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Ancient Diplomacy: Exchange with the Continent

  • Akita
Topic(s):
Historic Sites/Castle Ruins
Medium/Media of Use:
Interpretive Sign
Text Length:
≤250 Words
FY Prepared:
2024
Associated Tourism Board:
Tsuchizaki chiku ta gengo kaisetsu seibi kyogikai

古代の外交:大陸との交流


秋田城は日本海への地理的近さから、国際的な外交の窓口となった。当時、大和とアジア大陸の国との外交関係は、贈り物を携えて大陸との間を行き来する大規模な使節団によって維持されていた。


秋田城は、古代の王国、渤海からの使節団の玄関口であった。渤海は、満州、外満州、朝鮮半島北部の大半を支配していた国である。渤海の役人は、727年から795年の間に6回にわたって出羽国に上陸し、秋田城に立ち寄ったと考えられる。その後、大和朝廷の代表者と面会するために南の奈良まで旅をした。


秋田城跡の発掘調査では、外交使節団が滞在したと思われる場所に関する手がかりが発見されている。当時としては最新式の衛生設備であった水洗トイレの跡が城跡のすぐ東側で発見された。排水溝から検出された有機物には豚肉にしか寄生しない種類の有鉤条虫卵が含まれていた。当時、日本では豚肉は食べられていなかったが、大陸からの料理には豚肉が使われており、外国の役人がこのエリアにあった寺を迎賓館的に利用した可能性を示唆している。また、8世紀に外交関係が活発化した時期にこのトイレが造られ、9世紀に渤海が使節団の派遣を停止すると撤去されたが、それもこの説を裏付けている。

古代的外交:與亞洲大陸的交流


秋田城因為緊鄰日本海而成為國際之間交流的窗口。當時大和朝廷與亞洲大陸各國之間的外交,就是透過大型使團滿載贈禮往返大陸之間所維持。

秋田城是渤海使節團來訪時的進出門戶。渤海為當時統治滿洲(現今中國東北地區)、外滿洲(現今外東北,俄羅斯領土)、朝鮮半島北部的古代王國。渤海官員曾在西元727年至795年間六次造訪出羽國(秋田縣及山形縣的舊國名),抵達後可能會於秋田城內歇息,接著再前往南方的奈良,拜見大和朝廷的代表。

秋田城的考古團隊曾挖掘出這些外交訪客可能暫時停留過的痕跡,包含城柵東側發現了當時最先進技術的沖水式廁所遺跡,並在排水溝內的有機殘留物裡,發現一種只寄生在豬肉之中的絛蟲蟲卵。由於當時的日本並不吃豬肉,但豬肉卻是亞洲大陸菜餚中很常見的食材,這也代表這些外國使節很可能曾停留於該地區的舊寺廟之中;而廁所則是建於西元八世紀外交往來頻繁之時,並在西元九世紀渤海不再派遣使節後拆除,更進一步證實了使節團曾經停留的說法。

古代外交:与亚洲大陆的交流


秋田城靠近日本海,因而成为了当时的外交窗口。大和王国与亚洲大陆各国之间的外交关系是通过携带礼物的大型使团的往来维系的。

秋田城是渤海国使团来访的门户。渤海国是一个古代王国,其势力范围相当于今天的中国东北、朝鲜半岛东北及俄罗斯远东的部分地区。渤海国的官员在出羽国(日本古代行政区划之一)登岸,在727年至795年间的六次访问期间,很可能在秋田城驻留休整。随后他们南下前往奈良,与大和王国的使节会面。

在秋田城的考古发掘中发现了外交使团驻留此地的线索,城塞以东挖出了当时最先进的卫生设施——冲水式厕所的遗迹。排水沟中的有机残留物含有仅存在于猪肉中的猪带绦虫卵。当时的日本并不食用猪肉,但猪肉是大陆饮食文化的一部分。这表明外国官员可能在当时位于这片地区的寺院中住宿。这些厕所设施建于公元8世纪的外交高峰期,在9世纪渤海国停止派遣使团后被拆除,使这个理论得到了进一步的证实。

고대의 외교: 대륙과의 교류


아키타 성은 바다와 가까워 국제적 외교의 창구가 되었습니다. 당시 야마토 정권과 다른 아시아 대륙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는 선물을 가지고 대륙을 오가는 대규모 사절단을 통해 유지되었습니다.


아키타 성은 고대 왕국 발해의 사절단을 맞이하는 곳이었습니다. 발해는 당시 만주, 외만주, 한반도 북부 대부분을 지배했습니다. 발해 사절단은 727년부터 795년까지 6차례에 걸쳐 데와(手羽) 지역에 상륙하여 아키타 성에 들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후 이들은 야마토 정권의 대표자와 만나기 위해 남쪽에 있는 나라 지역으로 떠났습니다.


아키타 성터의 발굴조사에서는 외교 사절단이 머문 것으로 보이는 장소와 관련된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최신식 위생 설비였던 수세식 화장실 터가 성터의 바로 동쪽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배수구에서 검출된 유기물에서는 돼지고기에만 기생하는 갈고리촌충(기생충의 일종)의 알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대륙에서는 요리에 돼지고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외국의 사신들이 이 지역의 절을 영빈관처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또한 이 화장실은 외교 관계가 활발했던 8세기에 지어져 발해가 사절단 파견을 중지한 9세기에 철거되었는데, 이 또한 위와 같은 가설을 뒷받침해 줍니다.

Ancient Diplomacy: Exchange with the Continent


Akita Fort’s proximity to the Sea of Japan made it a center for international diplomatic exchange. At the tim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Yamato and kingdoms on the Asian mainland were maintained by large delegations that traveled to and from the continent laden with gifts.

Akita Fort was the entry point for delegations visiting from Balhae (Japanese: Bokkai), an ancient kingdom that controlled most of Manchuria, Outer Manchuria, and the nor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Balhae officials landed in Dewa Province and likely rested at Akita Fort during six trips between 727 and 795. They then traveled south to Nara to meet with representatives of the Yamato court.

Archaeological excavations at Akita Fort have uncovered clues as to where diplomatic visitors may have stayed. The remains of pour-flush toilets, the latest in sanitation technology at the time, were found just east of the fort. Organic remains in the drainage ditch contained the eggs of a type of tapeworm found only in pork. Pork was not eaten in Japan at the time, but it was present in cuisine from the mainland, suggesting that foreign officials likely lodged at the temple that once stood in the area. The toilets were built during a spike in diplomatic relations in the eighth century and were removed in the ninth century after Balhae stopped sending envoys, further supporting this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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