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야스다가미 종이

  • 와카야마
장르:
지역 특산물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24
지역 협의회명:
Aridagawacho

Yasudagami Paper


Yasudagami is a variety of handmade Japanese paper (washi) characterized by its durability and its pure white color. It has been produced in Aridagawa’s historic Shimizu district for around 360 years. Yasudagami is sometimes referred to as “Kishū handmade paper” after the former Kishū domain (now Wakayama Prefecture).


History of Yasudagami

Three of the most valuable commodities in early modern Japan were rice, salt, and paper. When Tokugawa Yorinobu (1602–1671) became daimyo of Kishū in 1619, he learned that the domain produced rice and salt but not paper. To remedy this, Yorinobu ordered the village headman Kasamatsu Satayū (1598–1673) to establish papermaking workshops in Aridagawa. Satayū attempted to learn the craft by traveling to other domains, but he was turned away by artisans who wanted to protect their trade secrets. Satayū then conceived a clever plan: he sent three handsome young men to settle in the papermaking district of Yoshino, in present-day Nara Prefecture. The men were gradually accepted into the community and eventually married local women, all of whom were paper artisans. The men then returned to Aridagawa with their brides, whose knowledge helped Aridagawa establish its own paper industry. At its peak, there were as many as 400 households producing paper for umbrellas, fans, documents, and other common items.


Making Yasudagami

The making of Yasudagami is a long and difficult process that requires refined skill and experience. Even today, most of the work is done by hand. The paper’s primary ingredient is the bark of the kōzo mulberry varietal, which is harvested in January. The bark is stripped, washed, and left to cure in the winter wind, after which it is boiled, picked clean, and then submerged in water and beaten to soften and separate the fibers. The fibers are then soaked together with neri, a viscous substance extracted from the roots of the sunset hibiscus, which acts as a binder. Different amounts of binder are used to match the humidity and temperature; the ratio is determined wholly through experience and intuition. A wooden frame with a screen is dipped into the slurry and shaken until an even layer of pulp forms. The resulting sheets are then pressed to remove excess water and painstakingly brushed onto wooden drying boards. If brushed too firmly, the sheets will tear; if not brushed firmly enough, the sheets will fail to adhere to the boards and shrink when they are dried in the sun.


Yasudagami Today

In the 1900s, competition from mass-produced paper and Western-style canvas umbrellas dramatically reduced the market for Japanese paper, and production of Yasudagami nearly died out. A devastating 1953 flood destroyed many of the remaining paper workshops. In 1979, the surviving papermakers banded together to create an organization to pass on their skills and generate interest in the craft. Their vision led to the Warashi Hands-On Activity Center, a fully operational paper workshop where visitors can try making washi themselves.

保田紙


保田紙は、白くて破れにくいのが特徴の手漉き和紙の一種である。約360年前から歴史ある有田川の清水地区で生産されてきた。旧紀州藩(現在の和歌山県)にちなんで紀州手漉き和紙と呼ばれることもある。


保田紙の歴史

近世の日本では、米、塩、紙の3つが最も重宝されていた。1619年に徳川頼宣(1602-1671)が紀州藩主になったとき、彼の領地には米と塩はあったが、紙が生産されていないことを知った。これを改善するため、頼宣は庄屋であった笠松佐太夫(1598-1673)に命じて有田川に紙漉き場を作らせた。佐太夫は他藩の紙漉き場を訪ねて技術を学ぼうとしたが、職人たちが自らの企業秘密を守ろうとしたため、門前払いを食らった。そこで佐太夫は一計を案じ、3人の美男子を現在の奈良にある吉野の紙漉き地区に移住させた。彼らは徐々に地域に受け入れられ、やがて地元の紙漉き職人の女性と結婚した。そして男たちは、自分たちの製紙業を確立するための知識を携えて、花嫁とともに有田川町に戻った。最盛期には、傘や扇子、書類などの紙を作る家が400軒もあったという。


保田紙の製法

保田紙の製造は、熟練した技術と経験を必要とする、時間と手間のかかる工程である。現在でも、ほとんどの作業は手作業で行われている。主な原料は、1月に収穫される楮(こうぞ)の樹皮である。樹皮は剥ぎ取られ、洗浄され、冬の風にさらされ、煮沸され、きれいに取り除かれた後、水で叩かれて柔らかくなり、繊維が分離される。その後、繊維をネリ(トロロアオイの根から抽出した粘性のある物質)と一緒に水に入れられる。湿度や気温に合わせて異なる量の糊が使用されるが、その比率は完全に経験と感覚によって決定される。木枠に張った和紙をスラリーの中にくぐらせ、パルプが均一に広がるまで揺する。その後、余分な水分を除去するためにプレスし、丹念に木製の乾燥板にブラシで刷り込む。ブラッシングが強すぎると紙が破れてしまうし、ブラシが不十分だと紙が板にしっかりと接着せず、天日干ししたときに縮んでしまう。


保田紙の現在

保田紙は、大量生産紙との競争、洋傘の流行の普及により、和紙の市場は激減し、保田紙の生産はほぼ消滅した。1953年の大洪水により、残っていた紙漉き場の多くが壊滅的な被害を受けた。1979年、残された紙漉き職人たちは、その技術を伝承し、和紙工芸への関心を促進するための機関を設立した。その構想は、「体験交流工房わらし」の運営に繋がり、現在では、一般客が和紙漉きを体験できる本格的な紙工房となっている。

保田紙


保田紙是一種日本手工紙(和紙),特徵是耐用、純白。有田川町清水地區生產紙張的歷史悠久,已有 360 年之久。保田紙有時候稱為「紀州手工紙」,這個別稱源自昔日的紀州藩(現在是和歌山縣)。


保田紙的歷史

在近代日本,最有價值的三種商品是稻米、鹽、紙張。德川賴宣(1602-1671)在 1619 年成為紀州大名,當時他發現紀州藩只生產稻米和鹽,卻沒有生產紙張。為了有所改變,德川賴宣命令村長「笠松左太夫(1598-1673)」在有田川建造一座造紙廠。笠松村長曾經前往其他藩地試圖學習造紙技藝,但卻被拒於門外,因為其他藩地的工匠都想要保護自己的商業機密。笠松村長不氣餒,想出了一個絕佳妙計:他派了三位英俊男子搬到吉野(現在的奈良縣)的造紙大鎮。這三位男子逐漸被吉野的居民接受,最後與當地的女子結婚,而這些女子全部都是造紙工匠。這三位男子之後帶著新婚妻子回到有田川,而這些婦女的知識進而幫助有田川建立自己的造紙業。在造紙的興盛時期,有多達 400 戶人家從事生產紙張,用於製作油紙傘、紙扇、文書用紙等其他商品。


保田紙的製程

保田紙的製程是一道耗時耗力的流程,需要熟練的技術和豐富的經驗。即使在今天,大部分的工作仍然是以手工進行。紙張的主要原料是構樹的樹皮,每年一月收成。工序依序是剝下樹皮後洗淨,擱置在冬天的北風中固化,之後熬煮至沸點,漂洗,接著浸泡後再打成漿狀,將纖維分散。之後,再將這些纖維和紙糊(一種從黃蜀葵植物根部提取的黏性物質)一起放入水中。根據濕度和溫度的不同,使用的膠料量也不同;不過,比例完全要從經驗和感覺判斷。將抄網浸到紙漿中,抖動,直到漿料均勻分佈。接著壓榨成形的紙頁,去除多餘的水分,並小心翼翼地刷到木板上風乾。如果刷得太用力,就會撕裂紙頁;如果刷得不夠力,又會導致紙頁無法黏附在木板上,日曬時就會收縮。


今日的保田紙

在1900年代,由於量產紙張的競爭,加上西式帆布雨傘的普及,日本紙的市場急劇式微,保田紙的生產幾乎要失傳。1953年一場洪災摧毀了多家剩餘的造紙廠。1979年,仍在從業的造紙師為了傳承技藝並激發大眾對這門工藝的興趣,因此集結起來成立協會。造紙師的願景促成了「體驗交流工作坊 Warashi」的誕生,現在它已經是一間成熟的造紙工坊,遊客可以在此處體驗自己製作和紙。

保田纸


保田纸是一种手工制作的日本纸(和纸),具有经久耐用、色泽纯白的特点,来自有田川历史悠久的清水地区,已有约360年之久。保田纸也被称为“纪州手工纸”,因为现在的和歌山县原为纪州。


保田纸的历史

大米、盐和纸是日本近代早期最珍贵的三种商品。德川赖信(1602-1671)于 1619年成为纪州大名主后,了解到该领地只产米和盐,却不产纸。为解决这个问题,德川赖信命令村长笠松左太夫(1598-1673)在有田川建立造纸作坊。笠松村长曾试图到其他领地学习造纸术,但当地的工匠为保护这个商业秘密,纷纷将他拒之门外。于是他想出了一个巧妙的计划:派三名英俊的年轻人到吉野(今奈良县)的造纸区定居,逐渐融入当地人的生活,最终迎娶当地的女造纸工匠为妻,随后这几名男子带着新娘回到有田川,利用她们的技能在有田川发展造纸业。当地造纸业最兴盛的时候,曾有400户人家生产雨伞、扇子、文件和其他常用物品所需的纸张。


保田纸制作工艺

保田纸的制作工艺漫长且复杂,需要精湛的技艺和丰富的经验。即使在今天,大部分工作仍采用手工方式。构树的树皮是保田纸的主要原料,每年一月将树皮从树干剥下,洗净后在寒风中风干,然后蒸煮、剔除杂质,再浸入水中拍打,软化和分离纤维。接下来将纤维与纸糊(一种提取自黄蜀葵根的粘性物质,用作粘合剂)一起浸泡。粘合剂的用量根据湿度和温度决定,具体比例完全取决于经验和直觉。下一个步骤是将带筛网的木框浸入浆液中,不断摇动,在上面形成一层均匀的纸浆,再压去纸浆中多余的水分,刷在木制烘干板上。这个步骤必须要小心,如果刷得太用力,纸张会撕裂;如果刷得太轻,纸张会粘不住木板,在阳光下晒干后会收缩。


现在的保田纸

20世纪初,纸张大规模生产,加上西方帆布雨伞的强大竞争力,导致日本纸张市场急剧萎缩,保田纸作坊几乎绝迹,1953年一场毁灭性的洪水更是摧毁了仅存的若干造纸作坊。1979年,仍然在坚持的造纸工匠决定联合起来,成立组织传承技艺,激发人们对这一工艺的兴趣。他们的愿景促成了“和纸实践活动中心”的诞生,现如今它已经是一个成熟的造纸作坊,游客可以在这里自己动手制作和纸。

야스다가미 종이


야스다가미는 내구성과 순백색이 특징인 일본 수제 종이(와시)의 일종입니다. 아리다가와의 역사적 지구인 시미즈에서 약 360년 동안 제작되었습니다. 야스다가미는옛 지명인 기슈번(현 와카야마현)의 이름을 따서 ‘기슈 수제 종이’로 불리기도 합니다.


야스다가미의 역사

근대 초 일본에서 가장 귀했던 생필품 세 가지는 쌀, 소금, 종이였습니다. 도쿠가와 요리노부(1602~1671)가 1619년 기슈의 다이묘(일본의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번 등의 영지를 소유하였던 영주)가 되었을 때, 기슈번에서 쌀과 소금은 생산하고 있지만 종이는 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리노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촌장이었던 가사마쓰 사타유(1598~1673)에게 아리다가와에 제지 작업장을 세울 것을지시했습니다. 사타유는 다른 번으로 가 제작 방법을 배우려 했지만, 기업 비밀을 지키고 싶었던 장인들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러자 사타유는 묘수를 떠올려 제지로 유명한 지역이자 오늘날 나라현이 된 요시노에 잘생긴 젊은 청년 세 명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점차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고, 머지않아 모두 그 고장의 여성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세 여성 모두 종이 장인이었죠. 청년들은 신부와 함께 아리다가와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의 지식은 아리다가와가 자체 종이 산업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성기에는 무려 400가구가 우산, 부채, 서류, 기타 일상용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종이를 제작했습니다.


야스다가미 제작

야스다가미 제작은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요구되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까다로운 공정입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작업은 손으로 직접 합니다. 종이의 주재료는 1월에 수확한 닥나무 껍질입니다. 껍질을 벗겨 내어 세척한 후에 겨울바람에 건조되도록 두었다가 끓여서 깨끗한 상태로 건져냅니다. 그런 다음 물에 담가 섬유가 부드러워지고 분리되도록 두드립니다. 그리고 섬유는 닥풀꽃 뿌리에서 추출한 점성 물질이자 바인더 역할을 하는 닥죽과 함께 푹 담가 둡니다. 닥죽은 습도와 온도에 따라 양을 조절하는데, 비율은 전적으로 경험과 직감에 따라 정해집니다. 망을 씌운 나무 틀을 슬러리에 담그고 균일한 펄프층이 형성될 때까지 흔듭니다. 완성된 시트는 꾹 눌러서 과도한 물기를 제거하고 정성스럽게 나무 건조판에 펼쳐 붙입니다. 너무 세게 바르면 시트가 찢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약하게 바르면 시트가 판에 붙지 않아 햇볕에 말릴 때 쪼그라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야스다가미

1900년대에는 대량 생산 종이와 서양식 캔버스 우산 등으로 인해 일본 종이 시장이 급격히 축소됐고, 야스다가미 생산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피해가 심각했던 1953년의 홍수로 남아 있던 많은 제지 공방이 피해를 입었지만 1979년에는 전통을 이어온 제지업자들이 기술을 전수하고 제작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힘을 합쳐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비전은 체험교류공방 와라시로 이어졌는데, 이곳은 방문객들이 직접 와시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본격적인 종이 공방이 되었습니다.

재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