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Statue of Kangen

  • Kyoto
Topic(s):
Shrines/Temples/Churches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19
Associated Tourism Board:
Ninna-ji

観賢大僧正坐像


観賢(854~925年)は真言宗の僧であり、900年に仁和寺の住職になった。彼の輝かしいキャリアはここから始まり、その後25年間にわたって、東寺、醍醐寺(ともに京都)、金剛峰寺(和歌山)など、数多くの寺院で指導的な役割を果たした。これにより、観賢は仁和寺だけでなく、平安時代(794~1185年)における真言宗全体の発展における重要な人物となった。真言宗の創始者である空海(774~835年)が806年に中国から持ち帰った経典を東寺の経蔵に納める事業や、奈良の般若寺の創設などにおいても中心的な役割を果たすなど、彼の功績は非常に大きいものがあり、空海に対し「弘法大師」という尊称を与えるように天皇に請願したのも観賢であった。

觀賢大僧正坐像


觀賢(854-925)是真言宗僧侶,於900年成為仁和寺住持,從此開啟了身為僧侶的光輝生涯。其後25年間,觀賢在東寺、醍醐寺(同為京都)、金剛峰寺(和歌山)等眾多知名寺院擔任領頭人物。因此他不僅是仁和寺,更是平安時代(794-1185)推進真言宗整體發展的重要人物。觀賢最大的功績,是在真言宗創始者空海(774-835)圓寂後,懇請天皇為其追加「弘法大師」的諡號。此外,他也是將空海於806年從中國帶回的佛經移至東寺藏經閣,以及創設奈良般若寺的重要人物。

观贤大僧正坐像


真言宗僧侣观贤(854-925)于900年就任仁和寺住持,从此开启了身为僧侣的光辉生涯。而后25年间,观贤在东寺、醍醐寺(同为京都)、金刚峰寺(和歌山)等众多名刹担任领头人物。因此他不仅是仁和寺,更是平安时代(794-1185)推进真言宗整体发展的重要人物。观贤最大的功绩,是在真言宗创始者空海(774-835)圆寂后,恳请天皇为其追加“弘法大师”的谥号。此外,他也是将空海于806年从中国带回的佛经移至东寺藏经阁,以及创建奈良般若寺的重要人物。

간겐대승정 좌상


간겐(854~925년)은 진언종의 승려로서 900년에 닌나지 절의 주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찬란한 이력은 이로부터 시작되어 그 뒤 25년에 걸쳐 도지 절, 다이고지 절(모두 교토), 곤고부지 절(와카야마) 등 많은 사원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에 따라 간겐은 닌나지 절뿐만 아니라 헤이안 시대(794~1185년) 진언종 전체의 발전에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774~835년)가 806년에 중국에서 가지고 돌아온 경전을 도지 절의 경장(經藏)에 수납하는 사업과 나라의 한냐지 절 창설 등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 등, 간겐의 공적은 매우 큰 것이었으며, 구카이에게 ‘고보대사’라는 존칭을 내리도록 천황에게 청원한 이도 간겐이었습니다.

Statue of Kangen


Kangen (854–925) was a Shingon priest who became the abbot at Ninnaji in 900, marking the starting point of an illustrious career. Over the next 25 years he took on a number of leadership positions at other prominent temples, including Toji and Daigoji, both in Kyoto, and at Kongobuji in Wakayama. He was therefore an important figure not only at Ninnaji, but in the overall development of Shingon Buddhism during the Heian period (794–1185). He is best remembered for petitioning the emperor to grant the priest Kukai (774–835), founder of the Shingon school, the posthumous title of “Great Teacher of the Buddhist Faith” (Kobo Daishi). Kangen also played a pivotal role in moving sacred texts that Kukai had brought back from China in 806 to the sutra repository at Toji, and in founding Hannyaji temple in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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