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イトル 十輪寺

  • 京都府
ジャンル:
史跡・城跡 神社・寺院・教会
媒体利用区分:
Webページ
ワード数:
501-750
作成年度:
2023年
地域協議会名:
京都西山・大原野保勝会

Jurinji Temple


Jurinji Temple in the foothills of the Nishiyama mountain range along Kyoto’s western border is known as a place to pray for conception and safe childbirth. It once served as the retirement temple of Ariwara no Narihira (825–880), a prominent ninth-century poet. In addition to its famous early blooming cherry tree, other attractions in the quiet, secluded temple include two gardens, painted sliding panels in one of the halls depicting scenes from Ise monogatari (The Tales of Ise), a small memorial pagoda dedicated to Narihira, and a traditional salt kiln.


Brief History

The temple was founded in 850 by Emperor Montoku (827–858), who enshrined a wooden statue of Enmei Jizo Bodhisattva (“Jizo of long life”) to pray for the safe birth of his child with his consort Fujiwara no Akirakeiko (829–900). The emperor’s prayers were answered, and their son later ascended the throne. The Jizo statue is said to have been carved by Saicho (Dengyo Daishi, 767–822), the founder of Tendai Buddhism in Japan.


Jurinji burned down during the Onin War (1467–1477), a conflict over shogunate succession that damaged most of Kyoto. The temple lay in ruins until the Kanbun era (1661–1673), when it was rebuilt by the noble Kasanoin family. Jurinji became their family memorial temple (bodaiji), tasked with holding burial rituals, caring for family graves, and praying for their souls after death.


Retirement Temple of Ariwara no Narihira

Narihira was born a prince, the grandson of two emperors. When his father was implicated in an attempted coup, the infant Narihira was stripped of his rank and given a commoner name. Despite this, he served in various positions at court and was considered a competent official, capable warrior, skilled horseman, and talented waka poet. He was also known for his good looks, and his many rumored affairs, including romances with an emperor’s consort and a high priestess of Ise Jingu Grand Shrine, are thought to have inspired The Tales of Ise, a classic collection of poems and related narratives in prose.


According to temple legend, Narihira spent his later years in seclusion at Jurinji. His last poem was among many of his works chosen for the tenth-century anthology Kokin Wakashu (Collection of Poems Ancient and Modern), in which he was also named one of the Six Immortal Poets.


Long ago I heard

That this is the road we must all

Travel in the end,

But I never thought it might

Be yesterday or today.

(Translated by Donald Keene)


Temple Grounds

The Hondo (Main Hall), built in 1750, is a designated Tangible Cultural Property of Kyoto Prefecture. It has a rare “palanquin-style” roof, shaped like the curved roofs of litters once used to transport high-ranking members of court. The Enmei Jizo statue is hidden from view in a miniature altar flanked by several other sculptures and is only accessible for public viewing once a year, on August 23rd. There are two more Buddhist statues on either side of the main altar, and many oshie (“padded cloth picture”) offerings are displayed throughout the hall.


A roofed walkway connects the Hondo to the Kuri (monks’ quarters and kitchen). Two tatami-mat rooms are used to exhibit temple treasures and art, such as copies of The Tales of Ise and the late-eighteenth-century guidebook Miyako meishozue (Famous Sights of the Capital). The sliding screen panels in the rooms are decorated with large paintings of scenes from The Tales of Ise depicting nobles in rich robes, musicians, and servants.


Between the Hondo and the Kuri is the Sanpo Fukan (“three-way view”) Garden, thought to have been created by Kasanoin Tsunemasa (1700–1771), the 27th head of the Kasanoin family. The courtyard garden is designed to appear slightly different depending on whether the viewer is standing, sitting, or lying down. It contains the famous Narihira-zakura, a 200-year-old weeping cherry tree that flowers in early spring, draping its branches over the tiled roofs. A tea room built in the style favored by Tsunemasa, with various objects of art displayed inside, also looks out onto the garden.


A path leading up the hill behind the temple halls offers a view of the unusual roof of the Hondo and Narihira-zakura cherry tree from above. A small stone pagoda located midway up the slope is said to mark Narihira’s gravesite. At the top of the hill is a shiogama, a stone salt-making kiln built in the center of a large earthen pit. It is a replica of the kiln that Narihira is said to have used when living at Jurinji. Aristocrats of the Heian period (794–1185) would boil seawater until only salt remained, enjoying the scent and the imagery of the sea, sometimes adding pigments to the roasting salt to color the smoke. Visitors can observe this elegant pastime, called shioyaki, during the Shiogama Kiyomesai purification ceremony held at Jurinji on November 23rd.

十輪寺


十輪寺位於京都西部邊界的西山山麓,以祈求子嗣與平安順產聞名。這裡曾經是9世紀著名和歌詩人在原業平(825-880)的隱修地,也是觀賞早開櫻花的勝地。寺院清幽僻靜,內部有兩處庭園,以及多處值得參觀的地方,例如:描繪《伊勢物語》場景的障子移門、在原業平的供養塔和傳統鹽窯。


寺院簡史

十輪寺建造於850年,由文德天皇(826-858)創建。天皇為了祈求妃子藤原明子(829-900)平安產子,於此供奉了一尊延命地藏菩薩木像。相傳,這尊地藏菩薩是由日本佛教天台宗創始人最澄(767-822,諡號傳教大師)親手雕作。而後天皇的祈求得到回應,他們的兒子最後順利繼承皇位。

1467年,應仁之亂爆發。在這場爭奪幕府將軍之位的內戰期間,京都大部分地區遭到嚴重破壞,十輪寺也毀於戰火,之後一直處於斷垣殘壁的狀態。寬文年間(1661-1673),貴族花山院家在之前的廢墟之上重建寺廟,並將其作為菩提寺(家廟)。十輪寺從此承擔這個家族的葬禮,以及維護陵墓和為死者祈禱的職責。


在原業平的隱居寺

在原業平的外祖父與祖父都是天皇,生為皇子的他受到父親政變未遂的牽連,年幼時就被剝奪皇籍並貶為平民姓氏。盡管如此,在原業平仍在宮廷中擔任過多項官職,被認為是一位出色的官員、有能力的戰士、騎術高超的騎手以及才華洋溢的和歌詩人。也因他面容俊俏,據說與天皇的妃子、伊勢神宮齋宮(女祭司長)等女性有過不少風流韻事。又說,他的人生軼事成為了集古典和歌與相關故事散文為一體的《伊勢物語》的靈感來源與創作題材。

在原業平被尊為日本和歌「六歌仙」之一,10世紀的《古今和歌集》中收錄了他多部作品,其中包括他晚年在十輪寺隱居時創作的詩歌:

早聞人生皆須行此路

未料旅途盡頭

不在昨日

就在今朝


寺院內部

建於1750年的本堂(正殿)被指定為京都府有形文化財產。其弧形屋頂形似古時宮廷貴人乘坐的鳳輦(音同「碾」)轎頂,所以被稱為「鳳輦形」,十分罕見。本堂的小神龕內供奉本尊延命地藏像,兩側還有其他幾尊雕像。神龕只在每年8月23日對外開放。主神龕兩側各有一尊佛像。此外,殿內還陳列了許多信眾供奉的「押繪」(拼布畫)。

一條走廊把本堂和「庫裏」(僧房和廚房)相連。兩間榻榻米房內展示著寺藏珍寶和藝術品,如《伊勢物語》和18世紀晚期的旅遊指南《都名所圖會》手抄本。房間的障子移門上大幅描繪了《伊勢物語》裡的場景,身著華服的貴族、樂師和僕人等無不栩栩如生。

本堂和庫裏之間有一處中庭「三方普感之庭」,據說是第27代家主花山院常雅(1700-1771)的作品。中庭景物隨著觀賞者的視角高度而變化,站立、坐下、躺臥時所見景致各有千秋。園內有一棵樹齡200年的「業平櫻」非常有名,春季盛開之時,花枝垂蕩在屋頂瓦片之上,十分美麗。庭園旁有一間陳列各種藝術品的茶室,按照花山院常雅鍾愛風格所建,遊客可以從這裡眺望園景。

本堂後面有一條通往小山的小路,從那裡可以更清晰地俯瞰本堂獨特的屋頂與業平櫻。山坡中間的小石塔據說就是在原業平的墓地。山頂有一個很大的坑洞,坑洞中央是一個石製鹽釜的複製品,傳說在原業平在十輪寺居住時就使用這樣的鹽釜。平安時代(794-1185)的貴族流行將海水放在釜中煮沸,直至留下鹽體結晶。他們享受這一過程中散發出的大海氣味與意象,有時還會在煮鹽的過程中加入顏料,給裊裊的煙霧上色。每年11月23日,十輪寺會舉行鹽釜潔淨祭,遊客能親眼觀賞名為「鹽燒」的風雅消遣活動。

十轮寺


十轮寺坐落在京都西部边界的西山山麓,以祈求子嗣与安产闻名。这里曾是9世纪著名和歌诗人在原业平(825-880)的隐修地,内有两处庭园,清幽僻静,还是观赏早樱的名所。此外,寺内描绘了《伊势物语》场面的障子移门、在原业平的供养塔、传统盐窑等多处都值得仔细观赏。


寺院简史

公元850年,文德天皇(826-858)建造了这座寺院,并为祈愿妃子藤原明子(829-900)安产供奉了一尊延命地藏菩萨木像。相传这尊地藏像是日本佛教天台宗创始人最澄(767-822,谥号传教大师)亲手雕刻的作品。之后天皇如愿以偿,藤原明子所生皇子后来也顺利继位。

1467年,应仁之乱爆发。在这场争夺将军之位的内战中,京都的大部分地区损失惨重,十轮寺也毁于战火,之后一直处于荒废状态。宽文年间(1661-1673),贵族花山院家族在之前的废墟上重建了十轮寺,并将其作为菩提寺(家庙)。十轮寺从此承担起为该家族主持葬礼、维护家族陵墓和为死者祈祷冥福的职责。


在原业平的隐居寺

在原业平的外祖父和祖父都是天皇。生为皇子的他受父亲政变未遂牵连,年幼时就被剥夺皇籍并贬为平民姓氏。尽管如此,在原业平仍在朝廷中担任过多项官职,以能臣、良将、技术高超的骑手和才华横溢的和歌诗人闻名于世。此外,面容英俊的他还与天皇的妃子、伊势神宫的斋宫(女祭司长)等女子惹出不少风流韵事。据说在集古典和歌与相关故事散文为一体的《伊势物语》中,很多故事都是以他的人生轶事为素材创作的。

在原业平被尊为日本和歌“六歌仙”之一。10世纪的《古今和歌集》中收有他的多部作品,其中就有他晚年在十轮寺隐居时的诗作:

早闻人生皆须行此路

未料旅途尽头

不在昨日

就在今朝


寺院内部

建于1750年的本堂(正殿)已被指定为京都府物质文化财产。其弧形屋顶造型酷似古时只有宫中贵人才能乘坐的凤辇(音同“碾”)轿顶,故称为“凤辇形”,颇为罕见。本堂的小佛龛中供奉着本尊延命地藏像,两旁还有数座其他雕像。这些佛像只在每年8月23日向公众开放。主佛龛左右两侧各有1尊佛像。此外,殿内还展示有许多信众供奉的“押绘”(布艺拼贴画)。

本堂和“库里”(僧房和厨房)之间有走廊连接。两间榻榻米房间被用作陈列室,展品有《伊势物语》、18世纪晚期的旅游指南《都名所图会》手抄本等寺藏珍宝和美术品。房间的障子移门上大幅描绘了《伊势物语》里的场景,身着华服的贵族、乐师和仆人等形象栩栩如生。

本堂和库里之间有一处名为“三方普感之庭”的中庭,被认为是第27代家主花山院常雅(1700-1771)的作品。中庭景物随着观赏者的视角高度而变化,站立、坐下、躺卧时所见景致各有妙处。庭中那株200岁的“业平樱”很有名,春季盛开之时,垂荡在屋顶之上的花枝婀娜多姿。庭园旁还有一间陈列有各种艺术品的茶室,按照花山院常雅钟爱的风格所建,来访者也可从茶室内眺望园景。

本堂后方有小道通往后山,从那里可以清楚地俯瞰本堂造型独特的屋顶和业平樱。山腰上的小石塔据说就是在原业平的墓地。山顶有一个很大的凹坑,坑中央是一口后世仿制的石头盐釜,传说在原业平在十轮寺时用的就是这样的盐釜。平安时代(794-1185)的日本贵族流行将海水放在釜中熬煮至结晶,享受这一过程中散发出来的海洋气息和情调,有时还会在煮盐时加入颜料,蒸出袅袅彩色烟雾。如果在每年11月23日的盐釜洁净祭前来十轮寺,就能亲眼目睹这种名为“盐烧”的风雅消遣。

주린지 절


니시야마 산 기슭에 위치한 주린지 절은 자식 점지·순산을 기원하는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9세기의 유명한 가인 아리와라노 나리히라(825~880년)가 은거했습니다. 이르게 꽃이 피는 벚나무의 명소이기도 하며,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조용한 이 절에서는 두 곳의 정원, 『이세 이야기』의 장면을 묘사한 맹장지, 나리히라의 공양탑, 전통적인 소금 가마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주린지 절은 850년에 몬토쿠 천황(826~858년)이 그의 비(妃)인 후지와라노 아키라케이코(829~900년)의 순산을 기원하여 연명지장보살을 모신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천황의 기도가 이루어져 무사히 태어난 아이는 나중에 천황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모셔져 있는 보살상은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초(767~822년)의 작품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쇼군의 계승을 둘러싸고 다툼이 벌어진 오닌의 난(1467~1477년)으로 교토의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는데, 그때 주린지 절도 소실되어, 간분 시대(1661~1673년)에 귀족인 가사노인 가문에 의해 재건될 때까지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가사노인 가문의 보리사(어느 가문 일족이 선조의 영혼을 애도하기 위한 사원)가 되어 장례와 묘의 관리, 사자(死者)에게 공양을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만년의 은거지

나리히라는 헤이제이 천황과 간무 천황의 손자로서 황족의 일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반정 미수 사건에 관여해 어린 나리히라도 황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아리와라라는 성씨를 받았습니다. 평민 신분이었지만 나리히라는 궁정에서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여 뛰어난 조정 관리, 유능한 전사(戰士), 숙련된 기수(騎手), 그리고 재능이 넘치는 가인으로 활약했습니다. 또한 그는 미남자로도 알려져 있어서, 천황의 비와 이세 신궁의 사이쿠(무녀로서 봉사했던 미혼의 여자 황족)와의 사랑 이야기 등 많은 연애담은 와카(일본의 전통 정형시)와 관련한 이야기를 엮은 『이세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절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나리히라는 만년에 주린지 절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10세기의 시가집『고킨와카슈』에는 그의 마지막 와카를 포함한 많은 작품이 실렸으며, 6인의 대표적인 가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마침내 가야 할

길이라고 일찍이

들었건만

그날이 어제일지 오늘일지는

생각지도 못했노라


경내

본당은 1750년에 지어졌으며, 교토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활 모양으로 굽은 지붕의 형태는 봉련형(鳳輦形)이라고 하며, 옛날 궁정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탔던 가마(봉련)의 지붕을 본떠 만들어 독특합니다. 본존인 연명지장보살상은 다른 몇몇 불상에 둘러싸인 작은 제단 안에 모셔져 있으며 연 1회, 8월 23일에 일반에 공개됩니다. 주 제단 양쪽에는 나아가 2구의 불상이 있고, 본당 내에는 봉납된 많은 오시에(두꺼운 종이를 새, 꽃 등의 모양으로 오리고 수를 놓은 아름다운 천으로 감싸 판자 등에 붙인 공예품으로서 여기서는 신자들이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작은 지장보살 오시에 등의 봉납품들)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본당과 구리(승방과 부엌)는 지붕 달린 복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다미가 깔린 두 곳의 방에는 『이세 이야기』와 18세기 후반의 여행 안내 책자 『미야코메이쇼즈에』등 절의 보물과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맹장지에는 우아한 옷을 걸친 귀족과 음악가, 하인 등 『이세 이야기』의 한 장면을 묘사한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당과 구리 사이에는 제27대 당주 가사노인 쓰네마사(1700~1771년)가 설계했다고 하는 중정이 있는데, 섰을 때, 앉았을 때, 누웠을 때에 따라 조금씩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데서 ‘산포후칸노니와’(세 가지 방법으로 볼 수 있는 정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정원 중앙에 서 있는 수령 200년의 유명한 나리히라자쿠라 벚나무가 복도의 기와 지붕에 가지를 드리워 봄에는 벚꽃이 캐노피처럼 뒤덮여 그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정원 옆에는 쓰네마사가 선호했던 양식으로 지어진 다실이 있는데, 다양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본당 뒤편의 언덕길에서 독특한 양식의 본당 지붕과 나리히라자쿠라 벚나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언덕길 도중에 서 있는 석탑은 나리히라의 묘라고 전해집니다. 뒷산의 지면을 크게 파낸 곳의 가운데에는 돌로 만든 소금 가마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나리히라가 주린지 절에 살았던 무렵에 사용했던 소금 가마를 재현한 것입니다. 헤이안 시대(794~1185년)의 귀족은 바닷물을 소금이 될 때까지 끓여, 바다의 향기와 이미지를 즐겼고, 때로는 색소를 더해 연기에 색을 입혀 즐겼습니다. 매년 11월 23일에 열리는 시오가마기요메사이 축제에서는, 시오야키라고 하는 이 우아한 놀이가 재현됩니다.

十輪寺


西山の麓に位置する十輪寺は、子授け・安産祈願の寺として知られています。かつては、9世紀の有名な歌人、在原業平(825年~880年)が隠居していました。早咲きの桜の名所であるほか、人里離れた静かなこの寺院には、2ヵ所の庭園、伊勢物語の場面を描いた襖、業平の供養塔、伝統的な塩竈などの見どころがあります。


歴史十輪寺は、850年に文徳天皇(826年~858年)が、妃・藤原明子(ふじわらのあきらけいこ、829年~900年)の安産を祈願し、延命地蔵菩薩を祀ったのが始まりとされています。天皇の祈りは聞き届けられ、無事に生まれた子は、後に天皇の座に就きました。祀られている菩薩像は、天台宗の開祖である最澄(767年~822年)の作と伝えられています。


将軍の継承を巡って争われた応仁の乱(1467年~1477年)では、京都の大部分が被害を受けましたが、その際に十輪寺も焼失し、寛文時代(1661年~1673年)に貴族の花山院家によって再建されるまで廃墟と化していました。その後は花山院家の菩提寺(ある家の一族が先祖の霊を弔うための寺院)となり、葬儀や墓の管理、死者の供養を行う役割を果たしました。


在原業平の晩年の隠居地

業平は平城と桓武、二人の天皇の孫にあたり、皇族の一員として生まれました。しかし、彼の父親がクーデター未遂事件に関与したことで幼い業平も皇族の籍を離れ、在原という姓を与えられました。平民の身分ではありましたが、業平は宮廷で様々な役職を歴任し、優れた朝廷の役人、有能な戦士、熟練の騎手、そして才能あふれる歌人として活躍しました。また、彼は美男子としても知られており、天皇の妃や伊勢神宮の斎宮(巫女として奉仕した未婚の女性の皇族)とのロマンスなどの多くの恋の噂は、和歌(日本の伝統定型詩)と関連する物語を綴った『伊勢物語』に影響を与えたと考えられています。


寺伝によれば、業平は晩年、十輪寺で隠居生活を送ったとされています。10世紀の歌集『古今和歌集』には彼の最後の和歌を含む多くの作品が選ばれ、代表的な6人の歌人の1人にも選ばれています。


つひに行く

道とはかねて

聞きしかど

昨日今日とは

思はざりしを


境内

本堂は1750年に建てられたもので、京都府の有形文化財に指定されています。湾曲した屋根の形は鳳輦形と呼ばれ、かつて宮廷の要人が乗った輿(鳳輦)の屋根を模した珍しいものです。本尊の延命地蔵菩薩像は、他のいくつかの仏像に囲まれた小さな祭壇の中に祀られており、年に1回、8月23日に一般公開されます。主祭壇の両側にはさらに2体の仏像があり、堂内には多数の奉納された押絵(ご信心の方々が、祈りを込めて作成された、小さなお地蔵さんの押絵などの奉納の品々)が展示されています。


本堂と庫裏(僧房と台所)は屋根付きの廊下で繋がっています。畳敷きの2つの部屋には、「伊勢物語」や18世紀後半のガイドブック「都名所図会」などの寺宝や美術品が展示されています。襖は、雅な衣をまとった貴族や音楽家、使用人など「伊勢物語」の一場面の大きな絵が描かれています。


本堂と庫裏の間には、第27代当主・花山院常雅(1700年~1771年)が設計したとされる中庭があり、立ったり、座ったり、寝ころんだりと、見方によって少しずつ見え方が違うことから、「三方普感の庭」(3つの方法で見ることができる庭)と呼ばれています。庭の中央に立つ樹齢200年の有名な業平桜が廊下の瓦屋根に枝を垂らし、春には天蓋のように覆われ、その華やかさが咲き誇ります。庭園の横には、常雅が好きな様式で作られた茶室があり、様々な美術品が展示されています。


本堂の裏の坂道から、珍しい様式の本堂の屋根と業平桜を眺めることができます。坂道の途中に立てられた石塔は、業平の墓であると言われています。裏山の地面を大きく掘り下げた中央には、石製の塩竈が造られており、これは業平が十輪寺に住んでいた頃に使われたとされる塩竈を再現したものです。平安時代(794年~1185年)の貴族は、海水を塩になるまで煮詰め、海の香りとイメージを楽しみ、時には色素を加え、煙に色を付けて楽しみました。毎年11月23日の塩竈清め祭では、塩焼きと呼ばれるこの優雅な遊びが再現さ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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