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旧金沢陸軍兵器庫:石川県立歴史博物館の歴史的なレンガ造りの建物

  • 石川県
ジャンル:
地域の特産物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パンフレット
ワード数:
251-500
作成年度:
2022年
地域協議会名:
いしかわ工芸・文化財デジタルコンテンツ推進協議会

Old Kanazawa Army Armories: Historic Brick Buildings of the Ishikawa Prefectural Museum of History


The Ishikawa Prefectural Museum of History is housed in three long red-brick buildings that served as armories for the Japanese Imperial Army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They were originally constructed in 1909, 1913, and 1914. The buildings are important examples of both turn-of-the-century military architecture and Japan’s short-lived use of brick as a building material.


Historical Context

Early twentieth-century state-built architecture was heavily influenced by Western models. After a two-century period of isolation, Japan’s borders were forcibly opened to trade in 1854 following the arrival of a United States Navy squadron possessing far superior firepower. Newly aware of a power imbalance with Western countries, Japan kicked off a period of rapid modernization. At the time, many Japanese leaders felt the fastest route to closing that gap was adopting elements of Western culture—including architecture. Foreign architects were sometimes invited to design buildings, and in other cases, domestic architects worked independently to replicate the appearance of Western buildings. Because red brick was associated with European architecture, it came into vogue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This launched a flurry of domestic brick production to meet the demand for ambitious government projects, such as the original Tokyo Station. Unfortunately, the material proved poorly suited to a country with frequent earthquakes. It fell out of use after only a few decades.


Key Features

In a renovation project that ran from 1983 to 1990, the exteriors of the three red-brick buildings were restored to their original state. Each of the two-story buildings measures about 90 meters in length and has a steep gable roof covered in Japanese-style clay tiles with ornamental finials. Like many Western-style buildings of the period, the long sides are bilaterally symmetrical. From the double-doored main entrance in the center, each side mirrors the other with pairs of arched windows on both floors interspersed with thick pilasters. The presence of heavy, black iron grates and solid steel shutters on the windows attests to both the value and danger of the artillery and munitions once stored inside. By the time of restorations, all of these steel shutters had been removed—likely smelted down for other uses—but the restoration team was able to recreate them based on a surviving pair found in the attic of Building Three.


Much of the original interiors had to be replaced during the renovations to improve earthquake resistance and allow for adequate housing of the museum collections. However, some original elements were deliberately preserved. In Building Three, visitors can see high into the rafters and spot the rope and pulley system that was used to lift heavy armaments onto the second floor. A display in the lobby of Building Two has preserved parts of the original support structures, such as a brick pile and wooden support beam, to show how the buildings were constructed.


Current Use

After World War II, the structures were used by the Kanazawa College of Art before coming under the management of the prefectural government in 1972. The Ishikawa Prefectural Museum of History took up residence in 1986. Now, the three buildings house the museum’s exhibits and offices, as well as the Kaga-Honda Museum, which displays treasures from the collection of a powerful samurai family.


The Old Kanazawa Army Armories were designated Important Cultural Properties in 1990.

舊金澤陸軍兵器庫:石川縣立歷史博物館歷史悠久的磚牆建築


石川縣立歷史博物館由三棟分別建於西元1909、1913和1914年的長形紅磚建築組成,在20世紀初皆是日本帝國陸軍的兵器庫,不但是世紀之交日本軍事建築重要的代表,也呈現磚塊暫為日本建築材料的例證。


歷史背景

20世紀初,日本由國家興建的建築參考西方,並深受其風格影響。在西元1854年時,因為遭到一支軍事實力更甚於日本的美國海軍分艦隊來到,閉關鎖國兩個多世紀的日本被迫開放邊境貿易。自此日本意識到與西方國家的實力差距,於是展開一系列加快現代化的措施。當時許多日本統治者都認為最快縮小差距的途徑,就是吸收西方文化元素,包括學習西方的建築等。有時人們會邀請外國建築師來設計,有時則完全由日本國內的建築師去模仿西方建築的樣式。19世紀末,象徵歐洲建築風格的紅磚開始在日本流行,這讓日本國內興起生產磚塊的熱潮,以滿足諸多大型政府建案(例如原來的東京車站)需要。可惜的是,這種建築材料非常不適合地震頻繁的日本,導致短短數十年便無人問津。


主要特徵

經過西元1983至1990年的翻新計畫,三棟紅磚建築外部得以恢復原貌。此外,三棟建築皆有兩層樓,長約90公尺,陡峭的山牆屋頂上頭,覆蓋著頂端有裝飾物的日式陶瓷屋瓦。與許多當時的西式建築一樣,建築的長邊也採左右對稱的設計。以中間雙門的正面入口為軸,兩層樓左右兩邊均為相同的拱形窗,兩扇窗之間設有厚重的壁柱。至於窗戶上沉重的黑色鐵柵欄、堅固的鋼製護窗板,則顯示出曾經存放在這的大砲彈藥的價值和危險性。在修復時,窗上的鋼製護窗板都已拆除,很可能是在熔化後作為其他用途,但修復團隊在三號建築的閣樓中,發現一對遺留的護窗板,以此為參考還原了其他的護窗板。


不僅如此,為了提高耐震能力,同時提供足夠的空間存放博物館藏品,大部分原有的內部陳設在修復時經過更換,但也有部分的內部陳設被特地保留下來。在三號建築,參觀者可以看到高處的椽,還能見到繩索和滑輪組,它們曾用於將重型武器運到二樓。二號建築大廳的展示區則保留了磚柱、木造支撐樑等部分原始支撐結構,展示了建築的構造。


目前的用途

建築在二戰後曾由金澤美術工藝大學使用,到了西元1972年開始則由縣政府管理,直到西元1986年成為石川縣立歷史博物館。現在,這三棟建築是歷史博物館的展廳和辦公室,同時作為加賀本多博物館,展出本多家這個強大武士家族的相關藏品。


西元1990年,舊金澤陸軍兵器庫獲指定為日本重要文化財。

旧金泽陆军兵器库:石川县立历史博物馆历史悠久的砖砌建筑物


石川县立历史博物馆由三栋长条形红砖建筑组成,分别建于1909、1913和1914年,在20世纪初曾是旧日本帝国陆军的兵器库。它们是世纪之交日本军事建筑的重要代表,也见证了砖块在日本建筑材料领域的短暂应用。


历史背景

20世纪初,日本由国家兴建的建筑深受西方样板的影响。1854年,一支船坚炮利的美国海军分舰队来到日本,迫使闭关锁国两个世纪的日本开放边境进行贸易。日本由此意识到自身与西方国家的实力差距,展开了一系列加快现代化的举措。当时许多日本领导人认为,缩小该差距最快的途径是吸收西方文化元素,包括学习西方的建筑。有的建筑会邀请外国建筑师来设计,有的则完全由日本国内的建筑师模仿西方建筑的样式设计。作为欧洲建筑风格的象征,红砖在19世纪末开始流行于日本。日本由此兴起砖块生产热潮,以供应诸多大型政府项目(例如原来的东京车站)。很可惜,这种建筑材料非常不适合地震频繁的日本,短短几十年之后便无人问津了。


关键特征

经过1983至1990年的翻新项目,三栋红砖建筑外部得以恢复原貌。每栋两层建筑长约90米,陡峭的山墙屋顶上盖有顶部带装饰的传统日式陶瓦。与当时的许多西式建筑一样,建筑的长边也是中轴对称的设计。以中间双门的正面入口为轴,一层和二层左右两边均为相同的拱形窗,两扇窗之间则建有厚重的壁柱。窗户上沉重的黑色铁栅栏和坚固的铁制帘,显示出曾经存放在这里的大炮弹药的价值和危险性。进行修复时,窗上的钢百叶帘都已被拆除,很可能是被熔炼后用于其他用途。但修复团队在三号建筑阁楼中发现一对遗留的百叶帘,以此为参考对其他位置的窗户进行了还原。


大部分原有内饰在修复时经过更换,以提高抗震能力,并为博物馆藏品提供足够的空间;但部分内饰被特地保留下来。在三号建筑,参观者可以看到高处的椽子之间有绳索和滑轮组,它们曾被用来将重型武器运到二层。二号建筑大厅的一处展示区则保留了部分原始支撑结构,如砖垛和木制支撑梁,以展示建筑的构造。


当前用途

二战后,建筑曾被金泽美术工艺大学使用,至1972年由县政府管理,并于1986年成为石川县立历史博物馆。现在,这三座建筑是历史博物馆的展厅和办公室,同时作为加贺本多博物馆,展出这一强大武士家族的藏品。


1990年,旧金泽陆军兵器库被指定为日本重要文化财产。

구 가나자와 육군 병기지창 병기고: 이시카와현립역사박물관의 역사적인 벽돌건물


 이시카와현립역사박물관은 20세기 초에 구 육군의 병기고로 사용되었던 붉은 벽돌로 지어진 길고 큰 건물 3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3채의 건물은 각각 1909년, 1913년, 1914년에 지어진 것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군사건축물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극히 단기간에 건설된 희소한 벽돌건축물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20세기 초반의 국가 건축은 서양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200년 이상 쇄국정책을 유지했던 일본은 1854년에 군사력에서 일본을 훨씬 능가하는 미국 함대의 내항으로 인해 강제로 개국하게 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 서양 국가들과의 압도적인 국력 차이를 깨달은 일본은 빠르게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지도자들은 건축을 포함한 서양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이러한 격차를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때문에 서양의 건축가들을 초빙했고, 일본 건축가들 역시 독자적으로 서양건축물의 외관 등을 모방해 건축물을 세운 사례도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건축을 연상시키는 붉은벽돌 건물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도쿄역 건설을 비롯한 관공서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일본산 벽돌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지진이 빈번한 일본에서 벽돌은 적합한 건축자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벽돌 사용은 수십 년만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주요 특징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진행된 개수 프로젝트를 통해 3채의 붉은벽돌 건물 외관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모두 2층 구조로 길이는 약 90m에 이르며, 가파른 경사의 기와지붕을 가진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용마루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서양식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건물의 긴 면은 좌우대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이중문 구조의 정문 현관은 양쪽이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으며, 각 층 양쪽에는 아치형 창문과 견고한 붙임기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창문에는 중후한 검은색 철격자와 튼튼한 철제 문이 있는데, 이는 과거 이 건물 내부에 위험성과 가치를 동시에 지닌 포탄과 탄약이 보관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철제 문들은 복원작업이 이루어질 당시 이미 모두 제거된 상태였으나, 복원팀은 제3동 다락방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한 쌍의 철제 문을 참고로 이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개수공사에서는 내진성을 강화하고 소장품을 적절히 보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초기 내부구조의 많은 부분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그 한편으로 의도적으로 보존한 것도 있습니다. 제3동에서는 천장의 서까래 위까지 볼 수 있어 과거 무거운 무기를 2층까지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던 밧줄과 도르래 시스템을 볼 수 있습니다. 제2동의 로비에는 벽돌로 만든 말뚝과 나무로 된 지지용 들보 등 당시 건물의 지지구조 일부가 남아 있어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용도

 이 병기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때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사용했으나, 1972년에 이시카와현이 관리하게 되었으며, 1986년에 이시카와현립역사박물관으로 개관했습니다. 현재 제3동 건물은 박물관 전시실과 사무실 그리고 무가저택의 보물을 전시하는 가가혼다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 1990년에 개최된 특별전 ‘매혹의 일본 바다 문화’에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고고 자료 30점을 대여한 것을 계기로 한국 박물관과의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1991년에는 한국 국립전주박물관과 자매관 협약을 체결하고 교류, 친선, 공동연구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 가나자와 육군 병기고는 1990년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旧金澤陸軍兵器支廠兵器庫:石川県立歴史博物館の歴史的なレンガ造り建造物


 石川県立歴史博物館は、20世紀初頭に旧陸軍の兵器庫として使われていた赤レンガ造りの長大な建物3棟を利用しています。3棟の建物はそれぞれ1909年、1913年、1914年に建てられたもので、19世紀末から20世紀にかけての軍事建築という点に加え、日本ではごく短期間のみ作られていた希少なレンガ建築という点でも重要な建造物といえます。


歴史的背景

 20世紀初頭の国家建築は西洋から大きな影響を受けていました。200年以上におよぶ鎖国を経た日本は1854年、軍事力ではるかに日本に優るアメリカ艦隊の来航により、強制的に開国させられます。欧米諸国との圧倒的な国力の差に気づかされた日本は、急速に近代化の道を歩み始めます。当時の日本の指導者たちは、建築を含めて西洋文化を取り入れることが、その差を縮める早道だと考えました。そのため欧米の建築家たちが招聘されましたが、国内の建築家が独自に西洋の建築物の外観などを模倣して建築する例もありました。19世紀後半、ヨーロッパ建築を連想させる赤レンガの建物はおおいに流行します。東京駅の建設など官公庁の大建築プロジェクトの需要を満たすため、国産レンガの生産が盛んになりました。しかし、地震の多い日本にレンガは不向きな材料であったため、わずか数十年ほどで使われなくなりました。


主な特徴

 1983年から1990年にかけて行われた改修プロジェクトで、3棟の赤レンガの外観が当時の姿に復元されました。いずれも2階建てで、建物は全長約90メートル、急勾配で瓦葺きの切妻屋根に、棟飾りが付いています。この時代の多くの洋風建築と同様、長辺が左右対称になっています。中央の二重ドアの正面玄関は両側が左右対称になっており、各階の両側にアーチ型の窓と強固なつけ柱が配置されています。窓には重厚な黒い鉄格子と頑丈な鉄製の扉があり、かつては内部に価値と危険性を併せ持つ砲弾や弾薬が保管されていた事実を物語っています。これらの鉄製の扉は、修復時点では既にすべて取り外されていましたが、修復チームは、第3棟の屋根裏部屋で発見された現存する1組の鉄製の扉をもとに、これを再現することに成功しました。


 この改修工事では、耐震性の向上と収蔵品の適切な収容を可能にするため、当初の内装の多くを変更する必要がありました。その一方で、意図的に保存したものもあります。第3号棟では垂木の上まで見ることができ、重い兵器を2階まで運ぶのに使われたロープと滑車のシステム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第2棟のロビーには、レンガの杭や木の支え梁など、当時の支持構造の一部が保存され、建物がどのように建てられたかがわか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


現在の用途

 当兵器庫は第二次世界大戦後、一時は金沢美術工芸大学が使用していましたが、1972年に県の管理下に入り、1986年に石川県立歴史博物館として開館しました。現在、第3棟の建物は博物館の展示室や事務室、武家屋敷の宝物を展示する加賀本多博物館として使われています。また1990年に開催された特別展「魅惑の日本海文化」において、韓国国立中央博物館から30点の考古資料を借用したのをきっかけに、韓国の博物館との交流が始まりました。1991年には韓国国立全州博物館と姉妹館協約を締結、交流・親善・共同研究などさまざまな事業を実施しています。


 旧金沢陸軍兵器庫は、1990年に重要文化財に指定されました。

再検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