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akasago History Tour 1

  • Hyog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751+ Words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takasagoshi kankoshisetsu tagengokakyogikai

高砂歴史ツアー1


 風光明媚な高砂地域の海岸は、平安時代(794-1185)以前から人びとに知られる人気の場所でした。


 1600年、大名の池田輝政(1565-1613)に播磨国姫路藩(現在の兵庫県南西部)の領地が与えられました。姫路藩は、当時の重要品目であり通貨価値のあった米を毎年52万石(7.8トン)生産していたことから、裕福であると考えられていました。藩主の輝政は姫路城やそのほかの場所の建設を命じ、姫路の町を発展させました。高砂地域では、港の開発や加古川を町の中に引き入れる堀川運河の建設などで、高砂地域の発展に主導的な役割を果たしました。


 江戸時代(1603-1867)、高砂地域は姫路藩で最も重要な町のひとつでした。立地や、活発な漁業、米生産などの条件揃っていたため、加古川を通じて運ばれる物資の流通拠点として栄えたのです。


百間蔵

 1605年、高砂に2棟の蔵が建てられ、全長約100間(間は昔の長さの単位で今の182メートル相当)であることから、「百間蔵」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加古川を下る物資はすべて高砂地域に運ばれ、蔵は姫路藩の財産や播磨地方の北部と東部から徴収した年貢米を保管する場所となりました。当初から500万キロ近くの米を貯蔵できましたが、江戸時代末期には容量が約600万キロまで拡張されました。


 その歴史を刻んだ石碑が今、蔵の跡地に建っています。


川口御番所跡

 1605年頃、輝政は高砂港の入口に川口御番所を建てるよう命じました。この番所は姫路藩の直轄で、高砂港に入港する貨物船や海上交通の監視のため、役人が配置されました。役人2名と常勤警備員5名が昼夜交代で勤務しました。


 池田家の家紋入りの瓦が目印です。


高砂や

 池田輝政は手工芸品の生産を奨励しました。輝政の庇護を受けて、地元の職人であった尾崎庄兵衛は、絹の着物を装飾するための二重型染め技法を考案しました。この技法は、高砂神社の「相生の松」や、その2本の松の精霊で、夫婦円満と長寿を象徴する老夫婦の伝説「尉と姥」を文様化するのに用いられました。江戸時代、この染色技法は「高砂染」と呼ばれて珍重され、完成した染め物は将軍に献上されました。


 明治時代(1868-1912)になると、絹よりも木綿が使わ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の後、大正時代(1912-1926)頃になると、コストや手間を削減できる染色方法が導入され、高砂染は衰退しました。その後、昭和時代(1926-1989)に入り高砂染はほぼ廃れてしまいました。


 しかし21世紀に入ると、高砂染を復活させるためのワークショップなどが始まり、再び高砂染が注目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鍛冶屋町の尾崎家住宅(高砂や)前には、高砂染発祥の地であることを示す看板が立っています。


延命寺の織部灯籠

 大名で茶人でもあった古田織部(1544-1615)が考案した織部灯籠。花崗岩で作られ、上部は十字に、下部の脚が大きく離れています。江戸時代、織部灯籠は茶室の庭に置かれました。


 灯籠は奉納用、照明用、観賞用など、用途はさまざまであったと考えられます。十字架をモチーフにしていることからキリスト教が厳禁とされていた当時では、江戸時代のキリスト教徒が密かに礼拝に使っ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キリシタン(キリスト教徒の)灯籠とも呼ばれています。


川地蔵

 川地蔵坐像は、航海安全の神である焼火大権現を表しています。島根県の隠岐諸島に伝わるもので、船主の海上安全を祈願して設置されたといわれています。


 2015年には歴史的価値のある地域財産として、高砂市ふるさと文化財に登録され、2020年には現在の場所に移動し地蔵を納めるための建物が建てられました。現在も地元住民が供養や祈りを捧げています。

高砂歷史之旅—1


早在平安時代(794-1185)之前,風光明媚的高砂海岸就十分受歡迎。

1600年,大名池田輝政(1565-1613;大名即大領主)受命出任播磨國姬路藩(今兵庫縣的西南部;「國」是日本古代行政區劃,有別於「國家」)藩主。當時姬路藩境內年產大米可達52萬石(約合7800萬公斤;石,音同「旦」),而大米正是彼時的重要物資和通貨,因此這裡一直被視為富庶之地。池田輝政在高砂的發展歷程中扮演著領導者角色,他下令修建姬路城以及當時正在不斷發展的姬路町,還主持完成了港口和將加古川河水引入高砂的堀川運河(堀,音同「窟」)等一系列的修建工程。

由於優越的地理位置、發達的漁業及大米種植業,高砂成為了加古川水運的貨物集散中心,不斷繁榮昌盛。在江戶時代(1603-1867),這裡是姬路藩最重要的城市之一。


百間藏倉庫

1605年,高砂建造了兩間倉庫,總長約100間(日本古代長度單位,100間約合182公尺),於是有了「百間藏」的名字。所有沿加古川而下的物資都會被送到高砂,這兩座倉庫便成為了姬路藩名下物資,以及播磨國北部和東部地區每年上繳貢米的存放地。倉庫原本可囤積近500萬公斤大米,到了江戶時代末期,容量已被擴大到600萬公斤左右。

現在,倉庫遺址上立著一塊石碑,上面記錄著以上訊息。


川口番所舊址

1605年前後,池田輝政下令在高砂港的入口處修建川口御番所(警備所)。這座番所直屬姬路藩管理,有2名番所官員以及5名專職守衛日夜輪班執勤,除了監察進入高砂的貨輪,也監控海上交通。

一塊印有池田家家紋的瓦片標記著這處舊址所在地。


高砂屋

在池田輝政鼓勵手工業生產的相應措施支持下,當地工匠尾崎莊兵衛發明了用於絲綢和服染色的雙模套版染印技術,人們用這種方法繪製出高砂神社裡的「相生之松」(雙生松),以及「尉」與「姥」老夫婦的傳說故事。尉和姥是代表偕老長壽的雙生松樹之靈。這種染色技術在江戶時代尤顯珍貴,被稱為「高砂染」,獻給幕府將軍的貢品裡就有使用高砂染製作的織物。

棉布在明治時代(1868-1912)逐漸替代了絲織品,到了大正時代(1912-1926),資金和人力成本更低的染色技術被引入。在雙重衝擊下,高砂染漸漸衰落,昭和時代(1926-1989)初期時已幾乎被淘汰。

為復興高砂染而舉辦的各類體驗活動在21世紀興起,這項技藝再次受到關注。位於鍛冶屋町的尾崎家住宅(即高砂屋)的一塊看板,標明了這裡是高砂染的誕生地。


延命寺的織部燈籠

織部燈籠的設計者是大名兼茶道大師古田織部(1544-1615)。江戶時代,織部燈籠通常都被放在茶室的庭園裡。這些燈籠以花崗岩製成,上半部做成類似十字的形狀,底部燈腿直接插入地裡。

燈籠用途包括供奉、照明、觀賞,多種多樣。也許是因為上方的十字形狀,有些人認為,織部燈籠有可能是江戶時代吉利支丹(16世紀至明治時代的日本基督教徒)秘密禮拜的對象,因為當時的日本嚴禁基督教。織部燈籠也因此有了另一個名字「吉利支丹燈籠」。


川地藏

這尊川地藏坐像代表了守護航海安全的神明「燒火大權現」。據說,它原本被供奉在島根縣的隱岐群島,後來,高砂居民為了保庇船東的海上航行安全,才把它遷到此處。

2015年,川地藏像被登錄為高砂市故鄉文化財產。到了2020年,人們為它修建了一座祠堂。直到今天,許多當地居民依然會前來供奉神明,祈禱平安。

高砂历史之旅—1


早在平安时代(794-1185)以前,风光明媚的高砂海岸就是很受欢迎的风景名胜。

1600年,大名池田辉政(1565-1613;大名即大领主)受命出任播磨国姬路藩(今兵库县的西南部;“国”是日本古代行政区划,有别于“国家”)藩主。姬路藩向来被视为富庶之地,境内年产大米可达52万石(约合7800万公斤;石,音同“旦”),而大米正是当时社会的重要物资和通货。在高砂的发展历程中,池田辉政扮演着引领者的角色,他下令修建了姬路城以及当时正在不断发展的姬路町,还主持完成了港口和将加古川河水引入高砂的堀川运河(堀,音同“窟”)等工程。

江户时代(1603-1867),高砂是姬路藩最重要的城市之一。得益于优越的地理位置、发达的渔业及大米种植业,高砂成为了加古川水运的货物集散中心,日益繁荣昌盛。


百间藏仓库

高砂在1605年建造了两间仓库,它们总长约100间(日本古代长度单位,100间约合182米),“百间藏”的名字正是由此而来。所有沿加古川而下的物资都会被送到高砂,这两处仓库便成为了姬路藩名下物资以及播磨国北部、东部地区每年上缴贡米的存放地。仓库原本可囤积近500万公斤大米,到了江户时代末期,它们的容量已被扩大到了600万公斤左右。

如今,仓库遗址上立着一块石碑,上面记录着上述信息。


川口御番所旧址

大约在公元1605年前后,池田辉政下令在高砂港的入口处修建川口御番所(警备所)。这处番所直属姬路藩管理,驻守2名番所官员和5名专职守卫,日夜轮班执勤,负责监察进入高砂的货船、监控海上交通状况。

一块印有池田家族家纹的瓦片标记着这处旧址的所在地。


高砂屋

池田辉政推行了一系列鼓励手工业生产的措施。在这样的背景下,本地工匠尾崎庄兵卫发明了用于丝绸和服染色的双模套版染印技术。人们用这种方法绘制出了高砂神社里的“相生之松”(双生松),以及“尉”与“姥”这对老夫妇的传说故事。尉和姥是双生松树之灵,代表着永寿偕老。这种染色技术后来被称为“高砂染”,在江户时代尤其珍贵,使用高砂染制作的织物也曾被用作献给幕府将军的贡品。

明治时代(1868-1912),棉布替代丝织品得到广泛应用。大正时代(1912-1926),资金和人力成本更低的染色技术被引入。双重冲击下,高砂染渐渐衰落。到了昭和时代(1926-1989)初期,这项技艺已几近淘汰。

进入21世纪后,以复兴高砂染为目的的各类体验活动兴起,这项技艺再次受到关注。位于锻冶屋町的尾崎家住宅(即高砂屋)前有一块看板,标明了这里是高砂染的诞生地。


延命寺织部灯笼

大名兼茶道大师古田织部(1544-1615)是织部灯笼的设计者。这些灯笼采用花岗岩制成,上半部做成类似十字的形状,底部灯腿直接插入地里。江户时代,织部灯笼通常都放置在茶室的庭园中。

这些灯笼可用于供奉、照明、观赏等,用途多样。或许是因为上部的十字形状,人们认为,织部灯笼有可能是江户时代吉利支丹(16世纪至明治时代的日本基督教徒)秘密礼拜的对象——当时日本严禁基督教。因此,织部灯笼也被称为“吉利支丹灯笼”。


川地藏

这尊川地藏坐像代表了守护航海安全的神明“烧火大权现”。相传,它原本被供奉在岛根县的隐岐群岛,后来高砂居民为了护佑商船主海上航行安全,才把该像迁来此处。

2015年,川地藏像被登录为高砂市故乡文化财产。2020年,人们为它修建了一座祠堂。如今,本地居民依然会前来供奉、祈祷。

다카사고 역사 투어1


 경치가 아름다운 다카사고 지역의 해안은 헤이안 시대(794~1185) 이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기 있는 장소였습니다.


 1600년에 다이묘 이케다 데루마사(1565~1613)는 하리마국 히메지번(현재의 효고현 남서부)의 영지를 하사받았습니다. 히메지번은 당시 중요 품목이자 통화 가치가 있던 쌀을 매년 52만 석(7.8톤)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유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번주인 데루마사는 히메지 성과 다른 곳들의 건설을 명령해 히메지 지역을 발전시켰습니다. 다카사고 지역에서는 항구의 개발과 가코가와 강을 마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호리카와 운하의 건설 등으로 다카사고 지역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에도 시대(1603~1867)에 다카사고 지역은 히메지번에서 가장 중요한 마을 중 하나였습니다. 입지와 더불어 활발한 어업, 쌀 생산 등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코가와 강을 통해 운반되는 물자의 유통 거점으로 번창한 것입니다.


햣켄구라 창고

 1605년 다카사고에 2채의 창고가 지어졌으며, 전체 길이가 약 100간(間, 길이의 옛 단위로 지금의 182m 정도)이었기 때문에 ‘햣켄구라 창고(百間蔵)’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가코가와 강을 내려오는 물자는 모두 다카사고 지역으로 운반되었으며, 창고는 히메지번의 재산과 하리마 지방 북부, 동부에서 징수한 연공미를 보관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부터 500만 킬로그램에 가까운 쌀을 저장할 수 있었지만, 에도 시대 말기에는 용량이 약 600만 킬로그램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 역사를 새긴 비석이 현재 창고 터에 세워져 있습니다.


가와구치 번소 터

 1605년경, 데루마사는 다카사고 항구 입구에 가와구치 번소를 짓도록 명했습니다. 이 번소는 히메지번의 직할기관으로 다카사고 항구에 입항하는 화물선과 해상 교통의 감시를 위해 관리가 배치되었습니다. 관리 2명과 상근 경비원 5명이 주야 교대로 근무했습니다.


 이케다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기와가 표식입니다.


다카사고야

 이케다 데루마사는 수공예품의 생산을 장려했습니다. 데루마사의 비호를 받아 지역 장인이었던 오자키 쇼베이는 비단 기모노를 장식하기 위한 이중염색기법을 고안했습니다. 이 기법은 다카사고 신사의 ‘상생의 소나무’와 두 그루의 소나무의 정령으로, 부부 원만과 장수를 상징하는 노부부 전설의 ‘조와 우바’를 문양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에 이 염색 기법은 ‘다카사고 염직’이라 불리며 귀하게 여겨졌고 완성된 염직물은 쇼군에게 진상되었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는 비단보다 무명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다이쇼 시대(1912~1926) 무렵에는 비용과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는 염색 방법이 도입되어 다카사고 염직은 쇠퇴했습니다. 그 후 쇼와 시대(1926~1989)에 접어들면서 다카사고 염직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카사고 염직을 부활시키기 위한 워크숍 등이 시작되며 다시 다카사고 염직은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가지야마치의 오자키 가문 주택(다카사고야) 앞에는 다카사고 염직의 발상지임을 나타내는 간판이 서 있습니다.


엔메이지 절의 오리베 등롱

 오리베 등롱은 다이묘이자 다인(茶人)이기도 했던 후루타 오리베(1544~1615)가 고안한 것입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윗부분은 십자 모양이며 아랫부분의 다리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에도 시대에 오리베 등롱은 다실의 정원에 놓여있었습니다.


 등롱은 봉납용, 조명용, 관상용 등 용도가 다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십자가를 모티브로 하고 있어 기독교가 엄격히 금지되었던 당시에는 에도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비밀리에 예배드리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키리시탄(기독교인의) 등롱이라고도 불립니다.


가와지조

 가와지조(川地藏) 좌상은 항해 안전의 신인 다쿠히 다이곤겐을 상징합니다. 시마네현의 오키 제도에 전해지는 것으로 선주의 해상 안전을 기원하며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역 재산으로 다카사고시 후루사토 문화재로 등재되었으며, 2020년에는 현재 위치로 옮겨졌고 지장보살을 모시기 위한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현재도 현지 주민들이 공양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Takasago History Tour 1


Takasago’s scenic coastal setting has been a popular attraction since before the Heian period (794–1185).


In 1600, daimyo Ikeda Terumasa (1565–1613) was granted rule over the Himeji domain within Harima province (part of present-day Hyogo Prefecture). The domain was considered wealthy since it was producing 520,000 koku (78 million kilograms) of rice, an important commodity and currency of the time, every year. Ikeda ordered the construction of Himeji Castle and other parts of the growing town of Himeji. He played a leading role in Takasago’s development, including building the port and the Horikawa canal, which drew the Kakogawa River into Takasago.


During the Edo period (1603–1867), Takasago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cities of the domain. This was due to its location, thriving fishing industry, and rice production, all of which made it prosper as a distribution center for commodities transported via the Kakogawa River.


Hyakkengura Warehouses

In 1605, two warehouses (kura) were built in Takasago. Their total length of about hyaku (100) ken (a historic unit of length equivalent to 182 meters) resulted in their name: hyakkengura. All the goods that went down the Kakogawa River were brought to Takasago, and the warehouses became the site where goods belonging to the Himeji domain and the annual tax of rice collected from the northern and eastern parts of the Harima province were stored. At first, the warehouses could hold nearly five million kilograms of rice, but by the end of the Edo period, they had been expanded to hold approximately six million kilograms.


Today, a stone monument inscribed with this information stands at the site of the former warehouses.


Site of the Kawaguchi Guardhouse

Around 1605, Ikeda ordered the Kawaguchi Guardhouse built at the entrance of Takasago Port. The guardhouse was under the direct control of the Himeji domain, with officials stationed there to observe cargo ships entering Takasago and to monitor marine traffic. Two clan officials and five regular guards worked in shifts day and night.


A tile with the Ikeda family crest marks the site.


Takasagoya

Ikeda encouraged the production of handicrafts. Working in these supportive conditions, local craftsman Ozaki Shobei invented a double-stencil technique for use in dyeing silk kimono. The method was used to make patterns depicting the “Aioi no Matsu” (twin pines) of Takasago Jinja Shrine and the legend of the old couple, Jo and Uba, who are the spirits of the two pines and who represent marital happiness and longevity. The dyeing technique became known as Takasago-zome (Takasago dyeing); it was highly esteemed during the Edo period. Items made using this dyeing technique were presented as gifts to the shogun.


In the Meiji era (1868–1912), cotton came to be more commonly used than silk. Then, around the Taisho era (1912–1926), dyeing methods that reduced costs and labor were introduced; these both resulted in the decline of Takasago-zome. By the beginning of the Showa era (1926–1989), the craft had been nearly abandoned.


In the twenty-first century, workshops and other activities to revive Takasago-zome were initiated, and the craft began to be celebrated once again. A sign in front of the Ozaki family residence (Takasagoya) in Kajiya-cho marks the site as the birthplace of Takasago-zome.


Enmeiji Oribe Lantern

Oribe lanterns were designed by Furuta Oribe (1544–1615), a daimyo and tea master. They were made of granite, with the upper part made to look like a cross and the bottom part with legs that are wide apart. Oribe lanterns were placed in tea gardens during the Edo period.


These lanterns may have been used for votive reasons, for lighting, or for viewing. Perhaps because of the cross motif, it is believed that Oribe lanterns may have been secretly used for worship by Edo-period Christians, as Christianity was strictly prohibited at that time. Oribe lanterns are therefore also known as kirishitan (Christian) lanterns.


Kawajizo

The statue of the seated kawajizo (guardian) represents Takuhi Daigongen, the deity of safe navigation. The kawajizo is said to be a figure of the Oki Islands in Shimane Prefecture, and was installed to ensure the safety of shipowners at sea.


In 2015, the kawajizo was registered as a Takasago City Hometown Cultural Asset, and in 2020, a hall was built to house it in its current location. Local residents continue to make offerings and pray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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