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大安寺 大安寺とは(歴史、成り立ち、概要)

  • 奈良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神社・寺院・教会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0以下
作成年度:
2019年
地域協議会名:
八十八面観音多言語解説整備推進協議会

Daianji Temple


One of Japan’s oldest Buddhist temples, Daianji Temple has undergone several transformations and name changes since its initial construction. Its origins lie in Kumagori Monastery, which was built by Prince Shotoku (574–622), a regent who established a centralized government leading to the early formation of Japan. In 639, Emperor Jomei (593-641), carrying out the late prince’s wishes, constructed the first temple established by Japan’s imperial family. This temple was initially christened Kudara-Otera (Great Temple of Kudara) and later renamed Daikan Daiji (the Great Imperial Temple). In 716, six years after the capital was moved to Heijo-kyo (present-day Nara), the temple was at last given its present name, Daianji. As one of the new capital’s Seven Great Temples (Nanto Shichi Daiji), Daianji’s role was to protect the imperial palace and the nation of Japan, which had just begun to call itself Nihon.


During the Nara period (710–794), Daianji was about 25 times larger than it is now, occupying a space of some 240 hectares. It incorporated most of the Sugiyama Kofun, a keyhole-shaped tomb erected in the fifth century. Two grand pagodas, each seven stories tall, stood in the southern part of the temple grounds. Daianji also hosted a monastery of nearly 900 scholarly monks, including travelers from foreign countries such as China and India.


After suffering fires and earthquakes over the years, Daianji was virtually abandoned in the sixteenth century. Efforts to revive it began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and today it contains nine precious Buddhist statues from the eighth century, all designated Important Cultural Properties. It is renowned as a place to pray for the prevention and healing of cancer, drawing more than 10,000 attendees to its biannual prayer festival.


大安寺


大安寺是日本最古老的佛教寺院之一,起源於相傳在日本建國歷史上舉足輕重的聖德太子(西元574-622)創建的熊凝道場。在聖德太子去世後的西元639年,舒明天皇(西元593-641)繼承其遺志,修建了百濟大寺(在眾多百濟人民居住之地建造的大寺院)。其後成為高市大寺(修建於高市的大寺院),然後又在飛鳥之地遷移並成為大官大寺(天皇的大寺院)。710年首都遷往平城京(現在的奈良市)的6年後,其名更改為大安寺。而且以南都七大寺之一(「南都」一詞意指與京都對比,位於南方的奈良)的身分,肩負起守護天皇家,以及開始使用「日本」一稱的新國家的職責。


奈良時代(西元710-794),大安寺擁有相當於現在的25倍大,約24萬平方公尺的用地。其原有用地內,也包含了5世紀時修建的前方後圓墳的杉山古墳。在大安寺中開設的道場,除了有約900名日本的僧侶之外,還有來自中國和印度等地的僧侶們在此學習佛教的經典。根據考古學調查的結果,當時伽藍的南部建有2座高塔,研判兩者應該都是七重塔。


大安寺在長達幾個世紀中,曾經遭遇火災和地震,到了16世紀左右已形同廢寺。但是其後復興,現在則收藏著8世紀時製作的9尊珍貴的佛像,且均獲指定為重要文化財產。這裡也以封鎖癌症的祈禱聞名,每年舉辦2次的祈禱祭典吸引了超過1萬名的訪客。此外,這裡也是數個佛教巡禮的札所,廣為人知。

大安寺


大安寺是日本最古老的佛教寺院之一,起源于相传在日本建国史上起了重要政治作用的圣德太子(574-622)创建的熊凝道场。圣德太子去世后,舒明天皇(593-641)继承其遗志,于639年修建了百济大寺(在百济人群居之地建造的大寺院)。后来移建并改名为高市大寺(修建于高市的大寺院),之后又在飞鸟地区移建并改名为大官大寺(天皇的大寺院)。710年首都迁往平城京(现在的奈良市)的6年后,寺名更改为大安寺。就这样,大安寺作为南都七大寺之一(“南都”一词意指与京都相比,位于南方的奈良),肩负起守护天皇家族以及刚刚开始使用“日本”这一名称的新国家的职责。


奈良时代(710-794),大安寺占地约24万平方米,大约是现在的25倍。其原有用地内还包括了5世纪时修建的前方后圆坟“杉山古坟”。大安寺开设的道场中,除了约900名日本僧侣之外,还有来自中国和印度等地的僧侣们在此学习佛教经典。考古学调查的结果显示,当时伽蓝的南部建有2座大塔,推测两者应该都是七重塔。


大安寺在数百年中多次遭受火灾和地震之劫,到了16世纪前后已形同废寺。但其后又得以复兴,现在收藏有8世纪时制作的9尊珍贵佛像,且均被指定为重要文化财产。这里也以封印癌症的祈祷闻名,每年举办2次祈祷祭典,届时来访者会超过1万人。此外,这里还是数条佛教巡礼路线上的灵场,广为人知。

다이안지 절


다이안지 절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 중 하나로 일본 건국 역사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 쇼토쿠 태자(574~622년)가 창건했다고 하는 구마고리 도량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쇼토쿠 태자가 사망한 후인 639년에 조메이 천황(593~641년)이 그의 뜻을 이어받아 구다라오데라 절(百濟大寺, 백제대사: 백제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에 세워진 큰 절)을 지었습니다. 그 후 다케치다이지 절(高市大寺: 다케치에 세워진 큰 절)로 바뀌었다가 아스카 지역으로 장소를 옮긴 후에는 다이칸다이지 절(大官大寺: 천황의 큰 절)이 되었습니다. 710년에 수도가 헤이조쿄(현재의 나라시)로 이전된 6년 후에는 그 이름을 다이안지 절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난토 7대 사찰 중 하나로서 천황가와 ‘일본’이라는 국명을 사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로운 나라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나라 시대(710~794년)에 다이안지 절은 현재의 약 25배에 해당하는 약 24만m2의 부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옛 경내 안에는 5세기에 만들어진 전방후원분인 스기야마 고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이안지 절의 도량에서는 일본인 승려 약 900명 외에 중국과 인도 등에서 방문한 승려들도 불교 경전을 공부했습니다. 고고학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에는 가람 남부에 커다란 탑 2개가 세워져 있었으며 둘 모두 칠층탑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다이안지 절은 수세기 동안 화재와 지진을 겪으며 16세기경에는 폐사와 다름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다시 재건되어, 지금은 8세기에 제작된 9구의 귀중한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모두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암의 예방과 치유를 기원하는 장소로도 유명해 1년에 2회 개최되는 기도회에는 1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옵니다. 이 외에 몇몇 불교 순례의 성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大安寺


大安寺は日本最古の仏教寺院のひとつであり、日本の建国の歴史上、重要な政治的役割を果たした聖徳太子(574~622年)が創建したとされる熊凝道場を起源としている。聖徳太子の没後の639年、舒明天皇(593~641年)がその遺志を継いで、百済大寺(百済の民が多く住んだ地に造られた大寺)を建設した。その後、高市大寺(高市に造られた大寺)となり、さらに飛鳥の地で場所を移して大官大寺(天皇のおおてら)となる。710年に都が平城京(現在の奈良市)に移されてから6年後、その名を大安寺と改めた。そうして、南都七大寺のひとつとして、天皇家及び「日本」という呼称を用い始めたばかりの新しい国を守護する役割を担った。


奈良時代(710~794年)、大安寺は、現在の約25倍にあたる約24万平米の敷地を有しており、その旧境内の中には、5世紀につくられた前方後円墳の杉山古墳も含まれていた。大安寺に開かれた道場では、日本の僧侶約900人のほか、中国やインドなどから訪れた僧侶たちも仏教の経典を学んでいた。考古学的調査の結果、当時は伽藍の南部に大きな塔が2つ建てられていて、それらはどちらも七重塔であったと考えられている。


大安寺は何世紀にもわたって火災や地震に見舞われ、16世紀頃には廃寺同然となっていた。しかし、その後再興され、今日では8世紀につくられた9体の貴重な仏像が収められており、そのすべてが重要文化財に指定されている。また、癌封じの祈祷でも知られており、年に2回開催される祈祷の祭りには1万人以上の来訪者がある。また、いくつかの仏教の巡礼の札所としても知られている。

再検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