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가 마키에(加賀蒔絵)

  • 이시카와
장르:
지역 특산물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22
지역 협의회명:
Ishikawa Crafts and Cultural Heritage Digital Contents Promotion Council

Kaga Maki-e


Kaga maki-e is a style of lacquerware produced during the Edo period (1603–1867) in Kaga domain (present-day Ishikawa and Toyama Prefectures). The style is distinguished by ornate decoration using a technique called maki-e, in which metallic powders, such as gold dust, are applied to soft lacquer to create images and designs.


Kaga domain was governed by the Maeda family. The domain’s bountiful production of rice—the basis of the Edo-period economy—made the Maedas immensely wealthy. They invested their resources in cultural development, often recruiting the country’s finest artisans and outfitting them with whatever they required.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Lord Maeda Toshitsune (1593–1658) invited two masters of maki-e to ply their craft near Kanazawa Castle. Shimizu Kuhei (?–1688) came from Edo (present-day Tokyo), while Igarashi Dōho I (?–1678) came from Kyoto. The two men created some of the most celebrated works of Kaga maki-e and trained their successors in its techniques, laying the foundation for Kanazawa lacquerware’s current renown.


Lacquerware is coated in the viscous sap of lacquer trees. The sap must be applied in multiple layers and given sufficient time between each to harden. In addition, lacquerware decorated using the maki-e technique requires precious metals. Together, these time-consuming and expensive aspects of producing Kaga maki-e meant that only the wealthy could afford it. As a result, the objects that Kaga artisans produced usually reflected the tastes and interests of the ruling elite. Items decorated with Kaga maki-e include armaments like saddles, stirrups, and scabbards, as well as household items such as writing boxes and tea ceremony implements. These decorations were often ornate and intricate, depicting scenes from nature that evoked famous poems or auspicious images from folklore.


Kaga maki-e compositions often combine several techniques to create three-dimensional scenes with texture and depth. The shishiai togidashi technique, for example, combines togidashi (burnished) and taka (raised) maki-e. In burnished maki-e, the lacquer and powder design is made in low relief and dried, and the piece is then covered with another layer of black or clear lacquer. This layer is polished down with charcoal until the design is revealed, flush with the new surface. With raised maki-e, surface designs are built up with layers of lacquer and charcoal or clay dust before the metallic powder layer is added. Other decorative techniques, such as crushed eggshell and mother-of-pearl inlay, were often used in tandem with maki-e to broaden a design’s color palette.


Examples of Kaga maki-e in the Ishikawa Prefectural Museum of Art collection include a lavish seventeenth-century bookstand attributed to Shimizu Kuhei and a writing box by Igarashi Dōho I that uses maki-e and mother-of-pearl inlay to depict a moonlit autumn field.

加賀蒔絵


 加賀蒔絵は、江戸時代(1603~1867)に加賀藩(現在の石川県と富山県)で生み出された装飾漆器の一つです。漆で描いた下絵が乾かないうちに金粉などの金属粉を蒔いて絵柄を仕上げる「蒔絵」の技法による華麗な装飾が特徴になります。


 江戸時代の経済は米を基本とするものでしたが、加賀藩は豊富な米の生産量を誇り、藩主の前田家は非常に裕福でした。前田家はその豊かな資金を文化の発展に注ぎます。日本各地から優秀な職人を呼び寄せ、必要なものを与えました。17世紀初頭、当時の藩主、前田利常(1593~1658)は2人の蒔絵師、清水九兵衛(?~1688)と初代五十嵐道甫(?~1678)を金沢城の近くに招きます。九兵衛は江戸(現在の東京)出身、道甫は京都出身でした。二人は加賀蒔絵の中でも最も優れた作品を制作し、その技術を後継者に伝え、現在の金沢漆器の名声の基礎を築きました。


 漆器は、ウルシ(漆)の木から採取した粘性のある樹液を塗って作られます。樹液を何層にも塗り重ね、固まるまで十分に時間をかけます。さらに、蒔絵の装飾には高価な金属が使われます。このように、加賀蒔絵は非常に手間と費用を要するもので、手にできるのは富裕層に限られていました。そのため、加賀蒔絵には支配階級の人々の趣味や嗜好が反映されています。加賀蒔絵の装飾が施された品々は、鞍(くら)、鐙(あぶみ)(鞍の両脇につるして足をかける道具)、鞘(さや)などの武具から、文箱や茶道具などの日用品に至るまで多岐にわたります。また、有名な和歌(日本の伝統的な詩歌)を連想させる自然の情景や、民話に由来し縁起が良いとされる吉祥文様などを題材とした、華麗で緻密な作品が多くみられます。


 加賀蒔絵は、複数の技法を組み合わせて質感や奥行きのある立体的な情景を表現したものも多くみられます。例えば、「肉合研出蒔絵(ししあいとぎだしまきえ)」は、「研出蒔絵(とぎだしまきえ)」と「高蒔絵(たかまきえ)」を組み合わせた蒔絵の技法です。研出蒔絵は、漆で文様を描いて金属粉を蒔いて乾燥させ、さらに黒や透明の漆を塗り重ねます。次に、文様が浮き上がるまで木炭で研ぎ出し表面を同じ高さにします。また、高蒔絵は、炭粉や砥粉を混ぜた漆で文様を盛り上げ、その上から金属粉を蒔き、金属粉の層を磨き上げて仕上げます。蒔絵に様々な色彩を加える目的で、砕いた卵殻や螺鈿を用いた装飾技法を併用することもあります。


 石川県立美術館では、清水九兵衛の作とされる華麗な蒔絵見台や、初代五十嵐道甫が月明かりに照らされた秋の野原を蒔絵と螺鈿で表現した硯箱など、17世紀の加賀蒔絵の名品を所蔵しています。

加賀蒔繪


加賀蒔繪是江戶時代(西元1603–1867)來自加賀藩(今石川縣和富山縣)的一種漆器風格,其特點是使用一種名為「蒔繪」的技法,將金粉等金屬粉末撒在軟漆上來打造圖案和設計,藉此為物品加上華麗的裝飾。


加賀藩過去由前田家統治,由於此地盛產稻米,而稻米是江戶時代經濟的基礎,讓前田家得以累積大量財富。不僅如此,前田家投入資源發展文化事業,頻繁地招募日本技藝最精湛的工匠,並為他們提供所有需要的資源。17世紀初,藩主前田利常(西元1593–1658)邀請兩位蒔繪大師到金澤城附近進行創作,他們分別是來自江戶(今東京)的清水九兵衛(?–西元1688),以及來自京都的初代五十嵐道甫(?–西元1678)。兩人創作了一些廣受讚譽的加賀蒔繪作品,並培養出加賀蒔繪的後繼者,為今日金澤漆器享有的盛譽奠定基礎。


漆器的表面會塗上漆樹的黏稠樹液,而且必須塗上好幾層,每次塗漆後還需要留足夠的時間讓樹液硬化,然後才能再塗下一層。此外,使用蒔繪技法裝飾的漆器也需用到貴金屬。上述因素讓加賀蒔繪耗時又昂貴,只有富裕階層才負擔得起。因此一般來說,加賀工匠的作品反映了統治階層的品味和興趣。使用加賀蒔繪裝飾的物品包括馬鞍、馬鐙和刀鞘等武具,以及文具盒、茶道用具等家居用品。加賀蒔繪的裝飾一般華麗而複雜,描繪了自然美景,讓人聯想到著名詩歌,或民間傳說中的吉祥圖案。


至於加賀蒔繪的作品則通常結合多種技法,打造具有紋理和深度的立體效果,例如「肉合研出蒔繪」技法便結合了「研出蒔繪」(拋光)和「高蒔繪」(堆高)。研出蒔繪技法是用漆和粉末打造淺浮雕效果,等到濕漆乾燥後,便在作品上再塗抹一層黑漆或清漆。最後,再用木炭將這層漆磨平,直到金粉圖案顯露出來,與新的表面齊平。至於高蒔繪技法,則是以多層漆和木炭或黏土粉打造表面設計,然後再撒上金屬粉末。蒔繪技法通常會與卵殼技法和螺鈿技法等其他裝飾技法結合使用,為作品帶來更豐富的色彩。


石川縣立美術館收藏的加賀蒔繪作品,包括清水九兵衛於17世紀製作的豪華讀書架,以及初代五十嵐道甫製作的文具箱,這件文具箱使用蒔繪和螺鈿技法,描繪了秋季月光下的田野景色。

加贺莳绘


加贺莳绘是江户时代 (1603–1867) 来自加贺藩(今石川县和富山县)的一种漆器风格。加贺莳绘的特点是使用一种名为“莳绘”的技法对物品进行华丽装饰,即将金粉等金属粉末撒在软漆上来绘制图案。


古时加贺藩的统治者是前田家族。加贺藩盛产大米,而大米是江户时代经济的基础,因此前田家族积累了大量财富。前田家族投入资源以发展文化事业,频繁招募日本技艺最精湛的工匠,并为工匠们提供一切所需资源。17世纪初,藩主前田利常 (1593–1658) 邀请两位莳绘大师前往金泽城附近进行创作。清水九兵卫 (?–1688) 来自江户(今东京),初代五十岚道甫 (?–1678) 来自京都。二人创作了一些著名的加贺莳绘作品,并培养了加贺莳绘的后继者,为今天金泽漆器的美誉奠定了基础。


漆器表面涂有漆树的粘稠树液。工匠需在物品表面涂施多层树液,每次涂施后都需要留出足够时间让树液硬化,然后再涂下一层。此外,使用莳绘技法装饰的漆器还需要用到贵金属。因此,加贺莳绘的制作工艺费时且昂贵,只有富裕阶层才能够承担。所以一般来说,加贺工匠的作品反映了统治阶层的品味和兴趣。使用加贺莳绘装饰的物品包括马鞍、马镫、刀鞘等武器装备,以及文具盒、茶具等家居用品。加贺莳绘的装饰风格一般华丽而复杂,描绘自然美景,让人联想起著名诗歌,或民间传说中的吉祥图案。


加贺莳绘作品通常结合多种技法,形成具有纹理和深度的立体效果。例如“肉合研出莳绘”技法结合了“研出莳绘”(磨光)和“高莳绘”(增高)。在研出莳绘技法中,漆艺家用漆和粉末打造浅浮雕效果,湿漆干燥后,便在作品上再涂抹一层黑漆或清漆。最后,用木炭将这层漆磨平,直至金粉图案显露出来,与新表面齐平。而在高莳绘技法中,漆艺家先用漆和木炭或黏土粉料层构建表面设计,再添加金属粉末。其他装饰技法,例如卵壳技法和螺钿技法,通常与莳绘技法结合使用,给作品带来更丰富的色彩。


石川县立美术馆收藏的加贺莳绘作品包括清水九兵卫制作的17世纪奢华读书架,以及初代五十岚道甫制作的文具箱,这件文具箱使用莳绘和螺钿技法,描绘了秋夜月光下的田野景色。

가가 마키에(加賀蒔絵)


 가가 마키에는 에도 시대(1603~1867)에 가가번(현재의 이시카와현과 도야마현)에서 탄생한 장식 칠기 중 하나입니다. 옻으로 그린 밑그림이 마르기 전에 금가루 등의 금속가루를 뿌려 무늬를 완성하는 ‘마키에’ 기법을 사용한 화려한 장식이 특징입니다.


 에도 시대의 경제는 쌀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는데, 가가번은 풍부한 쌀 생산량을 자랑했기에 번주인 마에다 가문은 매우 부유했습니다. 마에다 가문은 그 풍부한 자금을 문화발전에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일본 각지에서 뛰어난 장인들을 불러들여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며 지원했습니다. 17세기 초, 당시 번주였던 마에다 도시쓰네(1593~1658)는 두 명의 마키에 장인, 시미즈 구헤이(?~1688)와 제1대 이가라시 도호(?~1678)를 가나자와성 근처로 불렀습니다. 구헤이는 에도(현재의 도쿄) 출신이었고, 도호는 교토 출신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가가 마키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 기술을 후계자들에게 전수하여 현재의 가나자와 칠기의 명성을 쌓는 기초를 다졌습니다.


 칠기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점성이 있는 수액을 발라 만듭니다. 이 수액을 여러 겹으로 칠하고 굳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입니다. 또한, 마키에 장식에는 고가의 금속이 사용됩니다. 이처럼 가가 마키에는 제작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부유층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가 마키에에는 지배계층의 취향과 기호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가 마키에로 장식된 물품은 안장, 등자(안장 양옆에 매달아 발을 걸 수 있는 도구), 칼집 등의 무구부터 문서함이나 차도구와 같은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또, 유명한 와카(일본 전통 시가)를 연상시키는 자연경관이나 민화에서 유래해 길조로 여겨지는 길상문양 등을 주제로 한 화려하고 정교한 작품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가가 마키에는 여러 기법을 조합하여 질감과 깊이가 있는 입체적인 풍경을 표현한 작품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시아이토기다시마키에’는 ‘도기다시마키에’와 ‘다카마키에’를 결합한 마키에 기법입니다. 도기다시마키에는 옻으로 문양을 그린 후 금속가루를 뿌려 건조시키고, 그 위에 검은색 또는 투명한 옻을 여러 겹 덧바르는 기법입니다. 다음으로 문양이 떠오를 때까지 목탄으로 표면을 갈아내어 같은 높이로 만듭니다. 또, 다카마키에는 숯가루와 숫돌가루를 섞은 옻으로 문양을 도드라지게 한 뒤, 그 위에 금속가루를 뿌리고 금속가루 층을 연마하여 완성합니다. 마키에에 다양한 색감을 더하기 위해 부순 달걀껍데기나 나전을 활용한 장식기법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시카와현립미술관은 시미즈 구헤이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화려한 마키에 독서대와 제1대 이가라시 도호가 달빛에 비친 가을 들판을 마키에와 나전으로 표현한 벼루함 등 17세기 가가 마키에의 명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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