標題 歷史的迴響:十日町考古

  • 新潟
類別:
史蹟、城蹟
媒體用途種類:
網頁
字數:
251-500
編寫年度:
2023
地區協議會名稱:
tokamachishi bunka kanko suishin kyogikai

Echoes of the Past: Archaeology in Tokamachi


The Shinano River Basin, an area that includes modern-day Tokamachi, was settled around 10,000 years ago. Archaeological digs have uncovered earthenware and stoneware pottery from Japan’s Jomon period (14,000–400 BCE), attesting to the presence of settlements and providing clues to the life and culture of snow country’s earliest inhabitants.


The Jomon period is defined by the invention of pottery, often simple clay forms shaped by hand and fired over an open flame. The name jomon (“rope pattern”) refers to the designs made by pressing twine into the sides of these early vessels. Along with the bow and arrow, the invention of pottery drastically changed the human diet, allowing the Jomon people to prepare a wider variety of foods. Fire-safe bowls, for example, enabled them to boil wild plants that were poisonous or unpleasant when eaten raw.


What is known about the Jomon peoples’ diet is largely based on the pottery they left behind. In Japan’s acidic soil, biological remains such as bone have long since dissolved. However, the carbonized remnants of long-ago meals still cling to cooking vessels, providing concrete evidence of what was once prepared in them.


As their diet improved, the Jomon population grew. During the middle period, some 5,500 to 4,500 years ago, the population of the Shinano River Basin area reached as many as 200,000. This was also the time when “flame-style” pottery (kaengata doki) is believed to have appeared.


Flame-style pottery is unique to Niigata Prefecture, and the vessels are thought to have had a religious or ceremonial use. Although some flame-style pieces exhibit burnt food residue like simple, everyday cooking vessels, the flame-style design would have made them fragile and unwieldy for regular meal preparation. Many have impractically high sides and widely flared mouths with projecting ornamentations. Their designs vary widely, but several motifs (such as swirling vortexes or S-shaped patterns) appear frequently. One image even resembles a chicken, though the birds had not yet arrived in Japan. While the vessels’ use and the meaning of their designs remain a mystery, the wealth of items pulled from Tokamachi’s soil are evidence of a flourishing and complex ancient culture.


Nearly a thousand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area are in the Tokamachi City Museum’s collection, including clay figurines, stone tools, jewelry, and the earliest examples of flame-style pottery discovered to date. Fifty-seven of these striking pieces have been collectively declared a National Treasure.

古代の記憶:十日町の考古学


 信濃川流域は、現在の十日町市を含む地域であり、約1万年前に人々の定住化が始まりました。発掘調査の結果、日本の縄文時代(紀元前14,000年~400年)の土器や石器が発見され、人間の居住地であったことが証明されるとともに、雪国最古の住民の生活と文化を知る手がかりとなっています。


 縄文時代は土器の発明によって定義されますが、多くの場合、手作業で形を整え、直火で焼いた土器です。実際、縄文(縄の模様)という名称は、これらの土器の側面に麻縄を押しつけて刻んだ模様のことを指しています。弓矢とともに、土器の発明は人間の食生活を劇的に変化させ、縄文人はより多様な食べ物を摂取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例えば、火にかけることのできる器は、生では毒があったり、不味かったりする野生の植物を茹でることを可能にしました。


 縄文人の食生活についてわかっていることの大部分は、彼らが残した土器に基づくものです。日本の酸性土壌では、骨などの生物学的遺物は遙か昔に溶けて消失してしまっています。しかし、炭化した太古の食事の残骸が調理容器に付着しており、かつて鍋で何を調理したのかを示す具体的な証拠となっているのです。


 食生活が改善されるにつれて、縄文人の人口は増大しました。約5,500年前から4,500年前の縄文中期には、信濃川流域の人口は20万人にも達しました。火焔型土器(かえんがたどき)が出現したとされるのも、この時期にあたります。


 火焔型土器は新潟県特有の土器で、宗教的・儀礼的な用途があっ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一部の火焔型土器には、日常用途の調理器具のようなコゲが残っていたものもありますが、火焔型のデザインはその形状から日常的な調理には扱いにくかったと思われます。その多くは、実用的ではない高い側面と、突き出した装飾のある大きく広がった口を持っています。そのデザインは多種多様ですが、いくつかのモチーフ(渦巻きやS字模様など)が頻繁に登場します。日本にはまだ渡来しなかったニワトリのように見える造形のもあります。土器の用途や文様の意味は謎のままですが、十日町の土地から掘り出された豊富な品々は、繁栄した複雑な古代文化の証拠なのです。


 十日町市博物館には、土偶、石器、装飾品、最古の火焔型土器など、この地域で今日までに発掘された1000点近い遺物が収蔵されています。そのうち笹山遺跡出土の深鉢型土器57点の出土品は、国宝に指定されています。

历史的回响:十日町考古


现在的十日町市位于信浓川流域,大约1万年前开始就有人在该流域定居。考古发掘在当地发现了绳文时代(公元前14,000年-公元前400年)的陶器和石器,不仅证明了人类定居点的存在,也为现代人了解雪国早期居民的生活与文化提供了线索。

绳文时代以陶器的发明为标志,那时,多数都是徒手整形、明火烧制的简单陶器。“绳文”这个名字就来自这些早期陶器侧面用麻绳押印出来的花纹。陶器的发明和弓箭一起极大地改变了人类的饮食结构,扩大了绳文人可选择的食物范围。比如说,有了耐火的器皿,就可以将一些生食有毒或口感差的野生植物煮熟食用。

现今,人们主要通过绳文人留下的陶器来了解他们的饮食习惯,因为骨殖等生物遗物在日本的酸性土壤中早已被分解,但烹饪器皿上附着的碳化残留物是当时曾烹煮过的食物的实证。

随着饮食结构的改善,绳文时代的人口逐渐增加。在大约5500年至4500年前的绳文时代中期,信浓川流域的人口达到了20万人,火焰型陶器大约也在这一时期出现。

火焰型陶器是新潟县(潟,音同“戏”)特有的陶器,通常认为它们主要用于宗教、礼仪活动。和简单的日常烹饪器具一样,也有一些火焰型陶器留有食物烧焦痕迹,但由于器型的关系,它们十分脆弱,难以用于日常炊事。这种陶器的侧面大多数都有着华而不实的高壁,喇叭形的大开口上还加了外凸的装饰。在五花八门的图案中,频繁出现的主要有旋涡纹和S纹等几个主题,偶尔也有肖似鸡的图案,不过当时鸡还没有传入日本。这种陶器的用途和图案的含义仍然是个谜,但十日町出土的大量文物足以证明当地繁荣而多样的古代文化。

十日町市博物馆内收藏了该地区出土的近1000件文物,包括陶俑、石器、珠宝首饰、最早期的火焰型陶器等物品,令人印象深刻,其中有57件被一起指定为国宝。

고대의 기억: 도카마치의 고고학


 시나노 강 유역은 현재의 도카마치시를 포함한 지역으로,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곳입니다. 발굴조사를 통해 일본의 조몬 시대(기원전 14,000년~400년)와 관련된 토기와 석기가 발견되어 이곳이 사람들의 거주지였음이 증명되었으며, 이는 또한 눈이 많은 지역에 살았던 가장 오래 전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조몬 시대는 토기의 발명으로 정의되는데, 대부분 손으로 모양을 잡아 직접 불에 구운 토기였습니다. 사실 조몬(줄무늬)이라는 명칭은 이 토기 측면에 마줄을 눌러 새긴 모양을 의미합니다. 활 및 화살과 함께 토기의 발명은 인간의 식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조몬인은 더욱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불에 올릴 수 있는 그릇은 날것으로는 독이 있거나 맛이 없는 야생 식물을 삶아서 먹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조몬인의 식생활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그들이 남긴 토기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일본의 산성토양에서는 뼈와 같은 생물학적 유물이 금방 분해되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탄화된 고대 식사의 잔해가 조리 용기에 남아 있어, 과거에 냄비에서 무엇을 조리했는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식생활의 개선은 조몬인의 인구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약 5,500년 전부터 4,500년 전 사이, 즉 조몬 중기에는 시나노 강 유역의 인구가 2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화염형 토기’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 무렵입니다.


 화염형 토기는 니가타현 특유의 토기로, 종교적·의례적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부 화염형 토기에서는 일상적 용도로 사용한 조리도구임을 보여주는 그을음이 남아 있는 것도 발견되었지만, 그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일상적인 조리도구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화염형 토기의 대부분은 실용적이지 않은 높은 측면과 돌출된 장식이 있는 넓은 입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디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몇 가지 모티프(나선형이나 S자 무늬 등)가 자주 등장합니다. 심지어 당시 일본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닭을 연상시키는 형상을 가진 것도 있습니다. 화염형 토기의 구체적인 용도나 문양의 의미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도카마치 지역에서 발굴된 다채로운 유물들은 번영했던 고대 문화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도카마치시 박물관에는 토우, 석기, 장식품, 가장 오래된 화염형 토기 등 이 지역에서 오늘날까지 발굴된 1000점에 가까운 유물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사야마 유적에서 발견된 심발형 토기 57점의 출토품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歷史的迴響:十日町考古


現在的十日町市地處信濃川流域,大約1萬年前開始就已經有人類在該流域定居。考古發掘在當地發現了繩紋時代(西元前14,000年-西元前400年)的陶器和石器,證明了人類定居點的存在,也為現代人了解雪國早期的居民生活與文化提供了線索。

陶器的發明是繩紋時代的標誌,那時,多數都是徒手整形、明火燒製的簡單陶器。這些早期陶器側面用麻繩押印出來的花紋便是「繩紋」這個名字的由來。陶器的發明和弓箭一起擴大了繩紋人可選擇的食物範圍,也因此大幅改變了他們的飲食方式與習慣。舉例來說,有了耐火的器皿,就可以將一些生食有毒或不好吃的野生植物煮熟食用。

現代人主要基於繩紋人留下的陶器來了解他們的飲食習慣,這是因為骨殖等生物遺物在日本的酸性土壤中早已被分解殆盡,但烹飪器皿上附著的碳化殘留物可以成為當時曾烹煮過食物的證據。

飲食結構改善後,繩紋時代的人口逐漸增加。在大約5500年至4500年前的繩紋時代中期,信濃川流域的人口達到了20萬人,火焰型陶器大約也在這一時期出現。

火焰型陶器是新潟縣(潟,音同「戲」)特有的陶器,通常認為它們被用在宗教、禮儀中。和簡單的日常烹飪器具一樣,也有一些火焰型陶器留有食物燒焦痕跡,但由於器型關係,它們十分脆弱,很難用於日常炊事。這種陶器的側面大多數都有著華而不實的高壁,喇叭形的大開口上還加上了外凸的裝飾。在千變萬化的裝飾圖案中,旋渦紋、S紋等幾個主題十分常現,偶爾也有類似雞的圖案,不過當時雞還沒有傳入日本。到今天,這種陶器的用途和圖案的含義仍然是個謎,但十日町出土的大量文物,無疑是當地古代文化繁榮多樣的證明。

十日町市博物館內收藏了近1000件當地出土文物,比如陶俑、石器、珠寶首飾、最早期的火焰型陶器,令人印象深刻,其中有57件被一起指定為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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