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海龍王 寺海龍王寺とは(歴史、成り立ち、概要)

  • 奈良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神社・寺院・教会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0以下
作成年度:
2019年
地域協議会名:
八十八面観音多言語解説整備推進協議会

Kairyuoji Temple


Kairyuoji Temple was originally established in the Asuka period (552–645) to enshrine Bishamonten, a protective Buddhist deity. Fujiwara no Fuhito (659–720), a powerful member of the imperial court, built a residence here that encompassed the temple compound. In 731, his daughter, Empress Komyo (701–760), renamed the temple Kairyuoji, literally “Sea Dragon King Temple.”


An early temple narrative relates that the eighth-century Buddhist priest Genbo had an important part in shaping Kairyuoji’s history. Genbo traveled to Tang Dynasty China to study and acquire Buddhist sutra scrolls. On his return trip, his small fleet of ships sailed into a fierce storm. Genbo continuously chanted sutras, including the Sea Dragon King sutra, to see his ship to safety. He returned to Kairyuoji with his precious cargo of 5,000 sutra scrolls, became head priest, and established Japan’s first sutra-copying center. The temple was named after the Sea Dragon King sutra.


Since then, Kairyuoji has survived various periods of decline, sustaining damage during the Onin War (1467–1477), the Keicho Earthquake (1614), and the anti-Buddhist movement of the 1870s. Kairyuoji was most recently revived after World War II. Today, it houses a number of Important Cultural Properties, including the Statue of Eleven-Headed Kannon and the Five-Story Pagoda. Many visitors pray for safety as they cross the seas on their travels or to study abroad.


海龍王寺


海龍王寺創建於飛鳥時代(西元552-645),當初奉祀的是佛教守護神毗沙門天。宮廷中的權威人士藤原不比等(西元659-720)環繞此寺院的用地修建了宅邸。其後,藤原不比等的女兒光明皇后(西元701-760)於西元731年,將寺院的名稱更改為海龍王寺,意味「海中龍王之寺」。


曾經克服危險赴唐朝(西元618-907)學習佛教的8世紀僧侶玄昉(生年不詳-西元746),則在海龍王寺的歷史中扮演著重要的角色。從唐朝返回時,他所搭乘的船隊遭遇了激烈的暴風雨,但持續誦讀《海龍王經》的結果,玄昉得以平安無事地歸國。玄昉從唐朝帶回了5,000卷貴重的經典,收藏於海龍王寺中,而成為海龍王寺住持的玄昉,則設立了日本首座寫經場。


其後,海龍王寺曾經歷過幾次衰退的時期,包括:室町幕府時期封建領主相爭的應仁之亂(西元1467-1477)、西元1614年的慶長地震,以及明治時代(西元1868-1912)初期發生的排斥佛教運動等。現在的風貌是在第二次世界大戰後的1953年復興而成。如今,這座寺院中收藏著為數眾多的重要文化財產,包括十一面觀音像與五重塔等。

海龙王寺


海龙王寺创建于飞鸟时代(552-645),当初祀奉的是佛教守护神毗沙门天。宫廷权贵藤原不比等(659-720)环绕此寺院的用地修建了宅邸之后,藤原不比等的女儿光明皇后(701-760)于731年将寺院改名为海龙王寺,意味“海中龙王之寺”。


8世纪的僧侣玄昉(生年不详-746),在海龙王寺的历史中扮演了重要角色。玄昉克服了重重危险赴唐朝(618-907)学习佛教,在从唐朝返日的途中,他所搭乘的船队遭遇了特大暴风雨,但持续诵读《海龙王经》的结果,玄昉得以平安无事回到日本。玄昉从唐朝带回的5,000卷宝贵经典收藏进海龙王寺中,而成为海龙王寺住持的玄昉,则设立了日本首座写经场。


其后的岁月中,海龙王寺曾经历了几次衰退的时期,包括:应仁之乱(1467-1477,室町幕府时期的一次封建领主间内乱)、1614年的庆长地震,以及明治时代(1868-1912)初期发生的佛教排斥运动等。海龙王寺现在的英姿是第二次世界大战后于1953年复兴的结果。如今,寺中收藏着为数众多的重要文化财产,包括十一面观音像与五重塔等。

가이류오지 절(海龍王寺, 해룡왕사)


가이류오지 절이 창건된 때는 아스카 시대(552~645년)로 처음에는 불교의 수호신인 비사문천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궁정의 유력자였던 후지와라노 후히토(659~720년)가 이 절의 부지를 둘러싸는 형태로 저택을 지었고, 그 후 731년에 후히토의 딸인 고묘 황후(701~760년)가 절의 이름을 ‘바다 용왕의 절’이라는 뜻의 가이류오지 절로 고쳤습니다. 가이류오지 절의 역사에서는 위험을 딛고 당나라로 건너가 불교를 배운 8세기의 승려 겐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나라에서 돌아오던 길에 그가 탄 배는 거센 폭풍우에 휘말렸지만, ‘해룡왕경’을 계속 외친 덕분에 겐보는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겐보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5,000권의 귀중한 경전은 가이류오지 절에 봉납되었고, 가이류오지 절의 주지가 된 겐보는 일본 최초로 사경장(경전을 베껴 쓰는 장소)을 설립했습니다.


그 이후 가이류오지 절은 오닌의 난(1467~1477년)과 1614년의 게이초 지진, 그리고 메이지 시대(1868~1912년) 초기에 일어난 불교 배척 운동 등 여러 차례 쇠퇴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3년에 재건된 것으로 오늘날 이 절에는 십일면관음상이나 오층탑 등 다수의 중요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海龍王寺


海龍王寺の創建は飛鳥時代(552~645年)であり、当初は仏教の守護神である毘沙門天を祀っていた。宮廷の有力者であった藤原不比等(659~720年)が、この寺の敷地を取り囲むように邸宅を建て、その後731年に、不比等の娘の光明皇后(701~760年)が寺の名前を「海の竜の王の寺」という意味の海龍王寺と改めた。海龍王寺の歴史には、危険を乗り越えて唐へ渡り、仏教を学んだ8世紀の僧、玄昉が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唐からの帰路、彼が乗った船が激しい嵐に襲われたが、「海龍王経」を唱え続けた結果、玄昉は無事に帰国を果たした。玄昉が唐から持ち帰った5,000巻の貴重な経典は海龍王寺に納められ、海龍王寺の住職となった玄昉は、日本初の写経場(経典を書き写す場所)を設立した。


それ以来、海龍王寺は、応仁の乱(1467~1477年)や1614年の慶長地震、また明治時代(1868~1912年)初期に起きた仏教排斥運動など、幾度かの衰退の時期があった。現在の姿は第二次世界大戦後の1953年に復興されたものであり、今日、この寺には、十一面観音像や五重塔など、数多くの重要文化財が収め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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