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大谷地区製錬所跡

  • 島根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媒体利用区分:
看板
ワード数:
251-500
作成年度:
2024年
地域協議会名:
石見銀山多言語解説協議会

Otani Refinery Site


Round holes, unnaturally smooth flat surfaces, and deep diagonal crevices are visible along the moss-covered rock walls here. These marks of human hands are all that remains of a silver refinery that was a key part of the highly specialized economy that centered around the Iwami Ginzan Silver Mine. The refinery is thought to have been operated from the mid-1700s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magistrate appointed by the Tokugawa shogunate (1603–1867) to oversee the silver mine. The holes held roof beams, while the flattened rocks may have been workbenches. The crevices were made by miners digging directly into the hillside to reach silver veins, which in this area were often very close to the surface.

Refineries such as this one were vital to the production of large quantities of high-quality silver. Ore brought here from the mine was first crushed by workers who then sifted through the resulting stones to isolate the parts containing silver. These were then processed using the haifuki (cupellation) method of refining. Haifuki involves smelting copper-containing silver ore together with lead. The silver binds to the lead, forming an alloy. This alloy is then placed on a bed of ash and heated to as high as 850°C, with bellows used to keep the mixture oxidized. The other elements of the alloy eventually melt and are absorbed by the ash, leaving only pure silver. Byproducts of this process have been discovered throughout the Otani site.

Once refined here, the silver began its long journey to the government’s coffers. It was carried down to the magistrate’s office in the town of Omori, where it was weighed to determine its purity and its quantity recorded. The silver was then transported overland to the port at Onomichi and from there by sea to Osaka and Edo (present-day Tokyo).

大谷精煉廠古跡


在覆蓋著青苔的岩壁之上可見數個圓洞和不自然的平滑表面、以及斜切的深刻痕跡。這些人工留下的痕跡都是石見銀山透過採銀礦發展成為經濟中心的證明。據說1700年中期,這間精煉廠就曾在德川幕府(1603-1867期間的武士政權)所管轄的代官所監督之下營運。岩壁上的洞曾被用作支撐屋頂的樑、平滑表面則是工作台。而這些斜切的痕跡都是礦工為了採掘銀礦脈所留下,多數接近山壁的表面。


為製造大量的高品質白銀,像這樣的提煉廠不可或缺。送來這裡的礦石會首先被工人敲碎,而被敲得細碎的石會經過篩選,僅留下含有銀礦的礦石,接著使用灰吹法提鍊。這個工法會將含銅的銀礦和鉛一起精鍊,讓銀溶於鉛之中形成合金。再來把合金放在炭灰之中,利用送風加熱到高達850°C高溫,使鉛氧化。加熱後,合金之中的其他成分會因為氧化沉積而被炭灰吸收,只留下純銀。在大谷遺跡的周遭就曾發掘使用這個工法的副產物。


在這裡提煉後的純銀接著開啟前往政府金庫的漫漫長旅。這些銀礦被運往位於大森的代官所測量純度和記錄數量後,透過陸運送往尾道港,最後再透過海運送往大坂及江戶(現今的東京)。

大谷冶炼厂遗址


长满青苔的岩壁上,随处可见圆形的洞口、非天然形成的光滑岩壁,还有一些斜向的深裂纹。这些人工开凿的痕迹清晰地显示,这里曾是一座冶炼厂的遗址,也是石见银山发展为高度专业化经济的核心部分。据说这家冶炼厂于 18 世纪中期由德川幕府(1603 - 1867,由德川家康创建的、以将军为最高统帅的中央集权武士统治体制)任命的地方官员的监督下投入运营。这些洞口均由岩石支撑,而表面平滑的岩壁则是当时的作业面。这些裂缝是矿工们在山坡上采掘银矿脉时留下的,该地区的银矿脉大多靠近地表。


这类冶炼厂对于实现大规模生产高品质白银至关重要。工人们首先会碾碎从矿山运下来的矿石,进而筛选出含银的碎石。随后运用“灰吹法”(haifuki,也称为杯炼法)予以提炼。所谓灰吹法,是把含铜银矿石与铅共同熔炼。在此过程中,银与铅相互结合,形成合金。然后将合金放在灰盘上,加热至 850°C,同时借助风箱保持混合物的氧化状态。合金里的其他成分最终会被熔化,并被灰渣所吸收,留下纯银。大谷遗址周围可以找到很多这类工艺的副产物。


白银在这里精炼后,便踏上了通往政府金库的漫长路途。这些白银会流转到大森镇的治安官办公室,在那里称重以确定其纯度并记录其数量。然后,白银经陆路运往尾道港,再从那里经海路运往大阪和江户(今东京)。

오타니 지구 제련소 터


이끼로 뒤덮인 암벽에는 둥그스름한 굴과 부자연스럽게 매끄러운 표면, 비스듬히 깊게 파고 들어간 흔적이 보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남긴 이 흔적들은 이와미 은광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도로 전문화된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은 제련소였음을 보여 주는 흔적입니다. 이 제련소는 1700년대 중반부터 이곳에서 은광을 감독하던 도쿠가와 막부 (1603-1867의 무가 정권) 기관인 대관소에서 운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굴은 광부들이 산비탈을 직접 파서 은광맥을 캐낸 노천굴의 흔적으로, 이곳에서는 은광맥이 지표면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제련소는 고품질의 은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열쇠였습니다. 광산에서 운반된 광석은 먼저 잘게 부순 후에 작은 돌을 체로 쳐서 은을 함유한 부분을 선별했습니다. 그리고 하이후키(회분법)라는 제련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하이후키는 구리를 함유한 은광석을 납과 함께 제련하는 것입니다. 은은 납과 결합하여 합금을 형성합니다. 이 합금을 재 위에 올려 놓고 산화되지 않도록 송풍 장치를 이용해 850℃에 달하는 고온으로 가열합니다. 합금의 다른 원소들은 녹아 재에 흡수되고 순은만 남습니다. 오타니 유적지 주변에서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련된 은은 정부의 금고로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모리의 대관소까지 운반되어 그곳에서 은의 순도를 측정하고 수량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은은 육로로 오노미치 항구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배로 오사카, 에도(현재의 도쿄)로 운반되었습니다.

大谷地区製錬所跡


コケに覆われた岩壁には、丸い穴や不自然に滑らかな表面、斜めに深く切り込まれた跡が見られる。人の手が残したこれらの跡は、石見銀山を中心に発展した高度に専門化された経済の重要な結節点であった、かつて銀の精錬所であったことを示す痕跡である。精錬所は、徳川幕府(1603-1867)の機関である、銀山を監督していた代官所によって1700年代半ばからここで運営されていたと考えられている。切り込みは鉱山労働者が山腹を直接掘って銀鉱脈を掘り当てた「露頭掘り」の跡で、この場所では銀鉱脈は地表に近いところにあることが多かった。


このような精錬所は高品質の銀を大量に生産するための鍵だった。鉱山から運ばれてきた鉱石はまず砕かれて、小さくなった石をふるいにかけて、銀を含む部分を選別した。そして、灰吹(はいふき)という精錬方法で処理された。銅を含む銀鉱石を鉛と一緒に製錬することである。銀は鉛と結合し、合金を形成する。この合金を灰の上に置き、酸化させないように人力送風装置を使って850℃にもなる高温まで加熱する。合金の他の元素は溶けて灰に吸収され、純銀だけが残る。大谷遺跡の周辺で、この工程でできた副産物が発掘されている。


ここで精錬された銀は、政府の金庫へと長い旅を始めた。大森の代官所まで運ばれ、そこで銀の純度を量り、数量を記録した。その後、銀は陸路で尾道の港に運ばれ、そこから海路で大坂、江戸へと運ば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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