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메이지무라(明治村) 교육자료관

  • 미야기
장르:
건조물·시설
매체 이용 구분:
앱·QR코드 등
단어 수:
250 이하
작성 연도:
2024
지역 협의회명:
To kome ichi

Meiji Village Education Museum


The Toyoma Higher Elementary School was housed in this U-shaped building from 1888 to 1973. Although the school has closed, the Meiji Village Education Museum has recreated several of its classrooms to illustrate how school life has changed along with society, showcasing everything from the history of school lunches to the different models of sewing machines that were used for teaching vocational skills. Textbook pages and homework displayed along the walls offer a glimpse into how elementary school students in past eras experienced World War II and other historical events.


The building was constructed under the supervision of Yamazoe Kisaburō (1843–1923), an architect from Echigo Province (now Niigata Prefecture). Together with his mentor, the master carpenter Matsuo Ihei, Yamazoe went to Europe to build the Japanese pavilion for the 1873 Vienna World Exposition. He remained in Europe to study Western architecture and went on to construct Western-style buildings in Japan.

A strict taskmaster and perfectionist, Yamazoe demanded that each roof tile of this building be weighed, soaked in water, and weighed again to measure how much water it would absorb before declaring it fit for use. His uncompromising attitude caused some problems: There are multiple accounts of aggravated workers removing the ladders and leaving Yamazoe stuck on the school roof to vent their frustration.


Despite the conflicts, the building was completed, and today it is a fine example of blended Western and Japanese design elements, which was characteristic of architecture in the Meiji period (1868–1912). It is now a symbol of Tome’s Miyagi Meiji Village, and in 1981, it was nationally designated an Important Cultural Property. Photography is encouraged throughout the museum and grounds.

明治村教育資料館(旧登米高等尋常小学校校舎)


このU字型の建物は1888年に建てられ、当時の登米高等尋常小学校が入っていました。学校としての使用は1973年に終了しましたが、明治村教育資料館では、いくつかの教室を再現し、社会の変化とともに学校生活がどのように変わったかを示しています。学校給食の歴史から、職業技術を教えるために使われた様々な縫製機(ミシン)のモデルに至るまで展示されています。壁に掲示された教科書のページや宿題は、過去の時代の小学生たちが第二次世界大戦やその他の歴史的出来事をどのように体験したかを垣間見ることができます。

この建物は、越後(現在の新潟県)の建築家、山添喜三郎(1843–1923)の監督の下に建設されました。彼は師匠である大工の松尾伊兵衛と共に、1873年のウィーン万国博覧会の日本館を建設するためにヨーロッパに渡りました。その後、ヨーロッパに残り、西洋建築を学び、日本において西洋風の建物を建てるようになりました。

厳格な監督者で完璧主義者であった山添は、この建物の屋根瓦が使用に適するかどうかを判断するため、すべての瓦を計量し、水に浸して再度計量し、どれだけ水分を吸収するかを測定するように命じました。その妥協しない態度は問題を引き起こしました。労働者たちが不満を募らせ、梯子を取り外して山添を屋根に取り残すという事例や川に人力車ごと放り込まれるという事例があります。

それにもかかわらず、建物は完成し、現在では西洋と日本のデザイン要素を融合させた明治時代(1868–1912)の建築スタイルの良い例として評価されています。現在、この建物は宮城県の明治村のシンボルとなっており、1981年には国の重要文化財に指定されました。資料館とその敷地内では、写真撮影が奨励されています。

明治村教育資料館


這棟 U 形建築建於西元1888年,直到西元1973年為止都是舊登米高等尋常小學校的所在地。目前這所小學已經廢校,而明治村教育資料館則重現了幾間教室,展示當年的學校如何隨著社會變遷而改變,裡面包含學校營養午餐的歷史、職能技術教學使用的各式縫紉機等種種內容;館內牆上亦展示著當時的教科書頁面及回家作業,可讓人一窺那個年代的小學生在第二次世界大戰及其他歷史事件中的生活。


這棟建築是由越後國(現在的新潟縣)的建築師山添喜三郎(西元1843~1923年)所監工完成。山添喜三曾與木工師父松尾伊兵衛一起遠赴歐洲,建造西元1873年維也納世界博覽會的日本館,隨後留在歐洲學習西方建築,學成後再回到日本繼續建造西式建築。

山添喜三是位有著完美主義且嚴厲的監工,蓋這棟建築時曾要求先秤過每一片屋瓦的重量,再浸泡於水中後二次秤重,藉此計算每片屋瓦吸收的水量多寡以判斷是否合用。但這種毫不妥協的態度也帶來了一些問題:照當時多名被惹怒的工人說法,他們曾為了宣洩不滿,而拆掉梯子把山添一個人留在學校的屋頂上。


不過,這棟建築依然在這些衝突中順利完工,現在成為極佳的日西合璧設計合璧範本,並讓這類建築風格成為明治時代(西元1868~1912年)的特色;目前這棟建築是登米的「宮城的明治村」代表,並在西元1981年被指定為國家重要文化財產。遊客在「明治教育資料館」及其場地中皆可不受限制地自由拍照留念。

明治村教育资料馆


这个U型建筑在1888年作为登米高等寻常小学校(明治时代至二战爆发前的日本初等教育机构的名称)落成,并于1973年结束了其作为校舍的使命。这所学校虽然关闭了,但明治村教育资料馆再现了其中的几间教室,展示了当时的学校生活如何随着社会变迁而演化。展品包括不同年代的学校午餐和用于培养职业技能的各种型号的缝纫机。墙上贴着教科书页面和学生作业,可以由此了解当时的小学生如何经历第二次世界大战及其他历史事件。


这座建筑由越后(现新潟县)的建筑师山添喜三郎(1843–1923)负责设计与施工。山添喜三郎与其导师、著名木匠松尾伊兵卫一同前往欧洲,建造了1873年维也纳世界博览会的日本馆。之后,他留在欧洲学习西方建筑,回国后在日本建造了多座西式建筑。


山添喜三郎是一个完美主义者,对于工程的管理极为严格。他要求这座建筑的每一片瓦片都经过称重、浸水和再称重,以测量吸水率,只有符合标准的才能使用。这种毫不妥协的态度也招来了一些反感。据说,一些工人曾多次撤走梯子,把山添喜三郎困在学校的屋顶上,以发泄心中的不满。


尽管存在这些冲突,这座建筑最终顺利竣工。它完美融合了西方和日本的设计元素,是明治时代(1868–1912)建筑的典型代表。如今,它成为登米市宫城明治村(以明治时代建筑为特色的旅游景点)的象征性建筑,于1981年被指定为国家重要文化财产。资料馆及场地内欢迎游客拍照。

메이지무라(明治村) 교육자료관


U자형의 이 건물은 1888년부터 1973년까지 도요마 고등심상 소학교의 옛 교사로 쓰였던 건물입니다.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메이지무라 교육자료관에서는 몇몇 교실을 재현하여 사회 변화와 더불어 학교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전시품에는 학교 급식의 역사, 직업 기술 교육을 위해 사용된 다양한 재봉틀 모델 등이 있습니다. 벽에 전시된 교과서 페이지 및 숙제에서는 일본의 과거 초등학생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그 밖의 역사적 사건들을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건물은 에치고 지역(지금의 니가타현) 출신의 건축가인 야마조에 기사부로(1843~1923)의 감독하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는 스승인 목수 마쓰오 이헤이와 함께 18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의 일본관 건설을 위해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 후 유럽에 남아 서양 건축을 공부한 그는 일본에 서양식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엄격한 감독관이자 완벽주의자였던 야마조에는 기와가 건물에 무리를 주지 않는지 알아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모든 기와의 무게를 잰 뒤 물에 담근 후 다시 계량하여 기와가 수분을 어느 정도 흡수하는지 측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타협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야마조에를 학교 지붕 위에 남겨 둔 채 사다리를 치워 버리는 일도 이따금씩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에도 건물은 무사히 완성되어 지금은 서양과 일본의 디자인 요소가 잘 조화된 메이지 시대(1868~1912) 건축물의 좋은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 건물은 1981년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미야기현 도메 지역의 메이지무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료관과 부지 내에서는 자유롭게 사진 촬영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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