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다이야마모토 유적

  • 홋카이도
  • 아오모리
장르:
사적·성터 세계유산(자연·문화)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20
지역 협의회명:
jomonisekigun sekaiisantoroku suishinkaigi

Odai Yamamoto Site


This prehistoric site on the Tsugaru Peninsula in northern Aomori yielded stone tools and some of Japan’s earliest pottery. The artifacts unearthed here show how life changed for northern Japan’s prehistoric peoples during the final phase of the Paleolithic period (Old Stone Age) and became more sedentary at the dawn of the Jomon period (13,000 BCE).


Stone tools and what they tell us

Axes, knife-like blades, scrapers for skinning animals and working wood, and sharp-pointed tools most likely used for hunting are among the stone tools unearthed at the Odai Yamamoto Site. They vary in shape and size, ranging from larger, more rudimentary tools to more technically refined blades and arrowheads, designed to hunt fast-moving animals such as deer.


Most of the tools are made from slate, which would have been available locally from nearby rivers. Analysis of the tools indicates diverse stoneworking techniques, including regional techniques associated with prehistoric sites in Hokkaido, as well as central Japan (Kanto). The variety of tools and techniques suggests significant interaction with other regions and communities.


Pottery and the transition to a new way of life

The earthenware fragments found at the Odai Yamamoto Site are among the oldest known in the world. A handful of the potsherds, believed to be from a single vessel, were found to have carbonized residues. Carbon dating of these fragments suggests they are from 13,000 BCE, thousands of years before pottery was being used in Europe or the Near East.


The Jomon period is named for the “cord-markings” that characterize the earthenware typical of this period, but the fragments found at the Odai Yamamoto Site have no patterning. Originally, this pottery is likely to have served a purely utilitarian function such as cooking. Pottery is not transported easily, and its emergence signifies a transition towards a more sedentary lifestyle. The earthenware fragments from the Odai Yamamoto Site are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Jomon period, when Japan’s prehistoric peoples were beginning to lead more settled lives.


Where to view the artifacts

Potsherds and stone tools are on display at the Sotogahama Oyama Furusato Shiryokan [link], a former elementary school located across the road from the archaeological site. Admission is free of charge. Some basic information is in English.


What to see next

The Tsugaru Peninsula is the location of many prehistoric sites including the Kamegaoka Burial Site [link], where some of the most refined examples of Jomon-period earthenware have been discovered, and the Tagoyano Site [link]. Find out more about the Jomon period (13,000–400 BCE) and the development of prehistoric settlements at these and other sites in northern Japan.


史跡 大平山元遺跡

青森県北部の津軽半島にあるこの前史時代の遺跡では、石器に加えて、日本で最初期の土器がいくつか発掘されています。ここで発掘された製作物は、前史時代の北日本の人々の暮らしが、旧石器時代末期の間にどう変化し、縄文時代の始め(紀元前13,000年)にどう定住型の暮らしに変わったいったのかを示しています。


石器が私たちに教えてくれること

大平山元遺跡で出土した石器には、斧、ナイフのような刃物、動物の皮をはぎ木を細工するための道具、および先の尖った石器(狩猟に使われたのでしょう) などがあります。これらの石器は、より大型で初歩的な道具から、技術的により洗練された刃物や矢じりまで、形も大きさもさまざまで、シカなどの動きが速い動物を狩る目的で作られています。


石器のほとんどは粘板岩から作られています。粘板岩は、近くの川で入手することができたと思われます。道具を分析したところ、先史時代の北海道や中部日本(関東)と関係がある地方技術など、多様な石造技術が用いられていたことが示唆されています。石器と技法の多様性が示唆するのは、他の地域や集団と重要な交流があったということです。


土器、および新しい暮らし方への移行

大平山元遺跡で見つかる土器片は、世界で最も古い時期のものです。(1つの土器のものだと信じられている)少量の土器片について、炭化残留物があることが分かりました。これらの土器片について炭素年代測定を行うと、これらの土器片が紀元前13,000年からのものであることが示唆されます。これは、欧州や中東で土器が使われる数千年前のことです。


縄文時代の「縄文」という名前は、「縄で文様をつける」ことから来ています。縄による文様は、縄文時代の典型的な土器の特徴なのです。しかし、大平山元遺跡で見つかった土器片には、文様がありません。元々の土器は、調理など、純粋に実用的な機能を果たしていたと思われます。土器を運搬するのは簡単ではありません。土器が出現したということは、より定住型の暮らしに移行したことを示しています。大平山元遺跡から出土した土器片は、縄文時代のごく初期からのものです。この時期に、前史時代の日本の人々は、より定住型の生活を営むようになり始めました。


出土品が見られる場所

土器片と石器は、外ヶ浜町大山ふるさと資料館に展示されています。この資料館は、大平山元遺跡から道路をはさんで向かい側にあり、以前は小学校だった建物です。入館は無料です。基本情報の一部は英語で提供されています。


次の見どころ

津軽半島には、亀ヶ岡石器時代遺跡 [リンク] や田小屋野貝塚 [リンク] など、多くの縄文遺跡があります。亀ヶ岡石器時代遺跡では、最も洗練された縄文土器がいくつか発見されています。縄文時代(紀元前13,000年~紀元前400年)について、またこれらの遺跡や北日本の他の遺跡で見られる前史時代の集落の発展について、さらに発見しましょう。


大平山元遺址


世界遺產

大平山遺址是位於青森縣北部津輕半島的史前遺址,這裡出土了石器和日本最古老的陶器。透過這些文物可以瞭解到,舊石器時代末期日本北部史前人類生活的變遷,以及繩文時代(西元前13,000年-前400年)早期定居型態的萌芽與發展。


出土石器及其啟示

大平山元遺址出土的石器包含石斧、刀狀刃具、剝動物皮或削木用的刮刀,以及很可能是用於捕獵的尖銳器具。石器的形狀各異,大小不一,既有比較大型的常見工具,也不乏一些更具備技術含量的工具,例如捕獵鹿等行動迅敏的動物時使用的精巧刃具和箭簇。

大多數石器都使用板岩製作,製作材料應該在當地河岸即可取得。透過對出土石器的分析顯示,當時加工石器的工藝來源多樣,不僅有北海道當地的技法,也有與日本中部(關東地區)史前遺址相關的地方性工藝。從石器和工藝的多元化上透露出,該聚落在當時已經與其他地區交流頻繁。


陶器與生活形態的轉變

大平山元遺址出土的陶器殘片是世界上已知最古老的同類文物之一。在幾片被認為是屬於同一器具的陶片上,發現了碳化的殘留物。經碳元素測定結果顯示,這些陶片大致製作於自西元前13,000年,比歐洲和近東(地中海東部沿岸)地區使用陶器的時間早了數千年。

繩文時代的「繩文」(繩狀紋路)便說明了這一時期陶器的特徵。然而,在大平山元遺址發現的陶器殘片上卻沒有任何紋飾。這類陶器很可能只是單純用於烹飪等實用功能。由於陶器不易運輸,因此它與人類定居生活方式關係密切。大平山元遺址的陶片是繩文時代最早期的陶器,這標誌著當時日本的史前人類已經開始走向定居式的生活。


出土文物展示

大平山元遺址出土的陶器殘片和石器均收藏於外濱町大山故鄉資料館【連結】內。資料館的前身是一所小學,與遺址隔路相望。資料館免費開放,部分基本資訊提供英文版本。


相關遺址

津輕半島上有龜岡石器時代遺址【連結】、田小屋野貝塚【連結】等多處史前遺址,前者出土了日本繩文時代最精美的陶器。參觀以上遺址及日本北部其他遺址,可以瞭解更多有關繩文時代的資訊及各大史前聚落的發展變遷情況。

大平山元遗址


世界遗产

这处位于青森县北部津轻半岛的史前遗址,除了石器,还出土了日本最古老的陶器。这些文物展示了史前日本北部人类生活在旧石器时代末期的变化,以及绳文时代(公元前13,000年-前400年)初期的定居情况。


出土石器及其启示

大平山元遗址出土的石器包含石斧、刀状刃具、剥动物皮或削木用的刮刀,以及很可能是用于捕猎的尖锐器具。石器的形状各异,大小不一,既有较大、较基础的常规工具,也不乏一些更具备技术含量的工具,例如捕猎鹿等行动迅敏的动物时使用的精巧刃具和箭簇。

大多数石器都使用板岩制作,原材料应该在本地河岸即可获取。对于出土石器的分析显示,石器加工工艺多样,其中也有与北海道及日本中部(关东地区)史前遗址相关的地方性工艺。从石器和工艺多元化上即可看出,本地聚落在当时已经与其他地区或聚落交流频繁。


陶器与生活形态的转变

大平山元遗址出土的陶器残片是世界上已知最古老的同类文物之一。在几片被认为是属于同一器具的陶片上,人们发现了已经碳化的残留物。碳元素测定结果显示,它们大致出自公元前13,000年,比欧洲和近东(地中海东部沿岸)地区使用陶器的时间早了数千年。

顾名思义,绳文时代的“绳文”(绳状纹路)二字描述的便是这一时期陶器的特征。然而,在大平山元遗址发现的陶器残片上却没有任何纹饰。这类陶器很可能只是单纯用于烹饪等基本功能。陶器不易运输,它的出现与人类定居生活关系密切。大平山元遗址的陶片是绳文时代最早期的产物,这意味着当时日本的史前人类已经开始走向定居式的生活。


出土文物展示

大平山元遗址出土的陶器残片和石器均收藏于外滨町大山故乡资料馆【链接】内。资料馆的前身是一所小学,与遗址隔路相望。资料馆免费开放,部分基本信息提供英文版本。


相关遗址

津轻半岛上有龟冈石器时代遗址【链接】、田小屋野贝冢【链接】等多处史前遗址,前者出土了日本绳文时代最精美的陶器。参观以上遗址及日本北部其他遗址,可以了解更多有关绳文时代的信息及各大史前聚落的发展变迁情况。

오다이야마모토 유적


아오모리현 북부의 쓰가루 반도에 있는 이 선사 시대 유적에서는 석기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 몇 점도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굴된 제작물은 선사 시대 일본 북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구석기 시대 말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하고 조몬 시대 초기(기원전 13,000년)에 이르러 어떻게 한 곳에 정착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석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로는 도끼나 칼 등과 같은 날붙이,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나무를 세공하기 위한 도구, 그리고 사냥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뾰족한 석기 등이 있습니다. 크고 초보적인 도구부터 기술적으로 세련된 날붙이나 화살촉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한 이들 석기는 사슴 등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을 사냥할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의 석기는 점판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점판암은 근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석에 따르면 당시 홋카이도나 간토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지역적인 기술 등 다양한 석재 가공 기술이 이곳에서도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석기와 가공 기술의 다양성은 다른 지역이나 집단과 중요한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토기,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 편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같은 토기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량의 토기 편에서 탄화물이 부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토기 편이 기원전 1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유럽이나 중동에서 토기가 사용되었던 시기보다 수천 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조몬 시대의 ‘조몬(繩文)’이라는 명칭은 ‘새끼줄(繩)을 굴려서 덧댄 문양(文)’이라는 뜻으로 이 새끼줄 문양은 조몬 시대 토기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나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 편에는 이 새끼줄 문양이 없습니다. 원래 조리 등 순수하게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던 토기는 운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기가 출현했다는 것은 한 곳에 정착하는 정주형 삶의 방식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합니다.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편은 조몬 시대 극히 초기의 것으로서 이 시기부터 일본인들은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며 생활을 영위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출토품을 볼 수 있는 장소

토기 편과 석기는 소토가하마마치 오야마 후루사토 자료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다이야마모토 유적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자리한 이 자료관은 원래 초등학교로 사용되었던 건물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기본적인 내용 중 일부는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 외 주변 볼거리

쓰가루 반도에는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링크]과 다고야노 패총[링크] 등 다양한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 유적이 있습니다.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에서는 가장 세련된 형태로 보여지는 조몬 토기 몇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외에 다른 일본 북부의 유적지를 방문하면 조몬 시대와 당시 마을의 발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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