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he Story of Otaru

  • Hokkaido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Villages/Towns
Medium/Media of Use:
App, QR code, etc. Pamphlet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3
Associated Tourism Board:
otarushi nihon isan suishin kyogikai

小樽にまつわるストーリー


 映画「Love Letter」の舞台であり、ソウル特別市江西区とも姉妹都市提携を結ぶ①小樽のストーリーの中心はこの町の市民です。小樽が小さな漁村から主要な貿易拠点へと変遷した際に中心となった小樽市民は、現在では史跡保護における日本のリーダーになっています。19世紀にニシンで財を成すために北の辺境地に移住してきた漁師をはじめとして、小樽は開拓者精神により突き動かされてきました。


 19世紀の終わりになると、明治政府(1868年–1912年)が資源の豊富な北の島である北海道を開拓し、人を定住させることを決め、小樽は新天地の中心となりました。1882年には、内陸の鉱山から小樽港に石炭を輸送するために北海道初の鉄道が開通し、その石炭のおかげで政府による工業化が加速しました。日本の大手銀行が、増加を続ける貿易商や商人、海運会社からの要求に応じ、この町に支店を設立したことにより、1920年代まで小樽は北海道の経済の中心でした。


 1960年代になると国のエネルギーの主流が石炭から石油へと移り変わりました。その結果、小樽の経済力は徐々に衰退し、小樽は石炭の積み出し港としての地位を失いました。その頃には使われなくなった小樽運河を埋め立てて倉庫を取り壊し、新しい道路を作る計画が持ち上がりました。すると、小樽運河を守ろうという市民運動が起こり、数年に及ぶ話し合いの末、市当局が計画を修正しました。


 1980年代には小樽運河の一部を埋め立て、小樽運河の残った部分に沿って遊歩道が建設されました。小樽は歴史的建造物を別の用途に使いながらも史跡の保護に成功した町として、新たな地位を確立しました。この市民主導の動きが日本各地に影響を及ぼし、都市の発展と史跡保護のバランスについて考えるきっかけとなりました。

小樽的故事


小樽市民是小樽故事的主角,也是推動這座城市從小漁村發展為重要港口,乃至今日的日本文化遺產保護領軍者的核心力量。19世紀,懷抱著財夢的漁民來到這裡捕撈鯡魚,從那時起,開拓精神就不斷推動著小樽發展。

19世紀晚期,明治政府(1868-1912)決定開發北海道,鼓勵人們移居這座資源豐富的北部島嶼,小樽很快成為了新興開拓地區的樞紐。1882年,北海道第一條鐵路通車,島內開採的煤炭被運送到小樽港,為政府提供了工業化的核心能源。因為貿易商、各類商家和航運公司的業務量不斷增加,日本的主要銀行也紛紛在這座城市設立支行。到了1920年代,小樽已經成為北海道的金融中心。

進入1960年代後,隨著日本的主要能源需求從煤炭轉向石油,小樽的經濟很快衰退,這座城市失去了煤炭運輸港的重要地位。就在同一時期,一項填平小樽運河、拆除舊倉庫、新建道路的計畫被提上了日程,引發了當地市民掀起的運河守護運動。歷經數年抗爭,市府最後調整了計畫。

1980年代,部分運河被填平,保留下來的河段沿岸修建了步道。因為成功保護歷史遺產、靈活利用歷史建築,小樽贏得了全新的城市身份。這場由市民引領的運動影響了全國各地的城市,並引發了一場對城市如何兼顧發展和文化遺產保護的思考。

小樽的故事


小樽市民是小樽这座城市故事的主人公,也是将这座城市由小渔村发展为重要港口,乃至如今日本遗产保护领军者的核心力量。19世纪,渔民们来到这处北方开拓前哨地区捕捞鲱鱼,以求发家致富,从那时起,开拓精神就不断推动着小樽发展。

19世纪晚期,明治政府(1868-1912)决定开发北海道,并鼓励人们移居这座资源丰富的北部岛屿,小樽很快成为了这一新开拓地区的心脏。1882年,北海道第一条铁路通车,岛内开采的煤炭被运送到小樽港,成为政府工业化的核心能源。日本主要银行纷纷在这座城市设立分支机构,以应对日益增长的贸易商、各类商家和船运公司的业务需求。到了20世纪20年代,小樽已经成为了北海道的金融中心。

进入20世纪60年代后,随着日本的主要能源需求从煤炭转向石油,小樽的经济很快衰退,这座城市失去了它身为煤炭运输港的重要地位。就在同一时期,一项填埋小樽运河、拆除旧仓库、新建道路的计划被提上议事日程。本地市民自发掀起了守护运河的草根运动,历经数年抗争,市政当局最终调整了计划。

20世纪80年代,运河的一部分被填平,保留下来的河段沿岸修建了步道。小樽因成功保护城市历史遗产、灵活开发利用历史建筑而重新得到认可。这场由市民引领的运动影响了全国各地的城市,并引发了一场该如何在经济发展与文化遗产保护之间寻求平衡的思考。

오타루에 얽힌 스토리


 영화 ‘러브 레터(Love Letter)’의 무대이자 서울특별시 강서구와도 자매결연을 맺은 오타루에 얽힌 스토리의 중심은 이 도시의 시민들입니다. 오타루가 작은 어촌에서 주요 무역 거점으로 변모했을 때 중심이 된 오타루 시민들은 현재 일본에서 사적 보호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19세기에 청어로 부를 쌓기 위해 북쪽의 변방 지역으로 이주해 온 어부들을 비롯해 오타루는 개척자 정신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메이지 정부(1868년~1912년)가 자원이 풍부한 북쪽 섬인 홋카이도를 개척하고 사람을 정착시키기로 하면서 오타루는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1882년에는 내륙의 광산에서 오타루 항구로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었고 이 석탄 덕분에 정부가 추진하는 공업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일본의 대형 은행이 계속 증가하는 무역상과 상인, 해운 회사의 요구에 따라 이 도시에 지점을 설립함으로써 1920년대까지 오타루는 홋카이도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국가의 에너지 주류가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갔습니다. 그 결과 오타루의 경제력은 서서히 쇠퇴했고 오타루는 석탄 선적항으로서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사용하지 않게 된 오타루 운하를 매립하고 창고를 철거하여 새로운 도로를 만드는 계획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자 오타루 운하를 지키자는 시민운동이 일어났고 수년에 걸친 논의 끝에 시 당국이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오타루 운하의 일부를 매립하고 오타루 운하의 남은 부분을 따라 산책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오타루는 역사적 건축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서도 사적의 보호에 성공한 도시로서 새로운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이러한 시민 주도의 운동이 일본 각지에 영향을 미치며 도시 발전과 사적 보호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The Story of Otaru


Otaru’s people are central to the story of the city and its transformation from a small fishing village to a major shipping hub and today a national leader in heritage preservation. Starting with the fishermen who moved to this northern outpost to make their fortunes from herring in the nineteenth century, Otaru has been driven by a pioneer spirit.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the Meiji government (1868–1912) resolved to develop and settle the resource-rich northern island of Hokkaido, and Otaru became a pulsing hub of the new frontier. In 1882, Hokkaido’s first railway opened to transport coal from inland mines to the port at Otaru, and the coal helped fuel the government’s industrialization drive. Major Japanese banks established branches in the city to cater to the growing numbers of traders, merchants, and shipping companies. By the 1920s Otaru was the financial center of Hokkaido. 


In the 1960s, the main source for the nation’s energy needs shifted from coal to oil. Otaru’s financial vigor diminished as a result, and the city lost its status as a coal shipping port. In the same decade, a plan was proposed to reclaim the canal that had fallen into disuse, demolish warehouses, and build new roads. A grassroots citizens’ movement arose to protect the canal, and after years of debate the city authorities modified the plan. 


Part of the canal was reclaimed in the 1980s, and a promenade was constructed along the remaining section. Otaru gained a new identity as a city that successfully preserved its heritage while repurposing many historical buildings. The citizen-led movement influenced other cities across the country to consider how to balance development and pre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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