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大森伝建・熊谷家

  • 島根県
ジャンル:
史跡・城跡 集落・街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250以下
作成年度:
2019年
地域協議会名:
石見銀山多言語協議会

Omori: Kumagai House

For centuries, the Kumagai family was the richest and most influential in Omori. They began expanding their authority in the early 1600s, after the silver mine and the lands surrounding it were seized by the Tokugawa shogunate, which was to rule Japan until 1867. The family made its fortune in mining but later diversified to include financial and contracting services for the magistrate’s office, which represented the central government in the region. At least since 1718, the official title of kakeya was always held by a member of the Kumagai family. The kakeya was the official tasked with weighing silver to determine its purity and collecting payments from miners whose product was found lacking in quality. This function was a crucial part of the government’s taxation activities, so the Kumagai family were well compensated for performing it.


The head of the family also sat on the local council of elders, which oversaw the Omori area and functioned as an intermediary between the magistrate and local residents. This council often met in the Kumagai House, a two-story mansion rebuilt in 1801 after a fire destroyed much of the town the year before. Used as a residence until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and then restored to resemble its appearance in 1868, when the final annex buildings were completed, the Kumagai House gives visitors a sense of how an affluent merchant family lived when Iwami Ginzan was at the height of its prosperity. Most of its rooms, including the ornate chambers for receiving important guests, are open to visitors.


大森:熊谷家住宅


數世紀以來,熊谷家一直是大森地區最富裕且最有影響力的家族。17世紀初,統治了日本的德川幕府(1603-1867)將銀山及其周邊土地收歸了轄下,熊谷家也是從這時開始擴張家族勢力。熊谷家最初從事礦業積累財富,後來漸漸將業務拓展到為「代官所」(幕府在地方的代表處)提供財務和契約服務。最晚從1718年開始,名為「掛屋」的官職便一直由熊谷家成員擔當。掛屋主要負責秤量白銀重量、檢測純度,向銀礦低於標準的礦主徵收罰款。由於掛屋在幕府政權稅收體系中非常重要,熊谷家也因此得到了豐厚的報酬。

此外,熊谷家的家主也是本地長老會「町年寄」的成員。長老會負責監管大森地區,充當本地居民與「代官」(地方最高行政長官)之間的中間人。町年寄會議常常在熊谷家住宅舉行。1800年,這棟住宅毀於一場幾乎燒毀整個大森町的火災,但僅時隔一年就重建了一座兩層大宅。這裡到20世紀末期一直用作住宅。後來,整座建築歷經了大整修,恢復了其1868年最後一座倉庫建成時的舊貌。如今,熊谷家住宅已被指定為國家重要文化財產,遊客可以在此一窺石見銀山鼎盛時期鉅賈富賈家族的生活面貌。包括招待貴賓的豪華房間在內,住宅的大部分區域開放參觀。此外,住宅內還舉辦體驗往昔生活、欣賞四季美景的主題活動。

大森:熊谷家族住宅


数世纪以来,熊谷家族始终是大森地区最富裕、最有影响力的家族。17世纪初,银山及周边土地被收归到统治了日本的德川幕府(1603-1867)辖下,熊谷家族也是从这时开始扩张家族势力。他们最初以从事矿业而积累了财富,后来渐渐将业务拓展到为“代官所”(幕府在地方的代表处)提供财务和契约服务。最晚从1718年开始,熊谷家族成员便一直担当“掛屋”的官职。掛屋主要负责称量白银重量、核定纯度,向无法提供达标产品的矿主征收罚款。这是幕府政权税收体系中非常重要的一部分,熊谷家族也因此得到了丰厚的报酬。

此外,熊谷家族的家主也是本地长老会“町年寄”的成员。长老会负责监管大森地区,充当本地居民与“代官”(地方最高行政长官)之间的联系人。町年寄会议常常在熊谷家族住宅举行。1800年,这栋住宅毁于一场几乎烧毁整个大森町的火灾,但仅时隔一年就重建了一座两层大宅。到20世纪末期,这里一直有人居住。之后,整座建筑经历了一次大整修,恢复了其1868年最后一座仓库建成时的旧貌。如今,熊谷家族住宅已被指定为国家重要文化财产,为来访者呈现出石见银山鼎盛时期巨商富贾家族的生活面貌。包括招待贵宾的豪华房间在内,住宅的大部分区域开放参观。此外,住宅内还举办体验往昔生活、欣赏四季美景的主题活动。

오모리 구마가이 가문 주택


구마가이 가문은 수세기 동안 오모리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이 큰 가문이었습니다. 구마가이 가문은 1867년까지 일본 전국을 통치한 도쿠가와 막부가 이와미 은광과 그 주변을 지배 하에 두었던 1600년대 초기부터 그 권력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마가이 가문은 초기에는 광산업으로 부를 쌓았지만 이후에는 지역의 중앙 정부인 부교쇼(무가 시대에 행정 사무를 담당했던 관청)의 재정이나 계약 업무 등을 담당하며 폭 넓은 분야로 사업을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구마가이 가문은 적어도 1718년부터 은의 무게를 재고 순도를 측정하여 질 낮은 제품이 발견되면 채굴업자에게 벌금을 징수하는 ‘가케야’라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 임무는 막부의 조세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구마가이 가문은 임무를 수행하며 상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구마가이 가문의 당주는 오모리 지구를 관할하고 마치부교(부교쇼에서 집무하는 장관급 관리)와 주민들 사이를 중개하는 마치도시요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을의 관리들이 자주 모임을 가졌던 구마가이 가문의 저택은 오모리 마을의 대부분이 화재로 소실된 이듬해인 1801년에 재건된 2층짜리 가옥이었습니다. 저택은 20세기 말까지 주거용으로 사용되다가 마지막 창고가 완공된 1868년 당시의 외관을 복원하기 위해 개보수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저택은 이와미 은광이 번영했던 시절 무사 가문의 생활상을 현재에 전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던 화려한 방을 포함해 대부분의 방이 방문객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大森伝建・熊谷家

熊谷家は何世紀もの間、大森でとりわけ富裕で影響力のある一家でした。熊谷家は、1867年まで日本全土を支配した徳川新幕府により銀山とその周辺の土地が没収された後、1600年代初頭から権力を拡大し始めました。熊谷家は、鉱山業で財を成しましたが、後には地域の中央政府である奉行所の財政や契約業務など幅広い分野に事業を拡大しました。熊谷家は、少なくとも1718年から 「掛屋」 と呼ばれており、銀の重量を量り、純度を測定し、粗悪品が見つかった炭鉱業者から集金を行う役目を負っていました。この役目は幕府の徴税活動の重要部分であったため、熊谷家はその働きに対しかなりの報酬を得ました。また、熊谷家の当主は大森地区を管轄し、町奉行と住民との仲介役を担う町年寄に就きました。町役人がしばしば会合を開いた熊谷家の邸宅は、大森町の大部分が火事で焼失した翌年の1801年に再建された二階建ての家屋でした。20世紀末まで住宅として使用されたのち、最後の蔵が完成した1868年当時の外観を復元するために改修された熊谷邸は、石見銀山が栄えた時代の富裕な武家の暮らしぶりを今も伝えています。重要な来客を迎えるための華美な部屋を含め、ほとんどの部屋が見学者に開放されています。


再検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