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1200년~1500년대 초의 일본 갑옷

  • 나라
장르:
사적·성터
매체 이용 구분:
앱·QR코드 등
단어 수:
251-500
작성 연도:
2024
지역 협의회명:
Kotonaranobunkazai ta gengo kaisetsu seibi suishin kyōgi-kai

Japanese Armor of the 1200s to Early 1500s


Three varieties of armor were common on the battlefields of the thirteenth to early sixteenth centuries. During that time, most battles were fought as skirmishes between mixed forces of cavalry and infantry. The armor worn by these warriors differed by role, but it typically consisted of a cuirass (chest guard), shoulder guards, thigh guards, and helmet, all reinforced with hundreds to thousands of interlaced strips of toughened leather or iron.


Armor of this type was light enough to be carried by the small-statured horses of the time but strong enough to protect from arrows, the primary weapons of the period. Centuries of gradual improvement made the armor lighter, stronger, and more comfortable to wear, but the basic design remained consistent until the mid-1500s, when firearms were introduced from Europe. The arrival of that deadly new technology forced changes in the design of Japanese armor and forever altered the methods of warfare.


Leather and fabric are easily destroyed by fire or exposure to the elements, and complete suits of armor from this period are extremely rare. Much of the armor that survives today was safeguarded by Buddhist or Shinto institutions such as Kasugataisha Shrine. Shrine collections of armor, weaponry, and other artifacts are therefore important records of warrior culture and technology.


Ōyoroi

Ōyoroi armor was worn by high-ranking warriors who fought on horseback using bows and arrows. The armor is designed to accommodate the motion of drawing and firing a bow. The chest guard wrapped around the torso, joining under the right arm, and the resulting weak point was covered by an underarm guard called a waidate. A mounted archer wearing ōyoroi was therefore most protected on the left side, which faced toward the target when firing. Two additional pieces covered gaps at the sternum and upper chest.


Ōyoroi armor can be identified by its boxy design and four-section skirt, which only partially covered the inner legs. As the armor of elites, ōyoroi often had elaborate ornamentation. Even after it was replaced on the battlefield, ōyoroi continued to be worn by high-ranking warriors in ceremonies and processions as a sign of status.


Dōmaru

Dōmaru armor was developed as infantry came to play a more central role on the battlefield. The armor was lighter, cheaper, and allowed more freedom of movement. As with ōyoroi armor, the dōmaru chest guard was a single piece that wrapped around the torso and joined under the right arm. But unlike ōyoroi, the armor overlapped, leaving no vulnerable openings. Dōmaru armor also had several hanging sections (called tassets) that provided fuller coverage of the thighs when compared to the four-section design of ōyoroi.


As armor for rank-and-file infantry, dōmaru was commonly worn without shoulder guards or a helmet, and it typically had fewer protective strips of leather or iron. Gradually, even high-ranking warriors came to favor the extra mobility of dōmaru, which led to a hybrid design known as dōmaru-yoroi.


Haramaki

Haramaki armor was even lighter and cheaper to produce than dōmaru, and it became the default armor of low-ranking infantry after its introduction in the early 1300s. Like dōmaru, the haramaki chest guard was a single piece that wrapped around the body, but it tied together at the back rather than below the right arm. This difference is the major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of haramaki.

1200年代から1500年代初頭の日本の甲冑


13世紀から16世紀初頭の戦場では、3種類の甲冑が一般的であった。この時代、ほとんどの戦闘は騎兵と歩兵の混成部隊による小競り合いとして争われた。武士が着用する甲冑は役割によって異なっていたが、一般的に胸当て、大袖、草摺、兜で構成され、いずれも数百から数千の丈夫な革や鉄の札で補強されていた。


このタイプの鎧は、当時の小柄な馬が背負えるほど軽量であったが、当時の主力武器である矢から身を守るのに十分な強度を備えていた。何世紀にもわたり、鎧は徐々に改良され、より軽く、より強く、より快適に着用できるようになったが、基本的な意匠は1500年代半ばに欧州から銃器が伝来するまで一貫していた。その殺傷能力の高い新たな技術の到来により、日本の甲冑の意匠は変更を余儀なくされ、戦い方は根本的に変貌した。


革や布地は火や風雨に晒されるとダメになってしまいやすく、この時代の甲冑が完全に残っていることは極めて稀である。今日に残っている甲冑の多くは、春日大社のような仏教や神道の施設によって保管された。そのため、神社が所蔵する甲冑や武器などの遺品は、武家文化や技術を示す重要な資料である。


大鎧

大鎧は、弓矢を使って馬上で戦う高位の武士が着用する鎧で、弓を引き、射る動作に対応するように設計されている。胸当てが胴を包んで右腕の下で結合され、その結果、弱点となる部分は、脇立(わいだて)と呼ばれる脇の下のガードで覆われていた。したがって、大鎧を着用した騎乗射手は、射撃時に対象のほうを向く左側が最も保護された。胸骨と胸上部の隙間には、2枚の追加の板で覆われている。


大鎧は、箱型の設計と4つに分かれた草摺で識別でき、脚の内側は部分的にしか覆われていない。上位武士の鎧として、大鎧には精巧な装飾が施されることが多かった。戦場では使われなくなった後も、儀式や行列において大鎧は身分の高い武士から着用され続けた。


胴丸

胴丸は、歩兵が戦場でより中心的な役割を果たすようになるにつれて開発された。胴丸はより軽く、より安価で、より自由に動くことができた。胴丸は大鎧と同様に、胴体を包んで右腕の下で結合する一枚仕立てであった。しかし大鎧と異なり、鎧が重なり合っており、脆弱な隙間がなかった。また、草摺と呼ばれる垂れ下がる部分が胴丸にはいくつもあり、四枚で構成される大鎧と比べて、太ももをよりしっかりと覆うことができた。


一般歩兵用の甲冑として、胴丸は肩当てや兜なしで着用されるのが一般的で、革や鉄の防御用小札が少ないのが普通であった。やがて上級武士も胴丸の機動性を好むようになり、胴丸鎧と呼ばれる折衷型デザインにつながった。


腹巻

腹巻甲冑は胴丸よりもさらに軽量で安価に製造でき、1300年代初頭に導入されて以来、下級歩兵の一般的な甲冑となった。胴丸と同様、腹巻も胴を包む一枚ものであったが、右腕の下ではなく背中で結ばれていた。この違いが腹巻の大きな特徴である。

十三世紀至十六世紀早期的日本盔甲


從十三世紀到十六世紀早期的日本戰場上,有三種常見的盔甲。在那個時期,大多數戰鬥都是騎兵和步兵混合部隊之間的小規模衝突。武士所穿的盔甲會因為所擔任的職務而有所不同,但通常由胸甲、大袖、草摺、頭盔所組成,全部都會用數百片甚至數千片堅固的皮革或鐵札交織補強。


這種盔甲夠輕,可以由當時的小型馬背載,但又有足夠的強度可以防備當時的主要武器:箭。經過好幾個世紀的漸進改進,盔甲變得更輕、更堅固,穿著也更舒適,但一直保持一貫的基本設計,直到十六世紀中期,此時從歐洲引進槍砲。這種致命新技術的出現迫使日本盔甲設計有所改變,並且從此以後改變了戰鬥方式。


皮革和紡織品很容易被火燒毀,也容易因天候因素而損毀,因此這個時期的盔甲能夠整套完好保存的情況極為罕見。留存至今的大部分盔甲均由佛教或神道教機構保管,例如春日大社。因此神社所收藏的盔甲、武器等文物是展現武士文化與工藝的重要紀錄。


大鎧

大鎧是上級武士騎馬使用弓箭戰鬥時所穿的盔甲,而這套盔甲專門為方便拉弓射箭的動作而設計。胸甲包覆著軀幹,並在右臂下側相接,此處形成的弱點就會由腋下護具所覆蓋,稱為脇板。因此,穿著大鎧的騎射兵在射箭時左側面向目標,身軀受到的防備最大。胸骨與上胸之間的間隙由額外兩塊板子覆蓋。


大鎧的特徵在於箱形設計和四間草摺,而草摺覆蓋著一部份的大腿內側。大鎧是菁英武士的盔甲,通常具有精美的裝飾。即使大鎧在戰場上已被取而代之,不過上級武士仍然會在典禮和遊行中穿著大鎧。


胴丸

由於步兵在戰場上的作用變得越加重要,於是開發出另一套盔甲:胴丸。胴丸更輕、更便宜,並且有更多的活動自由。和大鎧一樣,胴丸也是由單一張胸甲包覆著軀幹,並在右臂下側相接。不過,與大鎧的不同處在於,胴丸會相交重疊,沒有脆弱的缺口。胴丸也有數片垂懸的部份(稱為草摺);相較於大鎧草摺的四間設計,胴丸的草摺更能全面覆蓋大腿。


胴丸是基層步兵的盔甲,穿著時一般不會加裝大袖或頭盔,防備性的皮革或鐵札通常也比較少。漸漸地,甚至上級武士也開始青睞胴丸額外的機動性,進而產生另一種混搭設計,稱為胴丸大鎧。


腹卷

相較於胴丸,腹卷又更輕,生產成本又更便宜;在十四世紀早期推出之後,便成為下級步兵的標準盔甲。和胴丸的相同處在於,腹卷也是由單一張胸甲包覆著身體,但它是繫在背後,而不是右臂下側。這種差別便是腹巻的一大顯眼特徵。

日本13至16世纪初的盔甲


日本13世纪至16世纪初的战场上,主要流行三种盔甲。当时的战斗多以骑兵和步兵混编部队之间的小规模冲突为主。武士所穿戴的盔甲因其职责而异,但通常都由前甲(胸甲)、肩甲、大腿甲和头盔等部分组成,每一部分都用数百乃至数千片交错编织的坚韧皮革或铁片打造而成。


这种盔甲足够轻便,当时体型较小的战马也能负载,同时又足够坚固,能够抵御弓箭等主要武器的攻击。经过数世纪的逐渐改良,这类盔甲愈发轻便坚固,穿戴也更为舒适,但基本设计一直保持不变,直到16世纪中期从欧洲引入火器。这种致命新式武器的出现,迫使日本不得不改良盔甲设计,战斗方式也随之发生根本性转变。


由于皮革和布料易遭火焚毁或受风雨侵蚀,这一时期保存完整的盔甲套装极为罕见。如今存世的盔甲大多得益于春日大社等佛教或神道教机构的保护。因此,神社收藏的盔甲、武器和其他文物,由此成为记录武士文化和技术的重要历史见证。


大铠

大铠是一种由使用弓箭作战的上级武士所穿戴的盔甲。这种盔甲的设计充分考虑了拉弓射箭时的动作需要。其胸甲环绕躯干,于右臂下方相连,这一薄弱处配备了名为“胁楯”的腋下护具加以防护。如此设计使骑马射箭的武士左侧防护最为严密,恰好保护其射箭时面向目标的一面。另有两块护具用于遮护胸骨和上胸部的空当。


大铠以其方正的造型和仅遮护部分大腿内侧的四片式裙甲为独特标志。作为精英武士的盔甲,大铠往往饰以精美纹样。即使失去战场上的价值后,大铠仍被上级武士在仪式和游行中穿戴,作为其身份的象征。


胴丸

随着步兵在战场上发挥越来越重要的作用,一种名为胴丸的盔甲应运而生。这种盔甲较为轻便实惠,且更便于自由行动。与大铠一样,胴丸的胸甲也采用了整块设计,环绕躯干并在右臂下方连接。但与大铠不同的是,胴丸的盔甲采用重叠式结构,避免了易受攻击的空当。与大铠的四片式设计相比,胴丸配备了几个悬垂部分(称为“腿甲”),能更全面地遮护大腿。


作为普通步兵的盔甲,胴丸通常不配备护肩和头盔,且皮革或铁条的防护条数较少。渐渐地,甚至上级武士也开始青睐胴丸的灵活特性,由此催生了一种名为“胴丸铠”的混合设计。


腹卷

腹卷比胴丸更轻便,制作成本更低,在14世纪初采用后成为低级步兵的标配盔甲。与胴丸类似,腹卷的胸甲也是采用一个整块来环绕身体,但是在背部系紧,而不是右臂下方。这一差异是腹卷的主要辨识特征。

1200년~1500년대 초의 일본 갑옷


13세기부터 16세기 초 전장에서 흔히 입는 갑옷은 세 종류였습니다. 그 시절의 전쟁은 대부분 기병과 보병이 섞인 혼성 부대 간의 소규모 접전이었습니다. 무사들이 착용한 갑옷은 임무에 따라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가슴 보호대(흉갑), 어깨 보호대, 대퇴부 보호대와 투구로 이루어졌습니다. 각 부분은 수백에서 수천 장의 질긴 가죽 또는 철 미늘을 엮어 보강되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갑옷은 당시 체구가 작은 말이 나를 수 있을 만큼 가벼웠지만, 그 시절 주요 무기였던 화살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습니다. 몇 세기 동안 발전을 거듭하며 갑옷은 더 가볍고 튼튼해졌으며 착용하기도 편해졌습니다. 그럼에도 기본 디자인은 1500년대 중반에 유럽에서 총기가 들어올 때까지 큰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총기라는 치명적인 신기술의 도입으로 일본 갑옷의 디자인은 변경될 수밖에 없었고, 전투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가죽과 직물은 비바람에 노출되거나 불에 의해 훼손되기 쉬웠기에 이 시기의 갑옷 한 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갑옷 대부분은 불교 시설이나 가스가타이샤 신사와 같은 신도(神道) 시설에서 보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사에 소장된 갑옷과 무기, 기타 유물들은 무가 문화와 기술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오요로이(大鎧)

오요로이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고위급 무사들이 착용한 갑옷입니다. 이 갑옷은 활시위를 당겨 쏘는 동작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가슴 보호대는 몸통을 감싸는 형태로 오른팔 아래에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한 약점은 와이다테라고 하는 겨드랑이 보호대로 가려졌습니다. 따라서 오요로이를 착용한 기마 궁수는 활을 쏠 때 적에게 노출되는 왼쪽 몸을 최대한 보호해야 했습니다. 2개의 추가 보호대가 흉골과 가슴 위쪽의 노출 부위를 가려 주었습니다.


오요로이 갑옷은 상자 모양의 디자인과 다리 안쪽을 일부 가릴 수 있는 구사즈리(4개로 나뉘어 갑옷의 허리 아래를 덮는 치마형 방어구)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소수 정예 부대의 갑옷인 오요로이에는 정교한 장식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이상 전장에서 오요로이를 입지 않게 된 이후에도 고위급 무사들은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로 의식이나 행렬이 있을 때 오요로이를 착용했습니다.


도마루(胴丸)

도마루 갑옷은 전장에서 보병이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개발되었습니다. 보다 가볍고 저렴했으며 더욱 움직이기 쉬워진 갑옷이었습니다. 도마루는 오요로이 갑옷과 마찬가지로 몸통을 감싸고 오른팔 아래에서 연결된 하나의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요로이와 달리 포개지는 형태로, 공격에 노출될 수 있는 트인 부분이 없었습니다. 도마루 갑옷에는 구사즈리라고 불리는 늘어뜨리는 부분이 여러 개 달려 있어 4개로 이루어진 오요로이와 비교하여 대퇴부를 더 철저히 가려 주었습니다.


일반 보병용 갑옷인 도마루는 보통 어깨 보호대나 투구 없이 착용했으며, 일반적으로 보호용 가죽 또는 철 미늘이 더 적게 사용되었습니다. 점차 고위급 무사들도 기동성이 더 좋은 도마루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도마루 요로이로 알려진 하이브리드 디자인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라마키(腹巻)

하라마키 갑옷은 도마루보다도 더 가볍고 제작 단가가 낮았으며, 1300년대 초에 도입된 이후로 하급 보병들이 착용하는 기본 갑옷이 되었습니다. 하라마키는 도마루와 마찬가지로 몸을 감싸는 일체형 갑옷이었지만 오른팔 아래가 아닌 등에서 연결되는 형태였습니다. 이 차이점이 하라마키의 큰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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