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長崎歴史文化博物館 (宣教師の国外追放と協会の破壊、キリシタン根絶へ)

  • 長崎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建造物・施設
媒体利用区分:
看板 パンフレット
ワード数:
251-500
作成年度:
2019年
地域協議会名:
「長崎と天草地方の潜伏キリシタン関連遺産」保存活用実行委員会

The Nagasaki Magistrates’ Special Mission to Eradicate Christianity


The Expulsion of Missionaries and Destruction of Churches

In 1614, the shogunal ambassador Yamaguchi Suruga no kami Naotomo was dispatched to Nagasaki. Working with the fourth Nagasaki magistrate, Hasegawa Sahyōe Fujihiro, he destroyed 11 churches, including Santa Maria do Monte (which stood on the site of the Nagasaki Museum of History and Culture, where you are now) and Santa Maria da Assunção (which stood on the site of the old Prefectural Office). The missionaries and powerful converts of high rank, like Takayama Ukon, were sent to Nagasaki and thence expelled to Macao and Manila.


Toward the Eradication of Christians

The fifth Nagasaki magistrate, Hasegawa Gonroku Fujimasa, further ratcheted up the suppression drive, destroying the churches and hospitals belonging to the misericordia brotherhoods that remained in Nagasaki in 1620. In 1622, two missionaries planning to infiltrate the country were found in a shogunate-licensed trading ship captained by Hirayama Joachim that was captured by an English navy vessel and towed into Hirado. That incident led to the Great Genna Martyrdom, when 55 Catholics were burned alive or beheaded at Nishizaka in Nagasaki. The victims included Carlo Spinola and other missionaries who were being held in the Suzuta jail in Ōmura and in the jail in Kurusu, as well as the laypeople who had given them shelter, including the children.

The sixth Nagasaki magistrate, Mizuno Kawachi no kami Morinobu, took up his post in 1626. Following strict orders from the shogun to eradicate Christianity, he intensified the crackdown. He offered a reward of 100 bars of silver to anyone willing to inform on missionaries and ordinary Catholics, and in 1628 introduced the practice of testing people’s belief by making them trample on Christian images (ebumi). He drove people who refused to apostatize from their homes, and imitated Matsukura Shigemasa, lord of the Shimabara domain, by torturing people with boiling water at Unzen Jigoku volcanic springs.

Expectations for further success in catching Christians were high when Takenaka Uneme no Kami Shigeyoshi, the seventh Nagasaki magistrate, took up his post in 1629. Not only did he increase the ferocity of the tortures used at Unzen, but he also devised a new ordeal in which people were boiled alive in a large pot. These ferocious suppression measures meted out by the magistrates meant that the inhabitants of Nagasaki, most of whom were Christians, were forced either to abandon their religion or die as martyrs.



PICTURE 1

Torture at Unzen Jigoku Volcanic Springs

Arnoldus Montanus, Ambassades de la Compagnie Hollandaise des Indes d’Orient, vers l’empereur du Japon (1750 edition)


「長崎奉行」之重任:將吉利支丹斬草除根


驅逐傳教士出境、破壞教堂

1614年,「幕府上使・駿河守」——山口直友被派遣至長崎。他與「第四代長崎奉行・左兵衛」——長谷川藤廣一同,破壞了從前位處長崎歷史文化博物館一地的「山之聖瑪利亞教堂」,以及位於縣政府舊址的「聖母升天教堂」等11座教堂。他們還將傳教士及高山右近等較有權勢的信徒集中於長崎,並流放至澳門及馬尼拉。


吉利支丹遭斬草除根

「第五代長崎奉行・權六」——長谷川藤正上任後,針對基督教勢力的鎮壓更為嚴苛。1620年,Misericordia(慈悲組)教堂與醫院等亦遭其毀壞。1622年,平山常陳的御朱印船遭英國艦隊擒獲,並被拖航到平戶,當中竟有兩名企圖潛入日本的傳教士。此一事件成為導火線,造成55名天主教徒被處以火刑及斬首,史稱「元和大殉教」。遭處死者包含被收監在大村的鈴田牢與Kurusu町牢中的、以卡洛斯·斯皮諾拉神父為首的傳教士及藏匿傳教士的信徒,而其中更不乏孩童。

「第六代長崎奉行・河內守」——水野守信於1626年上任。他奉將軍之命,加強鎮壓吉利支丹。若民眾告發傳教士及信徒,可獲賞銀100枚;1628年更導入了踐踏聖畫的「踏繪」儀式,目的為驗明可疑人士是否為基督教徒。此外,若拒絕改信其他宗教,不僅會被逐出家門,更會慘遭浸入雲仙地獄的熱泉中進行拷問,此為仿效島原藩主松倉重政的刑罰方式。

「第七代長崎奉行・采女正」——竹中重義於1629年上任之際,被寄予厚望,同樣奉命加強對吉利支丹的舉發。他不僅將過去的雲仙地獄拷問法變得更加殘忍,甚至想出將活人投進大鍋處以烹煮之刑的狠毒懲罰。由於長崎奉行發明的種種暴虐酷刑,迫使幾乎所有身為吉利支丹的長崎民眾纷纷忍痛棄教或殉教。


(圖1)

於雲仙地獄進行拷問的場景

ArnoldusMontanus《日本遣使紀行》(1750年版)

“长崎奉行”之重任:将吉利支丹斩草除根


驱逐传教士出境、摧毁教堂

1614年,“幕府上使・骏河守”——山口直友被派遣至长崎。他与“第四代长崎奉行・左兵卫”——长谷川藤广一同,摧毁了曾位处长崎历史文化博物馆一地的“山之圣玛利亚教堂”,以及位于县政府旧址的“圣母升天教堂”等11座教堂。他们还将传教士及高山右近等较有权势的信徒集中于长崎,并流放至澳门及马尼拉。


吉利支丹遭斩草除根

“第五代长崎奉行・权六”——长谷川藤正上任后,将针对基督教势力的镇压变得更为严苛。1620年,Misericordia(慈悲组)教堂与医院等亦遭其毁坏。1622年,平山常陈的御朱印船遭英国舰队擒获,并被拖航至平户,当中竟有两名企图潜入日本的传教士。此一事件成为导火索,造成55名天主教徒被处以火刑及斩首,史称“元和大殉教”。遭处死者包含被收监在大村的铃田牢与Kurusu町牢中的、以卡洛斯·斯皮诺拉神父为首的传教士及藏匿传教士的信徒,而其中更不乏孩童。

“第六代长崎奉行・河内守”——水野守信上任于1626年。他奉将军之命,加强镇压吉利支丹。若民众告发传教士及信徒,可获赏银100枚;1628年更导入了践踏圣画的“踏绘”仪式,目的为验明可疑人士是否为基督教徒。此外,若拒绝改信其他宗教,不仅会被逐出家门,更会惨遭浸入云仙地狱的热泉中进行拷问的酷刑,此为仿效岛原藩主松仓重政的刑罚方式。

“第七代长崎奉行・采女正”——竹中重义于1629年上任之际,被寄予厚望,同样奉命加强对吉利支丹的检举。他不仅将过去的云仙地狱拷问法变得更加残忍,甚至想出将活人投进大锅、处以烹煮之刑的狠毒惩罚。由于长崎奉行发明的种种暴虐酷刑,迫使几乎所有身为吉利支丹的长崎民众纷纷忍痛弃教或殉教。


(图1)

于云仙地狱进行拷问的场景

ArnoldusMontanus《日本遣使纪行》(1750年版)

기리시탄 근절이라는 특명을 받게 된 나가사키 부교


선교사의 국외 추방과 교회 파괴

1614년, 막부의 사자(使者)로 야마구치 스루가노카미 나오토모가 나가사키에 파견되었습니다. 야마구치는 제4대 나가사키 부교 하세가와 사효에 후지히로와 함께 지금의 나가사키 역사 문화 박물관의 자리에 있었던 산속 산타 마리아 교회와 옛 현청 부지에 있던 피승천의 성모 교회 등 11곳의 교회를 파괴했습니다. 또한, 선교사와 다카야마 우콘과 같은 유력한 신자들을 나가사키로 불러들여 마카오와 마닐라로 국외 추방했습니다.


기리시탄 근절을 향한 움직임

제5대 나가사키 부교 하세가와 곤로쿠 후지마사는 탄압에 가세하여 1620년, 나가사키에 잔존했던 미제리코르디아(자비조, 慈悲組)의 교회와 병원 등을 파괴했습니다. 1622년에는 영국 함선에 나포되어 히라도로 인항된 히라야마 조친의 고슈인센(막부의 허가를 받은 무역선)에서 일본으로 잠입을 시도하려던 선교사 2명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55명의 가톨릭 신자가 화형 또는 참형을 당한 겐나 대순교가 발생했습니다. 처형을 당한 사람들은 오무라의 스즈타 감옥과 구르스 마을의 감옥에 수용된 카를로 스피놀라 신부를 비롯한 선교사들과 이들을 숨겨준 신자들이었으며, 그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626년에는 제6대 나가사키 부교 미즈노 가와치노카미 모리노부가 취임했습니다. 쇼군에게서 기리시탄을 근절하라는 엄명을 받은 미즈노는 탄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에 선교사와 신자들을 밀고한 자에게 은 100개(은 1개=약 43돈의 막대형 은덩어리)를 하사하고, 1628년부터는 신자를 조사하기 위해 성화상 등을 밟게 하는 ‘에부미’를 실시했습니다. 이에 더해 개종을 거부하는 자를 집에서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시마바라 번의 번주인 마쓰쿠라 시게마사가 했던 것처럼 운젠 지고쿠의 열탕으로 사람들을 고문했습니다.

1629년에 부임한 제7대 나가사키 부교 다케나카 우네메노카미 시게요시는 기리시탄 탄압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다케나카는 운젠 지고쿠의 열탕 고문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산 채로 펄펄 끓는 가마에 집어넣는 등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고문을 새롭게 고안했습니다. 이처럼 나가사키 부교의 잔인한 고문들로 인해 대부분이 기리시탄이었던 나가사키의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신앙을 포기하거나 순교해야만 했습니다.


그림 1                        

운젠 지고쿠에서 고문하는 모습

몬타누스 『일본 견사(遣使) 기행』(1750년판)

長崎奉行が受けたキリシタン根絶の特命


宣教師の国外追放と教会の破壊

1614年、幕府上使 山口駿河守直友が長崎に派遣されました。彼は、第4代長崎奉行 長谷川左兵衛藤廣とともに、現在の長崎歴史文化博物館の場所にあった山のサンタ・マリア教会や、旧県庁舎跡地の場所にあった被昇天の聖母教会など、11の教会を破壊しました。また、宣教師や高山右近などの有力な信徒は長崎に集められ、そこからマカオとマニラに国外追放されました。


キリシタン根絶への動き

第5代長崎奉行 長谷川権六藤正はさらに弾圧に力を注ぎ、1620年、長崎に残っていたミゼリコルディア(慈悲の組)の教会や病院等を破壊しました。1622年、イギリス艦隊の船に拿捕され平戸に曳航されてきた平山常陳の御朱印船(幕府の許可を得た貿易船)中に、日本に潜入しようとした宣教師2人が見つかりました。この事件が引き金となり、55名のカトリック信者が火刑や斬首に処された元和の大殉教が起こりました。処刑されたのは、大村の鈴田牢とクルス町の牢に収容されていたカルロ・スピノラ神父をはじめとする宣教師や、宣教師を匿っていた信者たちで、その中には子どもたちも含まれていました。

第6代長崎奉行 水野河内守守信は、1626年に就任しました。将軍からキリシタン根絶の厳命を受けた水野は弾圧を強化しました。また、宣教師や信徒を密告した者に銀100枚(銀1個=約43匁の棒型の銀の塊)を与え、1628年からは信徒を調べるために聖画等を踏ませる「絵踏み」を始めました。さらに、転宗を拒否する者に対して家から追い出しただけでなく、島原藩主松倉重政に倣って雲仙地獄での熱湯責めを行って人々を拷問しました。

1629年に赴任した第7代長崎奉行·竹中采女正重義は、キリシタン弾圧に拍車をかけました。彼は雲仙地獄での拷問をより残忍にしただけでなく、人々を生きたまま大釜で煮るという新たな過酷な責め苦を考案しました。長崎奉行によるこれらの残忍な拷問により、ほとんどがキリシタンであった長崎の住民は、棄教または殉教を余儀なくされました。


図1                        

雲仙地獄での拷問の様子

モンタヌス『日本遣使紀行』(1750年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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