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시무레가와 유적지

  • 가고시마
장르:
사적·성터 자연
매체 이용 구분:
앱·QR코드 등
단어 수:
250 이하
작성 연도:
2024
지역 협의회명:
Ibusuki-shi kanko keizai senryaku kaigi

A Prehistoric Pompeii: Hashimure-Gawa Archaeological Site


At first glance, the Hashimure-gawa Archaeological Site appears to be little more than a public park. The lush green grass and relaxed atmosphere bely a discovery of immense importance to the study of Japan’s ancient peoples.


In 1916, a high school boy found some shards of pottery while playing in the park. He brought the pieces to his teacher, who noticed that they seemed to be a mix of styles from the Jōmon and Yayoi, two of Japan’s prehistoric peoples. Up to that point, their pottery had rarely been found in the same place, and it was believed that the Jōmon and Yayoi had inhabited different regions. That high schooler’s discovery suggested otherwise. The teacher sent the shards to Professor Hamada Kōsaku (1881–1938) of Kyoto Imperial University, who saw an opportunity to clarify the timeline of Japanese prehistory.


Hamada excavated the site, uncovering more pottery, along with evidence of volcanic eruptions that clearly dated the soil strata. Using the eruptions as reference points, Hamada was able to prove that the Jōmon people existed long before the Yayoi, an important clarification to the history of civilization on the Japanese archipelago. Hashimure-gawa was designated a National Historic Site in 1924, and today, re-creations of ancient pit dwellings are the main feature of the park.


Even today, the archaeological findings continue to provide new information. Similar to Italy’s Pompeii, the volcanic ash from past eruptions entombed entire villages, preserving them as records of ancient people’s daily lives. Remnant piles of shell mounds (called middens) and shards of cookware reveal what they ate, and pollen trapped in the ash tells us what plants thrived at different points in history. Artifacts uncovered at the site are displayed at the neighboring Ibusuki Archaeological Museum.

先史時代のポンペイ:橋牟礼川遺跡


橋牟礼川遺跡は、一見するとただの公園のように見える。しかし、青々とした芝生とリラックスした雰囲気は、日本の古代の人々を研究するうえでこの遺跡が持つ非常に重要な意味を覆い隠している。


1916年、公園で遊んでいた男子高校生が、古い土器の破片を見つけた。彼はその破片を先生のもとへ持って行った。先生は、それらが日本の先史時代の民族である縄文人と弥生人が混在しているように見えることに気づいた。それまで、縄文人と弥生人は別の地域に住んでいたと考えられていた。その高校生の発見は、そうではないことを示唆していた。先生はその破片を京都帝国大学の濱田耕作教授(1881-1938)に送った。濱田教授は日本先史時代の年代を解明する好機ととらえた。


濱田教授は橋牟礼川遺跡を発掘し、火山噴火の証拠とともに、地層年代を明確に示す噴火の痕跡を発見した。噴火を基準にして、縄文人が弥生人よりずっと前に存在していたことを証明することができた。この発見により、日本列島における文明の発展が明らかになった。橋牟礼川は1924年に国の史跡に指定され、現在は、古代の竪穴住居が再現されたものが公園のおもな見どころとなっている。


考古学的な発見は、新たな情報を提供し続けている。イタリアのポンペイのように、過去の噴火による火山灰は村全体を埋め尽くし、古代の人々の日常生活の青写真として保存されている。ゴミ塚や調理器具からは、彼らが何を食べていたかがわかり、火山灰に閉じ込められた花粉からは、歴史上のさまざまな時期にどのような植物が繁茂していたかがわかる。これらの遺物の一部は、隣接する指宿市考古博物館に展示されている。

橋牟禮川遺跡


乍看之下,橋牟禮川遺跡看起來就像是一座普通的公園。不過,事實上,蔥綠的草地和輕鬆的氛圍掩蓋了此處遺跡對研究日本古代民族的巨大重要性。


1916年,一名高中男孩在公園休閒時發現了一些陶器碎片。他把這些碎片拿給他的老師。老師注意到它們的樣式看起來像是日本史前民族繩文文化和彌生文化的混合體。在此之前,繩文人和彌生人據信生活在不同的地區,在同一處發現兩種文化的陶器的情況並不常見。老師將這些碎片寄給了京都帝國大學的濱田耕作教授(1881–1938年)。濱田教授認為這是釐清日本史前時代時間線的機會。


濱田教授在橋牟禮川遺跡進行挖掘,有更多陶器出土,還有火山爆發的跡證,可以清楚追溯地層年代。濱田教授以火山爆發為參照依據,可以證明繩文人早在彌生人之前就已經存在了。這項發現有助於釐清日本列島文明的發展。1924年,橋牟禮川被指定為國家歷史遺跡,而如今這座公園的主要景點是古代穴居的複刻場景。


時至今日,考古發現不斷提供新的資訊。就像是義大利的龐貝古城,過去火山爆發產生的火山灰掩埋了多處村莊,反而將它們保存下來,便能夠當作古人日常生活的記錄。垃圾堆和料理器具可以透露他們的飲食,而火山灰中的花粉可以告訴我們歷史上不同時期曾經有哪些植物繁茂生長。此處遺跡出土的文物在鄰近的指宿市考古博物館展出。

桥牟礼川遗址


乍看之下,桥牟礼川遗址不过是一处普通的公园。然而,这片郁郁葱葱、令人心旷神怡的土地下,却深藏着对研究日本远古先民极其重要的历史遗迹。


1916年,一名高中男生在这里玩耍时发现了几片陶器碎片。他将碎片带给老师,而这位老师注意到这些碎片似乎融合了绳文和弥生两个日本史前文化的风格。在此之前,人们普遍认为绳文人和弥生人生活在不同区域,他们的陶器很少在同一地点被发现。老师随即将这些陶瓷碎片寄给了京都帝国大学的滨田耕作教授(1881–1938),后者敏锐地意识到这是厘清日本史前年代的绝佳机会。


滨田教授在桥牟礼川遗址展开发掘,除了发现更多的陶器,还找到了火山喷发的痕迹,这为地层年代提供了明确的依据。以这些火山喷发为参照点,滨田教授成功证实绳文人的存在远早于弥生人。这一发现为日本列岛文明的发展历程带来了全新的认知。1924年,桥牟礼川被列为日本国家历史遗址,如今,复原的古代竖穴式住居成为该公园的主要景观。


时至今日,这里的考古发掘还在不断地为我们揭示着新的历史信息。正如意大利的庞贝古城,这里的火山灰同样掩埋了整个村落,将古人的日常生活永远定格。通过垃圾堆积和炊具,我们得以了解先民的饮食习惯;而封存在火山灰中的花粉,则为我们展现了不同历史时期的植被景观。这些珍贵文物中的部分藏品,现正在毗邻的指宿市考古博物馆展出。

하시무레가와 유적지


하시무레가와 유적지는 언뜻 보면 평범한 공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거진 잔디와 여유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은 일본 고대인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1916년, 공원에서 놀던 한 남자 고등학생이 도자기 조각 몇 개를 발견했습니다. 학생은 교사에게 조각을 가져다 주었고, 그는 도자기가 일본의 선사시대인인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양식이 섞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몬인과 야요이인은 다른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졌고, 이들의 도자기가 한 곳에서 함께 발견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교사는 교토 제국대학의 하마다 소사쿠(1881~1938) 교수에게 이 조각을 보냈고, 하마다 교수는 이를 일본 선사시대 연대표를 명확히 할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하마다 교수는 하시무레가와 부지를 파기 시작했고, 더 많은 도자기와 더불어 토양층의 연대를 명확히 확정한 화산 분출의 증거를 찾았습니다. 하마다 교수는 분출을 기준점으로 삼아 조몬인들이 야요이인들보다 훨씬 전에 살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발견을 통해 일본 열도의 문명 발달이 명확해졌습니다. 하시무레가와는 1924년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고, 오늘날 공원의 주요 볼거리는 고대 움집을 복원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폼페이처럼 과거 화산 분출로 생긴 화산재가 마을 전체를 뒤덮어 고대인들의 일상 기록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쓰레기 더미와 취사 도구를 통해 고대인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재에 갇힌 꽃가루를 통해 역사상 다른 시점에 어떤 식물이 잘 자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인근의 이부스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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