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다이쇼인 절: 불상 십일면관음보살상

  • 히로시마
장르:
신사·사원·교회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19
지역 협의회명:
Hatsukaichi City

Daishoin: Statue of the Juichimen Kannon Bodhisattva


The Kannondo Hall was built to house the statue of Juichimen Kannon, the eleven-headed bodhisattva of compassion who is one of the temple’s main deities. Kannon (Sanskrit: Avalokitesvara) is depicted in many forms throughout East Asia; the eleven-headed manifestation often carries prayer beads and lotus flowers, and offers protection from sickness, fires, and other misfortune. The standing Juichimen Kannon of Daishoin is almost 2 meters tall and stands against an elaborate golden halo in the shape of a leaf. The figure’s peaceful facial expression contrasts with its imposing size and the poise and authority of its bearing.


The provenance of the statue is not entirely clear, but it has traditionally been attributed to Gyoki (668–749), a renowned Buddhist priest of the Nara period (710–794). Juichimen Kannon was the primary Buddhist deity of Itsukushima Shrine for centuries, and the Daishoin statue, or one like it, appears in several Heian-period (794–1185) records concerning the shrine. Foremost among these is the message addressed to Itsukushima Shrine in 1164 by Taira no Kiyomori (1118–1181), patron of the shrine and the most powerful man in Japan at the time, in which he professes his deep faith in the Kannon of Itsukushima. Kiyomori’s message accompanied the Heike Nokyo, a set of opulent sutra scrolls donated to Itsukushima Shrine both as a pious offering and as a symbol of the power of Kiyomori’s Taira clan. The Heike Nokyo contains the entire Lotus Sutra, in which Kannon plays a central role.


The Juichimen Kannon statue was kept at Itsukushima Shrine until 1868, when the government ordered the separation of Shinto and Buddhism and ended the tradition of syncretism that had dominated religious thought and practice in Japan for more than a thousand years. A result of the 1868 order was that all Buddhist imagery was removed from Shinto shrines, leaving the statue without a home. It was moved to Daishoin, where it has been revered ever since. The statue is designated an Important Cultural Property.


大聖院:仏像 十一面観音菩薩像


大聖院の本尊の一つである十一面観音菩薩像(頭の上に11の顔がある観音像)は、観音堂に安置されています。観音は東アジア全域でさまざまな姿に描かれてきました。十一面観音は、数珠と蓮の花を手に持っていることが多く、病気、火災、その他の不幸から衆生を救済すると言われています。大聖院の十一面観音立像はほぼ2mの高さがあり、葉の形をした精巧な金の後光を背負って立っています。この像の穏やかな表情は、その堂々たる大きさや、醸し出しされる落ち着きと威厳とは対照的です。


この像の歴史は完全には明らかになっていませんが、奈良時代(710~794)の有名な仏僧である行基(668~749)が制作したと知られています。何世紀もの間、十一面観音は厳島神社にあり、平安時代(794~1185)の記録のうち厳島神社に関連する部分に、大聖院のこの像またはそれに似たものが何度か出てきます。この中で最初に登場するのは、1164年に武将の平清盛(1118~1181)が厳島神社へ宛てた願文です。平清盛は厳島神社の後援者で、当時日本で一番強大な権力を有していた人物でした。この願文の中で、清盛は厳島神社の観音への深い信仰を告白しています。また、清盛の願文には平家納経(平家の繁栄を祈願した装飾付きの経典)が添えられていました。いくつかの巻物で構成され、華やかで豪華な装飾が施された平家納経は、平一族の権力を象徴する宝物として厳島神社へ奉納されました。平家納経には観音が中心的役割を果たす法華経の全文が含まれています。


十一面観音像は、1868年まで厳島神社に安置されていました。しかし1868年、政府がそれまで融合していた神道と仏教の分離を命じたため、すべての仏像は神道の神社から運び出されることとなり、居場所を失ったこの像は、大聖院へと移設されて現在にいたります。この十一面観音像は広島県の重要文化財に指定されています。

大聖院:十一面觀音菩薩像


這座十一面觀音菩薩像是大聖院的本尊之一,觀音堂專為供奉它而建。在東亞地區,觀音菩薩有許多化身,祂通常持念珠和蓮花,保護人們免於疾疫、火災等不幸。大聖院的這尊十一面觀音菩薩立像高近2公尺,身後有一面精美的葉狀金色背光。觀音面容平和安然,與其龐大的形體和莊嚴的氣質形成了強烈對比。

這尊菩薩像的來歷並不明確,但通常被認為是奈良時代(710-794)的著名佛僧行基(668-749)所造。幾百年間,十一面觀音一直是嚴島神社供奉的本尊。在平安時代(794-1185)有關嚴島神社的紀錄裡,曾多次出現大聖院的這尊雕像(或是某一尊很相似的雕像)。其中,最重要的一條紀錄是平清盛(1118-1181)在1164年寫給嚴島神社的書信。平清盛是這座神社的庇護者,也是當時日本最有權勢的人。他在信中表達了對嚴島神社觀音的虔誠信仰,並隨信附上了一套捐贈給嚴島神社的「平家納經」。這套華麗的經卷既是虔誠的供奉,也是平家權勢的象徵。「平家納經」中有一部完整的《妙法蓮華經》,其核心角色正是觀音菩薩。

這尊十一面觀音菩薩像,原本一直被供奉於嚴島神社中。1868年,政府下令拆分神道教與佛教,結束了主導日本1000多年的宗教融合的傳統。隨著《神佛判然令》的頒布,神道教神社中的所有佛像都被移除,這尊觀音菩薩像也失去了安身之所,這才被移入大聖院供奉至今。觀音像現已被指定為廣島縣文化財產。

大圣院:十一面观音菩萨像


这座十一面观音菩萨像是大圣院的本尊之一,观音堂便是专为供奉它而建。在东亚地区,观音菩萨有许多化身相,通常持念珠和莲花,保护人们免于疾疫、火灾等多种不幸的困扰。大圣院的这尊十一面观音菩萨立像高近2米,身后有一面精美的叶状金色背光。观音面容平和安然,与其高大的形体和威严的姿态形成了鲜明对比。

这尊观音像的来历并不明确,但通常认为是奈良时代(710-794)的著名佛僧行基(668-749)所造。几百年间,十一面观音一直是严岛神社供奉的本尊。大圣院的这尊雕像(或是某一尊很相似的雕像)曾多次出现在平安时代(794-1185)有关神社的记录里。其中,最重要的一条记录是平清盛(1118-1181)在1164年写给严岛神社的书信。平清盛是这座神社的庇护者,也是当时日本最有权势的人。他在信中表达了对严岛神社观音的虔诚信仰,并随信附上了一套捐赠给严岛神社的“平家纳经”。这套华丽的经卷既是虔诚的供奉,也是平家权势的象征。“平家纳经”中有一部完整的《妙法莲华经》,其核心角色正是观音菩萨。

这尊十一面观音菩萨像原本一直供奉于严岛神社中。1868年,政府下令拆分神道教与佛教,结束了主导日本1000多年的宗教融合思想与实践。随着《神佛判然令》的颁布,神道教神社中的所有佛像都被移除,这尊观音菩萨像也失去了安身之所,这才被移至大圣院供奉至今。观音像现已被指定为广岛县文化财产。

다이쇼인 절: 불상 십일면관음보살상


다이쇼인 절의 본존 중 하나인 십일면관음보살상(머리 위에 11개의 얼굴이 새겨진 관음상)은 관음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관음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십일면관음은 염주와 연꽃을 손에 들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질병과 화재 등 여러 불행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이쇼인 절의 십일면관음입상은 높이가 약 2m에 이르며, 나뭇잎 모양의 정교한 금빛 후광을 등에 진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십일면관음상보살상의 온화한 표정은 크기에서 느껴지는 당당한 모습은 물론, 불상이 자아내는 차분함, 위엄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불상에 관한 역사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예로부터 나라 시대(710~794)의 유명한 승려인 교키(668~749)가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십일면관음은 수 세기에 걸쳐 이쓰쿠시마 신사에 있었는데, 헤이안 시대(794~1185)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쓰쿠시마 신사에 관한 부분에서 다이쇼인 절의 십일면관음상이나 이와 비슷한 불상에 관한 언급이 수차례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던 문헌이 1164년, 당시 무사였던 다이라노 기요모리(1118~1181)가 이쓰쿠시마 신사로 보낸 발원문입니다.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이쓰쿠시마 신사의 후원자로서 당시 일본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기요모리는 발원문을 통해 이쓰쿠시마 신사의 관음에 대한 깊은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발원문에는 헤이케 납경(다이라 가문의 번영을 기원한 화려한 장식의 경전)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개의 두루마리로 구성되어 현란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된 헤이케 납경은 다이라 일족의 권력을 상징하는 보물로서 이쓰쿠시마 신사에 봉납되었습니다. 헤이케 납경에는 관음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법화경(法華經)의 전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일면관음상은 1868년까지 이쓰쿠시마 신사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868년, 정부가 그동안 융합한 형태로 지속되어 온 신도(神道)와 불교의 분리를 명하면서 모든 불상은 신도의 신사에서 옮겨지게 되었고, 갈 곳을 잃은 불상들은 다이쇼인 절로 옮겨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십일면관음상은 히로시마 현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재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