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Restaurants and Hotels in Otaru’s Golden Age

  • Hokkaid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Cuisine/Food Culture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Pamphlet
Text Length:
501-750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otarushi nihon isan suishin kyogikai

小樽繁栄時の料亭とホテル


 19世紀後半から20世紀初頭にかけて北海道で最も豪華な料亭やホテルは小樽に集まっており、裕福な漁師や商人たちに重宝されていました。彼らは毎年春に小樽沖に産卵にやって来るニシンの大群を獲ることで財を成したのです。


 19世紀末までにニシンの年間漁獲量は9万トン近くに達し、「ニシンのゴールドラッシュ」により労働者、商人、一攫千金を狙う人々がこの町に押し寄せました。ニシンの大部分は肥料に加工され、本州南西部の綿花畑や藍畑で使用するために出荷されました。


 小樽には富裕層向けの料亭や画廊ができ、国内外からの商人を受け入れる旅館やホテルもオープンしました。大正時代(1912年-1926年)には約600人の芸者が小樽の高級料亭で客をもてなしていました。これら料亭のほとんどは20世紀半ばの経済低迷に伴って取り壊されました。魁陽亭や光亭など現在も残っている建物がいくつかありますが、改修のため閉鎖されているか、民間の施設として再利用されています。


 現在アンワインドホテルとして営業している越中屋ホテルの建物は小樽初のヨーロッパ風ホテルです。小樽を訪れる貿易商や商人の増加にともなって1931年に建設されました。このホテルは近くにある越中屋旅館の別館です。経営陣はモダンな高級ホテルのほうが外国人客にとって魅力的だと考えたのです。

黃金時代的小樽餐廳和飯店


在19世紀晚期到20世紀早期,小樽擁有北海道最高級的餐廳和飯店。來到這裡消費的客人是富裕的漁民和商人,他們憑藉每年春天大量聚集到小樽海岸產卵的鯡魚,積累了豐厚的財富。

「鯡魚淘金熱」吸引了大量的工人、商販和淘金者來到這座城市。到19世紀末期,小樽的鯡魚年捕獲量已達到約9萬公噸,大部分鯡魚被加工成肥料,運到本州西南部,用於棉花和藍草(可製造靛藍染料)的種植。

餐廳和藝品店的主要客人是小樽的新興富裕階層,旅館和飯店則為了接待許多國內外的商人而開設。大正時代(1912-1926),約有600名藝伎在小樽的豪華日式餐廳裡為客人提供服務。然而,這類餐廳大都在20世紀中葉當地經濟衰退後被拆除,只有魁陽亭、光亭等少數幾家留存至今,但也都不再對外營業。

越中屋飯店是小樽的第一家歐式飯店,它的本店是相距不遠的越中屋旅館。店主認為,一家現代化的豪華飯店更能吸引外國客人,於是在1931年新建了這家歐式飯店專門接待日益增多的海外商貿人士。越中屋飯店如今已歸屬Unwind Hotel旗下繼續對外營業。

黄金时代的小樽餐厅和酒店


从19世纪晚期到20世纪早期,北海道最豪华的餐厅和酒店都聚集在小樽。光顾这里的客人多是富裕的渔民和商人,他们凭借着每年春天聚集到小樽海岸产卵的鲱鱼群,积累了丰厚的财富。

到19世纪末期,小樽的鲱鱼年捕获量已达到9万吨左右,“鲱鱼淘金热”吸引了大量的工人、商人和淘金者来到这座城市。大部分鲱鱼被加工成肥料,装船运到本州岛西南部,用于棉花和蓝草(可制造靛蓝染料)的种植。

餐厅和艺术品商店的客源是小樽的新兴富裕阶层,旅馆和酒店则为接待国内外的商人而开设。大正时代(1912-1926),约有600名艺伎在小樽的豪华日式餐厅里为客人提供服务。然而,这类餐厅大都在20世纪中叶本地经济放缓后被拆除,只有魁阳亭、光亭等少数几家留存至今,但也都不再对外营业。

越中屋酒店是小樽的第一家欧式酒店,于1931年落成,当时是为了接待日益增多的海外商贸人士。相距不远的越中屋旅馆是它的本店,只是店主认为,一家现代化的豪华酒店更能吸引外国客人入住。如今,越中屋酒店已归属Unwind Hotel旗下,仍然开门营业。

오타루 번영기의 요정과 호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홋카이도에서 가장 호화로운 요정과 호텔은 오타루에 모여 있었으며, 부유한 어부들과 상인들이 자주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매년 봄에 오타루 앞바다에 산란하러 오는 청어 떼를 잡아 재산을 모았습니다.


 19세기 말까지 청어의 연간 어획량은 9만 톤 가까이에 달했으며, ‘청어 골드러시’로 인해 노동자, 상인,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청어의 대부분은 비료로 가공되어 혼슈 남서부의 목화밭과 쪽밭에서 사용하기 위해 출하되었습니다.


 오타루에는 부유층을 위한 요정과 화랑이 생겼고, 일본 국내외에서 온 상인들을 수용하는 료칸과 호텔도 문을 열었습니다.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에는 약 600명의 게이샤가 오타루의 고급 요정에서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이 요정들의 대부분은 20세기 중반에 경제가 침체되면서 철거되었습니다. 가이요테이 요정과 고테이 요정 등 현재도 남아 있는 건물이 몇 군데 있지만, 보수를 위해 폐쇄되었거나 민간 시설로 재이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언와인드 호텔로 영업하고 있는 엣추야 호텔 건물은 오타루의 첫 유럽식 호텔입니다. 오타루를 찾는 무역상과 상인이 증가하면서 1931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이 호텔은 근처에 있는 엣추야 료칸의 별관입니다. 경영진은 모던한 고급 호텔이 외국인 손님에게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Restaurants and Hotels in Otaru’s Golden Age 


From the late nineteenth to early twentieth century, Hokkaido’s most luxurious restaurants and hotels were in Otaru. They served wealthy fishermen and merchants who had made their fortunes from the abundant shoals of herring that came to spawn off the coast of Otaru each spring.


By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annual herring catch was close to 90,000 tons, and the “herring gold rush” brought an influx of workers, merchants, and fortune-seekers to the city. Most of the herring was made into fertilizer and shipped to the cotton and indigo fields in southwestern Honshu.


Restaurants and fine art stores catered to Otaru’s wealthy residents, and inns and hotels opened to accommodate merchants from the mainland and abroad. During the Taisho era (1912–1926), some 600 geisha entertained guests at Otaru’s exclusive ryotei restaurants. Most of these restaurants were demolished as the economy slowed in the mid-twentieth century. A few remain, including the Kaiyotei and the Kotei, but are closed to the public.


The Etchuya Hotel, which today operates as the Unwind Hotel, was Otaru’s first European-style hotel. It was built in 1931 to accommodate the growing number of overseas traders and merchants coming to Otaru. The hotel was an annex of the nearby Etchuya Ryokan, whose owners thought a modern luxury hotel would be more appealing to international gu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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