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Aharen Beach and Bonito Fishing

  • Okinawa
Topic(s):
Villages/Towns
Medium/Media of Use:
Interpretive Sign
Text Length:
251-500
FY Prepared:
2020
Associated Tourism Board:
kankyosho okinawaamami shizenkankyojimusho

阿波連ビーチと鰹漁


渡嘉敷村の鰹漁は明治36年から始まり、阿波連集落においても盛んに行われていました。このレンガ構造物は、鰹節製造工場の煙突の一部が残されたものです。鰹が水揚げされ、加工された後に、煮たり、蒸気を当てて水分をとったり、薪の煙で乾燥させたりする製造過程に火力が必要で、煙突が設置されました。獲れたカツオは砂浜に直接投げて、浜で待っている人が拾い上げては、工場に運んだそうです。

戦後の阿波連集落では1日に2~3回、漁に出ていた時期もあり、さらに鰹節製造工場も2箇所ありました。鰹漁が盛んになり大型船で操業するようになると、村民の生活もしだいに豊かになっていきました。明治の中頃までは、茅葺きの家が多かったそうですが、鰹漁による収益が増えるにつれて瓦葺きの家が多くなり、鰹漁とともに豊かになっていった歴史があります。


  • 備考
  • The catch was dumped directly onto the beach for waiting workers to pick up and carry to the factory. (獲れたカツオは砂浜に直接投げて、浜で待っている人が拾い上げては、工場に運んだそうです。)

    ⇒英語と日本語で文章の位置を変えています。日本語は、一段落目の最後の一文として、そのままにし、英文は文章の流れや読みやすさの観点から、直前の一文と置き位置を逆にしています。


    阿波連海灘和鰹漁業


    西元1903年,鰹漁業開始在渡嘉敷村興起,並成為阿波連村一大興盛產業。這個磚石結構是一家煙燻鰹魚塊(鰹節)工廠煙囪的一部分。捕撈起的鰹魚會直接傾倒在海灘上,等待工人拾起並運往工廠。鰹魚塊的製作方式是去除魚內臟、將魚肉去骨並切片和煮沸,然後蒸製以減少水分含量。接著,用柴火烤乾,並用煙囪排出煙霧。

    第二次世界大戰後的一段時間內,阿波連的船隻每天會出海兩三次,為兩家鰹節工廠提供原料。隨著大型漁船投入使用,鰹漁業規模隨之擴大,村民的生活條件也得到了改善。一直到明治時代(西元1868–1912)中期,阿波連的許多房屋仍使用茅草屋頂,不過隨著鰹漁業利潤增加,越來越多房屋使用瓦造屋頂,反映村內經濟能力與鰹漁業齊頭並進。

    阿波连海滩和鲣渔业


    1903年,鲣渔业开始在渡嘉敷村兴起,并成为了阿波连村的一大繁荣产业。这个砖石结构是一家熏制鲣鱼块(鲣节)工厂的烟囱的一部分。捕捞起的鲣鱼被直接倾倒在海滩上,等待工人拾起并运往工厂。鲣鱼块的制作方式是去除鱼内脏、将鱼肉去骨切片并煮沸,然后蒸制以减少水分含量。然后,用柴火将鱼块烤干,并用烟囱排出烟雾。

    第二次世界大战后的一段时间内,阿波连的船只每天会出海两至三次,为两家鲣节工厂提供原料。随着大型渔船投入使用,鲣渔业规模不断扩大,村民的生活条件也得到了改善。直到明治时代(1868–1912)中期,阿波连的许多房屋仍使用茅草屋顶,不过随着鲣渔业利润的提升,村民们修建了越来越多的瓦屋顶,反映了村中经济水平与鲣渔业齐头并进。

    아하렌 해변과 가다랑어잡이


    도카시키손의 가다랑어잡이는 메이지 36년(1906)에 시작되어 아하렌 마을에서도 왕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벽돌 구조물은 가쓰오부시 제조 공장 굴뚝의 일부가 남은 것입니다. 가다랑어를 육지로 가져와 가공한 후에 삶거나 증기를 쐬어 수분을 빼거나, 장작 연기로 건조시키는 등 제조 과정에 화력이 필요해 굴뚝이 설치되었습니다. 잡은 가다랑어는 해변에 그냥 던져두면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주워 올려 공장으로 운반했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 뒤 아하렌 마을에서는 하루에 2~3회 고기잡이를 나간 시기도 있었고 나아가 가쓰오부시 제조 공장도 두 군데 있었습니다. 가다랑어잡이가 번창하여 대형선으로 조업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의 생활도 그에 따라 풍요로워졌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1912) 중순 무렵까지는 억새로 지붕을 인 집이 많았던 듯하지만 가다랑어잡이로 인해 수익이 늘어남에 따라 기와지붕 집이 많아져 가다랑어잡이와 더불어 풍요로워진 역사가 있습니다.

    Aharen Beach and Bonito Fishing


    Bonito fishing started in the village of Tokashiki in 1903 and was a prosperous industry in the village of Aharen. This brick structure is a part of the chimney of a factory that made blocks of cured bonito (katsuobushi). The catch was dumped directly onto the beach for waiting workers to pick up and carry to the factory. The blocks were manufactured by gutting, filleting and boiling the fish, and then steaming it to reduce the water content. It was then dried over firewood, using the chimney to disperse the smoke.

    There was a time after World War II when the boats from Aharen would go out two or three times a day to supply the two katsuobushi factories. As bonito fishing expanded with the use of bigger fishing vessels, the lives of the villagers became more comfortable. Until the middle of the Meiji era (1868–1912), many of the houses in Aharen had thatched roofs, but as the profits from bonito fishing increased, more and more tile roofs appeared, showing how the village’s fortunes rose hand in hand with the indu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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