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おらしょ物語(2世紀半にわたる禁教下に起きた劇的な事件『信徒発見』)

  • 長崎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1-500
作成年度:
2019年
地域協議会名:
「長崎と天草地方の潜伏キリシタン関連遺産」保存活用実行委員会

The “Discovery of the Hidden Christians” Takes Place While the Ban on Christianity Is Still in Force

In December 1864, the missionaries in Nagasaki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a cathedral in Ōura, in the foreign settlement overlooking Nagasaki Bay. It was officially named the Basilica of the Twenty-Six Holy Martyrs of Japan and it overlooked the location of their martyrdom. Since preaching to the Japanese was not yet permitted, the missionaries only served the Westerners from the foreign settlement. Nonetheless, the overarching reason for their return to Japan was to find the Hidden Christians of Nagasaki.


On March 17, 1865, a group of some 15 Japanese men and women from Urakami entered Ōura Cathedral and revealed their faith to Father Petitjean. According to a letter written by Father Petitjean the next day, one of the women in the group approached him saying, “Your heart and our hearts are the same,” and asking where she could find the statue of the Virgin Mary. At the time, Christianity was still banned, as it had been for two and a half centuries. But the so-called “Discovery of the Hidden Christians” (Shinto Hakken in Japanese) galvanized the Europeans who thought that relentless repression had wiped out Japan’s Christian population.


Soon after this incident, the leaders of the various Hidden Christian communities all around Nagasaki began visiting Ōura Cathedral to get guidance from the missionaries, which they then passed on to their own flocks. The organized revival of Catholicism in Japan was underway.


禁教下發生的「信徒發現」事件


1864年12月,抵達長崎的傳教士在面朝大浦長崎灣的外國人居留地,興建全新的教堂,並為其正式取名「日本二十六聖人殉教者聖堂」。而該教堂面對著殉教之地。由於當時尚未允許向日本人傳教,傳教士僅能為居留地的西方人服務。然而他們返回日本的真正目的,實則是為尋找長崎的潛伏吉利支丹。

1865年3月17日,約15名浦上的男女來到大浦天主堂,向珀蒂讓神父自白信仰。據神父隔日寫下的信中記述,當中一名女子走向他後說道:「我們的內心與您無異。」接著更是詢問:「請問聖母瑪利亞像在何處?」——由於當時基督教已被禁止長達兩個半世紀之久,歐洲人認為在嚴苛的打壓下,在日本早已無信徒,因此這起「信徒發現」事件可謂極為震撼。

事件發生後不久,長崎各地吉利支丹聚落的領導人陸續拜訪大浦天主堂,接受傳教士指導,並將內容傳達給各處聚落居民。透過此種組織性方式,日本的天主教得以重振勢力。


(插圖:庄司好孝)

禁教背景下发生的“信徒发现”事件


1864年12月,历经艰辛抵达长崎的传教士在面朝大浦长崎湾的外国人居留地,兴建了全新教堂。它被正式命名为“日本二十六圣人殉教者圣堂”,面对着殉教地点。由于当时尚未允许向日本人传教,传教士的活动对象仅限居留地的西方人。不过他们返回日本的最大目的,则是为了找寻长崎的潜伏吉利支丹。

1865年3月17日,浦上约15名男女来到大浦天主堂,向珀蒂让神父自白信仰。据神父翌日写下的信中记述,当中一名女子走近他说道:“我们的内心与您无异。”接着更是询问道:“请问圣母玛利亚像在何处?”——由于当时基督教已被禁止长达两个半世纪之久,欧洲人认为在严苛的镇压下,日本信徒早已消失,因此这起“信徒发现”事件令其大为震撼。

事件发生后,长崎各地的吉利支丹村落的领导人随即陆续拜访大浦天主堂,接受传教士指导,并将内容传达给各地村落居民。通过这种组织性方式,日本的天主教逐渐得以复兴。


(插图:庄司好孝)

그리스도교의 금교하에 일어난 ‘신자 발견’


1864년 12월, 나가사키를 찾은 선교사들은 오우라의 나가사키 만에 면한 외국인 거류지에 천주당을 세웠다. 건물의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인 순교자 성당’으로, 순교지 방향으로 지어졌다. 아직 일본인에 대한 선교가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거류지에 사는 서양인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돌아온 가장 큰 목적은 나가사키에 남아 있는 잠복 기리시탄을 찾는 것이었다.


1865년 3월 17일, 15명의 우라카미 기리시탄들이 오우라 천주당을 찾아와 프티잔 신부에게 신앙을 고백했다. 신부가 기리시탄과 만난 다음날에 쓴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무리 중 한 여인이 신부의 곁으로 다가와 ‘우리 마음, 당신 마음과 같다’고 말하며 ‘산타 마리아 상은 어디에’라고 물었다. 당시에는 2세기 반에 걸친 그리스도교의 금교기였다. 그러나 이 ‘신도 발견’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탄압으로 인해 일본에는 신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유럽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신도 발견’이 있던 날로부터 나가사키 각지의 기리시탄 취락에서 지도자가 잇따라 오우라 천주당을 방문했고, 선교사의 지도를 받아 각지의 취락으로 전달했다. 일본 가톨릭의 조직적인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다.


(삽화: 쇼지 요시타카)

禁教下で起こった『信徒発見』


1864年12月、長崎にやってきた宣教師たちは大浦の長崎湾に面した外国人居留地に天主堂を完成させた。この天主堂は、正式に「日本二十六聖人殉教者聖堂」と名づけられ、殉教地に向けて建てられた。当時はまだ日本人への宣教は認められていなかったため、宣教師たちは居留地に住む西洋人のために活動を行っていた。しかし、彼らが日本に戻ってきた最大の目的は長崎の潜伏キリシタンを探しだすことだった。


1865年3月17日、浦上のキリシタン15名ほどが大浦天主堂を訪れ、プティジャン神父に信仰を告白した。神父が次の日に書いた手紙によると、集団の女性のひとりが神父のそばに近寄り、「我らのむね、あなたのむねと同じ」と言い、「サンタマリア ご像はどこ」と尋ねた。当時、キリスト教はまだ2世紀半にもおよぶ禁教下にあった。しかし、この『信徒発見』と呼ばれる出来事は、弾圧によって日本には信徒がいなくなったと考えていたヨーロッパの人々を活気づけた。


この出来事の直後から大浦天主堂には長崎各地のキリシタン集落から指導者が相次いで訪れ、宣教師の指導を受けてそれぞれの集落へ伝えた。日本におけるカトリックの組織的な復興が進行していた。


(挿画:庄司好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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