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다이라쿠지

  • 오이타
장르:
사적·성터 신사·사원·교회 건조물·시설
매체 이용 구분:
웹페이지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21
지역 협의회명:
usachiku machizukuri kyogikai

Dairakuji Temple

Dairakuji Temple was founded in 1333 by the monk Domitsu from Saidaiji, one of the great Buddhist temples of Nara. Financing was provided by Itozu Kintsura, the head priest of Usa Jingu Shrine at the time, and Dairakuji served as the memorial temple (bodaiji) of the Itozu family, whose mortuary tablets are still enshrined in the Jibutsudo Hall. In 1334, by decree of Emperor Go-Daigo (1288–1339) Dairakuji became a chokuganji, a temple tasked with the duty of praying for the peace and protection of the country. In addition, it provided rigorous training for monks of the Usa Jingu complex and surrounding temples in the era of syncretic worship of Shinto and Buddhism. The temple currently belongs to the Koyasan Shingon school of Buddhism.


The Hondo (Main Hall) of Dairakuji was specially constructed to preserve its seven most important Buddhist statues. The principal object of worship is a 1.4-meter statue of Miroku flanked by two nearly symmetrical attendant statues of bodhisattvas Daimyoso and Ho’onrin. Miroku is a bodhisattva who will appear in this world in the distant future to become the next Buddha, the successor to the historical Shakyamuni Buddha. The statue at Dairakuji portrays Miroku as a Buddha sitting on a lotus pedestal, the right hand raised in the gesture of dispelling fear and the left hand palm down on the knee. The triad is surrounded by Heavenly Kings protecting Miroku at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Jikokuten (east), Zojoten (south), Komokuten (west), and Tamonten (north). All the statues were carved in the second half of the Heian period (794–1185) from hinoki cypress using the yosegi-zukuri joined woodblock technique and are nationally designated Important Cultural Properties.


Dairakuji houses many other valuable treasures. Display cases in the Hondo contain a ritual tool called gokosho, supposedly used by the founder Domitsu, and a handwritten Heart Sutra scroll, part of which is attributed to Kukai (Kobo Daishi, 774–835), the founder of the Shingon school of Buddhism. The Jibutsudo enshrines a statue of Nyoirin Kannon, a bodhisattva of compassion depicted with six arms. According to temple legend, the statue belonged to Taira Shigemori (1138–1179), a member of the powerful Taira warrior clan featured in Heike Monogatari (The Tale of the Heike), a thirteenth-century epic.


The Daishi-Gomado Hall is used to perform goma ceremonies that involve chanting sutras and burning prayer sticks in a sacred fire. It houses a statue of the Wisdom King Fudo Myo-o, a statue of Kukai, and 88 small statues of Buddhas and bodhisattvas, one for each location of the famous Shikoku Pilgrimage associated with Kukai. The temple grounds contain multiple stone sculptures of bodhisattvas and guardian deities, stone pagodas, and a bell tower with a large bell that dates to 1382 and is the oldest domestically-produced temple bell in Oita Prefecture.


Dairakuji is located just north of Usa Jingu, not far from the Shinkyo Bridge. The temple is open to visitors, but there is a fee for entry to the Hondo.


大楽寺

大楽寺は、奈良の大寺の1つである西大寺の僧侶であった道密によって1333年に設立されました。資金は当時宇佐神宮の宮司であった到津公連から提供され、大楽寺は到津家を追悼する寺(菩提寺)となり、位牌は現在も持仏堂というお堂に安置されています。1334年、後醍醐天皇(1288–1339)の命により、大楽寺は国の平和と保護を祈る義務を負ったお寺である勅願寺になりました。また、神仏習合の時代に、宇佐神宮とその周辺の寺院のために僧侶を厳格に養成しました。大楽寺は現在、高野山真言宗に所属しています。


大楽寺の本堂は、7体の最も重要な仏像を保管するために特別に建設されました。ご本尊は、1.4メートルの弥勒の仏像であり、その両脇には、大妙相菩薩と法苑林菩薩というほぼ対称的な2体の弥勒の随伴者の像があります。弥勒は菩薩であり、遠い将来に歴史上に実在した仏陀である釈迦の後継者として次の仏となるためにこの世に現れます。大楽寺にある像は、弥勒を蓮の台座に座った如来として表しており、右手は恐れを払拭する仕草で持ち上げられ、左手は手の平を下にして膝に置かれています。この三尊は、弥勒を四つの方角から守護する天王である、持国天(東)、増長天(南)、広目天(西)、多聞天(北)に取り囲まれています。すべての像は、平安時代(794–1185年)後半に寄木造という技術を用いて檜から彫られており、国の重要文化財に指定されています。


大楽寺には他にもたくさんの貴重な寺宝があります。本堂の陳列ケースには、開祖である道密上人が使用していたと伝えられる五鈷杵という法具や、その一部が真言宗の開祖である空海(弘法大師、774–835)によって書かれたと伝えられている般若心経の手書きの巻物が展示されています。持仏堂には、6本の腕を持つ姿で表現された慈悲の菩薩の如意輪観音像が安置されています。寺伝によるとこの仏像は、13世紀の叙事詩である平家物語にも登場した強力な武家の平家の一員であった平重盛(1138–1179)のものでした。


大師堂・護摩堂は、お経を唱えたり祈祷用の薪を神聖な火で燃やしたりする護摩供養のために利用されています。その中には不動明王の像や、空海の像、88体の小さな仏像(1体ずつが、弘法大師空海で有名な四国霊場の1ヶ所に相当している)があります。境内には、いくつかの菩薩や明王などの石造、石塔があり、鐘楼にある1382年作の大きな梵鐘は大分県最古の国産の梵鐘となっています。


大楽寺は宇佐神宮のすぐ北、神橋から遠くないところにあります。参拝は自由にできますが、本堂への入場は有料です。


大樂寺


大樂寺建於1333年,創建者是來自奈良大寺之一西大寺的僧人道密。寺院由當時宇佐神宮的宮司(神宮最高負責人)到津公連出資修建。大樂寺最初是到津家安葬並祭祀先祖的菩提寺,寺內的持佛堂中至今仍供奉著他們的家族牌位。1334年,後醍醐天皇(1288-1339)下旨將大樂寺定為鎮護國家安寧和平的「敕願寺」。此外,在神道教與佛教融合的「神佛習合」時代,它還為宇佐神宮及周邊寺院的僧侶提供嚴格的修行指導。如今,大樂寺屬於高野山真言宗。

大樂寺本堂(正殿)專為安放寺內7尊最重要的佛像而建。本尊是一座高1.4公尺的彌勒佛像,大妙相菩薩與法苑林菩薩脅侍左右,對稱而立。在佛教教義中,彌勒佛是現在佛釋迦牟尼的繼任者,將在遙遠的未來降臨人世,成為下一任佛陀。大樂寺的這尊彌勒佛像安坐於蓮花寶座上,右手施驅散恐懼的施無畏印,左手掌心向下,平置於膝上,為成佛後形象。在這一組三尊佛像的周圍,有護衛彌勒佛的四大天王立于四方,分別為:東方持國天王,南方增長天王,西方廣目天王和北方多聞天王。所有雕像都出自平安時代(794-1185)下半葉,取日本檜木(日本扁柏)為材料,以多塊木料拼合的「寄木造」工藝製成。它們均為國家指定重要文化財產。

大樂寺還保存有許多珍寶。本堂內陳列包括一柄名為「五鈷杵」的法器,據推測,可能曾為寺院的創建者道密所用;一卷手書《心經》,其中部分被傳是佛教真言宗開宗祖師空海(774-835;弘法大師)的筆跡。持佛堂內供奉著一尊如意輪觀音像,這是一尊六臂觀音,為大慈大悲觀世音菩薩的化身之一。據寺院所傳,這尊觀音像原本為平家武將平重盛(1138-1179)所有。平家是歷史上權勢薰天的武將家族,13世紀敘事詩《平家物語》講述的正是這個家族的故事。

大師堂·護摩堂從前用於舉行護摩儀式。「護摩」本意焚燒,原是印度密宗修行法門,儀式中要念誦佛經,並將護摩木投入聖火中焚燒,以此供養神佛,傳達祈願。佛堂內供奉著一尊不動明王像、一尊空海像,以及88尊小佛像,每一尊小佛像對應著「四國遍路」的一處靈場,這條行遍四國八十八處寺院的徒步巡禮路線與空海有關。寺院域內還有若干菩薩及明王石像、石塔和一座鐘樓,鐘樓上懸掛的大鐘鑄於1382年,是大分縣最古老的日本國產梵鐘。

大樂寺緊鄰宇佐神宮北側,離神橋不遠。寺院對外開放,參觀本堂需購買門票。

大乐寺


大乐寺建于1333年,创建者是来自奈良大寺之一西大寺的僧人道密。寺院由当时宇佐神宫的宫司(神宫最高负责人)到津公连出资修建。大乐寺最初是到津家族安葬并祭祀先祖的菩提寺,寺内的持佛堂中至今仍供奉着他们家族的牌位。1334年,后醍醐天皇(1288-1339)下旨将大乐寺定为镇护国家安宁和平的“敕愿寺”。此外,在神道教与佛教融合的“神佛习合”时代,它还为宇佐神宫内及周边寺院的僧侣提供严格的修行指导。如今,大乐寺属于高野山真言宗。

大乐寺本堂(正殿)专为安放寺内7尊最重要的佛像而建。本尊是一座高1.4米的弥勒佛像,大妙相菩萨与法苑林菩萨胁侍左右,对称而立。在佛法中,弥勒佛是现在佛释迦牟尼的继任者,将在遥远的未来降临人世,成为下一任佛陀。大乐寺的这尊弥勒佛像安坐于莲花宝座上,右手竖起,施驱散恐惧的施无畏印,左手掌心向下,平置于膝上,为成佛后形象。在这一组三尊佛像的周围,有护卫弥勒佛的四大天王立于四方,分别为:东方持国天王,南方增长天王,西方广目天王和北方多闻天王。所有雕像都出自平安时代(794-1185)下半叶,取日本桧木(日本扁柏)为材料,以多块木料拼合的“寄木造”工艺制成。它们均为国家指定重要文化财产。

大乐寺还保存有许多珍宝。本堂内陈列有:一柄名为“五钴杵”的法器,据推测,可能曾经为寺院的创建者道密所用;一卷手书《心经》,其中部分被传是佛教真言宗开宗祖师空海(774-835;弘法大师)的手迹。持佛堂内供奉着一尊如意轮观音像,这是一尊六臂观音,为大慈大悲观世音菩萨的化身之一。据寺院所传,这尊观音像原本为平家武将平重盛(1138-1179)所有。平家是历史上势力强大的武将家族,13世纪叙事诗《平家物语》讲述的就是他们的故事。

大师堂·护摩堂从前用于举行护摩仪式。“护摩”本意焚烧,原是印度密宗修行法,仪式中要念诵佛经,并将护摩木投入圣火中焚烧,以此供养神佛,传达祈愿。佛堂内供奉着一尊不动明王像、一尊空海像,以及88尊小佛像,每一尊小佛像对应着“四国遍路”的一处灵场,这条行遍四国八十八处寺院的徒步巡礼线路与空海有关。寺院区域内还有若干菩萨及明王石像、石塔和一座钟楼,钟楼上悬挂的大钟铸于1382年,是大分县最古老的日本国产梵钟。

大乐寺紧邻宇佐神宫北侧,离神桥不远。寺院对来访者开放,参拜本堂需付入场费。

다이라쿠지 절(大樂寺)


다이라쿠지 절(大樂寺)은 1333년 나라에 있는 큰 사찰 중 하나인 사이다이지 절(西大寺)의 승려 도미쓰(道密)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당시 우사 신궁의 궁사(최고위 신관)였던 이토즈 긴쓰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다이라쿠지 절은 이토즈 가문의 보다이지(菩提寺, 한 가문의 일족이 선조의 혼령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원)로 이용되었는데, 당시의 위패는 현재도 지부쓰도(持佛堂)라는 사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1334년 다이라쿠지 절은 고다이고 천황(1288~1339)의 명에 따라 국가의 평화와 보호를 기원하는 칙원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신토와 불교가 융합되었던 시대에는 우사 신궁과 그 주변의 사찰들을 위해 승려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으로도 역할했습니다. 다이라쿠지 절은 현재 고야산 진언종(高野山眞言宗)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다이라쿠지 절의 본당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7개의 불상을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건립되었습니다. 본존은 높이 1.4m의 미륵상으로 그 양옆에는 미륵을 보좌하는 대묘상보살과 법원림보살이 거의 대칭적인 형태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미륵보살은 수행을 하고 있으며 석가모니의 후계자로서 먼 훗날 다음 부처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다이라쿠지 절의 미륵상은 연꽃 대좌에 앉아 있는 여래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오른손은 위로 들어올려 두려움을 없애는 몸짓을 취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무릎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또한 이 삼존불은 미륵을 사방에서 수호하는 신인 지국천(동쪽), 증장천(남쪽), 광목천(서쪽), 다문천(북쪽)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곳의 모든 불상들은 헤이안 시대(794~1185) 후반 노송나무를 사용해 요세기즈쿠리(머리와 몸통, 손발을 따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조립하는 방식)라는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현재는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이라쿠지 절에는 많은 수의 귀중한 보물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본당의 진열장에는 이 절의 시조인 도미쓰가 의식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고코쇼라는 도구와 진언종의 개창자인 구카이(空海, 774~835)가 직접 손으로 그 일부를 썼다고 전해지는 반야심경 두루마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부쓰도 당에는 6개의 팔을 가진 자비의 보살인 여의륜관음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사찰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불상은 헤이케모노가타리(13세기에 쓰여진 군기문학)에 등장하는 강력한 무사 가문 헤이케(다이라 가문)의 일원인 다이라노 시게모리(1138~1179)가 소유했었다고 여겨집니다.


다이시도 당(大師堂)과 고마도 당(護摩堂)은 불경을 암송하면서 고마기(護摩木)라 불리는 나무판을 신성한 불에 태우는 고마 공양 의식을 행할 때 이용됩니다. 법당 안에는 부동명왕상과 구카이상, 그리고 88개의 작은 불상(하나의 불상이 구카이와 관련된 시코쿠 지역의 영지 88곳을 의미함)이 있습니다. 경내에는 보살과 명왕 등의 석조상과 여러 개의 석탑이 있으며, 종루에 매달린 커다란 범종은 138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오이타현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된 일본산 범종입니다.


다이라쿠지 절은 우사 신궁의 정북쪽, 신쿄 다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참배는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본당 입장은 유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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