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Reigando Cave

  • Kumamoto
Topic(s):
Shrines/Temples/Churches Public Works & Institutions (Museums, etc.)
Medium/Media of Use:
Web Page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0
Associated Tourism Board:
Kumamoto City

霊巌洞


霊巌洞は、伝説の剣豪・宮本武蔵(1584-1645)が晩年の2年を過ごした場所として有名です。南北朝時代(1336–1392)に禅を日本に初めて伝えた中国の僧・東陵永璵が創建した禅寺・雲巌禅寺の境内に位置しています。


約50年前に建てられた現在の社殿の隣には泉があり、苔むした石の上から水が湧き出ています。参拝客は武蔵と同じ水源から飲むことができます。


明治時代の破壊行為

洞窟への道中には苔むした丘の斜面があり、座っている石像が点在していますが、その多くは首がありません。これらは、仏陀の弟子である500人の羅漢であり、しばしば困惑した表情や滑稽な表情で描かれています。石像は、地元の商人である渕田屋儀平が寺に提供したものです。18世紀初頭、儀平が佐賀で24年の歳月をかけて彫らせました(武蔵が住んでいた頃には存在していませんでした)。これらの石像は、政府が明治(1868–1912)初期、仏教が外国からの輸入品であり、日本固有の神道よりも必然的に劣っていると非難したため、破壊されてしまいました。


武蔵の死

武蔵は熊本に引っ越してきた時点ですでに50代後半であり、人生の終わりが近づいていることを知っていました。武蔵はここで、剣術と人生の実践的な指針となる『五輪書』を執筆しました。武蔵が禅寺に隠居することに違和感はありませんでした。「剣と禅は一如である」。彼は、剣術と禅を、剣禅一如という言葉に表されているように、真の自己を見出すことにつながる相補的な修練であると考えていたのです。武蔵は洞窟の中の大きな岩の上に座って瞑想したと言われています。当時は洞窟の前の山腹には木が少なかったので、西にある海まで見渡せたことでしょう。


靈巖洞


傳奇「劍豪」宮本武藏(1584-1645)在雲巖禪寺的靈巖洞度過了他生命中最後兩年。雲巖禪寺由將禪宗首次引入日本的中國元朝僧人東陵永璵(?-1365)創立,建造於日本南北朝時代(1336-1392)。

現在的寺廟建築大約建於50年前,泉水從寺廟旁一塊佈滿青苔的石頭下汩汩冒出,參觀者可以嘗一嘗宮本武藏當年喝過的泉水。


明治時代的破壞行為

在通往洞窟的山坡上長滿青苔,點綴著許多無頭的坐姿石像。這些是佛陀的弟子五百羅漢,祂們常常被刻畫著困惑或是滑稽的表情。在18世紀早期,一位當地商人渕田屋儀平在佐賀花了整整24年請人雕刻了這些佛像(宮本武藏居住時它們還不在此處),並送給了雲巖禪寺。可惜在明治時代(1868-1912)早期,政府下令「神佛分離」,同時貶低外來的佛教,提升日本本土的神道教信仰,實施了「廢佛毀釋」政策,這些佛像就在那時遭到毀壞。


宮本武藏之死

宮本武藏搬到熊本時已經56歲,知道自己時日無多。正是在靈巖洞內,他創作了《五輪書》,這是一部實用的劍術、兵法和人生指南。對於宮本武藏來說,退隱禪寺並無違和感,相反地,他認為劍術和禪的修煉是互補的,可以借此發現真我,正如「劍禪一如」這個詞所表達的意思。據說,宮本武藏會坐在洞中一塊大石上打坐冥想,當時洞前山坡上的樹木稀少,可以直接看到西面的大海。

灵岩洞


传奇“剑豪”宫本武藏(1584-1645)在云岩禅寺的灵岩洞度过了他生命中最后两年。云岩禅寺由将禅宗首次引入日本的中国元朝僧人东陵永玙(?-1365)创立,建造于日本南北朝时代(1336-1392)。

现在的寺庙建筑大约建于50年前,泉水从寺庙旁一块布满青苔的石头下汩汩冒出,来访者可以尝一尝宫本武藏当年喝过的泉水。


明治时代的破坏行为

在通往洞窟的山坡上长满青苔,散布着许多无头的坐姿石像。他们是佛陀的弟子五百罗汉,常常被刻画成困惑或是滑稽的表情。在18世纪早期,一位当地商人渕田屋仪平在佐贺花了整整24年请人雕刻了这些佛像(宫本武藏居住时它们还不在此处),并把它们送给了云岩禅寺。可惜在明治时代(1868-1912)早期,政府下令“神佛分离”,同时为了提升日本本土的神道教信仰,贬低外来的佛教,实施了“废佛毁释”政策,这些佛像就在那时遭到损毁。


宫本武藏之死

宫本武藏搬到熊本时已经56岁,知道自己时日无多。正是在灵岩洞里,他创作了《五轮书》,这是一部实用的剑术、兵法和人生指南。对于宫本武藏来说,退隐禅寺并无违和感觉,相反,他认为修炼剑术和修禅是相辅的,可以借此发现真我,正如“剑禅一如”这个词所表达的意思。据说,宫本武藏会坐在洞中一块大石上打坐冥想,当时洞前山坡上的树木稀少,可以直接看到西面的大海。

레이간 동굴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가 생애 마지막 2년을 보낸 곳으로 알려진 레이간도 동굴은 난보쿠초 시대(1336-1392)에 선(禪)을 일본에 처음 들여온 중국의 승려, 동릉영여(東陵永璵)가 창건한 선사(禪寺)인 운간젠지 절의 경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약 50년 전에 지어진 지금의 본당 옆에는 이끼 낀 돌 위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곳에서 당시 무사시가 마셨던 물을 마셔볼 수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파괴 행위

동굴로 향하는 길을 따라 비탈진 곳에는 앉아 있는 석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대부분 목이 없는 형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백나한’이라고 불리며 석가의 제자 500명을 새긴 석상으로 곤혹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간젠지 절의 오백나한상은 18세기 초, 구마모토의 상인이었던 후치다야 기헤이가 사가 지방의 석공에게 부탁하여 24년의 세월에 걸쳐 기진한 것입니다(무사시가 생존해 있을 무렵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백나한상은 메이지 시대(1868-1912) 초기, ‘외국에서 들여온 불교는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보다 필연적으로 열등하다’는 당시 정부의 방침 아래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무사시의 죽음

구마모토에 초대받아 이주한 시점에 이미 50대 후반이었던 무사시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사시는 이곳에서 검술과 인생의 실천적인 지침이 되는 『고린노쇼(五輪書)』를 집필했습니다. ‘겐젠이치뇨(劍禪一如)’ 즉, 궁극의 검술은 선(禪)의 경지와 같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검술의 수련이 진정한 자아의 발견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던 무사시에게는 선사에 은거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무사시는 동굴 안의 큰 바위에 올라앉아 명상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동굴 앞 산 중턱에는 나무가 적어 서쪽에 있는 바다까지 바라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Reigando Cave


Reigando Cave is famous as the place where legendary swordsman Miyamoto Musashi (1584–1645) spent the last two years of his life. It is located in the precincts of Unganzenji Temple, a Zen temple founded in the Nanbokucho period (1336–1392) by Toryo Eiyo, the Chinese priest who first brought Zen to Japan.


Next to the current temple building, which dates from around 50 years ago, is a spring where water bubbles up from a moss-covered stone. Visitors can drink from the same water source as Musashi.


Meiji-era Vandalism

On the way to the cave is a mossy hillside dotted with seated stone figures, many of them headless. These are the 500 rakan (arhats), the disciples of Buddha who are often depicted with puzzled, even comical expressions. They were presented to the temple by Fuchidaya Gihei, a local merchant. He had them carved in Saga over a 24-year period in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thus they were not here when Musashi was in residence). They were vandalized in the early Meiji era (1868–1912) when the government denounced Buddhism as a foreign import that was necessarily inferior to Japan’s native Shinto beliefs.


The Death of Musashi

Already in his late 50s when he moved to Kumamoto, Musashi knew that he was approaching the end of his life. It was here that he composed The Book of Five Rings, a work that serves as a practical guide to swordsmanship and to life. There was nothing incongruous about Musashi retiring to a Zen temple. He saw sword-fighting and Zen as similar and complementary practices that led to the finding of the true self, as expressed in the phrase kenzen-ichinyo: “The sword and Zen are one.” Musashi is said to have meditated while sitting on top of the large rock in the cave. In his day there were fewer trees on the mountainside in front of the cave, so he would have been able to see all the way to the sea in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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