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薬師寺 玄奘三蔵院

  • 奈良県
ジャンル:
神社・寺院・教会
媒体利用区分:
アプリ・QRコード等
ワード数:
250以下
作成年度:
2019年
地域協議会名:
ロータスロード多言語解説整備推進協議会

Genjo Sanzoin Complex


This group of buildings, recently built in 1991, is dedicated to Genjo (also Genjo Sanzo) (602–664), the Chinese monk Xuanzang, who first introduced the teachings of the Hosso school to China; Yakushiji is the Japanese headquarters of this school.


As a young monk, Genjo’s travels in China made him aware of the inadequacies and discrepancies found in Buddhist texts in his homeland. While still in his twenties, he ignored an edict prohibiting foreign travel and journeyed on foot from Chang’an (present-day Xi’an) to India in search of Buddhist sacred texts. Despite great difficulties, which included being attacked by robbers, he vowed never to return to China until his mission was completed. For many years he made his way to and around India, visiting Buddhist sites, remains, and relics and gathering Buddhist texts, in particular those relating to the Yogachara school, known in Japan as Yuishiki, or Hosso. Having covered a total of 30,000 kilometers (equal to three-fourths of the world’s circumference), he returned to China some 19 years after embarking on his mission, bringing hundreds of Buddhist scriptures with him. It was 645, and with the help of students and collaborators from around East Asia and support from the Tang emperor, he set up a translation bureau and devoted the next 19 years to translating the texts into Chinese. He is credited with creating 1,335 scrolls, among them the Heart Sutra, which is highly revered in East Asian Buddhism generally.


After his pilgrimage, Genjo’s prime objective was to spread the doctrines of the Yogacara school in China, a task that he entrusted to one of his disciples, who is known in Japan as Jion Daishi. Through Jion (Ch. Kuiji), the Chinese Hosso school was born, though it was a Japanese monk named Dosho, who studied under Genjo after traveling to China in 653, who ultimately brought the school to Nara.


玄奘三藏院


 玄奘三藏(西元602-664)是中國的僧侶,也是最早傳授以藥師寺作為根據地的法相宗核心教義者。為了將玄奘三藏的遺德流傳後世,西元1991年建立了玄奘三藏院伽藍。


 玄奘年輕時在中國國內周遊,注意到祖國經典中的缺漏與矛盾之處。當時還是20多歲的玄奘,無視禁止前往國外的命令,為了尋求佛教經典,從當時的首都長安(現在的西安)徒步前往印度。旅途中雖曾遭遇強盜襲擊等困難,他仍誓言不達目的絕不返回中國。其後花費了17年,他遊歷印度,走訪佛教遺址,觀看各種遺物,並蒐集了與法相宗教義的源頭唯識學派相關的經典。玄奘行走的距離相當於赤道長度的四分之三,多達3萬公里,他並於西元645年將數百部經典帶回中國。之後,到去世前的19年內,他接受來自東亞各地的留學生與協助者的幫助,並在皇帝的支援下,設立了專門從事翻譯的部門,致力於翻譯經典。一般認為,他完成了1,335卷書卷,包含東亞各種佛教宗派視為重要經典的《般若心經》在內。


 結束印度各地的巡禮後,玄奘的首要目的就是弘揚唯識學派的教義。他將此任務託付給其中一名弟子--基(西元632-682),也就是後來被稱為慈恩大師的僧侶。慈恩大師促成了法相宗在中國誕生,另一方面,西元653年遠赴中國師從玄奘三藏的日籍僧侶道昭(西元629-700),則將唯識學派的教義傳入日本奈良,成為日本法相宗的基礎。

玄奘三藏院


  玄奘三藏(602-664)是中国的僧侣,也是最早传授以药师寺作为根据地的法相宗核心教义者。为了将玄奘三藏的遗德流传后世,1991年建立了玄奘三藏院伽蓝。


  玄奘年轻时在中国国内周游,注意到祖国经典中的缺漏与矛盾之处。当时还是20多岁的玄奘,无视禁止前往国外的命令,为了寻求佛教经典,从当时的首都长安(现西安)徒步踏上前往印度的旅途。途中虽面临强盗袭击等各种困难,他仍誓言不达目的绝不返回中国。其后玄奘花费了17年时间游历印度、走访佛教遗址、观看各种遗物,并收集了与成为法相宗教义源头的唯识派相关的经典。玄奘共行走了多达3万公里(相当于赤道长度的四分之三),并于645年将数百部经典带回了中国。之后,到去世为止的19年里,玄奘在来自东亚各地的留学生与协助者的帮助及皇帝的支援下,设立了专门从事翻译的部门,致力于翻译佛教经典。一般认为,他完成了1,335卷书卷,其中包括东亚各种佛教宗派视为重要经典的《般若心经》。


  玄奘在结束印度各地的巡礼后,将弘扬唯识派的教义作为自己的首要目的。他将此任务託付给弟子中的一人:基(632-682),也就是日后被称为慈恩大师的僧侣。慈恩大师促成了法相宗在中国诞生。另一方面,于653年远赴中国师从玄奘三藏的日本僧侣道昭(629-700),则将唯识派的教义传入日本奈良 ,成为日本法相宗的基础。

현장삼장원


현장삼장(602~664, ‘서유기’ 속 삼장법사의 모델)은, 야쿠시지 절을 본산으로 하는 법상종의 핵심 교리를 최초로 설파한 중국의 승려입니다. 현장삼장의 유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91년에 현장삼장원 가람을 건립했습니다.


젊은 승려였던 현장은 중국 국내를 여행하다가 조국의 경전에서 보이는 미비점과 모순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 20대였던 현장은 외국으로의 여행을 금지하는 칙령을 무시하고 불교 경전을 찾기 위해 당시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시안)에서 인도까지 도보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강도에게 습격당하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중국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17년에 걸쳐 그는 인도를 여행하며 불교 유적을 방문해 다양한 유물을 살펴보던 중에 법상종 교리의 근원이 되는 유식파와 관련된 경전을 손에 넣었습니다. 현장은 적도 길이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약 30,000km를 걸어 수백 권의 경전과 함께 645년에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사망할 때까지 19년 동안 동아시아 각지에서 온 유학생들과 협력자들의 도움, 그리고 황제의 지원을 받아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부서를 설립하고 경전을 번역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는 동아시아의 다양한 불교 종파에서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지는 반야심경을 비롯해 총 1,335권의 두루마리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 각지의 순례를 마친 현장의 첫 번째 목적은 유식파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제자 중 하나이자, 후에 자은대사라고 불리게 되는 승려 기(632~682)에게 맡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은대사에 의해 중국에서 법상종이 탄생했는데, 일본 나라에는 653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현장삼장에게 사사한 일본인 승려 도쇼(629~700)가 유식파의 가르침을 일본에 전하면서 일본 법상종의 기초가 성립되었습니다.

玄奘三蔵院


玄奘三蔵(602~664、「西遊記」の三蔵法師のモデル)は、薬師寺を本山とする法相宗の核となる教えを最初に伝えた中国の僧です。玄奘三蔵の遺徳を後世に伝えるべく、1991年に玄奘三蔵院伽藍が建立されました。


玄奘は若き僧として中国国内を旅した際、祖国の経典に見られる不備や矛盾に気づきました。まだ20代だった玄奘は、外国旅行を禁じる勅令を無視し、仏典を求めて、当時の都であった長安(現在の西安)からインドまで徒歩で旅しました。強盗に襲われるなどの困難もありましたが、彼は目的を達成するまで中国へは戻らないと誓いました。その後17年にわたって、彼はインドを旅し、仏教遺跡を訪れ、様々な遺物を見る中で、法相宗の教えの元になる唯識派に関連する経典を収集しました。玄奘は、赤道の長さの4分の3に相当する約30,000 kmを歩き、何百もの経典とともに645年に中国に戻りました。その後、没するまでの19年間を、東アジア各地からの留学生と協力者の援助、皇帝の支援を受けて翻訳を専門に行う部署を設立し、経典の翻訳に費やしました。彼は東アジアの様々な仏教宗派において重要な経典である般若心経を含む1,335巻の巻物を作成したとされています。


インド各地の巡礼を終えた玄奘の第一の目的は唯識派の教えを広めることでした。彼はそれを弟子の一人である、後に慈恩大師と呼ばれる僧、基(632~682)に託しました。慈恩大師によって中国で法相宗が誕生し、一方,日本の奈良へは、653年に中国に渡り玄奘三蔵に師事した日本人僧侶の道昭(629~700)によって、唯識派の教えがもたらされ、日本の法相宗の基礎となりました。

再検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