标题 铁穴流:铁砂开采

  • 岛根
类别:
古迹/城址
媒体类别:
APP/二维码等
字数:
250以下
编写年度:
2023
地区协议会名称:
tetsu no michi bunkaken suishin kyogikai

Kanna-Nagashi: Gathering Iron Sand


The iron sand used for smelting was originally gathered by sifting through riverbeds, where it accumulated naturally. As wind and rain gradually eroded an iron-bearing mountainside, the iron-rich sediment was carried downstream. However, this naturally occurring stock of iron sand was insufficient for large-scale iron production.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ironworking communities gradually developed a new technique called kanna-nagashi (roughly translated as “water flowing between pools”).


Instead of waiting for the natural erosion process to occur, workers chipped away bit by bit at an exposed cliff face, knocking the sediment into a purpose-built canal. This artificial river carried the dirt and iron sand down to the mountain’s base, where it could be separated using a series of four progressively lower pools. As water flowed through the pools, the lighter sediment was carried out through openings between them, while the heavier iron sand sank to the bottom. The iron sand was then collected, dried, and transported to the production site.


Roughly 200 metric tons of sediment had to be filtered for each metric ton of iron sand, and this artificial increase in sediment flowing downstream disrupted irrigation systems and damaged rice fields. As a result, kanna-nagashi was banned in the Matsue domain from 1610 to 1636. Even after the ban was lifted, ironworks were only allowed to gather iron sand between September and March to avoid the main agricultural season.

かんな流し:砂鉄採り


鉄の生産に使われる砂鉄は、当初は河川敷に自然に堆積したものを集めていた。山の斜面が川や雨によって少しずつ削られ、鉄分を多く含む土砂が下流へと運ばれていったのである。しかし、大規模な製鉄を行うには、このように自然に集まってくる砂鉄では不十分だった。16世紀から17世紀にかけて、この地域では、「かんな流し」と呼ばれる新しい方法が考案された。かんな流しとは、大量の土砂を水に流し、砂鉄と砂の重さの違いを利用して砂鉄を採取する方法だ。


この方法ではまず、露出した崖の表面を少しずつ削り、土砂を専用の水路に流す。土砂が平地まで流れゆくなかで、階段式に高さが次第に低くなる4つの池を通り過ぎつつ、砂鉄を分離した。水が流れるにつれて、軽い土砂は池と池の隙間から流れ出て、重い砂鉄は底に沈んだ。その後、砂鉄を回収して乾燥し、生産現場に運搬した。


1トンの砂鉄を集めるには、およそ200トンの土砂をろ過しなければならず、下流に流れる大量の土砂のせいで農業用の水路が詰まり、水田が被害を受けた。そのため、この地域を統括していた松江藩は1610年から1636年まで、かんな流しを禁止した。禁止令が解かれた後も、砂鉄を採取できるのは、農業に影響の出ない9月から3月の間だけだった。

鐵穴流:鐵砂開採


常年受到風雨侵蝕後,山坡上富含鐵質的沙土會落入河中順流而下,最終沉積在河床上。人們一開始就是透過篩分河床上的沙土採集鐵砂用於熔煉。然而,這種天然生成的鐵砂無法滿足大規模的冶鐵生產需求,到了16、17世紀,冶鐵業界開發出了一種名為「鐵穴流」的新技術。

人們不再被動等待自然侵蝕,而是開始主動開鑿裸露的山崖表面,將碎石沙土擊落到專門修建的人工河中。河水帶著泥土和鐵砂流向山腳,並從高到低依次流經4個階地式的水池。之後,再用棒狀工具攪拌,這樣較輕的泥沙隨河水從池塘間的縫隙中流走,較重的鐵砂則沉到池底,留待收集、曬乾之後,被運送到冶鐵工場。

不過每200公噸左右的沉積物只能濾出1公噸鐵砂,而且這種人為增加的沉積物堆積在下游,破壞了灌溉系統,損壞了稻田。於是,在1610年至1636年間,松江藩(今島根縣的一部分)禁止了鐵穴流開採。即便後來禁令解除,冶鐵工人也必須避開農忙時節,只能在每年9月至次年3月之間開採鐵砂。

간나 나가시: 사철 채취


철 생산에 필요한 사철은 초기에 하천 부지에 자연적으로 퇴적된 것을 모아서 사용했습니다. 산비탈이 강이나 비로 인해 조금씩 깎이면서 철분을 다량 함유한 토사가 하류로 떠내려가 퇴적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제철에서는 이처럼 자연적인 퇴적으로 모은 사철로는 부족했습니다.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이 지역에서는 ‘간나 나가시’라고 불리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간나 나가시란, 다량의 토사를 물에 흘려보낸 후 사철과 모래의 무게 차이를 이용하여 사철을 채취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서는 먼저 노출된 절벽의 표면을 조금씩 깎아 생성한 토사를 전용 수로로 흘려보냅니다. 이렇게 토사가 평지까지 떠내려가는 중에 계단식으로 높이가 점차 낮아지는 4개의 못을 지나가면서 사철을 분리했습니다. 물의 흐름에 따라 가벼운 토사는 못과 못의 틈새로 흘러나왔고, 무거운 사철은 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이렇게 가라앉은 사철을 수거한 후 건조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 현장으로 운반했습니다.


1t의 사철을 모으려면 200t가량의 토사를 걸러내야 했는데, 하류로 흘러내리는 엄청난 양의 토사로 인해 농업용 수로가 막히는 바람에 논이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역을 총괄했던 마쓰에번은 1610년부터 1636년까지 간나 나가시를 금지했습니다. 금지령이 해제된 뒤에도 농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9월부터 3월까지만 사철을 채취할 수 있었습니다.

铁穴流:铁砂开采


长年的风雨侵蚀使得山坡上富含铁质的沙土被冲刷落入河中,最终沉积在河床上。人们最初就是通过筛分河床上的沙土采集铁砂用于熔炼。然而天然生成的铁砂无法满足大规模的冶铁生产需求,到了16、17世纪,冶铁业界开发出了一种名为“铁穴流”的新技术。

人们不再被动等待自然侵蚀,而是一点点凿下裸露的山崖表面,将碎石沙土击落到专门修建的人工河中。河水携带泥土和铁砂流向山脚,从高到低依次流经4个阶梯式水池,经过棒状工具搅拌,使得较轻的泥沙随河水从池塘的间隙中流走,较重的铁砂则沉到池底。铁砂经过收集、晒干之后,被运送到冶铁工场。

然而大约每200吨沉积物只能滤出1吨铁砂,再加上河流下游被人为增加的沉积物堆积阻塞,破坏了灌溉系统,损坏了稻田,于是松江藩(今岛根县的一部分)在1610年至1636年间禁止了铁穴流开采。即便后来禁令解除,铁砂开采也必须避开农忙时节,只能在每年9月至次年3月之间进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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