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Kokindenju no Ma

  • Kumamoto
Topic(s):
Villages/Towns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0
Associated Tourism Board:
Kumamoto City

古今伝授の間


この古い建物は、日本文学や皇室の伝統と絡み合った複雑で豊かな歴史を持っています。古今伝授とは、醍醐天皇(897-930)の命により編纂された「古今集」に収められている詩の難解な解釈を口頭で伝える伝統です。


後に21もの和歌集が編纂されますが、そのうち最古の古今集には1111首が収録されており、うち450首以上が匿名で書かれたもので、それ以外は120人以上の実名の歌人が詠んだものです。細川家初代の熊本藩主の祖父である細川藤孝(1534-1610)は、後陽成天皇(1571-1617)の弟である八条宮智仁親王(1579-1629)に古今集の奥義を教えることになりました。これは伝統的に廷臣の職であったため、武士である藤孝がこの役割に選ばれたことは大変名誉なことでした。藤孝は、元々は京都の御所の敷地内にあったこの建物で、八条宮智仁親王に教えていました。


入母屋造の建物は400年以上の歴史があります。1877年の西南戦争で焼失した茶室の代替として、1912年に水前寺成趣園に移築されました。1955年に一般公開され、直近では2010年に復元されています。内部には興味深いディテールがたくさんあります。例えば、前室の奥にある襖に描かれた青い花の絵は「五七の桐」です。五七の桐はかつて皇室の紋章だったもので、左右の茎が5本、中央の茎が7本の花を咲かせることが「五七」の由来になっています。


眺望の良い部屋

左側にある2枚の屋久杉の襖は、迫力のある木目模様の上に、わずかに黒の顔料が塗られているのが最大の特徴です。徳川幕府(1603-1867)の支援を受けた日本画の有力な流派である狩野派の狩野永徳(1543-1590)が遺した唯一の水墨画です。5本の柱と天井は建築当時のもので、裂け目のあるざらざらとした表面が古さを物語っています。左側には尖ったアーチ型の優雅な火灯窓があり、池の向こうの景色が、山の景色の縮図のように切り取られています。手前の右隅には、「古今伝授の松」として知られる切り株があります。これは、後陽成天皇の弟である細川藤孝にゆかりのあるものです。


詩的正義

1600年、藤考は京都に近い丹後の田辺城で城攻めにより包囲された者の一人でした。藤考は生きて帰れるかどうかわからなかったため、古今集の伝承を守る者として、城内の庭の松を「古今伝授の松」と名付けました。後陽成天皇は、藤考の死で口伝が断絶することを心配して、包囲側に藤考を逃がすように命じました。不安の渦中にあった藤考が心を交わした松は、後に枯れてしまい、切り株と根だけが残りましたが、人生の苦難を偲ぶため、「古今伝授の間」にひっそりと納められました。


奥の部屋の襖に描かれている絵は、海北友松(1533-1613)の襖絵で有名な「竹林七賢図」を再現したものです。


古今傳授之間


這座古老的建築擁有豐富而曲折的歷史,與日本文學和皇室傳統錯綜交織在一起。《古今和歌集》(簡稱《古今集》)是一部由醍醐天皇(885-930)下令編纂的古代和歌詩集。「古今傳授」是一種和歌的傳統教學方式,指僅透過口頭來傳授《古今集》中詩歌的深奧內涵。

《古今集》是日本天皇敕撰和歌集「二十一代集」中的首部,共收錄了1111首和歌,其中450多首是匿名詩作,其他則是當時120多位具名詩人的作品。細川藤孝(1534-1610)是熊本藩第一代細川氏藩主的祖父,也是當時著名的武將和歌人,他被指派向八條宮智仁親王(1579-1629),即後陽成天皇(1571-1617)之弟,講授《古今集》中的深奧知識。這個職位傳統上都由朝臣擔任,細川藤孝作為武士被委以此任無疑是莫大榮幸,他當時就在這座原本矗立於京都御所內的建築中親自口授教導親王。

這座屋頂呈四面坡形的歇山式建築已經有400多年歷史,於1912年遷至水前寺成趣園,以取代1877年在薩摩(今鹿兒島縣)武士向明治政府發起叛亂而導致的「西南戰爭」中被毀的茶室。這棟建築於1955年向公眾開放,最近一次修復是在2010年。建築內部可以發現許多有趣的細節,例如,前廳後面推拉門上的藍色花卉是「五七之桐」,名字中的「五七」指的是兩側的莖上各有5朵花,而中間的莖上則有7朵花。這曾是日本皇室的紋章,現在是日本政府的專用徽章。


景觀房間

左邊兩扇推拉門由「屋久杉」(原生於屋久島、樹齡很高的古杉樹)製成,最顯著的特徵是強而有力的木紋圖案上帶著幾片淡淡的黑色墨蹟,這是日本畫頗具影響力的畫派——狩野派的狩野永德(1543-1590)唯一存世的水墨畫遺作,此畫派一向受到德川幕府(1603-1867)的支持。五根立柱和天花板是最初保留下來的建築,從粗糙開裂的表面就可以知道其年代已久。左邊是一扇優雅的火燈窗,將整個池塘的景色框起來,仿佛微縮的山景。右邊前方一角擺放著一棵樹樁,被稱為「古今傳授之松」,它與把《古今集》傳授給後陽成天皇之弟的細川藤孝有關。


世間因果

1600年,身為丹後(京都附近)田邊城主的細川藤孝與手下一起遭到圍攻。細川藤孝作為《古今集》的口授傳統的守護者,不知自己能否脫險,便將田邊城庭園中的一棵松樹命名為「古今傳授之松」。後陽成天皇擔心萬一細川藤孝離世,《古今集》的口授也會隨之終結,因此下令讓圍攻方將他放走。這棵松樹在藤孝極度焦慮的時期成為其交流對象,之後卻枯萎死去,只剩下了樹樁和根部,被小心翼翼地安放在「古今傳授之間」中,提醒人們不忘世間滄桑。

後部內室推拉門上的繪畫,再現了海北友松(1533-1613)著名的屏風畫《竹林七賢》。

古今传授之间


这座古老的建筑拥有丰富而曲折的历史,与日本文学和皇室传统错综交织在一起。《古今和歌集》(简称《古今集》)是一部由醍醐天皇(885-930)下令编纂的古代和歌诗集。“古今传授”是一种和歌的传统教学方式,指通过口头来传授《古今集》中诗歌的深奥内涵。

《古今集》是日本天皇敕撰和歌集“二十一代集”中的首部,共收录1111首和歌,其中450多首为匿名诗作,其他则是当时120多位具名诗人的作品。细川藤孝(1534-1610)是熊本藩第一代细川氏藩主的祖父,也是当时著名的武将和歌人,他被指派向后阳成天皇(1571-1617)之弟八条宫智仁亲王(1579-1629)传授《古今集》中的深奥知识。这个职位传统上都由朝臣担任,细川藤孝作为武士被委以此任无疑是莫大荣幸,他当时就在这座原本矗立于京都御所内的建筑中亲自口授教导亲王。

这座屋顶呈四面坡形的歇山式建筑已经有400多年历史,于1912年迁至水前寺成趣园,以取代1877年在萨摩(今鹿儿岛县)武士向明治政府发起叛乱而导致的“西南战争”中被毁的茶室。该建筑于1955年向公众开放,最近一次修复是在2010年。在建筑内部可以发现许多有趣的细节,例如,前厅后面推拉门上的蓝色花卉是“五七之桐”,名字中的“五七”指的是两侧的茎上各有5朵花,而中间的茎上则有7朵花。它曾经是日本皇室的纹章,现在是日本政府的专用徽章。


景观房间

左边两扇推拉门由“屋久杉”(原生于屋久岛、树龄很高的古杉树)制成,最显著的特征是强有力的木纹图案上带着几片淡淡的黑色墨迹,这是日本画颇具影响力的流派——狩野派的狩野永德(1543-1590)唯一存世的水墨画遗作,此画派一向受到德川幕府(1603-1867)的支持。五根立柱和天花板是最初保留下来的建筑,从粗糙开裂的表面就可得知它们年代已久。左边是一扇优雅的火灯窗,将整个池塘的景色框起来,仿佛微缩的山景。右边前方一角摆放着一棵树桩,被称为“古今传授之松”,它与把《古今集》传授给后阳成天皇之弟的细川藤孝有关。


世间因果

1600年,身为丹后(京都附近)田边城主的细川藤孝与手下一起遭到围攻。细川藤孝作为《古今集》的口授传统的守护者,不知自己能否脱险,便将田边城庭园中的一棵松树命名为“古今传授之松”。后阳成天皇担心一旦细川藤孝离世,《古今集》的口授也会随之终结,因此下令让围攻方将他放走。藤孝在极度焦虑时期与之交流的这棵松树后来枯萎死去,只剩下了树桩和根部,它被小心翼翼地安放在“古今传授之间”中,提醒人们不忘世间沧桑。

后部内室推拉门上的绘画,再现了海北友松(1533-1613)著名的屏风画《竹林七贤》。

고킨덴주노마


고킨덴주노마는 일본 문학 및 황실 전통와 관련된 복잡하고 다채로운 역사를 지닌 오래된 건물입니다. 고킨덴주(古今傳受)란, 다이고 천황(897-930)의 명으로 편찬되어 ‘고금집(古今集)’에 수록된 일본 정형시인 와카에 대한 난해한 해석을 구두로 전승하는 전통을 뜻합니다.


총 21개의 칙찬 와카집(천황 또는 상황의 명으로 편찬된 와카집)이 편찬되었는데 1,111수가 수록된 가장 오래된 고금집에는 그중 450수 이상이 익명으로 지어졌으며, 그 외에는 120명이 넘는 시인이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지은 와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호소카와 가문 초대 구마모토번의 번주인 호소카와 다다토시의 할아버지 호소카와 후지타카(1534-1610)는 고요제이 천황(1571-1617)의 동생인 하치조노미야 도시히토 친왕(1579-1629)에게 고금집 해석을 전수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전통적으로 귀족 관료가 담당해야 했는데, 무사인 후지타카가 이 역할을 맡게된 것은 매우 명예로운 일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고킨덴주노마는 본래 교토고쇼 부지에 있던 팔작집 지붕의 건물로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1877년, 세이난 전쟁으로 소실된 다실을 대체하고자 1912년에 스이젠지 조주엔 정원으로 이설되었습니다. 1955년부터 일반 공개되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10년에 복원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부적인 내부 장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전실 안쪽의 맹장지에 그려진 푸른 꽃의 그림은 ‘고시치노키리(5·7의 오동나무)’입니다. 한때 오동나무는 황실의 문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좌우 줄기가 5개, 가운데 줄기가 7개의 꽃을 피운다고 하여 ‘고시치노키리’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전망 좋은 방

왼쪽에 야쿠 삼나무가 그려진 2장의 맹장지는 박진감 넘치는 나뭇결무늬 위에 소량의 검은색 안료를 덧칠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도쿠가와 막부(1603-1867)의 지원을 받았던 당시 일본화의 유력 유파인 가노파의 가노 에이토쿠(1543-1590)가 남긴 유일한 수묵화입니다.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5개의 기둥과 천장은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까칠까칠한 표면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뾰족한 아치형의 창문이 있으며 창문 너머로 연못의 먼 경치를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산 풍경을 담아낸 미니어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집니다. 바로 앞 오른쪽 구석에는 ‘고킨덴주노마쓰(고금 전수의 소나무)’로 알려진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이 그루터기는 고요제이 천황의 동생인 호소카와 후지타카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고킨덴주노마쓰

1600년, 후지타카는 교토와 가까운 단고 지역의 다나베성에서 벌어진 공성전으로 인해 포위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후지타카는 자신이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금집의 전승을 지키는 자로서 성내 정원에 있는 소나무에 ‘고킨덴주노마쓰(고금 전수의 소나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요제이 천황은 후지타카의 죽음으로 인해 전승이 단절될 것을 염려하여 포위하고 있는 자들에게 후지타카를 풀어주도록 명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불안함을 느꼈던 후지타카가 마음을 나눴다고 알려진 이 소나무는 훗날 시들어 그루터기와 뿌리만 남았는데, 인생의 고난을 회상하고자 ‘고킨덴주노마’에 고요히 안치되었습니다.


안쪽 방에 그려진 맹장지 그림은 가이호 유쇼(1533-1613)가 그린 유명한 ‘죽림칠현도’(竹林七賢圖)를 재현한 것입니다.

Kokindenju no Ma


This ancient building has a rich and complex history that is intertwined with Japanese literature and imperial family traditions. Kokindenju is the tradition of orally passing on the esoteric interpretations of the poems in the Kokinshu, a collection compiled at the command of Emperor Daigo (r. 897–930).


The first of an eventual 21 collections, the Kokinshu contained 1,111 poems, more than 450 of which were anonymously written; the others were composed by over 120 named poets. Hosokawa Fujitaka (1534–1610), the grandfather of the first-generation Hosokawa lord of Kumamoto, was assigned to teach the Kokinshu’s secrets to Prince Hachijo Toshihito (1579–1629), the younger brother of Emperor Go-Yozei (1571–1617). Since this was a position traditionally filled by courtiers, it was a great honor for Fujitaka, a samurai, to be chosen for the role. Fujitaka taught the prince in this building, which originally stood on the grounds of the palace in Kyoto.


The hip-and-gable roofed structure is more than 400 years old. It was moved to Suizenji Jojuen Garden in 1912 to replace a teahouse that was destroyed in the 1877 Satsuma Rebellion. The building was opened to the public in 1955 and most recently restored in 2010. There are many interesting interior details. The blue floral paintings on the fusuma sliding doors at the back of the front room, for example, are go-shichi no kiri, “five-seven paulownia.” The paulownia was once the crest of the Japanese imperial family; the “five-seven” part of the name deriving from the fact that the stalks on either side have five blossoms, while the one in the center has seven.


Room with a View

The most striking feature of the two sliding doors of yakusugi cedar on the left are a few faint patches of black pigment on the powerful wood-grain pattern. This is all that remains of an ink painting by Kano Eitoku (1543-1590) of the Kano school, an influential school of Japanese painting that was supported by the Tokugawa shogunate (1603-1867). Five of the pillars and the ceiling are original and their rough, splintered surfaces show their age. On the left is an elegant pointed-arch-shaped katomado window that frames the view across the pond like a mountain landscape in miniature. In the right-hand front corner is a tree stump known as the kokindenju no matsu, literally the “oral-transmission-of-Kokin-poetry pine.” This is associated with Hosokawa Fujitaka, who served as tutor to Emperor Go-Yozei’s younger brother.


Poetic Justice

In 1600, Fujitaka was among the men who came under siege at Tanabe Castle in Tango near Kyoto. Unsure whether he would make it out alive, Fujitaka, as guardian of the Kokinshu oral tradition, named a pine in the castle garden the kokindenju no matsu. Emperor Go-Yozei was worried that Fujitaka’s death would bring the oral tradition to an end and ordered the besieging side to let him go. The pine tree that Fujitaka communed with in this time of high anxiety later withered and died, leaving only the stump and roots, which were discreetly placed in the Kokindenju no Ma as a reminder of the vicissitudes of life.


The paintings on the sliding doors in the room at the rear of the building are a reproduction of Seven Sages in a Bamboo Grove, the famous fusuma paintings by Kaiho Yusho (1533–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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