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타오카 자연공원

  • 구마모토
장르:
사적·성터 자연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0 이하
작성 연도:
2020
지역 협의회명:
Kumamoto City

Kitaoka Nature Park


This lush park, which is situated at the foot of Mt. Hanaoka, has a fascinating history. It once was the site of Myogeji Temple, a family temple established in 1642 to commemorate Hosokawa Tadatoshi (1586–1641). In 1871, in the wake of the Meiji government’s decree ordering the separation of Shinto and Buddhism, the temple was abandoned. A Hosokawa family home stood here until it was destroyed in an air raid during World War II. To one side of the gate are the remains of the temple’s dry landscape garden (karesansui), which feature larger rocks representing islands in a “sea” of pebbles. Karesansui gardens are quite rare in Kumamoto.


A path leads to a stone staircase in the southwest corner of the garden; this staircase leads up the mountain to a karamon Chinese-style gate. At the foot of the staircase, on the landing halfway up, and in the clearing at the top are a total of 66 stone toro lanterns, which were presented by the family’s retainers.


Through the gate is a rectangular clearing containing three burial shrines. Left to right, these belong to:


  • Hosokawa Mitsunao (1619–1650) the fourth head of the Hosokawa clan; built Myogeji Temple.
  • Hosokawa Tadatoshi (1586–1641), the third head of the Hosokawa clan, father of Mitsunao.
  • Chiyohime (1597–1649), wife of Tadatoshi.

The wives of most of the daimyo lords were buried in Edo (Tokyo), where they were required to reside as hostages of the shogun. As the adopted daughter of shogun Tokugawa Hidetada (1579–1632), however, Chiyohime was given the privilege of being buried alongside her husband.


Each mausoleum is divided into two parts, with the worship hall (haiden) at the front and the mausoleum (tamaya) at the back. Each mausoleum contains a large five-ring pagoda (gorinto), though these cannot be seen, as the doors are kept shut. The stone monuments running around the edge of the clearing are for the retainers who committed ritual suicide when their lord died after obtaining permission to do so. Tadatoshi had 19 of them, while Mitsunao had 11.


There are more graves further up the hill. A gate on the left of the clearing leads into the bamboo forest.


北岡自然公園


花岡山の麓に位置する緑豊かな公園には、魅力的な歴史があります。かつては、1642年に細川忠利(1586-1641)を祀るために建立された菩提寺である妙解寺がありましたが、1871年、明治政府の神仏分離令により廃寺となりました。第二次世界大戦中の空襲で破壊されるまで、ここには細川家の家が建っていました。門の片側には、寺の枯山水の跡があります。枯山水では、小石の「海」に浮かぶ島々を大きな岩で表現しています。枯山水は熊本では滅多に見られません。


庭園の南西角には小道の先に石段があり、ここから山を登ると唐門に辿り着きます。階段の下、途中の踊り場、階段の上の開けた場所には、家臣から贈られた石灯籠が計66個あります。


門を通り抜けると、3つの霊廟が設けられた長方形の広場があります。祀られているのは左から順に:


  • 細川光尚(1619–1650):細川家4代当主。妙解寺を創建。
  • 細川忠利(1586–1641):細川家3代当主。光尚の父。
  • 千代姫(1597–1649):忠利の夫人。

多くの大名の妻は、将軍の人質として居住することを義務付けられていた江戸(東京)に埋葬されていました。しかし、徳川秀忠(1579-1632)の養女であった千代姫は、特別に夫と一緒に埋葬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


霊廟は2つに分かれていて、正面が拝殿、奥が霊屋となっています。各霊廟には大きな五輪塔がありますが、扉が閉まっているので見ることはできません。広場の周囲を取り囲む石碑は、主君が亡くなったときに、許可を得て切腹した家臣のためのものです。忠利には19基、光尚には11基あります。


丘を登るとまたお墓があります。広場の左手にある門を通り抜けた先は竹林です。


北岡自然公園


這座鬱鬱蔥蔥的公園位於花岡山麓,擁有迷人的歷史。1642年,此處新建了一座妙解寺,它是供奉細川忠利(1586-1641)的「菩提寺」(安葬並祭祀祖先的家廟)。到了1871年,因明治政府下令「神佛分離」,寺廟就此廢棄。不過屬於細川家族的房屋一直矗立在這裡,直到二戰期間的空襲中被摧毀。大門內的一側是寺廟枯山水庭園遺跡,其中較大的岩石代表了鵝卵石「海洋」中的島嶼,而枯山水庭園在熊本實屬罕見。

一條小路通向庭園西南角的石梯,拾級而上就可到達山上一道具有中式風格的唐門。在石梯腳下、途中的平台和石梯頂部的空地上,共有66座石燈籠,它們都是細川家族的家臣們所贈。

穿過大門是一塊長方形的空地,包括3座靈廟(放置骨灰靈位並供人祭拜的殿閣)。從左到右,分別祭祀如下人物:


・細川光尚(1619-1650):第四代細川家主;創建妙解寺。

・細川忠利(1586-1641):熊本藩第一代细川氏藩主,第三代細川氏家主,細川光尚之父。

・千代姬(1597-1649):細川忠利之妻。


大多數「大名」(日本封建時代的領主)的妻子會被要求作為幕府將軍的人質居住在江戶(今東京),所以最終也只能被安葬在那裡。不過,作為幕府將軍德川秀忠(1579-1632)的養女,千代姬有幸能與丈夫一起安葬。

每座靈廟分為兩個部分,前面是拜殿,後面是本殿(正殿,也稱靈屋)。每座靈廟裡都有一個大五輪塔,但因大門緊閉,無法看見。圍繞空地邊緣的石碑是為家臣們而建造,他們獲得許可在主公去世時切腹殉葬。細川忠利的靈廟共有19塊忠臣的石碑,細川光尚的靈廟有11塊。

如果繼續上山會看到更多陵墓,空地左側的大門則通向一片竹林。

北冈自然公园


这座郁郁葱葱的公园位于花冈山麓,拥有迷人的历史。1642年,这里新建了一座妙解寺,它是供奉细川忠利(1586-1641)的“菩提寺”(安葬并祭祀祖先的家庙)。到了1871年,在明治政府颁布的“神佛分离”号令下,寺庙被废弃。不过细川家族的宅邸一直矗立在这里,直到它在二战期间的空袭中被摧毁。大门内的一侧是寺庙枯山水庭园遗迹,其中较大的岩石代表了鹅卵石“海洋”中的岛屿,而枯山水庭园在熊本实属罕见。

一条小路通向庭园西南角的石梯,拾级而上即可到达山上一道具有中式风格的唐门前。在石梯脚下、途中的平台和石梯顶部的空地上,共有66座石灯笼,它们都是细川家族的家臣们所赠。

穿过大门是一块长方形的空地,包括3座灵庙(放置骨灰灵位并供人祭拜的殿阁)。从左到右,分别祭祀如下人物:


・细川光尚(1619-1650):第四代细川家主;创建妙解寺。

・细川忠利(1586-1641):熊本藩第一代细川氏藩主,第三代细川氏家主,细川光尚之父。

・千代姬(1597-1649):细川忠利之妻。


大多数“大名”(日本封建时代的领主)的妻子作为幕府将军的人质,都被强迫居住在江户(今东京),所以她们最终也会被安葬在那里。但因千代姬是幕府将军德川秀忠(1579-1632)的养女,她才有幸与丈夫葬在一起。

每座灵庙分为两个部分,前面是拜殿,后面是本殿(正殿,也称灵屋)。每座灵庙里都有一个大五轮塔,但由于大门紧闭,无法看见它们。围绕空地边缘的石碑是为那些在他们的主人去世时获得许可后切腹殉葬的家臣们而建造,细川忠利的灵庙共有19块忠臣的石碑,细川光尚的灵庙则有11块。

继续上山还会看到更多陵墓,空地左侧的大门通向一片竹林。

기타오카 자연공원


성하 마을과도 비교적 가까운 하나오카야마 산 기슭에 위치하며 녹음이 우거진 기타오카 자연공원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있습니다. 과거 이곳에는 1642년에 호소카와 다다토시(1586-1641)부터 대대로 선조를 모시기 위해 건립된 묘게지 절이 있었으나, 정부의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에 따라 1871년에 폐사(廢寺)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공습으로 인해 파괴될 때까지 이곳에는 호소카와 가문의 저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문을 지나 오른쪽 뒤편에는 묘게지 절의 가레산스이 정원이 남아 있습니다. 가레산스이란, 큰 바위와 자잘한 자갈을 사용하여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구마모토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입니다.


정원 남서쪽의 오솔길을 따라 돌계단을 올라가면 묘소 부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에 도착합니다. 돌계단 아래와 중간 층계참, 돌계단 상부의 탁 트인 공간에는 총 66개의 가신들이 기증한 석등롱이 있습니다.


문을 빠져나가면 3개의 영묘가 마련된 직사각형의 광장이 나타납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아래와 같은 인물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 호소카와 미쓰나오(1619-1650): 호소카와 가문의 4대 당주. 묘게지 절을 창건.
  • 호소카와 다다토시(1586-1641): 호소카와 가문의 3대 당주. 미쓰나오의 부.
  • 지요히메(1597-1649): 다다토시의 처.

당시 다이묘(영주)의 아내는 도쿠가와 쇼군의 명에 따라 에도(지금의 도쿄)에 거주하는 것이 의무였으며, 사망한 경우에도 에도에 묻히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쿠가와 히데타다(1579-1632)의 양녀이자 훗날 다다토시의 아내가 된 지요히메는 특별히 남편과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2개로 나누어진 영묘는 정면에는 배례를 올리는 하이덴(拜殿)이, 안쪽에는 다마야(사당)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각 영묘 안에는 거대한 오륜탑이 놓여 있지만, 문이 닫혀 있어 모습을 볼 수는 없습니다. 광장 주변을 둘러싼 석탑은 주군이 사망했을 때 순절한 가신들을 모시는 묘입니다. 다다토시의 가신을 모시는 석탑 19개와 미쓰나오의 가신을 모시는 석탑 11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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