을 맞이하러 나온 일본의 고관들은 서쪽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중국의 철학 이론에 따르면, 동쪽은 주인을 위해 확보하는 자리로서 외국 사절단은 객사 내에서 주인의 역할에 해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객사는 방문객의 본국 영지와 동일하게 간주되는 오늘날의 대사관과 비슷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역사가들은 공식적인 외교 의례는 객사에서 1km 떨어진 북쪽에 위치한 다자이후 정청 터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옛날 위용을 자랑하던 정청의 모습은 오늘날에는 옛 터로만 남아 있지만, 바로 곁에 자리한 다자이후 전시관에서 다자이후의 풍요로운 역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The Guest House: A new find that highlights Dazaifu’s abundant hospitality


Between the seventh and ninth centuries, Dazaifu was a major center of international diplomacy. Foreign dignitaries and their entourages would sail into Hakata Bay and be escorted to Dazaifu before traveling on to the capitals of Kyoto or Nara. Much is known about the palatial government offices at the heart of the sprawling administrative complex, but archaeologists have only recently discovered the remains of the Guest House used by visiting foreign dignitaries.

Excavations have revealed lodging facilities suggesting that the Japanese concept of omotenashi—the highest form of hospitality—was prevalent at that time. Fragments of high-quality tableware—including a lacquered plate of Japanese origin, Chinese ceramics, and a set of nested Korean-style metal bowls—have also been found. The use of such articles implies that guests were treated with the utmost care and courtesy.

Chinese influences can be seen in the ancient city of Dazaifu, from the grid-like formation of the city to the south-facing administrative buildings hinting at the role of wuxing—a Chinese philosophy based on the interconnection of five phases or five elements. Historians surmise that in ceremonies held inside the recently discovered Guest House, foreign dignitaries were positioned to the east, facing their Japanese counterparts to the west.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wuxing, the east side was reserved for the host, meaning that foreign visitors played the role of host at the Guest House. Thus, the house was considered an extension of the visitors’ home territory—much like diplomatic embassies in today’s world.

Excavations in Dazaifu have been in progress for decades and are ongoing. Discover more about the rich history of Dazaifu at the Dazaifu Exhibitio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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