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清水谷製錬所跡

  • 島根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地域の特産物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0以下
作成年度:
2019年
地域協議会名:
石見銀山多言語協議会

Shimizudani Refinery Site

Now little more than stone and concrete foundations on a hillside, the site of the Shimizudani Refinery tells the story of a bold but failed attempt to restart silver production here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In 1886, when the Osaka-based Fujita-gumi corporation acquired rights to Iwami Ginzan, the mine had already been dormant for decades. Fujita-gumi invested heavily, introducing cutting-edge mining equipment and methods, including using dynamite to expand existing shafts and extract large amounts of ore. These modernization efforts culminated in the 1895 opening of a new refinery employing the latest technology to process the vast volume of ore Fujita-gumi mined in shafts nearby.


After more than 350 years of mining, the silver deposits at Iwami Ginzan were already depleted, however, meaning that the quality of the ore was lower than expected. The technology used to extract the silver, moreover, did not meet expectations. The Shimizudani Refinery operated for only a year and a half before closing. Fujita-gumi sought to cut its losses by transferring the refining equipment to other mines under its control, including those at Jiufen in Taiwan, which was a Japanese colony at the time. The foundations that remain today only hint at the facility’s once impressive scale.


清水谷製煉所遺址


清水谷製煉所遺址佇立在一座山丘之上,如今,唯有一些石塊和混凝土地基還在無聲地講述著19世紀晚期那段大膽嘗試復興銀礦但終究以失敗告終的故事,提醒人們這座設施昔日的輝煌。

1886年,總部位於大阪的藤田組取得了荒置數十年的石見銀山開採權,並投入巨資,引進了最先進的採礦設備和技術,包括使用炸藥拓寬原有礦坑通道,以求開採更多的礦石。1895年,在經過一系列的現代化運營後,清水谷製煉所建立。該所具備當時最新技術,主要處理藤田組在附近礦坑開採的大量礦石。

然而,在長達350餘年開採之後的石見銀山礦床早已枯竭,此時開採的礦石品質已無法達到預期。不僅如此,就連白銀的提煉技術也不盡如人意。因此僅僅一年半之後,清水谷製煉所便關閉了。為降低損失,藤田組將這裡冶煉設備轉移到旗下其他礦場使用,其中包括台灣北部的九份礦場。

清水谷制炼所遗址


清水谷制炼所遗址伫立在一座山丘之上,如今唯有一些石头和混凝土地基还在无声地讲述着19世纪晚期那段大胆尝试复兴银矿但终究以失败告终的故事,提醒人们这座设施曾经的辉煌。

1886年,总部位于大阪的藤田组取得了石见银山的开采权,当时这座矿山已经荒置了数十年。藤田组投入巨资,引进了最先进的采矿设备和技术,比如使用炸药拓宽原有矿坑通道,以求开采更多的矿石。在经过一系列的现代化运作后,清水谷制炼所于1895年投入使用。该所具备当时最新技术,主要处理藤田组在附近矿坑开采的大量矿石。

然而,经过了长达350余年开采之后的石见银山矿床早已枯竭,此时开采的矿石品质已无法达到预期。不仅如此,就连白银的提炼技术也不尽人意。因此仅仅一年半之后,清水谷制炼所便关闭了。为降低损失,藤田组将这里冶炼设备转移到旗下其他矿场使用,其中包括台湾北部的九份矿场。

시미즈다니 제련소 터


현재는 푸르른 언덕 중턱에 고요히 자리한 돌과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이곳 시미즈다니 제련소 터에는 19세기 후반 은 생산을 재개하려다 실패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886년에 오사카의 후지타구미라는 기업이 이와미 은광의 채굴권을 획득했을 때 이 광산은 이미 수십 년 동안 휴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후지타구미는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기존의 갱도를 확장하고 대량의 광석을 캐내기 위해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하는 등 최첨단 채굴 설비와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근대화를 이루려는 이러한 노력 끝에 1895년 드디어 시미즈다니 지구에 새로운 제련소가 건설되었습니다. 이 제련소에서는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가까운 갱도에서 채굴한 대량의 광석을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350여 년이나 채굴이 계속되었던 이와미 은광의 은이 이미 고갈된 후였을 뿐만 아니라, 광석의 질 또한 예상보다 조악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은을 정련하는 데 사용된 기술도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 시미즈다니 제련소는 결국 조업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반만에 폐쇄되었습니다. 후지타구미는 당시 일본제국의 일부였던 대만의 지우펀 등 회사가 관할하던 다른 광산으로 정련 설비를 이전하여 손실을 줄이려 애썼습니다. 시미즈다니 제련소 터는 변전소로 바뀌었지만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의 기초 부분만이 과거 이 시설의 당당하고 인상적인 규모를 암시할 뿐입니다.

清水谷製錬所跡

今では緑の丘の中腹に静かに佇む石やコンクリートの塊にすぎない清水谷精錬所跡は、19世紀後半にここで再開されようとしていた銀生産が失敗に終わ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ます。1886年に大阪の藤田組が石見銀山の採掘権を獲得したときには、この鉱山はすでに何十年にもわたって休眠状態となっていました。しかし藤田組は多額の投資を行い、既存の坑道を拡張して大量の鉱石を掘り出すためにダイナマイトを使用するなど、最先端の採掘設備と方法を導入しました。これら近代化の取り組みの末、1895年に清水谷地区に新しい精錬所が開設される運びとなりました。同精錬所では最新の技術を採用して、藤田組が近くの坑道で採掘した大量の鉱石を処理していました。


しかし、350年余りにわたって採掘されてきた石見銀山の銀鉱床はすでに枯渇しており、鉱石の質が予想よりも粗悪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した。純銀を抽出するために使われた技術も期待を裏切ることとなったようで、最終的に清水谷精錬所はわずか一年半の操業の後、閉鎖されました。藤田組は、当時大日本帝国の一部であった台湾の九份など、自社の支配下にあった他の鉱山に精錬設備を移転することで、損失の削減を模索しました。清水谷精錬所の跡地は、変電所へと姿を変えましたが、その後の運命についてはほとんど知られていません。今でも残る基礎部分のみが、かつてこの施設が堂々たる規模であったことをほのめかしています。


再検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