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노무시 산인과 우사미야나카

  • 오이타
장르:
사적·성터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21
지역 협의회명:
usachiku machizukuri kyogikai

Minomushi Sanjin and His Illustrated Diary

Minomushi Sanjin (1836–1900) was a traveling artist who left his home in Mino Province (modern Gifu Prefecture) at age 14 and wandered around Japan for 48 years. Born Toki Gengo, he came to be known as Minomushi Sanjin, “bagworm mountain man,” due to his nomadic lifestyle and distinctive straw cape resembling the protective cases that bagworms build on their backs. Sanjin was a man of diverse interests who pursued studies in archaeology, folklore, and garden design, and even served as a soldier for a time. However, he is best remembered for the art he created during his journeys. In particular, Sanjin’s illustrations depicting the natural scenery, architecture, daily life, and religious events in the Usa area have proven to be of great value to historians.


Sanjin came to Usa in 1864 and spent three months exploring the region. It is said that while in the area, he erected a memorial for old comrades who lost their lives in battle. Sanjin kept an illustrated diary where he drew vast landscapes, famous landmarks, and people who lived and worked in and around Usa. Many of the sketches provide important insight into the scenery and layout of the area at the time. For example, an illustration of Usa Jingu Shrine as seen from north of the Kurehashi Bridge features Mirokuji Temple and its Niomon Gate, both of which no longer exist.


The diary includes rare depictions of a late-nineteenth-century procession of a chokushi (imperial messenger) heading to Usa Jingu to pray and make offerings on behalf of the emperor. Such a visit now occurs every 10 years and is celebrated as the Rinji Hobeisai ritual, but in Sanjin’s time it took place only once every 60 years, making the visual record all the more valuable. One sketch shows the large procession stretching along the road that leads to Usa Jingu, while another portrays people competing to purify themselves at a shrine water font used by the chokushi.


Sanjin gave two books of sketches to a local family before leaving Usa. The books contain about 80 pages of illustrations done in Usa and other areas around Oita Prefecture, including the Yabakei Gorge and towns such as Innai, Ajimu, and Nakatsu. A compilation of the sketches was published by the Usa Board of Education as Minomushi Sanjin Enikki (The Illustrated Diary of Minomushi Sanjin). A signboard near the Kurehashi Bridge reproduces one of Sanjin’s sketches, providing an image of what Usa Jingu and the surrounding area looked like over 150 years ago.


蓑虫山人と彼の絵日記

蓑虫山人(1836~1900)は、14歳で美濃の国(現在の岐阜県)の実家を離れ、48年間日本中をさまよった放浪の画家でした。土岐源吾の名で生まれた彼は、放浪の生活スタイルと、ミノムシが背中に作る保護ケースに似た独特の藁の蓑から、蓑虫山人として知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山人は、考古学、民間伝承、造園の研究を追求した多様な興味を持った人で、しばらくの間、彼は兵士として務めたことさえありました。しかし彼は、旅の途中で創作した絵によって最もよく知られております。特に宇佐地域の自然の風景、建築、日常生活、宗教行事を描いた彼の絵は歴史家にとって大きな価値があることが証明されています。


山人は1864年に宇佐へやって来て、地域を散策しながら3ヶ月を過ごしました。彼はこの地域にいる間、戦いで亡くなったかつての仲間のための記念碑を建てたと言われています。彼は絵日記を書き続け、広大な風景、有名な場所、宇佐周辺に住み、働いていた人々を描きました。その絵の多くは、当時の地域の風景と配置についての重要な見識を提供しています。たとえば、呉橋の北側から宇佐神宮を臨んだ絵には、今は存在していない弥勒寺とその仁王門が描かれています。


絵日記には、19世紀後半に天皇に代わってお祈りやお供え物を捧げるために宇佐神宮へ向かっていた、珍しい勅使(天皇陛下の使者)の行列の描写も含まれています。このような勅使の訪問は、現在では10年ごとに行われ臨時奉幣祭として祝わ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が、山人の時代には60年に1回しか開催されなかったため、この視覚的な記録はさらに価値のあるものになりました。ある絵には宇佐神宮に続く道に沿って伸びる大きな行列が描かれ、別の絵には勅使が使用した神社の手水舎で自らを清めようと競う庶民たちが描かれています。


山人は宇佐を離れる前に、現地のとある家族へ2冊の画集を贈りました。この冊子には、耶馬溪の峡谷や院内町、安心院町、中津市など、宇佐をはじめ大分県周辺で制作された絵が約80ページにわたって掲載されています。画集は、宇佐教育委員会から「蓑虫山人絵日記」として出版されました。呉橋の近くの看板は、山人のスケッチの1つを複製しており、150年以上前の宇佐神宮とその周辺の様子が見られます。


《蓑蟲山人繪日記》


蓑蟲山人(1836-1900)是一名旅行畫師,14歲離開家鄉美濃國(今岐阜縣),往後48年間走遍了日本。他本名土岐源吾,卻以「蓑蟲山人」為人所知,這是因為他在放浪行遊時,總是身披一件與眾不同的蓑衣——就像蓑衣蟲背在身上的保護殼一樣。蓑蟲山人興趣廣泛,研究過考古學、民俗學、園林設計,甚至還一度入伍服兵役。此外,他還曾學習源自中國山水畫南宗的南畫技法。但讓蓑蟲山人名揚天下的是他在旅途中創作的繪畫,尤其是他筆下的宇佐地區的自然風景、建築、日常生活畫面和宗教活動場景,這些對於歷史學家來說格外具有價值。

蓑蟲山人於1864年來到宇佐,花了3個月時間探訪這一地區。相傳在此期間,他為戰爭中喪生的同袍立了一座紀念碑。他在手繪日記中留下了壯闊的風景、著名地標、宇佐及周邊地區居民的生活和工作場景,其中許多寫生畫都對了解當時這一地區的景觀、空間佈局提供了重要參考。例如一幅從吳橋北側眺望宇佐神宮的畫作裡,留下了今已不存的彌勒寺及寺院仁王門的模樣。

這本手繪日記裡保留了19世紀晚期的一組珍貴畫面,記錄了敕使(天皇欽使)趕赴宇佐神宮的場景。在其中一幅畫中,敕使隊伍正浩浩蕩蕩地沿著街道前往神宮,另一幅則描繪了百姓爭相在敕使用過的手水舍前洗淨自身的場景。上述兩幅作品描繪的一項由敕使代天皇前來宇佐神宮參拜祈禱並向神明供奉供品的活動,名為「臨時奉幣祭」,儘管現在每10年舉辦一次,但在蓑蟲山人所處的時代卻是60年才能得見一次的盛大場面。因此,這樣一份繪畫記錄更顯得彌足珍貴。

離開宇佐前,蓑蟲山人將兩冊畫集贈送給了當地一戶人家。這些畫集裡共有約80幅畫作,都是他在宇佐以及耶馬溪、院內町、安心院町、中津市等其他大分縣周邊地區完成的。宇佐教育委員會將畫集整理出版,取名為《蓑蟲山人繪日記》。吳橋邊的看板上展示的正是蓑蟲山人的一幅作品,藉以展現150多年前宇佐神宮和周邊的景致。

《蓑虫山人绘日记》


蓑虫山人(1836-1900)是一名旅行画师,14岁离开家乡美浓国(今岐阜县),48年间走遍了日本。他本名土岐源吾,却以“蓑虫山人”的名号为人所知,这是因为他在放浪行游时总是身披一件与众不同的蓑衣——就像蓑衣虫背在身上的保护壳一样。蓑虫山人兴趣广泛,研习过考古学、民俗学、园林设计,甚至还一度入伍服兵役。此外,他还曾学习源自中国山水画南宗的南画技法。但让蓑虫山人名扬天下的是他在旅途中创作的绘画,尤其是他笔下宇佐地区的自然风景、建筑、日常生活画面和宗教活动场景,这些对于历史学家来说格外具有价值。

蓑虫山人于1864年来到宇佐,花了3个月时间探访这一地区。相传在此期间,他为战争中丧生的同袍立了一座纪念碑。他在手绘日记中留下了宏大风景、著名地标,还有宇佐及周边地区居民的生活及工作场景,其中许多写生画都对了解当时这一地区景观风物、空间布局提供了重要的参考。比如,在一幅从吴桥北侧眺望宇佐神宫的画作里,留下了弥勒寺及寺院仁王门的模样,而这两处如今均已不存。

这本手绘日记里保留了19世纪晚期的一组珍贵画面,记录了敕使(天皇钦使)赶赴宇佐神宫的场景。在其中一幅画中,敕使队伍正浩浩荡荡地沿着街道前往神宫。另一幅则描绘了百姓争相在敕使用过的手水舍前洁净自身的场景。这两幅画作描绘了一项由敕使代天皇前来宇佐神宫参拜祈祷并向神明供奉供品的活动,名为“临时奉币祭”,现在每10年举办一次,但在蓑虫山人所处的时代却是60年才能得见一次的盛大场面。因此,这样一份绘画记录更显得弥足珍贵。

离开宇佐前,蓑虫山人将两册画集赠送给了本地一户人家。这些画集里共有约80幅画作,都是他在宇佐以及耶马溪、院内町、安心院町、中津市等其他大分县周边地区完成的。宇佐教育委员会将画集整理出版,取名为《蓑虫山人绘日记》。吴桥边的看板上展示着蓑虫山人的一幅作品,再现了150多年前宇佐神宫和周边的景致。

미노무시 산진과 그의 그림 일기


미노무시 산진(1836~1900)은 14세 때 미노국(현재의 기후현)의 본가를 떠나 48년간 일본 전역을 떠돌던 방랑 화가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도키 겐고이지만 방랑하는 생활 스타일과 미노무시(도롱이벌레)를 닮은 독특한 도롱이 모양에서 미노무시 산진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산진은 고고학, 민간 전승, 조경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가졌던 사람으로 한동안은 병사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뭐니뭐니해도 여행 도중에 그린 다양한 그림입니다. 특히 우사 지역의 자연 풍경, 건축, 일상생활, 종교행사 등을 그린 그의 그림은 후세의 역사가들을 통해 커다란 가치가 있음을 증명받게 되었습니다.


산진은 1864년에 우사로 온 뒤 주변 지역을 산책하면서 3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는 이 지역에 머무는 동안 전투에서 죽은 옛 동료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본 것을 그림 일기로 남겼는데, 광활한 풍경이나 유명한 장소뿐만 아니라 우사 주변에 살면서 일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림의 대부분은 당시 이 지역의 풍경과 배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예를 들어 구레하시 다리 북쪽에서 우사 신궁을 바라본 그림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미로쿠지 절(彌勒寺)과 절의 니오몬 문(仁王門)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일기에는 천황을 대신해 기도나 공물을 바치는 칙사가 19세기 후반 우사 신궁을 방문했을 때 행렬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칙사의 방문을 기념하는 린지호헤이사이 축제는 현재는 10년마다 열리지만, 산진이 살았던 시대에는 60년에 한 번밖에 개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각적 기록은 더욱 가치 있는 자료로 여겨집니다. 어떤 그림에는 우사 신궁으로 이어진 길을 걷는 긴 행렬이 그려져 있고, 다른 그림에는 칙사가 사용한 데미즈야(참배하기 전 물로 손이나 입을 깨끗히 씻는 장소)에서 똑같이 스스로를 정화하려고 하는 서민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산진은 우사를 떠나기 전, 지역의 한 가족에게 화집 2권을 선물했습니다. 이 책자에는 우사를 비롯해 야바케이 협곡과 인나이, 아지무, 나카쓰 등 우사 주변 오이타현 각지에서 제작된 그림이 약 80페이지에 걸쳐 게재되어 있습니다. 화집은 우사시 교육위원회에서 ‘미노무시 산진 그림 일기’란 이름으로 출판했습니다. 구레하시 다리 근처의 간판은 산진이 그린 스케치 중 하나를 복제한 것으로 150여 년 전의 우사 신궁과 그 주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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