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Otaru Canal

  • Hokkaid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Cuisine/Food Culture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otarushi nihon isan suishin kyogikai
Associated Address:
Minatomachi, Otaru City , Hokkaido

小樽運河


 歴史ある小樽運河に沿って作られた歩道は美しく舗装され、ガス灯が並んでいます。20世紀初頭、貿易港の需要を満たすために建てられた倉庫には現在、レストランやショップ、博物館が入っています。この風光明媚な小樽の一角は1960年代に遡る地元住民のひたむきな努力によって実現しました。


 この運河は1914年に始まった9年にわたる事業の成果です。事業の目的は、湾に停泊する貨物船と海岸に沿って立ち並ぶ倉庫の間で商品の運搬を容易にすることでした。1960年代に新しい道路を作るために運河を埋め立てる計画が持ち上がると、小樽の文化遺産を保護しようという社会運動が起こりました。


繁栄する辺境の港

 明治時代(1868年-1912年)にこの港町は貿易と、活況のニシン漁、そして多くの移住者が相まって急成長しました。1880年代の終わりには小樽近海のニシンの年間漁獲高は約9万トンに達しました。港は大阪から北陸、東北地方へと北へ向かう沿岸の都市から品物を積んできてその後ニシンから作った肥料を積んで南へと戻っていく商船で港が混雑しました。

政府の土地譲渡と資金援助を提供する制度の下、本州や日本国内のその他の地方から多くの入植者が、小樽を経由していきました。内陸の幌内炭鉱から小樽港まで石炭を運搬するため1880年に北海道初の鉄道が開通し、全国に出荷された石炭が日本の工業化に拍車をかけました。


運河の建設

 20世紀初頭までに、小樽は北日本最大の商港となって港が混雑し、船から岸まで荷物や乗客を運ぶバージ船を停泊させるスペースが不足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これを解決するために1914年から1923年にかけて埋め立て計画が実施され、海岸と平行に埋め立てた人工島との間に幅40メートルの水路が作られました。約1.3キロメートルにおよぶ水路沿いの人工島には新しい倉庫が建てられ、本土とは何本もの橋で結ばれました。水路ができたことで倉庫へのアクセスが良くなり、バージ船を停泊させるスペースにも余裕ができました。これが後に小樽運河として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水路です。


栄枯盛衰

 木造の帆船は次第に巨大な貨物船に換わっていき、1937年に新たな桟橋が完成してバージ船を使わずに蒸気船が着岸して積荷を下せるようになったため、運河の役割は大幅に縮小しました。ほぼ同時期に、この国のエネルギーの主流が石炭から石油に代わり、北海道の主要港としての小樽の地位は歴史の中に消えていきました。そして、運河は使われなくなったバージ船の墓場となりました。


小樽再生のシンボル

 1966年に小樽市が、6車線道路を造って町を近代化するために運河を埋め立てて倉庫群を取り壊すことを提案しました。しかし、1973年に市民団体が運河と歴史的な都市景観を保つための運動を起こしました。こうした市民運動は日本ではまだ珍しく、この取り組みは全国的な注目を集めました。


 1980年代に保存運動団体は小樽市との間に妥協点を見出すに至りました。運河の一部は新しい道路を造るために埋め立てて、他の部分は既存の道路を拡幅するにとどめることになりました。運河沿いには舗装された歩道とガス灯が設置され、倉庫群はレストランやショップ、博物館として利用するために改修されました。小樽運河の北側は昔の面影を色濃く残しており、かつて町の富を築くのに一役買ったバージ船に代わって、レジャーボートが並んでいます。現在は「小樽運河クルーズ」も行っており、ナイトクルーズでは幻想的な夜景を楽しむこともできます。

小樽運河


漫步在歷史悠久的小樽運河沿岸,一條蜿蜒伸展的磚石步道在路旁煤氣燈的照映下格外浪漫。20世紀早期因貿易港口而建的倉庫建築現在以餐廳、商舖和博物館的面貌迎接遊客。如今美麗的街景,應當歸功於當地居民1960年代開始的不斷努力。

為了緩解港口泊船到沿岸倉庫之間的貨物轉運壓力,小樽運河自1914年動工開鑿,耗時9年完成。到了1960年代,一項填河造路的規畫引發了小樽民眾保護當地文化遺產的草根運動。


繁榮的邊境港口

在明治時代(1868-1912),由於貿易蓬勃發展和如日中天的鯡魚產業,再加上大量移民的到來,讓這座港口城市得以迅速成長。到了1880年代末,小樽近海水域的鯡魚年捕獲量達約9萬公噸。港口裡擠滿了來自大阪和日本海各地載滿物資和等待補給的商船,返程南歸時,船上則滿載用鯡魚加工的肥料。為了加速北海道的發展,政府推出了土地交付以及資金援助計畫,吸引了本州和日本其他地區的大量新移民來到小樽,或在小樽上岸後繼續前往北海道其他地方。到了1880年,北海道的第一條鐵路通車,幌內煤礦(今三笠市內)開採的煤炭被運送到小樽港,然後裝船送往全國各地,為日本的工業化提供能源。


修建運河

到20世紀早期,小樽已經是日本北部最大的商業港。當時的港口擁擠不堪,往來於海岸和商船之間接駁乘旅客、貨物的駁船幾乎找不到停靠的地方。為了解決這種情況,人們開始填海造陸。此項工程自1914年開始一直延續到1923年,在海岸邊修築了多個人工島。這些小島和原本的海岸之間形成了一條40公尺寬的水道,人工島鏈綿延1.3公里,由幾座橋樑與主島相連。島上建起了新倉庫,駁船通過這條水道能夠直達倉庫,也有了額外的停靠空間。這條水道就是後來的小樽運河。


興衰變遷

隨著科技不斷進步,大型貨輪逐漸取代了木造帆船。到了1937年,一座全新的蒸汽船碼頭建成,蒸汽船隻可以直接靠岸,不再需要借助駁船裝卸貨物,運河的作用也被大大削弱了。大約在同一時期,日本的主要能源需求也從煤炭轉向石油,小樽作為北海道主要港口的地位漸漸成為了歷史,運河變成了不再使用船舶的廢棄場。


小樽復興的標誌

1966年,當地政府為了推動城市的現代化建設,提議填平運河並拆除沿岸倉庫、興建一條六車道的公路。當地民間團體在1973年發起了守護運河和城市歷史風貌的運動,他們自發清理運河,並提出各種替代方案。當時,這樣的草根保護運動在日本並不常見,小樽居民的努力引起了全國關注。到了1980年代,保護派與政府之間達成協議,決定填平部分運河的河段,以改建成新的道路,其餘河段則收窄,用於拓寬現有道路。同時在運河沿岸修建磚石步道,路旁安裝煤氣燈,舊倉庫則改造為餐廳、商舖和博物館,對外開放。這個決定讓小樽運河北段大致上保留了過去的模樣,只是當年那些幫助城市創造財富的駁船已不見蹤影,現在岸邊整齊停靠著小型漁船和遊船。

小樽运河


小樽运河历史悠久,陪伴它蜿蜒延伸的是一条砖石步道和路旁的煤气灯。20世纪早期为满足贸易港口需求而建的仓库如今已被改造为餐厅、商店和博物馆。如此风情万种的街景,是本地市民自上世纪60年代开始不懈努力的结晶。

小樽运河的建设旨在缓解从港口货船到沿岸仓库的货物转运压力。这项工程自1914年动工,耗时9年完成。20世纪60年代,一项有关填河造路的规划被提上议程,引发了小樽市民保护本地文化遗产的草根运动。


繁荣的边境港口

明治时代(1868-1912),稳步增长的贸易、蓬勃兴旺的鲱鱼产业和大量移民的到来令这座港口城市飞速发展起来。到了19世纪80年代末,小樽近海水域的鲱鱼年捕获量已经达到9万吨左右。港口里挤满了来自大阪和日本海沿岸各地运送物资和补给的商船,当商船返程南归时,船上就会满载用鲱鱼加工的肥料。政府出台土地交付以及资金援助计划,吸引了本州岛和日本其他地区的大量新移民来到小樽,或经由小樽进入北海道其他地区。1880年,北海道的第一条铁路通车,幌内煤矿(今三笠市内)开采的煤炭被运送到小樽港,然后装船送往全国各地,为日本的工业化进程提供动力能源。


修建运河

到20世纪早期时,小樽已经是日本北部最大的商业港。港口拥挤不堪,往来于海岸和商船之间接驳乘客、货物的驳船几乎找不到停靠的地方。为了解决这个难题,人们开始沿着海岸填海,修筑了一系列人工小岛。填海工程从1914年一直持续到1923年,人工岛和原本的海岸之间形成了一条40米宽的水道。人工岛链绵延1.3公里,通过数座桥梁与本岛相连。岛上建起了新的仓库,驳船通过水道能够直达仓库,同时有了充足的停靠空间。这条水道就是后来的小樽运河。


兴衰变迁

随着技术发展,大型货轮逐渐取代了木造帆船。1937年,一个全新的蒸汽船码头建成,船舶可直接靠岸,不再需要借助驳船装卸货物,运河的作用大幅削弱。大约同一时期,国家的主要能源需求也从煤炭转向石油,小樽作为北海道主要港口的地位渐渐成为了历史,运河变成了废弃驳船的墓场。


小樽复兴的标志

1966年,本地政府为了推动城市现代化建设,提议填平运河,拆除沿岸仓库,新建一条六车道公路。然而,本地居民团体在1973年发起了守护运河及城市历史风貌的运动,他们主动清理运河,积极提出各种替代方案。这样的草根保护运动在当时的日本尚不多见,小樽市民的努力引发了全国性的关注。20世纪80年代,保护派与政府之间最终达成协议,决定填平一部分运河河段,建造新的道路,其余河段则收窄,用于拓宽现有道路。运河沿岸修建了砖石步道,装设了煤气路灯,旧仓库也被改造为餐厅、商店和博物馆。小樽运河北段大体保留了原来的面貌,只是当年那些帮助这座城市创造财富的驳船已不见踪影,取而代之的,是岸边停靠整齐的小型渔船和游船。

오타루 운하


 역사적인 오타루 운하를 따라 만들어진 보도는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으며, 가스등이 늘어서 있습니다. 20세기 초 무역항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어진 창고에는 현재 레스토랑과 상점, 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풍광이 아름다운 오타루의 한 구역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지역 주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운하는 1914년에 시작된 9년에 걸친 사업의 성과입니다. 사업의 목적은 만에 정박하는 화물선과 해안을 따라 늘어선 창고 사이에서 상품의 운반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해 운하를 매립하는 계획이 제안되자, 오타루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번영하는 변경의 항구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에 이 항구 도시는 무역과 활황이던 청어잡이, 그리고 많은 이주자가 어우러져 급성장했습니다. 1880년대 말 오타루 근해에서 청어의 연간 어획량은 약 9만 톤에 달했습니다. 항구는 오사카에서 호쿠리쿠, 도호쿠 지방과 북쪽의 연안 도시에서 물품을 실어 온 후 청어로 만든 비료를 싣고 남쪽으로 돌아가는 상선들로 붐볐습니다.

정부가 토지 양도와 자금 원조를 제공하는 제도에 따라 혼슈와 일본 국내의 다른 지방에서 온 많은 정착민이 오타루를 거쳐 갔습니다. 내륙의 호로나이 탄광에서 오타루 항구까지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1880년에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었고, 일본 전역으로 출하된 석탄이 일본의 공업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운하 건설

 20세기 초까지 오타루는 북일본 최대의 상업항이 되어 항구가 혼잡해지자 선박에서 해안까지 화물과 승객을 운반하는 바지선을 정박시킬 공간이 부족해졌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14년부터 1923년까지 매립 계획이 실시되었고, 해안과 평행하게 매립된 인공섬 사이에 폭 40m의 수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약 1.3km에 달하는 수로를 따라 있는 인공섬에는 새로운 창고가 지어졌으며, 본토와는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되었습니다. 수로가 생기면서 창고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었고, 바지선을 정박시킬 공간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오타루 운하로 알려지게 된 수로입니다.


영고성쇠

 목조 범선은 점차 거대한 화물선으로 바뀌었고, 1937년에 새로운 부두가 완공되어 바지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증기선이 착안하여 짐을 내릴 수 있게 되어 운하의 역할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의 에너지 주류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었고, 홋카이도의 주요 항구로서 오타루의 지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운하는 사용되지 않게 된 바지선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오타루 재생의 상징

 1966년에 오타루시가 6차선 도로를 만들어 도시를 근대화하기 위해 운하를 매립하고 창고군을 철거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1973년에 시민 단체가 운하와 역사적인 도시 경관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시민 운동은 당시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것이었으며, 이 노력은 일본 전역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에 보존 운동 단체는 오타루시와 타협점을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운하의 일부는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해 매립하고, 다른 부분은 기존의 도로 폭을 확장하는 데 그치게 되었습니다. 운하를 따라서는 포장된 보도와 가스등이 설치되었고, 창고군은 레스토랑과 상점, 박물관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수되었습니다. 오타루 운하의 북쪽은 옛 모습을 짙게 간직하고 있으며, 과거 도시의 부를 쌓는 데 일조했던 바지선을 대신해 유람선이 늘어서 있습니다. 현재는 ‘오타루 운하 크루즈’도 운영하고 있으며, 나이트 크루즈에서는 환상적인 야경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Otaru Canal


A paved walkway and gas lamps line the historic Otaru Canal. Warehouses that were built to serve the trading port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now house restaurants, stores, and museums. This scenic corner of the city was made possible through dedicated local efforts going back to the 1960s.


The canal is the result of a nine-year project started in 1914 to ease the transfer of goods between the cargo ships anchored in the bay and the warehouses along the shore. Plans to fill in the canal to make new roads in the 1960s led to a grassroots effort to preserve Otaru’s cultural heritage. 


A thriving frontier port

During the Meiji era (1868–1912), the port city grew rapidly through trade, the booming herring industry, and migration. The annual herring catch in the waters around Otaru had reached around 90,000 tons by the late 1880s. The port was crowded with merchant ships bringing goods and provisions from Osaka and along the coast of the Sea of Japan, then returning south laden with fertilizer made from herring. Many settlers from Honshu and other parts of the country passed through Otaru under a government scheme that offered land grants and financial assistance. Hokkaido’s first train line opened in 1880 to transport coal from the inland Horonai Coal Mine to Otaru’s port area to be shipped across the country to fuel Japan’s industrialization.


Building the canal

By the early twentieth century, Otaru was the largest commercial port in northern Japan. The port had become congested and was running out of mooring space for the barges that transferred goods and passengers from ship to shore. The solution was to reclaim a string of narrow islands running parallel to the shore. That reclamation project ran from 1914 to 1923 and created a 40-meter-wide waterway between the islands and the shore. New warehouses were built on the islands, which stretched about 1.3 kilometers and were connected to the mainland by a series of bridges. The waterway provided warehouse access and additional mooring space for the barges. It later became known as the Otaru Canal.


Changing fortunes

Large cargo ships gradually replaced wooden sailing ships, and in 1937, a new wharf allowed steamships to dock and unload without using barges, greatly diminishing the role of the canal. Around the same time, the main source for the nation’s energy needs shifted from coal to oil, and Otaru’s position as a key port for Hokkaido faded into history. The canal became a graveyard for disused barges.


Symbol of Otaru renewal

In 1966, the local government proposed reclaiming the canal and demolishing the warehouses to build a three-lane road and modernize the city. However, a group of residents organized a movement in 1973 to save the canal and the historic townscape. Grassroots preservation movements were unusual in Japan, and the residents’ efforts to clean the canal and campaign for alternative solutions gained national attention. In the 1980s, the campaigners reached a compromise with the government. Part of the canal was reclaimed to make a new road, and other sections were reduced to widen an existing road. A paved walkway and gas lamps were installed along the canal and the warehouses were restored to serve as restaurants, stores, and museums. The north side of Otaru Canal remains much as it was, lined with small fishing vessels and cruise boats in place of the barges that once helped build the city’s fortunes.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