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he Kyogoku Family and the Obama Domain

  • Fukui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Text Length:
251-500
FY Prepared:
2022
Associated Tourism Board:
Obama City/Wakasa Town Japanese Heritage Utilization Promotion Council

京極家と小浜藩


概要

 17世紀初頭に、徳川幕府が大名という領主によって藩を治める体制を確立すると、若狭国は小浜藩として1600年に京極高次(1563年~1609年)に割り当てられました。この新しい藩の初代藩主となった高次は、すぐに小浜城の建設や町や港周辺のさまざまな改良工事を始めましたが、小浜の変革が完了する前に、1609年に亡くなりました。彼の息子の京極忠高(1593年~1637年)は小浜藩を統治し、1634年に松江藩に移されるまでその事業を続けました。


詳細情報

京極高次

 京極家の勢力は応仁の乱(1467年~1477年)の後に大きく衰退しましたが、京極家の17代目当主の京極高次(1563年~1609年)はなんとか一族の繁栄を再興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高次は若い頃に何度か主君を変えることになりましたが、当時の日本の事実上の指導者であった豊臣秀吉(1537年~1598年)の下での軍事作戦で活躍しました。これにより高次はその功績を認められて大名となり、近江国(現在の滋賀県)の大津城の城主となりました。1587年には、高貴な生まれのお初(1570年~1633年)と結婚し、その家族とのつながりが京極家にとって貴重なものとなりました。


 高次は、秀吉の死後に国の支配を目指した強力な大名であった徳川家康(1543年~1616年)の同盟者になりました。家康が日本の東部に軍を集めたとき、高次は大津城で敵の一部を足止めし、1600年の重大な関ヶ原の戦いで家康の勝利に貢献しました。この功績により、高次は同年に新たに設立された小浜藩の初代藩主に任命されました。


 藩主として、高次は若狭地域の防御を改善するために、小さな後瀬山城に代わる小浜城の建設を開始しました。また、小浜の町自体の変革を監督し、にぎやかな港町での商業の成長を支え、城の周囲に武家屋敷の地区を建設しました。


お初(常高院)

 お初は、大名の浅井長政(1545年~1573年)とその妻のお市(1547年~1583年)の間に生まれた3人の娘の1人でした。長政の妻であるお市は有力な武将であった織田信長(1534年~1582年)の妹でした。お初は1587年に京極高次と結婚し、大津城の女主人となりました。彼女は子供を産むことができな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夫の信頼できる助言者として仕え、美しく賢明な妻とされていました。彼女の姉は豊臣秀吉の寵愛を受けた側室であり、妹は二代目将軍の徳川秀忠(1579年~1632年)の妻であったため、初の家族のつながりは高次との結婚において非常に価値がありました。これによってお初は、当時の日本の歴史上最も有力であった「豊臣家」「徳川家」という2つの家の間の仲介者として役割を果たしました。


 1600年、お初は徳川家の敵から大津城を守る夫を助け、そして高次が小浜藩主の称号を与えられると、二人は若狭に移りました。1609年に高次が亡くなると、お初は当時の高貴な女性の慣例に従い、小浜の常高寺で尼となり、常高院と名乗りました。尼僧は俗世から引き下がるものとされていましたが、お初は豊臣家と徳川家との間で長年続いた対立を仲介するために家のつながりを利用しました。1615年にその争いが激化した時、お初は豊臣家が支配する大坂城におり、姉との交渉を続けていましたが、徳川軍によって城が焼け落とされる前に、お初の家臣たちによって避難させられました。


 お初は1633年に亡くなり、彼女の遺言に従って常高寺に葬られました。


展示品

 二つの掛け軸は、江戸時代(1603年~1867年)の宮廷服姿の京極高次と、尼となった高貴な女性の典型的な服装をした妻のお初(常高院)の肖像画の複製です。その他の展示には、京極家の家系図の複製や、お初の大阪城からの劇的な脱出を描いたページが開かれた「お菊物語(菊の物語)」の挿絵入りの複写などがあります。

京極家與小濱藩


概要

17世紀初,德川幕府確立了由「大名」(大領主)統治各藩的政治體系。1600年,若狹國被改設為小濱藩,劃歸京極高次(1563-1609)治理。京極高次成為這個新藩的首任統治者後很快便開始修建小濱城,同時在市鎮與港口周圍展開多項改良工程。只是他沒能等到小濱改造完成,便於1609年去世。他的兒子京極忠高(1593-1637)接管了小濱藩,繼續相關工程,直至1634年移任松江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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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極高次

應仁之亂(1467-1477)後,京極家的勢力大減,但第17代家主京極高次(1563-1609)再次復興了家族往日的光榮。他早年曾多次改變政治陣營,後來在當時日本實際統治者豐臣秀吉(1537-1598)指揮的數次戰事中嶄露頭角。作為獎賞,京極高次受封大名,成為近江國(今滋賀縣)大津城的城主。1587年,他迎娶了貴族出身的淺井初(1570-1633),妻族的力量為京極家帶來了不可估量的價值。

豐臣秀吉死後,勢力強大的大名德川家康(1543-1616)開始統一日本,京極高次成為了德川家的同盟者。在1600年的大決戰「關原之戰」中,德川家康集結軍力於日本東部,京極高次則盡力將部分敵對力量拖在大津城,為德川軍最終取勝做出了貢獻。同年,京極高次因此項功績被任命為新設立的小濱藩的首任藩主。

京極高次成為藩主後,為增強若狹地區的防禦能力,著手修建小濱城以取代規模較小的後瀨山城。他還親自監管小濱的街市改造,支援繁忙的港鎮發展商業,並在城郭周圍修建了武士住宅區。


淺井初(常高院)

淺井初(阿初)是大名淺井長政(1545-1573)與妻子阿市(1547-1583)所育的三個女兒之一,阿市是強大的軍閥織田信長的妹妹。淺井初於1587年與京極高次成婚,成為了大津城的女主人。雖然沒能生育子嗣,但她依然是人們心目中美麗、智慧的賢妻,也是丈夫值得信賴的智囊。阿初的家庭背景為這段婚姻帶來有利的附加價值,因為她的姐姐是豐臣秀吉寵愛的側室,妹妹則是第二代德川將軍德川秀忠(1579-1632)的妻子。也因如此,阿初成為了那一歷史時期日本最強大的兩個家族的中間人。

1600年,阿初協助丈夫守衛大津城,抗擊德川家康的敵人,京極高次獲賞出任小濱藩藩主後,夫妻雙雙移居若狹。1609年,京極高次去世,阿初遵循當時貴族婦女的傳統,在小濱的常高寺出家,法號「常高院」。雖說出家為尼就該遠離凡塵俗事,阿初卻還是憑藉著她與兩大家族之間的特殊關係,努力嘗試促成多年來爭鬥不休的豐臣家與德川家達成和解。1615年,當衝突白熱化時,阿初還在豐臣家治下的大坂城(今大阪城)裡嘗試與姐姐交涉斡旋,直到眼見城郭要遭德川軍攻破焚毀,才被家臣帶離。

淺井初於1633年去世,遵照其遺願,被安葬在常高寺。


展品介紹

這裡展出的兩幅立軸掛畫分別是江戶時代(1603-1867)京極高次與妻子淺井初(常高院)的肖像複製品,畫中的京極高次作宮廷裝束,而常高院則身著出家貴族女性的典型服飾。其他展品還包括京極家族譜的複製品,以及《菊之物語》的插畫版複製品,畫面描繪了淺井初從大坂城撤離時無比緊迫的場景。

京极家与小浜藩


概要

17世纪初,德川幕府确立了由“大名”(大领主)统治各藩的政治体制。1600年,若狭国被改设为小浜藩,划归京极高次(1563-1609)治理。京极高次成为这个新藩的首任统治者后,很快便开始修建小浜城,同时围绕市镇与港口展开多项改良工程。只是他没能等到小浜改造完成,便于1609年去世。他的儿子京极忠高(1593-1637)接管了小浜藩,继续相关工程,直至1634年移任松江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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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极高次

应仁之乱(1467-1477)后,京极家族的势力大减,但第17代家主京极高次(1563-1609)再次复兴了家族。他早年曾多次改变政治阵营,后来在当时日本实际统治者丰臣秀吉(1537-1598)指挥的数次战事中崭露头角。作为奖赏,京极高次受封大名,成为近江国(今滋贺县)大津城的城主。1587年,他迎娶了贵族出身的浅井初(1570-1633),妻族的力量为京极家族带来了不可估量的价值。

丰臣秀吉死后,势力强大的大名德川家康(1543-1616)开始统一日本,京极高次成为了他的同盟者。在1600年的大决战“关原之战”中,德川家康集结军力于日本东部,京极高次则努力将一部分敌对力量拖在了大津城,为德川军最终取胜做出了贡献。同年,京极高次因此功绩被任命为新设立的小浜藩的首任藩主。

京极高次成为藩主后,为增强若狭地区的防御能力,着手修建小浜城以取代规模较小的后濑山城。他还亲自监管小浜的街市改造,支持繁忙的港镇发展商业,并在城郭周围修建了武士住宅区。


浅井初(常高院)

浅井初(阿初)是大名浅井长政(1545-1573)与妻子阿市(1547-1583)所育的三个女儿中的一位。阿市是强大的军阀织田信长的妹妹。浅井初于1587年与京极高次成婚,成为了大津城的女主人。虽然没能生育子嗣,但她依然是人们心目中美丽、智慧的贤妻,也是丈夫值得信赖的智囊。阿初的家庭背景也为这场婚姻增添了宝贵的价值,因为她的姐姐是丰臣秀吉宠爱的侧室,妹妹是第二代德川将军德川秀忠(1579-1632)的妻子。也因如此,阿初成为了那一历史时期日本最强大的两个家族的中间人。

1600年,阿初协助丈夫守卫大津城,抗击德川家族的敌人。京极高次获赏出任小浜藩藩主后,夫妻双双移居若狭。1609年,京极高次去世,阿初遵循当时贵族妇人的传统,在小浜的常高寺出家,法号为“常高院”。虽说出家为尼就该远离凡尘俗事,阿初却还是凭借着她的家庭关系,努力尝试促成多年来争斗不休的丰臣与德川两大家族达成和平。1615年,当冲突白热化时,阿初还在丰臣家族治下的大坂城(今大阪城)里尝试与姐姐交涉斡旋,直到眼见城郭要遭德川军攻破焚毁,才被家臣带离。

浅井初于1633年去世,遵照其遗愿,被安葬在常高寺。


展品介绍

这里展出的两幅立轴挂画分别是江户时代(1603-1867)京极高次与妻子浅井初(常高院)的肖像复制品,画中的京极高次作宫廷装束,而常高院则身着出家贵族女性的典型服饰。其他展品还包括京极家族族谱的复制品,以及《菊之物语》的插画版复制品,画面描绘了浅井初撤离大坂城时无比紧迫场景。

교고쿠 가문과 오바마 번


개요

 17세기 초 도쿠가와 막부가 다이묘라는 영주에 의해 번을 다스리는 체제를 확립하자 와카사국(와카사노쿠니)은 오바마 번으로서 1600년에 교고쿠 다카쓰구(京極高次, 1563년~1609년)에게 할당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번의 초대 번주가 된 다카쓰구는 곧바로 오바마 성 건설과 마을 및 항구 주변의 다양한 개량공사를 시작했지만, 오바마의 변혁이 완료되기 전 1609년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 교고쿠 다다타카(京極忠高, 1593년~1637년)는 오바마 번을 통치하게 되었고, 1634년 마쓰에 번으로 옮겨질 때까지 그 사업을 계속했습니다.


상세 정보

교고쿠 다카쓰구

 교고쿠 가문의 세력은 오닌의 난(1467년~1477년) 이후 크게 쇠퇴했지만, 교고쿠 가문의 17대 당주 교고쿠 다카쓰구(1563년~1609년)는 간신히 일족의 번영을 재흥할 수 있었습니다. 다카쓰구는 젊었을 때 몇 번인가 주군을 바꾸었는데, 당시 일본의 사실상 지도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1598년) 아래 군사작전에서 활약했습니다. 이로써 다카쓰구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다이묘가 되었고, 오미국(현재의 시가현) 오쓰 성의 성주가 되었습니다. 1587년에는 고귀한 출신의 오하쓰(1570년~1633년)와 결혼했는데, 그 가족과의 관련으로 교고쿠 가문에서 귀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카쓰구는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에 국가의 지배를 목표로 한 강력한 다이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1543년~1616년)의 동맹자가 되었습니다. 이에야스가 일본 동부에 군사를 모았을 때 다카쓰구는 오쓰 성에서 적의 일부를 막아 1600년 중대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승리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이 공적으로 다카쓰구는 같은 해에 새로 설립된 오바마 번의 초대 번주로 임명되었습니다.


 번주로서 다카쓰구는 와카사 지역의 방어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작은 노치세 산성을 대신할 오바마 성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오바마 마을 자체의 변혁을 감독하고 번화한 항구도시에서 상업의 성장을 지원했으며, 성 주위에 무가 저택 지구를 건설했습니다.


오하쓰(조코인)

 오하쓰는 다이묘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 1545년~1573년)와 그 아내 오이치(1547년~1583년) 사이에 태어난 3명의 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나가마사의 아내인 오이치는 유력한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년~1582년)의 여동생이었습니다. 오하쓰는 1587년에 교고쿠 다카쓰구와 결혼하여 오쓰 성의 여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아이를 낳을 수 없었지만 남편이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였으며 아름답고 현명한 아내였습니다. 그녀의 언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은 측실이었고, 여동생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 1579년~1632년)의 아내였기 때문에 오하쓰의 가족관계는 다카쓰구와의 결혼에 있어서 매우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오하쓰는 당시 일본 역사상 가장 유력했던 ‘도요토미 가문’ ‘도쿠가와 가문’이라는 두 가문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1600년, 오하쓰는 도쿠가와 가문의 적으로부터 오쓰 성을 지키는 남편을 도왔고, 다카쓰구가 오바마 번주라는 칭호를 부여받자 두 사람은 와카사로 이주했습니다. 1609년에 다카쓰구가 죽자, 오하쓰는 당시의 고귀한 여성에 대한 관례에 따라 오바마의 조코지 절에서 비구니가 되었고 이름을 조코인이라 했습니다. 여승은 속세에서 물러나야 했었지만, 오하쓰는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 사이에 오랜 세월 지속된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집안의 관련성을 이용했습니다. 1615년에 그 싸움이 격화되었을 때 오하쓰는 도요토미 가문이 지배하는 오사카 성에 있으면서 언니와의 교섭을 계속했지만, 도쿠가와군에 의해 성이 불에 타 버리기 전에 오하쓰의 가신들이 그녀를 피난시켰습니다.


 오하쓰는 1633년에 사망했는데 그녀의 유언에 따라 조코지 절에 묻혔습니다.


전시품

 2개의 족자는 에도 시대(1603년~1867년)의 궁중 복장을 하고 있는 교고쿠 다카쓰구와 비구니가 된 고귀한 여성의 전형적인 복장을 한 아내 오하쓰(조코인)의 초상화 복제본입니다. 그 외 전시에는 교고쿠 가문 가계도의 복제본과 오하쓰가 오사카성으로부터 극적으로 탈출하는 모습을 그린 페이지가 펼쳐진 ‘오키쿠모노가타리(키쿠 이야기)’의 삽화가 그려진 복사본 등이 있습니다.

The Kyogoku Family and the Obama Domain


Overview

When the Tokugawa shogunate formalized a system of domains ruled by daimyo lords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Wakasa Province was assigned to Kyogoku Takatsugu (1563–1609) as the Obama domain in 1600. As the first ruler of the new domain, Takatsugu soon began construction of Obama Castle, as well as various improvements around the town and the port, but died in 1609 before the transformation of Obama was complete. His son Tadataka (1593–1637) ruled the Obama domain and continued the projects until 1634, when he was transferred to the Matsue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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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goku Takatsugu

The power of the Kyogoku family waned considerably after the Onin War (1467–1477), but the 17th head Kyogoku Takatsugu (1563–1609) managed to restore the family’s fortunes. He changed allegiances several times in his younger years and distinguished himself in military campaigns under Toyotomi Hideyoshi (1537–1598), the de facto leader of Japan at the time. In recognition, Takatsugu received the rank of daimyo and became lord of Otsu Castle in Omi Province (present-day Shiga Prefecture). In 1587, he married Ohatsu (1570–1633), a woman of noble birth whose family connections would prove invaluable to the Kyogoku family.


Takatsugu became an ally of Tokugawa Ieyasu (1543–1616), a powerful daimyo who aimed to take control of the country after Hideyoshi’s death. As Ieyasu gathered his forces in the eastern part of the country, Takatsugu managed to delay some of his enemies at Otsu Castle, contributing to Ieyasu’s victory in the decisive Battle of Sekigahara in 1600. In recognition, Takatsugu was appointed the first lord of the newly formed Obama domain in the same year.


As domain lord, Takatsugu sought to improve the defenses of the Wakasa region by starting construction of Obama Castle to replace the smaller Nochiseyama Castle. He also oversaw changes in the town of Obama itself, supporting the growth of merchant businesses in the busy port town and building a district for samurai residences around the castle.


Ohatsu (Jokoin)

Ohatsu was one of three daughters born to the daimyo Azai Nagamasa (1545–1573) and his wife Oichi (1547–1583), a sister of the powerful warlord Oda Nobunaga (1534–1582). Ohatsu married Kyogoku Takatsugu in 1587 and became the mistress of Otsu Castle. Despite her inability to bear children, she was considered a beautiful and intelligent wife who served as her husband’s trusted advisor. Her family connections were a valuable addition to the marriage, as her elder sister was a favored consort of Toyotomi Hideyoshi and her younger sister was the wife of Tokugawa Hidetada (1579–1632), the second Tokugawa shogun. This positioned Ohatsu to serve as an intermediary between two of the most powerful families in that period of Japan’s history.


In 1600, Ohatsu assisted her husband in defending Otsu Castle against enemies of the Tokugawa, and when Takatsugu was rewarded with lordship of the Obama domain, they both moved to Wakasa. After Takatsugu died in 1609, Ohatsu followed the tradition of noblewomen at the time and became a nun at Jokoji Temple in Obama under the name Jokoin. Though nuns were meant to withdraw from the world, Ohatsu was using her family connections to broker peace between the Toyotomi and the Tokugawa families, who were at odds for years. When the conflict came to a head in 1615, Ohatsu was in the Toyotomi-controlled Osaka Castle, still attempting to negotiate with her elder sister, and had to be evacuated by her retainers before the castle was burned down by Tokugawa forces.


Ohatsu passed away in 1633 and was laid to rest at Jokoji Temple in accordance with her final wishes.


Exhibition Items

Two hanging scrolls showcase replicas of Edo-period (1603–1867) portraits of Kyogoku Takatsugu in court attire and his wife Ohatsu (Jokoin) in the clothing typical of a noblewoman who has become a nun. Other items on display include a replica of the Kyogoku family genealogy and an illustrated copy of Okiku monogatari (The Tale of Kiku), open to the pages that depict the dramatic evacuation of Ohatsu from Osaka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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