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Dazaifu Tenmangu and the Bakumatsu Period

  • Fukuoka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Shrines/Temples/Churches
Medium/Media of Use:
Interpretive Sign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19
Associated Tourism Board:
Dazaifu City Japan Heritage Utilization Council
Associated Address:
4-7-1 Saifu, Dazaifu-shi , Fukuoka

太宰府天満宮と幕末


1603年から1867年まで徳川幕府が日本を支配していました。しかしながら、1868年の明治維新後、新たに即位した明治天皇(1852~1912年)を中心とする中央集権制が導入され、日本の政治体制は劇的に変化しました。

幕末と呼ばれた徳川時代(1603~1867年)の最後の数年間は、極度の政治的変動によって特徴付けられました。幕末期は、未知の新機軸や発明品をもたらす外国人の急激な流入と時期を同じくしており、政治改革や天皇への忠誠の支持者に対し、幕府の守旧派は死傷者を出すほどの派閥主義を繰り広げました。

明治維新以前、公家として知られたかつての有力貴族は、幕府に忠誠を誓う派閥の人々によって追われました。公家は、京都に住む日本の貴族階級のことです。彼らは794年にその都市を首都として樹立し、その後数世紀にわたって日本の社会と政治に影響力を持ち続けました。徳川幕府の末期には7人の高位にある公家が京都から追放され、うち5人が大宰府に逃れました。1865年から1867年の間、一行は太宰府天満宮の境内にある延寿王院に避難し、そこで彼らは新しい政治体制のいくつもの構成要素につながる考えを共有しました。このように、太宰府天満宮は日本の歴史における最も重要な出来事の一つの背景でした。

三条実美(1837~1891年)は、この5人の一行の一人でした。三条はその後、内大臣を経て、一時的に、1889年には臨時の内閣総理大臣を務めました。兜、軍扇、家紋入りの鞍など、ここに見られる品々は三条により太宰府天満宮に献上されました。


太宰府天滿宮和幕末時期


德川幕府在1603年至1867年間統治日本。1868年明治維新後,建立了以新登基的明治天皇(1852-1912)為核心的中央集權政府,日本的政治體制發生了翻天覆地的變化。

德川幕府時代的最後幾年經歷了極端的政治變革,該時期被稱為「幕末」。大量外國人湧入,他們帶來了未知的新方式和新發明,而致命的派系鬥爭則使支持幕府的封建守舊派(擁幕派)與支持政治改革和天皇勢力的陣營(倒幕派)針鋒相對。

在明治維新之前,曾經頗為強大的「公家」(對天皇、朝廷和公卿貴族的稱呼,相對幕府的「武家」而言)貴族遭到忠於幕府派的追捕。他們居住在794年建立的平安京(今京都),並在之後的數百年中一直對日本社會和政治有影響力。德川幕府末期,7名位居高階官位的公家貴族被逐出京都,其中5人逃亡至太宰府。1865年至1867年間,他們在太宰府天滿宮的延壽王院內避難,並在那裡共商國事,為新政治體制打下了基礎。因此,太宰府天滿宮也是引發日本歷史上最重要事件「明治維新」的一大舞台。

三條實美(1837-1891)是五人小組的成員之一,他後來擔任日本內務大臣,並在1889年出任臨時首相。這裡展示的是三條實美供奉於太宰府天滿宮的物品:一頂頭盔、一把軍扇和一副印有家紋的馬鞍。

太宰府天满宫和幕末时期


德川幕府在1603年至1867年间统治日本。1868年明治维新后,建立了以新登基的明治天皇(1852-1912)为核心的中央集权政府,日本的政治体制发生了翻天覆地的变化。

德川幕府时代的最后几年被称为“幕末”,其特点是极端的政治变革。大量外国人涌入,他们带来了未知的新方式和新发明,而致命的派系斗争则使支持幕府的封建守旧派(拥幕派)与支持政治改革和天皇势力的阵营(倒幕派)针锋相对。

在明治维新之前,曾经颇为强大的“公家”(对天皇、朝廷和公卿贵族的称呼,相对幕府的“武家”而言)贵族遭到拥幕派的追捕。他们居住在794年建立的平安京(今京都),并在随后数世纪中一直对日本社会和政治具有影响力。德川幕府末期,7名位居高阶官位的公家贵族被逐出京都,其中5人逃亡至太宰府。1865年至1867年间,他们在太宰府天满宫的延寿王院内避难,并在那里共商国事,为新政治体制打下了基础。因此,太宰府天满宫也是引发日本历史上最重要事件“明治维新”的一大舞台。

三条实美(1837-1891)是五人小组的成员之一,他后来担任日本内务大臣,并在1889年出任临时首相。这里展示的是三条实美供奉于太宰府天满宫的物品:一顶头盔、一把军扇和一副印有家纹的马鞍。

다자이후 덴만구와 막부 말기


 1603년부터 1867년까지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통치 체제는 새롭게 즉위한 메이지 천황(1852-1912)을 중심으로 중앙 정부가 도입되면서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끊임없는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마지막 수 년간은 극심한 정치적인 변화가 일었던 시기였습니다. 막부 말기에는 외국인의 급격한 유입과 함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체제와 발명품이 일본으로 들어온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체제를 수호하고자 했던 구 막부군과 체제의 변화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표방하는 신정부군 간에 사상자를 낼 만큼 치열한 전쟁이 펼쳐졌습니다.

 교토에 거주하는 귀족 계급이었던 조정 관리들은 794년에 교토가 도읍으로 지정된 후, 메이지 유신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의 사회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막부 말기에 접어들면서 막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무사들에 의해 7명의 유력한 조정 관리들이 교토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중 5명이 다자이후로 도망쳤는데, 1865년부터 1867년에 걸쳐 다자이후 덴만구의 경내에 있는 숙소 엔주오인에서 머물며 새로운 정치 체제의 구성 요소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이처럼 다자이후 덴만구는 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산조 사네토미(1837-1891)는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도망쳤던 조정 관리 5명 중 한 명입니다. 산조는 이후 내대신을 거쳐 1889년에 임시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합니다. 투구와 쥘부채,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안장 등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물품들은 산조가 다자이후 덴만구에 봉납한 것들입니다.

Dazaifu Tenmangu and the Bakumatsu Period


The Tokugawa shogunate ruled Japan between 1603 and 1867. However, the Japanese political system was changed forever dramatically after the Meiji Restoration in 1868 with the introduction of a centralized government that pivoted around the newly installed Emperor Meiji (1852–1912).

The final years of the Tokugawa period (1603–1867), referred to as Bakumatsu, were marked by extreme political change. The Bakumatsu years coincided with a sudden influx of foreigners bringing unfamiliar new ways and inventions, while deadly factionalism pitted old-guard feudalists supporters of the shogunate against proponents of political reform and loyalty to the emperor.

Before the Meiji Restoration, once-powerful noble families known as kuge were hunted down by those members of factions loyal to the shogunate. Kuge families were the Japanese aristocratic class living in Kyoto. They established that city as the capital in 794 and remained influential in Japanese society and politics throughout the following centuries. Toward the end of the Tokugawa shogunate, seven high-ranking members of kuge families were driven from their homes in Kyoto, and five of these members fled to Dazaifu. From 1865 to 1867, the group sheltered in at Enjuoin Temple within the grounds of Dazaifu Tenmangu, where they shared ideas that led to some of the building blocks of the new political system. Thus, Dazaifu Tenmangu was the backdrop to one of the most significant events in Japanese history.

Sanjo Sanetomi (1837–1891) was one member of this group of five. Sanjo went on to serve as the Lord Keeper of the Privy Seal of Japan, and briefly, as interim prime minister in 1889. The items shown here were presented to Dazaifu Tenmangu by Sanjo: a helmet, a military fan, and a saddle with his family c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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