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世界文化遺産「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恵美須ヶ鼻造船所跡

  • 山口県
ジャンル:
世界遺産(自然・文化)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1-500
作成年度:
2020年
地域協議会名:
萩・外国の方に分かりやすい解説文整備推進協議会

Ebisugahana Shipyard

The arrival of United States Commodore Matthew C. Perry (1794–1858) changed Japan. His fleet of four warships, which sailed into Uraga Bay, near Edo, in June 1853, posed a real military threat to Japan, which had closed off almost all contact with the Western world in 1639. Three months after Perry’s arrival, the shogunate lifted a ban on the construction of large warships, a prohibition that had been in force for more than two centuries.


On the western end of Honshū, the samurai and daimyo lord of Chōshū domain took note of Perry’s threat to open the country by force. In February 1856, they received permission from the Tokugawa shogunate to begin building a Western-style ship. A mere 10 months later, the 25-meter Heishin Maru launched from Ebisugahana and, in June of the following year, successfully made a trial run to the island of Mishima, located some 40 kilometers off the coast.


The Heishin Maru was based on the design of the Heda, a replacement schooner built for Russian Admiral Yevfimiy Putyatin (1803–1883), who had been sent to negotiate a treaty with Japan in 1854 and lost his fleet to a tsunami. Putyatin succeeded in establishing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Japan and Russia in 1855 with the Treaty of Shimoda. The Heda was a 24-meter, two-masted schooner, and it was used as the base design for many of the early Western-style ships built in Japan.


By 1860, Chōshū domain had completed its second Western-style ship, the Kōshin Maru, which was used to train the fledgling Chōshū navy. Based on Dutch designs, the 43-meter, three-masted barque was equipped with eight cannons. It was designed by Fujii Katsunoshin (dates unknown), who had studied shipbuilding at Uraga and Nagasaki. In 1863, the Kōshin Maru was sunk by an American warship during the Battle of Shimonoseki Straits, but it was salvaged and used by Chōshū domain until about 1868, when it was sold. Chōshū built no other ships, opting instead to buy them from the Western traders who were gradually being allowed into the country.


The two ships built at the Ebisugahana shipyard are examples of Chōshū domain’s willingness to modernize, at first through considerable trial and error. The Heishin Maru was outfitted with nails, fittings, and anchors made with iron from the local Ohitayama Tatara Iron Works, and both ships were crewed by local men. The site of the shipyard has been under archaeological excavation since 2009. The dig has revealed traces of a rope-spinning shop, a blacksmith's foundry, a sawmill, a steam works, a design shop, and a drydock.


In 2015, Ebisugahana Shipyard was recognized as part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Iron and Steel, Shipbuilding and Coal Mining.”


惠美須鼻造船廠遺址


美國海軍將領馬修·佩里(Matthew Calbraith Perry; 1794-1858)的到來改變了日本。他於1853年6月率領4艘軍艦駛入了江戶(今東京)附近的浦賀灣,對自1639年以來持續鎖國、幾乎不與西方聯繫的日本構成了真正的軍事威脅。佩里到來3個月後,德川幕府(1603-1867)解除了延續了200多年的大型戰艦建造禁令。

遠在本州西端的萩藩(萩,音同「秋」;也叫「長州藩」,即今天的山口縣)藩主和武士們也注意到佩里試圖透過武力來迫使日本開放。1856年2月,他們獲得了幕府許可,開始建造西式戰艦。僅僅10個月後,一艘長25公尺的「丙辰丸」就從惠美須鼻造船廠下水,並於次年6月成功試航,到達了距離海岸約40公里的三島。

1854年,俄羅斯海軍上將葉夫菲米·普提雅廷(Jevfimij Vasil'jevich Putjatin; 1803-1883)被派往日本談判,卻在海嘯中失去了艦隊。於是,他建造了一艘24公尺長的雙桅短船「戶田號」作為替代,「丙辰丸」的設計就脫胎於此。1855年,《下田條約》簽訂,普提雅廷成功建立了日本和俄羅斯間的外交關係。他的戶田號也成為日本早期西式戰艦設計的原型。

1860年,萩藩建成第二艘西式船隻「庚申丸」,被用於訓練新成立的萩藩海軍。這艘43公尺長的三桅帆船以荷蘭的設計為基礎,裝備了8門火炮。設計者是藤井勝之進(生卒年不詳),他曾在浦賀和長崎進修過造船技術。1863年,庚申丸在下關戰爭中被美國戰艦擊沉,萩藩將其打撈起來後一直使用到1868年左右。最終,庚申丸被萩藩售出。此後,萩藩便沒有再建造其他船隻,而是選擇向逐漸獲准進入日本的西方貿易商直接購買。

惠美須鼻造船廠是唯一被確認使用了兩種不同造船技術(俄式及荷式)的造船廠,可謂是非常寶貴的遺跡。廠內建造的兩艘戰艦體現了萩藩透過「勇於嘗試錯誤」精神來實現現代化的強烈願望。「丙辰丸」配備了當地大板山吹踏韝(韝,音同「備」,即古代的鼓風機)煉鐵工場製造的釘子、配件和錨,兩艘船的船員也都由當地人組成。自2009年以來,造船所遺址的考古發掘工作一直在持續進行中,已發現了繩織車間、鐵匠鑄造工坊、鋸木工坊、蒸汽工坊、設計室以及旱塢的遺跡。

2013年,惠美須鼻造船廠遺址被指定為國家史跡;2015年,它又被聯合國教科文組織(UNESCO)作為「日本明治產業革命遺產 製鐵·製鋼、造船、石炭產業」的一部分列入了世界遺產名錄。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옛터


1853년 6월에 미국의 매슈 페리 제독(1794~1858)이 4척의 군함을 이끌고 에도 근교의 우라가 만에 도착했습니다. 1639년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대부분 차단했던 일본에게 있어, 페리의 내항은 틀림없는 군사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페리가 일본에 도착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막부는 2세기가 넘게 이어져 왔던 대형 군함의 건조 금지령을 폐지했습니다.


페리의 무력을 이용한 개국 요구에 주목했던 혼슈 서쪽 끝자락의 조슈번에서는 1856년 2월, 도쿠가와 막부의 허가를 받아 서양식 배 건조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개월만에 에비스가하나에서 25m 길이의 헤이신마루를 진수(進水)했고, 이듬해 6월에는 앞바다의 40km 떨어진 미시마 섬까지 시운전에 성공했습니다.


헤이신마루는 일본에 체류 중이었던 1854년의 쓰나미로 인해 함대를 잃은 러시아의 푸탸틴 제독(1803~1883)이 대체 함대 ‘헤다 호’ 건조에 사용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푸탸틴은 1855년에 러일 화친 조약을 맺고 일본과 국교를 수립했던 책임자였습니다. 헤다 호는 총 길이 24m에 2개의 돛대를 설치한 서양식 범선으로, 이후 일본에서 건조된 초기 서양식 범선 설계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60년에는 조슈번에서 두 번째 서양식 배인 ‘고신마루’가 완성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배는 총 길이 43m에 3개의 돛대와 8개의 대포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설계는 우라가와 나가사키에서 조선 기술을 배웠던 후지이 가쓰노신(생몰년 미상)이 맡았습니다. 1863년, 조슈번과 구미 열강이 일으킨 시모노세키 전쟁에서 미국 군함에 격침되지만, 조슈번에서 인양하면서 1868년경까지 사용된 후 매각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조슈번에서는 배를 건조하지 않고 차츰 입국이 허가되면서 내항한 서양의 무역상에게서 배를 구매했습니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에서 건조된 2척의 배는 조슈번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근대화에 의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헤이신마루는 지역 내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에서 공급받은 못과 쇠붙이, 닻 등을 장비했으며 두 척 모두 지역의 남자 주민들이 선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옛터에서는 200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실시하면서 로프 제작소, 철공소, 제재소, 증기 작업장, 설계 사무소, 건선거 등의 유구가 발견되었습니다.


2015년, 에비스가하나 조선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으로 등재되었습니다.

恵美須ヶ鼻造船所跡


1853年6月、アメリカのマシュー・ペリー提督(1794~1858年)が4隻の軍艦を率いて江戸近郊の浦賀湾に到着した。1639年以来、外界との接触をほとんど遮断していた日本にとって、ペリーの来航は真の軍事的脅威であり、この事件をきっかけとして、日本は大きな変革を迎えることとなった。ペリーが到着してから3ヶ月も経たないうちに、幕府は2世紀以上続いていた大型軍艦の建造禁止令を解除した。


ペリーが武力によって開国を迫ったことに注目した本州西端の長州藩では、1856年2月、徳川幕府の許可を得て洋式船の建造に着手した。そして、わずか10ヶ月後には恵美須ヶ鼻から25mの丙辰丸が進水し、翌年6月には沖合40kmの見島への試運転に成功した。


この丙辰丸は、日本来訪中の1854年に津波で艦隊を失ったロシアのプチャーチン提督(1803~1883年)が代替船「ヘダ号」の建造に使用した設計図を元にしている。プチャーチンは1855年の日露和親条約により日本と国交を樹立した責任者である。ヘダ号は全長24メートル、2本のマストを備えた西洋式帆船で、その後日本で建造された初期の西洋式帆船の設計の基本となった。


1860年には、長州藩で2隻目の洋式船となる「庚申丸」が完成した。オランダの設計図を基にした船で、全長43メートル、3本のマストと、8門の大砲を備えていた。設計は浦賀と長崎で造船技術を学んだ藤井勝之進(生没年不詳)が担当した。1863年、長州藩と欧米列強が戦った下関戦争でアメリカ軍艦に撃沈されたが、長州藩によって引き揚げられ、1868年頃まで使用され、売却された。長州藩はそれ以降、船を建造することはなく、徐々に入国が許されるようになった西洋の貿易商から船を購入した。


恵美須ヶ鼻造船所で建造された2隻の船は、長州藩が試行錯誤しながらも近代化に意欲的であったことを示している。丙辰丸は地元の大板山たたら製鉄所から供給された釘や金具、錨などを装備し、どちらの船も地元の男性たちが乗組員を務めていた。恵美須ヶ鼻造船所跡では2009年から発掘調査が行われており、ロープ製作所、鉄工所、製材所、蒸気作業場、設計事務所、乾ドックなどの遺構が確認されている。


2015年、恵美須ヶ鼻造船所は、ユネスコ世界遺産「日本の明治産業革命の遺産 鉄鋼・造船・石炭産業」に認定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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